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제왕벌

제29장 재회, 탈출, 위기

오늘의 쉼터 2014. 10. 5. 08:35

제29장 재회, 탈출, 위기

 

 

 

백옥군,
그녀는 사우의 거친 공세에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모든 것이 온화하기만 한 그녀는

그의 강압에 대한 대응에 너무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사우의 뜨거운 입김은 그녀의 목에 와닿았다.
"비켜요!"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우의 귓볼을 꼬집었다,
"윽!"
아무리 여자라고는 하지만 혼신의 힘이 들어간 손톱이었다.
사우는 귓볼이 찢어지는 충격을 느끼며 힘을 한풀 꺾었다.
하나,
"우라질!"
거친 말을 내뱉은 그의 우수가 백옥군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찰싹!
"악!"
백옥군은 오른쪽 뺨이 볼에 데인 듯한 충격을 받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반항 기미가 단 한 방에 현저히 줄어들자.
"으흐흐......"
갑자기
야수의 본능을 찾은 사우의 눈에서 광망이 돌출되었다.
이어,
그의 뜨겁게 달아오른 입술은 백옥군의 가녀린 입술을 덮어가는데......
"헉!"
갑자기 김빠지는 고무풍선 같은 헛신음을 발한 사우!
순간적으로 김빠진 신음을 터뜨린 그의 시선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는데......
아아!
섬뜩한 느낌이 와닿는 검신이

그의 천돌혈을 반에 반 치 앞두고 멈춰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검신의 끝은 사우의 목줄기의 살갗을 찌르고 있는 상태였다.
제 아무리 원대한 고수라 해도

급소에 칼을 찔린 이상 누구나 황천기로 가기 마련이다.
사우,
그는 본의 아니게 가자미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 보았다,
한데,
그보다도 먼저,
"하상공!"
백옥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음성이 실내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하후린은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 눈짓을 준 연하고,

부드러운, 흡사 봄날의 춘풍 같은 미소를 지어갔다.
"일어나실까?"
마치 백년지기에게나 행하는 어투,
사우는 긴장의 마른침을 삼키고

서서히 백옥군의 몸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천천히... 자, 천천히... 옳지! 옳지!"
흡사,
걸음마를 시키는 하후린의 어투에

사우는 이가 갈리는 치욕을 가수해야만 했다.
이때,
사우가 자신의 몸에서 몸을 떼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

백옥군의 신형은 용수철처럼 하후린의 품에 안겨들었다.
"흑! 상공!"
이어,
터져나오는 것은 감격의 눈물인 터......
백옥군,
그녀가 하후린을 처음 만났을 때는 검각의 고수들에게 쫓길 당시였다.
한데,
뱃전에서 우뚝 일어설 때의 그 깨끗함이란......
대창룡의 화신 같은 하후린의 모습은

그녀에게 있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추억이었다.
아아.
그 오감이 한데 어우러져 합주하는 듯한 짜릿한 충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한 단 말인가?
그 날,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백옥군은 이십 년간을 고이 간직해 오던 순결을 하후린에게 바쳤고,
그 날 이후
오늘!
바로 이와 같은 위기에 하후린이 나타날 줄이야.
'신이여... 감... 사하나이다.'
백옥군,
그녀는 하후린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한데,
그녀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붉은 선혈이 아닌가?
흠칫!
하후린의 예리한 시선이 모든 상황을 직감했다.
"혀를 물었군."
"....."
아아......
백옥군,
그녀는 정조를 잃게 됨은 죽음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거침없이 자신의 혀를 물었는데......
"괜... 찮아요.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요."
살포시 웃는 백옥군.
순간,
'아... 이 여인은 정녕... 나에게 끝까지 감동을 주는구나.....'
하후린은 내심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 옴을 느꼈다.
하나,
다음 순간,
"......"
사우를 노려보는 그의 시선은
오오!
죽음의 회색빛이 아닌가?
"옥군, 저 통로로 빠져 나가시오."
이때
쌍서제왕이 만면에 회색을 띠며 반가운 음성을 토했다.
"주모님, 이리로......"
백옥군 역시 가볍게 미소하고 하후린의 품을 빠져나가

