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 숙청 (4)
(1870)숙청-7
다음날 밤, 서울로 날아간 조철봉은 카바레에서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과 마주앉았다.
본래 카바레(cabaret)라는 프랑스어는 술을 파는 가게라는 뜻인데 첫 카바레는
몽마르트르의 르샤누아르(Le chat Noir), 검은 고양이라는 곳이었다고 한다.
르샤누아르는 1881년에 개업했으니 역사는 1백년도 더 되었다.
그 당시부터 카바레는 금지된 불법적 쾌락의 분위기와 함께 공연을 했는데
지금의 카바레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조철봉은 카바레에서 받은 자극을 생의 활력으로 응용해왔다.
카바레는 조철봉에게 주유소나 같았다.
카바레에서 공급받은 기름으로 몇날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연료가 떨어지면 또 들르곤 했다.
그래서 몇년 전에 만나 호텔에서 응응까지 했으면서도 못 알아보고
또 공을 들여 꼬셨다가 깨우침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조철봉은 전혀 부끄럽지가 않았었다.
오히려 기억하고 있는 그 여자가 안쓰러웠다.
카바레에 다니면서 몇년 전 남자와의 응응까지 기억하고 있다면 상처받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1880년대 몽마르트르의 르샤누아르는 어쨌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요즘 카바레에서는 선생님과 학부모 단합대회도 하고 사은회도 한다.
생일파티는 벌써 옛날이고 반상회까지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남편이 차 가지고 카바레 앞에서 기다리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되었다.
두번째 찾아온 웨이터를 돌려보낸 조철봉이 이강준을 보았다.
그는 지금 장선옥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지금쯤 평양에 들어가 있겠네요.”
그렇게 조철봉이 말을 맺었을 때 이강준이 입맛을 다셨다.
“장선옥씨에 대해서 우리도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강준이 말을 이었다.
“정상적인 한국인, 특히 제대로 교육을 받은 40대 이상 국민은 절대 친북세력이 안됩니다.
운동권 세력은 한줌밖에 안돼요.”
주먹을 쥐어보인 이강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장선옥 또한 체제 교육을 충실히 받은 정상적 북한인이죠.
세뇌가 깊게 되어서 힘들어요.”
“통일이 금방 될 것처럼 떠드는 놈들은 뭡니까?”
“그야 적화 통일이거나 북한 체제가 무너져서 우리가 한반도의 주인이 되는 거죠.
양쪽 체제를 그냥 두고 맞추는 건 다 사기치는 겁니다.”
단호하게 말한 이강준이 길게 숨을 뱉었을 때 조철봉이 물었다.
“윤달수는 잘 됩니까?”
그러자 주위를 둘러본 이강준이 쓴웃음을 짓고 나서 말했다.
“그자는 오래 전에 썩었지요.
그래서 정상적 북한인에 포함이 안됩니다.
장선옥과는 다른 부류죠.”
“오대식과 비슷하군.”
“그렇죠.”
이강준이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런 영화가 있었죠?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이 최첨단 무기로 지구를 박살내다가 갑자기 몰살당했다는 영화.”
“아아.”
조철봉이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이었다.
“그놈들이 감기로 몰살당했던가요?”
“비슷합니다. 그 경우가 이번 경우하고 비슷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더니 이강준이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우린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라서 면역성이 강하죠.
부정이나 불법에도. 하지만 북한은 안그래요.
마치 감기균에 몰살당하는 외계인 경우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1871)숙청-8
웨이터가 세번째 찾아왔을 때 조철봉과 이강준은 이야기를 끝냈다.
“그래, 데려와. 그런데.”
조철봉이 지그시 웨이터를 보았다.
“누구야? 누군데 그렇게 서둘러?”
“이혼녀들인데 괜찮습니다. 그래서 아까부터 제가 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더니 웨이터가 서둘러 몸을 돌렸다.
밤 10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카바레는 이제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잘나가는 카바레는 문전성시이고 잘 안되는 곳은 텅텅 비는 것이 장사하는
어떤 업종이나 마찬가지인데 다 이유가 있다.
그냥 잘되고 안되는 게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조철봉이 지금 앉아있는 카바레 ‘대지’는 첫째로 물이 좋았다.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좋은 물이 더 쏟아진다.
이른바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웨이터는 금방 여자 둘을 데려왔는데 도사급인 조철봉이 봐도 최상이었다.
둘 다 삼십대 중반쯤으로 용모 수려, 체격 날씬, 차림새 깔끔했고 태도 또한 자연스러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금방 내색하는 여자치고 제대로 생긴 경우는 한번도 없었던 것이
조철봉의 경험이다.
여자들은 조철봉과 이강준의 옆에 앉더니 웨이터가 따라주는 술잔을 받았다.
대개 웨이터는 남자 대신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지 첫 술잔을 따라주고 돌아간다.
그런데 그 짧은 동안에 브리핑을 하는 것이다.
고참 웨이터일수록 그 브리핑이 시기 적절하고 유익하며 유머러스하다.
웨이터 고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웨이터가 돌아갔을 때 조철봉이 옆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쇼트커트한 머리에 눈이 상큼했고 쌍꺼풀도 없다.
불빛을 받은 눈동자가 반짝였는데 크기가 정상이었다.
요즘은 시쳇말로 개나 소나 다 서클렌즈를 끼고 다녀서 갑자기 눈동자가 커진 여자를 보면
조철봉은 섬뜩해질 때가 많다.
눈동자가 커야 더 미인이 되는 줄로 아는 것 같았다.
“저 사업을 하는 조철봉이라고 합니다.”
조철봉이 먼저 여자에게 제 소개를 했다.
그러고는 이강준의 파트너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내 친구도 사업을 합니다.”
이로써 이강준은 제 입으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맙다는 듯이 이강준은 웃음띤 얼굴로 머리만 끄덕였는데 파트너도 미인이었다.
이혼한 여자일수록 미인이 많다.
조철봉이 카바레에서 겪은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오늘 밤에 집에 들어가야 됩니까?”
조철봉이 정색하고 묻자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주 보았다.
그러자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제가 지금 외국 출장 중이어서요.
와이프는 제가 지금 외국에 나가 있는 줄로 알고 있단 말씀입니다.”
될지 안될지는 천하의 조철봉도 자신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같이 앉은 지 5분도 안되어서 오늘밤 같이 외박할 수 있느냐고 묻는 놈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로부터 각별하게 호감을 받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그때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건 상관없지만요. 아직 결정하지는 못하겠네요.”
“그러시겠죠.”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제 잔에 술을 따랐다.
앞쪽에 앉은 이강준이 여자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태도가 점잖았고 여유가 있다.
마음을 비우면 저런 태도가 나오고 오히려 여자의 호감을 사게 되는 것이다.
술잔을 든 조철봉이 여자를 보았다.
이 여자 이름도 모르고 있다.
“내가 술 살 테니까 합석부터 하십시다.
그러고나서 찬찬히 살펴보시지요.”
우선 자본이다.
자본이 받쳐줘야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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