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 남북동거(9)
(1854)남북동거-17
그날 저녁,
조철봉과 최갑중, 그리고 이경애까지 셋은 베이징 시내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경애가 소개해 준 중식당이었는데 해산물 요리가 유명한 곳이었다.
유명하다고 해서 다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중산공원 근처의 중식당 장강(長江)의
해산물 요리는 조철봉 입맛에 딱 맞았다.
특히 메기탕에 맛을 들여서 조철봉은 올 때마다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았다.
조철봉은 오늘까지 네 번째 오는 셈이었고 그때마다 이경애와 동행이었다.
“맛있는데요.”
오늘 처음 따라온 최갑중이 메기탕 맛을 보고는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갖은 양념이 들어가 비린내가 나지 않았고 고기는 퍼석거리지 않았다.
국물 맛은 담백하다가 얼큰해졌는데 양념이 진해지기 때문이다.
젓갈과 김치, 마늘 맛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는 요리였다.
요리를 거의 다 먹고나서 그들은 조철봉이 시킨 50도짜리 백주를 마셨다.
“저기 말야.”
한 모금에 백주를 삼킨 조철봉이 이경애를 향해 말했다.
“이경애씨는 조선족 입장으로 한국과 북한 양쪽을 다 겪고 서로 비교도 해보았을 것 같은데.”
갑중은 긴장했지만 이경애는 눈을 깜박이며 열심히 듣는다.
공부는 못했어도 머리 회전이 빠른 갑중이라
이미 조철봉이 이경애를 불러낸 이유를 알았을 것이었다.
잠깐 정적이 흐른 후에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우린 말야. 제3국인 중국에서 남북한 국민 수천 명이 함께 남북합자사업을 하는 중이야.
그런데 이경애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뭘요?”
백주를 벌써 한잔 마신 이경애가 눈을 똑바로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당당한 표정이다.
옆자리의 갑중은 이경애를 보고서 서로 몸을 섞은 관계가 된 후에야
저런 눈빛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중은 조철봉과 이경애 사이를 아는 것이다.
그때 조철봉이 말했다.
“어울릴 수 있을까?
양쪽 국민들이 말야.
더 자세히 말하면 한국 국민과 북한 인민, 평범한 사람들이 말야.”
“글쎄요.”
하더니 이경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남북한 현장 놈들이 서로 해먹고 있어.
물은 한국쪽에서 들였지만 북한 놈들은 금방 배우고 나서 등을 치는 모양이야.”
“…….”
“이거 위 아래에서 남북이 다 해 처먹으면 합자사업뿐만 아니라
남북 양국이 다 거덜나는 거 아냐?”
“푸웃.”
하고 이경애가 웃었으므로 갑중은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고 조철봉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경애가 웃은 것이다.
그러나 입안에 뭘 넣고 있지는 않아서 튀어나온 물건은 없다.
둘의 시선을 받은 이경애가 정색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한테 남북 국민들이 어울릴 수 있을지를 물으셨죠?”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물론 위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겠죠.
지금처럼 해서는 돈만 쏟아붓고 남북 윗놈들 좋은 일 해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이경애가 조철봉의 빈잔에 백주를 채우면서 말했다.
“북한에서는 윗놈들 돈이 사회로, 그러니까 인민들한테 전해지지 않거든요. 그런 장치도 없고.”
(1855)남북동거-18
조철봉과 최갑중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둘의 머리로도 이해가 갔다.
한국에서는 돈을 먹으면 쓸 데가 많다.
부동산 구입에서부터 룸살롱, 명품, 과외비는 말할 것도 없고 고급 마사지,
애인 자동차도 사줘야 하고 호텔 중식당 자장면은 만원도 넘는다.
돈 쓸 데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사기친 돈이나 등쳐서 먹은 돈을 다 한국땅에서 토해 놓는다.
그런데 북한은 아니다.
돈을 먹어도 우선 쓸 데가 없다.
애인한테 나눠 줘도 마찬가지,
숨겨 놓았다가 외국에 나가서 쓸까?
그러니 돈이 북한 인민들한테 뿌려지지 않는 것이다.
돈이 돌아야 사회가 활기를 띠고 경제가 일어난다.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돈맛을 알게 되면 말야, 북한 체제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지지 않을까?”
“글쎄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이경애가 잠깐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북한 체제는 잘 모르지만 단단해요.
일부 썩은 무리가 있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제기랄.”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갑중을 보았다.
“그럼 그 일부 썩은 놈들을 우리가 직접 골라 버려야겠군.”
그 썩은 놈들에 장선옥도 포함될 것이고 한국측 대부는 바로 조철봉인 것이다.
썩은 놈이 썩은 놈들을 추려내는 꼴이 되었다.
술잔을 든 조철봉이 백주를 한모금에 삼켰다가 멈추고는 심호흡을 했다.
숨구멍으로 조금 술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윽고 조철봉이 정색하고 이경애를 보았다.
“옌지 오빠는 잘 계시지?”
“네? 네.”
이경애가 궁금한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조철봉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옌지에서 조선어 신문사를 운영하는 이수동은 지난번 이경애와 시장조사를 다닐 때 만났다.
이수동은 신문사 운영자금으로 조철봉한테서 거금을 지원받고 감격을 했던 것이다.
조철봉이 차분하게 말했다.
“다 까놓고 말할 테니까 잘 들어.”
“네. 사장님.”
자세를 고쳐 앉은 이경애가 긴장했다.
두눈이 반짝였고 시선은 조철봉한테서 떼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본 갑중이 저도 모르게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여자의 저런 표정, 저런 시선은 그냥 자기만 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완전히 쥑였다가 살려야 저런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갑중은 생각했다.
그때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쓰레기 둘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려고 해.
그런데 한국의 썩은 놈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수가 있겠어.”
이경애는 물론이고 갑중도 긴장했고 조철봉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하지만 북한의 썩은 놈들은 우리가 손을 대기가 곤란해.
이건 문제가 커질 수가 있단 말야. 안그래?”
“네. 그러네요.”
이경애가 건성으로 대답하자 조철봉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빠가 신문사 하고 있으니까 아마 옌지에서 조선족 건달들을 잘 알거야.
그러니까 그 중에서 정예를 몇십명만 뽑아서 나한테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오빠가 그 친구들을 통솔해주면 그것이 가장 나한테 바람직한 일이고 말야.”
놀란 이경애가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오빠더러 이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해봐.
이것은 큰 사업이야.
오빠는 남북한 양쪽을 통제하는 역할이 돼.
중국 국적 한국인으로 말야.
조선족 실업자들한테 큰 일거리도 될 거야.
그러면 이경애씨가 먼저 오빠한테 상황설명을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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