쌍서제왕이 안내한 토굴로 신형을 옮겼다.
그녀의 교구가 안보일 순간,
사우는 호시탐탐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하나,
그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퍽-
느닷없이 날아든 하후린의 손목이

그의 콧잔등을 사정없이 내리친 것이었다.
"욱!"
사우는 너무도 불시에 얻어맞은 공격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또한,
가격을 당한 부위가 신경이 예민한 콧잔등인지라,
제 아무리 무공이 드높은 그도

역시 눈물이 핑 도는 짜릿한 통증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다.
한데,
그가 눈을 찡그리고 뜨자

상대의 검신은 마치 거머리처럼

자신의 목을 여전히 겨누고 있지 않은가?
하후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감히 나의 내자에게 손찌검을!

검호로서 부끄러움을 알아야지!"하면서

그의 수염이 뱀의 꼬리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었다.
찰나,
퍽!
"욱!"
사우는 재차 자신의 콧잔등을 감싸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대.. 대체... 그대는......"
"나? 남들이 창룡왕이라고 부르더구만!"
순간,
"하... 하후린!"
그의 놀란 음성이 실내의 허공을 격할 때였다.
와당탕-
왁자지껄한 소음과 더불어

몇십 명의 인영이 물밀 듯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었다.
"훗, 제법 기동력이 민활한데."
하후린은 뇌까림과 동시에 사우의 따귀를 보기좋게 걷어붙였다.
철썩-
"아학!"
사우의 비명이 터져나온 것과

그들이 실내로 밀려 들어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럼... 나중에 보세!"
하후린은 빙긋, 웃으며 토굴로 신형을 날렸다.
"아니! 저... 저놈이......"
이런 대갈을 터뜨리며 실내로 앞장서 들어온 인물은 비검영주 초운기였다.
한데, 그

의옆에 바짝 뒤따라 온 팔순 가량의 흑포노인.
몹시 깡마른 체구였다.
전체적으로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의 두 눈은

까마귀의 그것과 비슷한데......
"분명... 하후린이란 녀석이오.

이 기회에 놈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야망은 끝이오!"

-야망은 끝이다!
초운기는 그의 단 한 마디에 안색을 납빛으로 바꾸며 어금니를 갈았다.
"놈, 대설산의 설원이 얼마나 무서운지 곧 실감할 것이다."
번쩍!
신광을 빛낸 그는 흑포노인에게 다짐의 음성을 토했다.
"단우루주(端宇樓主)! 수하들을 푸시오. 그리고 사각주 역시?"
"......"
"놈은 분명, 죽음의 계곡을 지나 도주할 것이외다."
"어찌 그걸 장담하오?"
"중원을 지나려면 반드시 그곳을 지나야 하니까......"
이렇게 말하고 그의 입가에는 보기에도 가증스러운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또한
사우와 단우량,
그들의 눈에도 역시 불길은 타오른데......


휘이잉-
이곳은 세찬 설풍이 몰아치는 대설원
모든 것이 순백인 이곳에 하후린과 백옥군,

그리고 쌍서제왕이 찾아든 때는

석양이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것과 거의 같이해서였다.
"......"
하후린,
그는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시선을 어느 한 곳에 던지고 있었다.
거암!
그렇다.
그 거암은 흡사 야산만한 덩치를 소유하고 있는데.....
좌우측에 솟아난 그 거암의 모양은

흡사 계곡의 모양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 거암 사이의 간격은 매우 넓었다.
"자, 빨리 저쪽으로!"
하나,
쌍서제왕은 그의 음성에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님! 왜 하필 저곳으로....."
"길은 저쪽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저곳을 지나쳐야 한다!"
지나야 하다니......
그의 말은 어떤 목적이 함유된 듯하지 않은가?
하후린은 백옥군의 허리를 잡으며 지체없이 신형을 날렸다.
쌍서제왕 역시 그의 뒤를 따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거암의 계곡 사이로 들어설 때
우르르릉-
흡사 산사태라도 이는 듯 굉음이 울리며

