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제왕벌

제46장 붕괴되는 유리성전

오늘의 쉼터 2014. 10. 5. 09:36

제46장 붕괴되는 유리성전

 

 

 

"당신... 인간.. 인가요?"
하후린이 정신을 차린 후 냉화빙은

기이한 동물을 보듯 빤히 올려다보며 처음 한 말이었다.
'내가... 인간이냐고?'
하후린의 안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허나.
어쩌랴.
범인은 백 번 죽어도 알지 못한

괴이한 일을 벌여 놓았으니....
하후린은 할 말이 없었다.
기껏 한다는 소리.
"이따 밤에 봐!

인간이지 요물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퉁명스런 하후린의 말에 냉화빙은 어리둥절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러나 그녀의 주위에 선 여인들은 포복절도할 지경이었으니.
밤에 알 수 있다?
문득 하후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소?"
"네. 사실 삼년 전 소녀는 몰래 유리성전에 들어 왔다가

이상한 말소리가 들려 수색하던 중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한데 그때 소녀 또한 정신을 잃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이곳으로 올 줄 알고 달려 오셨군!

낭군이 행여나 다칠세라......"
하후린의 농담 어린 말에 냉화빙은 살짝 눈을 흘겼다.
"당신은... 정말..."
"나는 정말 잘 생겼지?"
"......"
"......"
좌중의 여인들은 아예 어이가 없었다.
하후린은 일순 시선을 돌렸다.
순음지기를 잃고 기력이 탈진되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아수라혈염미령시가 눈에 들어왔다.
"흠. 비록 죽어 있는 강시지만...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데... 그렇지!

저들의 아수라극혈사음무가 내 몸에 있고 섭혼사령술을 쓴다면......?"
하후린은 염시들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
"....."
조중의 인물들이 의아해할 때.
돌연
우우우웅-
하후린의 전신에서 섬뜩한 청광이 솟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울러,
"우우... 일어나라!

천사의 제황으로서 명하노니...

너희들의 주인이 부르노니 일어나라....."
사자의 호곡성인 양 귀기스러운 사음.
그와 동시에 하후린의 신형에서는 음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으... 으... 음"
염시들은 돌연 번쩍 눈을 뜨며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어엇!"
냉화빙은 눈을 가리고 비명을 내질렀다.
"우우우-"
염시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후린의 면전에 부복하고 있었다.
출렁이는 현란한 나신들....
'됐다.! 이들의 심령을 완전히 제압했다.

섭혼사령술 없이도 이들을 부릴 수 있다!'
내심 쾌재를 부르며 하후린은 청광을 거두었다.
이어,

그는 빙긋 웃으며 신형을 돌렸다.
"하핫. 화빙누님이 이들을 맡아 주시구료!

곁에 두시면 아마 누구도 누님을 건드리지 못할 거외다!"
"예? 저들을 소녀가요?"
냉화빙은 불만스레 반문했다.
"아수마루에서 만든 염시로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다시 유리설빙국을 넘볼지도 모르는데..."
하후린의 말에 냉화빙은 흠칫했다.
"이들이... 과거 본국에 의해 추종되어 피살되었던...

그 아수마백작의 후예들이란 말인가요?"
"그렇다니까요."
하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마백작이 목숨을 걸고 십만혈사를 일으킨 것은...

아마도 아수마루라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거야!"
그의 말에 냉화빙의 옥용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럼... 그들이 모두?"
"그럴 거야!

모두 제왕혈기록에 수록된 제왕의 이단자들...

