640. 숙청 (1)
(1864)숙청-1
어설픈 남북동거는 실패했다.
다음날 점심 무렵에 장선옥과의 통화를 끝낸 조철봉이 의자에 등을 붙이면서
속으로 말했다. 그러나 크게 실망이 되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장선옥과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동거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아무리 잠자리가 꿀맛 같다고 해도 서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관계에서는 같이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남북 양쪽이 도청과 감시카메라를 들이댄 상황에서의 관계는 양쪽 관계자들의
관음증세만 높여 주었을 뿐이었다.
수준과 인식이 비슷해져야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사는 방식이 같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지도 않고 맞출 수 있다면서 서두는 자들은 위선자이거나 또는 반역자일 수도 있다.
조철봉의 기색을 보고는 좋은 일,
나쁜 일 구분은 기본이고 그것이 여자 문제인지 사업 때문인지까지 구별해 낸다.
그런 갑중의 시선이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던지는 것처럼 말했다.
먼저 말 꺼낸 놈이 주도권을 쥐는 거냐구?”
시간이 지나면 진짜로 흡수당할 것 같으니까요.”
둘을 섞어서 자, 빨간 물 들래? 아니면 푸른 물 들래? 하고 보았던 거죠.”
아이큐도 두자릿수인 놈이 외국 놈 흉내는.”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그러고는 한마디했다.
조철봉이 이경애를 시켜 불러온 것이다.
방을 나갔던 갑중이 잠시 후에 이수동과 함께 들어섰는데 표정이 싹 바뀌어졌다. |
(1865)숙청-2
이수동은 옌지에서 발행되는 조선어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장, 기자까지
일인 삼역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번에 조철봉을 만나 재정지원을 받았다.
이경애와 시장조사차 옌지에 들렀다가 사촌오빠인 이수동의 이야기를 들은
조철봉이 거금을 쾌척한 것이다.
인사를 마친 이수동은 자리에 앉았는데 두 눈에 생기를 띠고 있었다.
이경애한테서 내막을 듣고 온 것이다.
“제가 조선족 건달 여덟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정색한 이수동이 말을 이었다. “이곳 베이징에도 조선족으로 힘 좀 쓰는 인물이 여러 명 있는데 그놈들하고도 연락이 되었습니다.
일을 주신다면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불법 행위에 대항하는 일이 될 테니 합법적인 일이나 같다.
더구나 조철봉은 합자회사의 남한 측 대표인 것이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지금 중국의 남북합자사업 건설현장의 전체 인원구성을 보면 한국, 북한, 조선족, 한족의 인원구성 비율이 1:2:3:4로 되어 있어요.
한국은 관리자가 많고 북한은 중간 관리자급으로 파견되었는데
현장 노동자 대부분은 조선족과 한족이지.
그런데 경비 업무나 반장급은 대부분 북한 측이 장악하고 있단 말이오.”
정색한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수동을 보았다. “이 형이 주동을 해서 조선족과 한족을 규합한 비밀 노조를 만들도록 해요. 우리가 적극 지원해줄 테니까.
물론 북한이나 중국 당국이 알면 안 되겠지.”
“알겠습니다.” 이수동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 아닙니다.” “노조 조직 결성에 대해서는 내가 한국에서 몇 분을 모셔올 테니까 방법을 지도해줄 겁니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런 일이라면 한국에 도사가 수두룩하니까요. 내가 문의해봤더니 금방 결성할 수가 있답니다.”
조철봉이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이수동을 보았다. “아마 이 일이 이 형의 적성과 능력에 맞을 겁니다. 조선족의 단결과 한족과의 융화, 거기에다 북한이나 한국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기반을 닦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말은 조철봉이 한국의 노조 간부 출신이며 지금은 계열사 임원으로 있는 이태성한테서 들은 말이다.
조철봉이 이렇게 유식한 말을 제 머리에서 끄집어낼 리가 없는 것이다.
앞쪽에 앉은 갑중도 조철봉의 말에 잠깐 넋을 잃은 표정이 되었고
이수동은 크게 감동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얼굴이 상기된 데다 눈도 번들거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수동이 말했을 때 조철봉이 갑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있는 최 전무가 이 형하고 일행을 먼저 각 공사장의 자재나 총무부서에 배치시킬 겁니다.
일단 현장에 침투되어야 하니까요.”
그러고는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결국 남한과 조선족이 연합해서 주도권을 잡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그때서야 긴장이 풀린 듯 이수동도 따라 웃었다. “그렇습니다. 조선족은 남한과 손을 잡아야지요.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조선족도 재산인 것이다.
그동안 일부 남한 사람들이 조선족을 깔보는 바람에 엄한 사람들이 욕을 먹었다.
조선족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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