집채만한 눈덩이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나타났군!"
하후린은 산사태 같은 눈덩이를 보고 나직이 뇌까렸다.
한데,
그 눈덩이가 거암에서 굴러 떨어져

지상의 약 삼 장 높이에 머물렀을 때,
돌연,
눈덩이가 수십 방으로 갈라지며

그 눈덩이는 곧 하나의 인영으로 화해가는 것이 아닌가?
"오오!"
"저럴수가!"
쌍서제왕은 대경의 외침을 토하고야 말았다.
수십 개의 눈덩이.
정확히 말하자면 수십 개의 눈사람은

각기 하나의 눈으로 이루어진 검을 들고 있었는데.....
쩌엉!
그들의 검은 일제히 하후린의 전신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기습!
완벽한 기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의 합공에

오히려 여유 있는 웃음을 띄우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쌍장이 어지럽게 난무했다.
"태양천폭참(天爆斬)!"
순간,
화류류류류-
시뻘건 불길이 수십 방으로 흩날리며

쏘아져 내려오는 눈사람을 향해 비쾌히 쇄도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자,
"큭!"
"헉!"
몇 마디의 다급한 신음을 필두로

여기저기에서 핏방울이 번져 허공에 흩날리는 것이 아닌가?
한데,

그 때였다.
두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전후좌우에서 눈보라를 뚫고 달려 들어오는

수백 필의 기마가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아아,
보라!
말과 말이 흡사 삼각의 형을 고수하며 하후린과 백옥군,

그리고 쌍서제왕의 신형을 짓이길 듯이 짓쳐들어 왔으니......
"아이고, 꼼짝없이 죽었구나!"
"주... 주인님!"
쌍서제왕은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한 채로 하후린을 바라보았다.
이때.
거암의 정상에 선 세명의 인물은

백여 장 아래의 광경을 목도하며 나직한 말을 주고 받았다.
그들은 바로 초운기와 사우,
그리고,
살인예황 단우량이었다.
"어떻소? 지형지물을 이용한 나의 계책이......"
초운기의 자화자찬에 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

하후린의 품에 안겨 있는 백옥군에게 쏠리고 있었다.
'사우야......'
스스로 반문한 그의 두 눈에 깊은우수가 어렸다.
'사우야. 너는 계속 백옥군의 눈빛만 쫓고 있는데......

언제나 사랑에 실패하는구나.

저 여인과 함께 죽을 수만 있어도......'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
거친 말밥굽을 동반하는 기마대는

하후린을 중심으로 한 지점에 이르고 있었다.
오십 장,
삼십 장,
그리고 십장... 오장......
드디어는 일 장 간격으로 좁혀들었을 때.
"아아!"
"기마다!"
그들은 완전 묵빛의 갑옷을 걸쳤고,
또한,
기마 역시 묵빛의 갑옷으로 그 몸통을 에워쌌으니
창!
하후린의 우수에 별볼 일 없는 평범한 장검이 쥐어졌다.
하나.
단지 그 칼 하나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검은 폭풍처럼 달려드는 기마대와

하후린의 거리가 찰나지간에 접촉되었다고 느낀 순간,
바로 그때였다.
흡사 유령처럼 땅 밑에서 불쑥 솟아오른 하나의 인영!
하나,
하나 뿐이 아니었다.
불쑥,불쑥,불쑥!
연쇄적으로 솟아로는 그들의 모습을 보라!
숫자는 고사하고라도 그들의 모습은

정녕 눈뜨고 감히 바라볼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철인!
그렇다.
그들,

불쑥 눈덩이 밑에서 솟아오른 일천 개의 인영은

온전히 철의 일색이 아닌가?
아아......
철인군단!
드디어 그 모습을 지상에 나타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