모두가 하나로 뭉쳐졌어!"
"그런 일이...'
냉화빙은 자신의 교구가 떨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경악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의 제왕십로군단!
그중 빙설천군단이었던

유리설빙국의 당대 국후인 그녀가 아닌가?
제왕혈기록!
그곳에 수록된 제왕의 이단자들...
능히.
제왕벌의 천공작위에 오를 수 있는 피의 제왕들....
제왕십로군단의 수장이라면 안다!
그들을 직접 추살할 것이 자신들이었기에.....
제왕혈기록의 혈사 한 장을 수록하는데

희생된 자가 제왕벌의 남작위...
삼백!
자작위 일백!
백작위 사십팔!
후작위 십삼!
공작위 삼!
그것이 평균적으로 살상된

제왕혈기록의 바탕을 이룬 목숨의 숫자였다.
한데,
하후린의 말,
그것은 곧 제왕혈기록이

사실상 무의미해져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제왕벌,
천 년의 시공 속에서도
당세의 우주십극천패세의 지존들에게

무언의 공포를 남겨 주었던 무적신화!
그것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제왕의 이단자들.....
이 순간,
냉화빙의 머리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도무지... 그런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그녀는 모든 것을부인하고 싶었다.
하나,
저 눈 앞에 귀기스럽게 서 있는

백팔 명의 요물들의 실체를 접하는 순간.
'모든 것은 현실이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울러,
그녀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울려오는 한 줄기 불꽃.
그대...
제왕벌의 백팔제왕천공가(百八帝王天公家) 중 얼

음과 눈의 제왕천공작후로 임명할지니.
제왕천공가의 위엔

오직 제욱삼대제황만이 존재하리니...
경배하리라!
환우천하가...

그 말은 대대의 제왕십로군단주가

새로이 임명될 때 내려지는 성교(聖敎)였다.
그것이 다시금

냉화빙의 가슴 속에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제왕천공가라는 자신의 가문에 대한 위대한 자긍심이.....
"마음의 준비를 하시오!

제왕벌의 최대위기가 도래했으니......"
"...."
하후린의 말에 냉화빙은 문득 정신을 추스렸다.
이어,

그녀는 의혹의 시선으로

하후린의 눈을 주시하며 입술을 열었다.
"한데,

당신은 진정 제왕벌의 본토제국을 개방하실 생각인가요?"
"그렇소!"
하후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옥제국은 아예 드러나지조차 않고 있소!

그 예하 세력들만이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나 있는 상태인데...

결코 그 드러난 빙산의 일각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피로 씻을 만 하오!"
단정하듯 확인하는 하후린.
냉화빙은 그의 말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과거의 ... 제왕십로군단 전부가 모여도 말인가요?"
"그렇소!"
하후린은 당연하다는 듯 시인했다.
"당신... 불사전황의 후예이신..

제국무적전황이 계신데도요?"
냉화비의 봉목은 불신으로 크게 치떠져 있었다.
제왕십로군단!

그 가공할 무적파천강세가

합일된 힘으로도 깰 수 없는 세력이 있다니.....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
하후린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사사천교나 아수마루, 악인마교, 백골단종 따위만 있다면

나로서도 해 볼 수 있소! 하나..."
"하나?"
"그것들로서 제왕십로군단을 막을 수 있는

지옥제국의 지옥혈... 무엇으로 감당하겠소?"
"......"
냉화빙은 할 말을 잃었다.
"그렇군요......"
냉화빙은 떨리는 심경을 억제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
한데,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
아수라백작!
섭혼사령술에 거려 가공할 대뇌의 충격으로

일시 혼절해 있던 그의 혈안이 차츰 떠지고 있었으니....
이미 그의 전신 내력은 파괴된 후였다.
단지,
그는 회광반종의 현상으로 최후의 생명력을 타올리고 있을 뿐.
한데,

그의 눈가로 서려 있는 미소,
그것은 삶을 체념한 자의

허허로운 웃음은 결코 아니었다.
음악한 아수라의 독사 같은 눈.
'흐흐흐... 멋대로 지껄여라!

이제 조금 후면 모조리 지옥계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니....'
오오...

이 무슨 소리인가?
'염시를 제련한 후...

