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 남북동거(12)
(1860)남북동거-23
룸살롱에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만큼 속 보이는 경우가 없다고 조철봉은 생각해왔다.
초상집에는 일찍 가고 룸살롱엔 늦게 간다.
이것이 조철봉식 생활 신조였다.
그런데 모니카에 들어선 조철봉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윤달수를 보자
꾸물거린 것을 후회했다.
오후 7시 정각이긴 했다.
마담의 말을 들으면 윤달수는 15분 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아이고, 이거 미안합니다.”
윤달수의 손을 잡으면서 조철봉이 사과했다.
“제가 먼저 와서 기다려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웃음띤 얼굴로 윤달수가 말했다.
“제가 너무 일찍 온 거죠.”
모니카는 특급 룸살롱으로 한국 강남지역 몇 곳을 모방해서
손님이 둘 온다면 둘만 정선해서 내보내는 방식을 썼다.
그것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좋게 소문이 나겠지만 실패하면 곤란해진다.
점잖은 손님 체면상 바꾸라고는 못하고 그냥 마시고 나서 다음에 안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담이 데리고 들어온 둘은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인이었다.
“아이고.”
저절로 조철봉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과연 특급이군.”
그러자 마담이 아가씨들을 소개했다.
“얜 한국에서 왔어요. 이름이 이진경이고.”
한국에서 왔다는 아가씨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명진이다.
그러나 나명진은 물론이고 조철봉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얘는 조선족 동포인 오연숙.”
오연숙도 빼어난 미녀였으므로 조철봉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마담은 물론 한국산이었는데 주인은 한국과 조선족 동포가 합자해서
반씩 지분을 나눴다고 했다.
마담이 나명진을 윤달수 옆으로, 오연숙을 조철봉 옆으로 앉히더니
둘의 표정을 살피고나서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으음, 너, 몇살이야?”
윤달수가 나명진에게 묻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철봉이 오연숙의 손을 쥐었다.
오연숙은 동그란 얼굴에 어깨도 둥글었다.
눈도 동그랗고 입술은 그야말로 앵두 두개를 포개놓은 것 같았다.
“네 고향은 어디야?”
조철봉이 물었을 때 앞에서 나명진의 대답이 먼저 울렸다.
“스물넷입니다.”
나이를 세살 내렸다.
그냥 제 나이대로 스물일곱이라고 하면 어때서?
하는 아쉬움이 들었을 때 오연숙이 대답했다.
“옌지에서 왔습니다.”
“어, 그래? 옌지에 너 같은 미인이 있었단 말이지?”
저절로 그렇게 되묻던 조철봉은 문득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쪽에서 나명진을 윤달수 작업용으로 심어 놓았다면
북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갑자기 목이 메었고 몸에 열이 올랐다.
야릇한 자극을 느낀 것이다.
별놈의 경우를 다 겪어본 조철봉이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옆에 있으면 웬수지간이라도 두 잔씩은 그냥 마신다.
조철봉과 윤달수는 석 잔씩 마시고 나서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남북 합자사업을 하면서 위 아래로 문제가 많이 터지는군요.”
먼저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얼굴에 웃음을 짓고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털어놓아 본 것이다.
그러자 윤달수도 화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놀지 못한다지만 흙탕물이 돼버리면 이거 큰일 아닙니까?”
(1861)남북동거-24
“그러게 말입니다.”
맞장구를 치면서도 조철봉은 얼굴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흙탕물의 원조는 바로 자신이 아닌가?
그때 윤달수가 정색하고 물었다.
“제가 말씀 드린 현장, 남측에서 조치를 하실 거죠?”
“물론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도 굳어진 얼굴로 윤달수를 보았다.
“조치해야지요. 그런데.”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이건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그 현장에서 북한측 관계자가
소장한테 돈을 나눠먹자고 했다는군요.
이건 소장한테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
긴장한 윤달수가 머리를 저었다.
“모함입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래놓고 조철봉이 잔을 들고 마시자는 시늉을 했다.
“어쨌든 서로 이렇게 털어놓고 지내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감입니다.”
하면서 윤달수가 손을 뻗어 나명진의 허리를 감았지만 편한 기색은 아니었다.
한모금 술을 삼킨 조철봉이 윤달수를 보았다.
“감독관님. 난 본래 자동차회사 영업사원에서부터 시작한 인간입니다.
돈도 없고 학벌도 시원찮고 백도 없는 인간이라
어떻게 지금 이런 입장이 되기까지 살아 왔는지는 대충 짐작이 되실 겁니다.”
차분하게, 또박또박 말한 조철봉이 똑바로 윤달수를 응시했다.
윤달수는 긴장한 듯 자세가 곧았으며 여자 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명진은 눈을 반짝이고 있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예, 산전수전 다 겪었지요.
남한에서는 공중전까지 겪는다고도 합니다.
아실랑가 모르겠는데.”
눈을 가늘게 뜬 조철봉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남한에서는 돈이면 다 통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런 것 아닙니까?
자본주의가 뭡니까?
돈이 제일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조철봉이 지그시 윤달수를 보았다.
“돈을 멕여서 안되는 일이 없었지요.
내가 살인은 안했지만 했더라도 돈을 트럭에다 싣고 가서
퍼 주었다면 아마 금방 나왔을 겁니다.”
“그건.”
윤달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지요. 다 그렇습니다.”
북한도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조철봉은 참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때로는 말이죠.
내 밑의 직원이 돈 먹는 걸 놔두는 때도 있었습니다.
회사에 크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짓이 놈한테 일할 의욕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 윤달수는 눈만 껌벅였고 조철봉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하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그놈의 돈먹는 버릇은 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버릇이 되면 돈 먹는 건수가 없으면 일을 안하게 되더라니까요.”
“그렇습니다.”
다시 머리를 끄덕인 윤달수가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정화시키려고 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현장도 철저히 조사를 해서 처벌하겠습니다.”
일단 양쪽이 한건씩은 주고 받았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의 시선이 나명진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선이 마주친 아주 잠깐의 순간에 나명진의 표정이 머릿속에 남았다.
굳어진 표정이었다.
나명진은 오늘밤 윤달수를 유혹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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