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39. 남북동거(13)

오늘의 쉼터 2014. 10. 5. 12:51

639. 남북동거(13) 

 

 

(1862)남북동거-25 

 

 

양주 두병을 비웠을 때는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윤달수도 사양하지 않고 마신 터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조철봉이 마침 방에 들어온 마담한테 말했다.

“나, 이차 갈테니까 준비해.”

파트너인 오연숙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마담한테 말한 것은 윤달수가 들으라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이기도 한 것이다.

 

마담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오연숙에게 눈짓을 하더니 윤달수를 보았다.

 

너는 어쩔 작정이냐는 표시였지만 눈웃음을 쳤고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아, 나도 같이 나갈까?”

윤달수가 어깨를 펴면서 말한 순간에 조철봉은 가늘고 길게 숨을 뱉었다.

 

개운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명진은 윤달수를 목표로 서울에서부터 합숙 훈련까지 받은 요원인 것이다.

“우리 자주 놉시다.”

하고 조철봉이 호기있게 말하자 윤달수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럽시다. 우린 마음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담이 여자들을 다 데리고 나간 터라 방에는 둘뿐이다.

 

조철봉이 정색한 얼굴로 윤달수를 보았다.

“오늘은 제가 한잔 사는 겁니다. 알고 계셨지요?”

“아, 그거야.”

했지만 윤달수의 눈이 잠깐 반짝이는 것을 조철봉은 놓치지 않았다.

 

빛을 받아 우연히 그랬을 수도 있고 잠깐 깜박였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철봉이 누군가? 선수다.

“그래서 말인데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 조철봉이 가슴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윤달수 앞에 놓았다.

“이거 아가씨 이차값입니다.

 

저 애, 한국에서 왔으니까 아마 1000불은 줘야 될 것 같은데요.”

윤달수는 앞에 놓인 봉투에 시선을 준 채로 움직이지 않았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2만불입니다. 용돈 쓰시라고 드렸습니다.”

봉투를 줄 때는 될 수 있는 한 당당하게 건네는 게 낫다.

 

그래야 모양새도 좋고 받는 입장에서도 거북하지 않은 것이다.

 

거절해도 당당하게 돌려 받으면 그만이다.

 

날 뭘로 보느냐고 화를 내는 상대한테는 이쪽도 화를 내야 된다.

 

될 수 있으면 더 크게. 그래야 저쪽이 진정이 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 모든 경우를 다 예상한 채 기다리고 있는 조철봉 앞에서 마침내 윤달수가 움직였다.

“좋습니다. 받지요.”

봉투를 쥔 윤달수가 가슴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조철봉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웃었다.

“잘 쓰겠습니다.”

선수다. 조철봉의 심장은 감동을 받아 울렁거렸다.

 

말이 통하는 상대인 것이다.

 

윤달수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했다.

“다음 기회에 제가 이번 남북합자사업의 자금 운용에 대한 설명을 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북한측의 협조를 받아야 할 일이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럼요, 언제든지.”

거침없이 말한 윤달수가 소파에 등을 붙이더니 담배를 빼내 입에 물었다.

 

말보로였다.

“우리도 그렇게 꽉 막힌 인간들이 아닙니다.”

윤달수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맞는 말이다.

 

다 같은 민족 아닌가? 

 

 

 

(1863)남북동거-26

 

 

호텔 앞에 차가 멈춰섰을 때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오연숙을 보았다.

“난 집에 일이 있어.”

조철봉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오연숙의 얼굴은 굳어졌다.

 

조선족 운전사도 긴장해서 백미러도 보지 않는다.

 

조철봉이 지갑을 꺼내 100달러짜리 지폐 다섯 장을 세고 나서 내밀었다.

“자 받아.”

“이건 받을 수 없어요.”

이제는 당황한 오연숙이 몸까지 뒤로 젖히며 말했다.

 

그러나 조철봉은 지폐를 오연숙의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럼 먼저 내려.”

조철봉이 말하자 손잡이를 쥔 오연숙이 시선을 내린 채 물었다.

“그럼 왜 데리고 나오셨어요?”

그 순간 조철봉은 오연숙이 작전 중인 요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이 변하지는 않는다.

“분위기 맞추려고 그랬던 거야.”

“그럼 다음엔 저 찾으실 거죠?”

“당연히.”

“그땐 제가 이차 값 안 받을게요.”

하면서 오연숙이 문을 열었으므로 조철봉의 가슴이 다시 허전해졌다.

 

호텔 앞에 오연숙을 내려놓고 차가 도로로 나왔을 때 조철봉이 운전사에게 말했다.

“아파트로.”

회사 운전사였지만 아파트에서 동거하고 있는 장선옥을 한 번도 만나게 한 적이 없다.

 

따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치는 채고 있을 것이다.

 

조철봉이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는 오전 1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장선옥은 가운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중이었는데

 

탁자 위에는 포도주병이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장선옥의 얼굴도 술기운에 붉었다.

“잘 놀았어?”

윤달수하고 약속이 있다는 연락을 한 터라 장선옥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응 괜찮은 사람이던데.”

옷을 벗으며 욕실로 들어가던 조철봉이 문득 생각난 듯이 한마디 더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어.”

그쯤 하면 장선옥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샤워를 마친 조철봉은 역시 가운 차림으로 장선옥 옆에 앉았다.

 

오연숙을 그냥 보낸 때문인지 장선옥의 자태가 더 섹시하게 느껴졌다.

 

그때 장선옥이 자신의 빈 잔에 포두주를 따르며 말했다.

“우리 동거생활, 오늘자로 끝내.”

술잔을 든 장선옥이 붉어진 얼굴로 웃었다.

 

흰 이가 드러났고 눈이 번들거렸다.

 

요염한 모습이다.

“하지만 가끔 만나야겠지.

 

난 당신 생각할 때마다 몸이 근질거리니까 말야.”

장선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을 때에야 정신을 차린 조철봉이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래?”

“우리 남북의 무조건 동거는 실패작이야.

 

무조건 살만 부딪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고.”

“다 알고 시작했던 일 아냐?”

이젠 도청이나 카메라도 무시한 채 조철봉도 정색하고 말했다.

“대충 맞춰 갔지 않아?”

“뭐가?”

장선옥이 눈을 둥그렇게 떴지만 표정은 부드러웠다.

“아냐, 차라리 떨어져 있으면서 만나고 즐기는 게 나았어.

 

이건 마치 종이 다른 암수 한 쌍을 한 우리에 잡아 넣은 것 같아.

 

그래서 열심히 섹스나 하라고.”

“제기랄.”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은 이미 장선옥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선옥의 말에 동감하는 대목도 있었기 때문에 설득할 기력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만나야 할 운명인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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