유리설빙국의 중추를 부수려 이곳 지하에

백만 근의 화탄을 매설해 놓은 것은 모르리라! 크흐흐흐'
아수라백작의 동공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득의의 미소...
그것이었다.
그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
지하대전의 중심부.
쩌어어...
그곳엔 미세한 음향과 함께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었으니....
"이것은..."
냉화빙과 대화를 나누던 하후린은 일순 흠칫했다.
"화약 냄새?"
그의 시선은 빠르게 아수라백작의 얼굴로 향했다.
아수라백작의 창백한 안면으로 번져오르는 득의의 미소.
그것을 일별한 하후린은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 피하시오! 화빙누님도 어서!"
그의 다급한 일갈이 터졌으나...
"크크크! 이미 늦었다.

유리설빙국의 성역...

유리성전은 이 시간부로 사라진다!

너... 불사전황의 후예와...

유리설빙국 계집과 함께... 크카카카카카카!"
미친 듯 광소를 터뜨리는 아수라백작의 최후의 발광과 함께.
쩌억
지하대전의 천정이 거북의 등껍질인 양 균열을 일으키고,

곧이어,
콰쾅- 콰콰콰쾅-
콰르르르르릉-
오오...

천붕지열(天崩地裂)!
하늘이 파멸되고...

대지가 함몰해가는 파멸의 굉음이 작렬한다.
뿐인가?
쇄애액-
패액-
천지사방으로 폭산되어 날아가는 철편, 거석군!
쿠쿠쿠쿠-
수만 근의 거석들이 무너져 내리고.
퍼억-
"아아악!"
쿠쿠쿠쿠아아앙-
일천 금령설빙 여전사들!
그 철혈강골의 설녀군단은

삽시간에 핏물로 으깨어지고 있었으니....
"이익!"
하후린의 안면으로 분노의 감정이 폭출되어 올랐다.
그와 아울러,
둥실,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어느 새 치켜올려진 그의 좌수엔

시뻘건 적혈린이 돋아 있었다.
지상 최극강의 파멸병기!

-불사적룡혈린수갑!
그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는 파멸수갑병!
그것이 초현한 것이었다.
그 진정한 불사적룡이.....
우우우웅-
오오...

울고 있었다.
용의처절한 울음 소리와 함께
츠츠츠츠-
그것에서는 시뻘건 적혈류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그것은 이미 한 마리 불사적룡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었으니......
일순,
"뚫어라! 불, 사, 적, 룡, 파, 천, 수, 폭, 강!"
적룡이 날 때,
하늘이 부숴지고,
그 용조(龍爪)의 할킴에 우주가 폭멸하리라!
그 공포의 제왕 무적신화를 이끌었던 무적의 파천수폭무!
하늘마저도 부숴버릴 수 있다는 불사 적룡의 발톱!
그것이 출현한 것이었다.
순간,
콰아아아아-
고오오오오-
쿠쿠쿠쿠-
떨어져 내리는 만 근 거석이 가루로 부숴져 비처럼 흩날리고,
지저 일백 장의 두께를 불사적룡은 맹렬히 휘돌며 꿰뚫고 있었으니......
대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바로 그것이었다.
"아....."
"저... 저럴 수가!"
냉화빙을 비롯한 일천 금령설빙 여전사들은

아예 경혼단백(驚魂斷魄)할 지경이었다.
하나,
"뭘 하는가?

어서.. 불사 적룡의 뒤를 따라 오르지 않고!"
하후린의 웅후한 대창룡후에

여인들은 정신을 추스리며 분분히 신형을 떠올렸다.
콰콰콰콰-
불사 적룡이 꿰뚫는 통로는 무려 십 장에 달했고,
속속-
쉬익-
쐐액-
여인들은 날렵하게 그곳으로 날아올랐다.
"당신은?"
냉화빙은 하후린을 돌아보았다.
하나,
"백팔염시, 어서 주인을 보필하라!"
하후린의 웅후한 일갈이 터지고,
"끼이이-"
"츠으으-"
일백팔 아수라혈염미령시!
인성을 상실한 백팔 인의 요물들,
그녀들은 괴성을 토하며

냉화빙의 주위를 에워싼 채 두 손을 뻗었다.
츠으으으-
사위를 뒤덮는 가공할 혈강기류는

무형의 강막으로 냉화빙을 감싸고.....
둥실,
그것은 그대로 허공으로 떠오르며
비이이잉-
쿠쿠쿠쿠-
낙석을 산산히 부숴 튕기며 지상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콰콰콰쾅-
쩌쩌어억-
오오...

