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 남북동거(7)
(1850)남북동거-13
다음 날 밤, 베이징의 아파트 안에서 조철봉과 장선옥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았다.
그러나 얼굴만 그쪽으로 향하고 있을 뿐 둘은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별일 없었지?”
포도주 잔을 든 장선옥이 묻자 조철봉은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응, 별일 없어.”
장선옥은 윤달수 일이 잘 처리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집 안에는 도청 장치에다 카메라까지 장착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것도 남북한 양쪽이 제각기 숨겨 놓았을 테니 집안이 감시장치 천지일 것이다.
한모금 포도주를 삼킨 조철봉이 팔을 뻗어 장선옥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장선옥도 알고 있는 것이다.
둘은 양쪽 모두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
“이봐, 우리, 아이 낳을까?”
불쑥 말을 뱉고 나서 조철봉 본인부터 긴장했다.
어젯밤 이은지하고 나눈 이야기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것은 아니다.
답답한 데다 반발심이 일어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터뜨렸지만 폭발력이 컸다.
장선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서 대꾸도 못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러나 장선옥의 표정을 본 조철봉의 가슴이 또 뒤틀렸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이어진다.
“어때? 상관없지 않겠어?
오히려 남북 당국이 환영할 것 같은데. 물론 서울의 내 마누라만 빼고.”
“그만해.”
술잔을 내려놓은 장선옥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뭔가를 캐내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선뜻 입을 열지는 않는다.
조철봉이 빈 잔에 포도주를 채우면서 말했다.
“우리 자식은 우리 장점만 이어받도록 해야 돼.
말하자면 내 응용력과 네 정직성.”
응용력을 사기성이라고 할 뻔했지만 아직 그럴 정도로 취하지는 않았다.
조철봉이 손끝으로 제 가슴을 가리켰다.
“내 몸에 네 얼굴, 내 민첩성, 인내력에다 네 지성.”
“지성?”
되물은 장선옥이 쓴웃음을 지었다가 곧 정색했다.
“어쨌거나 안 돼.”
“뭐가?”
“우리 자식.”
외면한 채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불행해질 거야.”
“뭘 알 때쯤이면 통일이 되지 않았을까?”
불쑥 조철봉이 말하자 장선옥이 머리를 돌려 똑바로 보았다.
“오늘 왜 그래?”
“왜?”
조철봉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동거하면서 애 낳는 이야기 하는 거 자연스러운 거 아냐?
만날 장화 신는 건 뭐 때문인데? 임신 막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할 때마다 고무신 신는 거 버릇이 되니까 당연히 그러는 걸로 아니?”
“그만해.”
상반신을 세운 장선옥이 머리를 저었다.
“애 안 낳아. 아니, 애 못 낳아.”
“왜?”
“우린 달라.”
“뭐가?”
“알면서.”
하더니 장선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조철봉은 오늘밤은 이쯤에서 그치기로 마음먹었다.
이쪽저쪽에서 듣고 비추는 도청, 촬영 장치를 향해 쇼를 한 것이지만
하다 보니까 진심도 섞였다.
그것은 장선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북 동거는 전략적이었지만 어차피 피가 뜨거운 남녀간의 생활인 것이다.
변수는 있다.
하지만 오늘밤은 서로간의 장벽을 재확인한 셈이 되었다.
(1851)남북동거-14
아침에 먼저 출근하는 조철봉이 현관을 나왔을 때 장선옥이 뒤에 바짝 붙더니 말했다.
“점심 때 거기서.”
조철봉은 대답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한집에 살면서 감시를 피해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는 현실에 와락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되어서 베이징반점의 지하 한식당에 나타난 조철봉의 표정은 밝았다.
“김 대표는 오는 중이겠지?”
하고 조철봉이 방에서 혼자 기다리는 장선옥을 향해 물었다.
“응, 20분쯤 시간 있어.”
장선옥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점심 약속시간은 오후 12시반이다.
아직 20분이나 시간이 남은 것이다.
조철봉은 둘을 점심에 초대했는데 장선옥은 밖에서 일을 보다가 먼저 와있는 상황이 되었다.
자연스러운 설정이다.
그리고 이곳 한식당 전주집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으로 북한 측이 장난을 치지 못한다.
즉 북한 측의 감시장치가 걸려있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 측의 장치는 당연히 걸려있을 테지만 어쨌든 조철봉의 영역이다.
20분의 여유가 있었으나 장선옥이 먼저 서둘렀다.
어제 저녁부터 집에서 12시간이나 같이 있었고 진한 섹스까지 나누었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되었어?”
하고 장선옥이 묻자 조철봉은 정색했다.
“곧 윤달수에 대한 작전이 개시될 거야.”
장선옥은 긴장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우릴 믿으라구.”
“우리라면 남한 측인가?”
“그렇지.”
그러자 장선옥이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어젯밤 아이 갖자는 말, 감시장치에다 한 말이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지던데.
북한 측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철봉이 되묻자 장선옥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어젯밤 자신의 반응을 기억해 내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곧 머리를 저었다.
“이상한 건 없어. 내 반응은 자연스러웠다구.”
“곧 북한 측에서 뭔가 반응이 올 거야. 아이 문제에 대해서 말야.”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내가 북측에 문제 하나를 던져준 것 같군.”
장선옥은 식탁 위에 시선을 준 채 가만있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내 말대로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물건이 될 거야.
내 사기성에다 너희들의 경직성, 내 허영심에다….”
“그만.”
손을 들어 조철봉의 말을 막은 장선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알면서 왜 그래? 우리 동거는 당국의 실험이었다구.
개방이 된 후에 북남간 인민들이 엉켜졌을 때의 반응을 알려고 말야.”
“…….”
“우리는 유리잔 속의 두 마리 실험용 생쥐라구.”
쓴웃음을 지은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당국은 면밀히 양쪽 생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거야.
물론 그쪽도 마찬가지겠지.”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딴전을 피웠지만 장선옥의 말이 계속되었다.
“윤달수는 외부 조건을 가다듬는 자야.
이를테면 연구원의 자세나 시험조건 따위를 말야.”
맞아, 과연, 하는 표정으로 조철봉이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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