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 남북동거(8)
(1852)남북동거-15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찾아왔다.
최갑중은 조철봉의 심복이자 동업자로 흉중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남북한 합자사업이 전개되면서 갑중은 주로 현장에서 뛰었는데 조철봉이
감사역을 맡겼기 때문이다.
모든 작업장의 자금 입출은 감사역인 갑중의 확인을 받지 않으면 지급이 되지 않는다.
조철봉이 만들어놓은 안전장치였다.
따라서 갑중은 휘하에 감사팀을 지휘했고 이제는 조철봉의 꼭두각시가 되어있는
자금담당 부사장 안진식을 조종했다.
진짜 실세인 것이다.
“형님.”
하고 소파에 앉자마자 갑중이 불렀는데 사무실에 둘뿐이었어도
업무 이야기를 할 때는 사장님이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은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표시였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갑중이 말을 이었다.
“현장이 오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먹어야 일을 하는 시늉을 하고 경비하고 짜고는
자재를 내다 파는데 남북 합동 작전입니다.”
눈을 치켜뜬 갑중의 말에 열기가 띠어졌다.
“아무래도 노하우가 있는 한국측 놈들이 주도해서
북한 놈들을 끌어들인 것 같은데 현장 서너곳이 특히 심합니다.”
그러고는 갑중이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나쁜 물은 빨리 든다고 말입니다.”
“그걸 북한측 감독관한테 이야기했나?”
“새로 온 윤달수 말씀이죠?”
“그래.”
“먼저 형님한테 보고하고 나서 그 놈들한테 이야기하든지 말든지 하려고요.”
다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윤달수 작전에 대해서는
아직 갑중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갑중이 말을 이었다.
“이거,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문제가 커질 것 같은데요.”
합자자금에서 조철봉이 빼돌리는 액수를 알고 있는 터라
현장에서까지 새나가면 걷잡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윤달수를 만나야겠구나.”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내가 시간을 정할 테니까 넌 내색하지 말고 기다려.”
그러고는 정색하고 갑중을 보았다.
“증거는 모았어?”
“예, 한국에서 온 감독 네 명하고 북한 간부급 세 명,
거기에다 현장 경비 간부급 세 명,
돈을 건네준 한국측 자료도 확보했고 녹음도 몇개 해놓았습니다.”
“금액은 얼마나 돼?”
“몇십만불 정도입니다. 하지만 자재창고 경비를 북한측이 맡고 있는데
자재 파악을 해야 피해 규모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쪽 금액이 꽤 클 겁니다.”
“…….”
“이것들이 돈맛을 알아서 일부 공장에서는 자재 출입을 할 때마다
얼마씩 쥐어주지 않으면 경비가 애를 먹인다고 합니다.”
“…….”
“약점을 잡힌 현장은 더 그렇고요.
그런 곳이 두 곳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야?”
“한 곳은 베이징, 또 한 곳은 칭다오 현장입니다.”
“그럼 그 현장의 한국측 책임자가 약점을 잡힌 것이군.”
“그렇죠.”
그러자 조철봉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베이징 현장에 한번 찾아 가보도록 하지.”
긴장한 갑중을 향해 조철봉이 웃어 보였다.
“썩는 냄새가 나면 금방 파리가 모이는 거야.”
(1853)남북동거-16
“아, 시발, 우리, 이러지 맙시다.”
오대식이 눈을 부릅뜨고 정기윤을 보았다.
험악한 인상이다.
검은 피부에 가는 눈, 엷은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것이 독하게 보였고 본인도 그것을 안다.
“이것 저것 계산해서 자료 만들 수도 있지만 남북합자 사업이고 우리끼리 분란 일으키면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서 내가 이러는 거요.”
오대식이 자근자근 씹듯이 말했다.
베이징 공사현장 구석에 세워진 컨테이너 가건물 안이다.
10여개의 컨테이너 가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둘은 끝 쪽의 회의실로 사용되는
컨테이너에 들어가 있다.
오대식이 말을 이었다.
“한 달에 5만불씩 내시오.
단 경비 몫은 별도로 경비실장하고 합의하시고,
우리 몫은 5만불로 해주시오.”
“이보쇼, 오 감독.”
이제는 정기윤도 눈을 부릅떴지만 오대식의 시선과 부딪치자 금방 깜박였다.
그러나 정기윤이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5만불을 무슨 재주로 만들어내란 말이요?
이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당신은 한 달에 15만불은 챙길걸?
이건 내가 최소한으로 잡은 금액이야.”
오대식의 엷은 입술이 웃음을 띠자 더 얇아졌다.
오대식은 북한측 인력을 관리하는 감독이었는데 대부분의 노동자가
북한인이었기 때문에 노조위원장이나 같다.
그리고 정기윤은 한국인으로 공사현장 소장이다.
오대식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거침없는 태도였고 두드리는 소리가 컸다.
“내가 당신들이 소모품비를 얼마나 늘리고 일당 노동자 머릿수로
어떻게 장난치는가 하나씩 따져볼까? 이거 왜 이래? 시발.”
시발은 한국인한테 배웠다면서 오대식은 말끝마다 시발을 붙인다.
오대식이 결론을 짓듯이 말했다.
“지금까지는 몇천불씩 잔돈으로 받았지만 다음달부터는 5만불씩 매달 말에 내시오.
까놓고 말하면 그 돈 나 혼자 먹는 것이 아냐.
다 나눠주는 거야.
공사 잘 되라고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아셔.”
“이봐요. 오 감독.”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정기윤의 목소리도 독기가 실려졌다.
“그런데 경비실은 따로 합의하라니?
그건 또 무슨 좆같은 소리야?”
“안돼.”
머리부터 저은 오대식이 잇새로 말했다.
“경비실은 보위부 소속이야.
그놈들은 따로 합의를 해야돼.”
“이런 시발.”
이제는 정기윤의 입에서도 계속해서 욕이 터져 나왔다.
얼굴을 누렇게 굳힌 정기윤이 씹어뱉듯 말했다.
“내가 시발, 해외공사를 20년 했어도 이런 좆같은 경우는 첨이네.”
“남북합자 공사는 첨 아녀?”
웃음띤 얼굴로 오대식이 되묻자 정기윤이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시발. 이거 죽 쒀서 개 주는 갑다.”
“뭐라고 했소?”
하고 오대식이 물었다가 정기윤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그런줄 알고 가겠소. 소장동지.”
“내일 다시 상의합시다.”
“상의나 뭐나 5만불 이하는 안돼.”
“이봐. 그렇게 나온다면 나 그만 둘 거야. 후임 소장하고 해봐.”
그러고는 정기윤이 벌떡 일어서자 오대식이 눈을 치켜뜨고 웃었다.
“내가 폭로해 버릴까? 오 소장.”
“그럼 난 가만있고? 같이 죽을까?”
“이거 왜 이래?”
하더니 오대식이 정기윤을 똑바로 보았다.
“그럼 얼마 내겠다는 거야? 남자답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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