미증유의대화산이 폭발하듯,
지하 대전의 전역에서 무서운 폭발음이 대지를 강타하고,
지면은 난도질 당하듯 부숴져 무너져 내리기......
"크흑, 틀렸다."
하후린.
그의 안색은 밀랍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철혈제왕호갑기로서 주위를 감싸고 있었으나.......
쐐애액-
꽝-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가공할 파괴력에

그의 내부는 뒤흔들리고 있었고,
수만 근의 거대한 암석군은

우박처럼 그의 신체를 강타하니....
더우기
그는 불사적룡을 현신시켜 지저 만장을 꿰뚫은 것이었으니....
그의 내공은 거의 바닥이 드러나 있을 정도로 약화되어 있었다.
"크아아악"
콰콰콰쾅-
쿠쿠쿠쿠-
폭발하며 솟구치는 지옥겁화는

하후린의 전신을 태워버릴 듯 감싸고,
산산히 파괴되어 무너져 내리는 대지.
쐐애액-
콰콰콰쾅-
지저 일백 장을 무너뜨리며 쇄도해 드는 낙석군!
그리고,
그 사이를
힘을 잃은 한 인간은 허무하게 함몰되어 갔으니.....
지옥의 입구인 듯 쩍 벌어져 있는 암동!
그곳으로 하후린의 신형은 무너져 내렸다.
오오...

십전제왕의 신화는 탄생되지 않을 것인가?
과연?

콰콰콰-
쿠쿠쿠쿠-
성모봉 전역을 뒤흔들 대폭발이 터지고.....
"...."
"....."
여인들...
비록 피투성이인 채로 서 있으나.
일천 금령설빙 여전사들 대부분은 무사한 상태였다.
그리고,
"흑... 린!"
유리빙설후 냉화빙!
눈과얼음을 지배하는 유리설빙국의 국후!
여인은 오열을 터뜨리고 있었다.
또르륵-
하염없이 뺨 위로 흐르는 유리방울들......
"잘 가요... 나의 어린 용......"
냉화빙은 오열하며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지처럼 푹 꺼져 있는 대지....
그곳엔 하나의 성역이 존재해 있었다.
<유리성전!>
유리설빙국의 최대 성역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대신,

그자리엔 새까맣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삼삽여 장 밑으로 움푹 꺼져 있는 얼음의 대지.
그 안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기적이라고 할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위대한 초인의 희생 덕분이었으니.....
"린...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천첩이 이루겠어요!"
냉화빙은 입술이 피가 배이도록 깨어 물었다.
"제왕십로군단을 모아... 제왕벌을 열어...

지옥제국의 파멸행에... 천첩이 선봉을 설 것이고......'
으득!
여인은 잔혹하게 이를 갈았다.
"아수마루...

그들을 천첩의 손으로 박살내겠어요! 반드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봉목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눈물 따위로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큰 슬픔.
여인은 그것을 자신의 가슴으로 파묻은 채 되새기고 있었다.
"우리는... 보았다!

한 위대하신 주인의 위대한 희생을....."
"이루리라! 그 분의 뜻을....."
"지옥제국의 파멸행에 선봉을 서리라!"
"그리고... 세우리라!"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한 분 위대하신 분의 비석을....."
여인들.,
일천 명의 설녀군단!
여인들은 피로써 맹세하고 있었다.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
이곳 유리설빙국이었다.
얼음과 눈의 은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