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제왕벌

제28장 비검영(秘劍營)

오늘의 쉼터 2014. 10. 5. 08:31

제28장 비검영(秘劍營)

 

 

 

"다 됐나?"
이렇게 묻는 음성은 하후린이 내뱉은 것이었다.
한데,
하후린과 무엇인가 열심히 작업하는 쌍서제왕,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스사사사-
사사사-
아하!
그들은 땅을 파고 있지 않은가?
부산히 도끼와 삽질을 하는 쌍서제왕의 뒤에는

하후린이 밤부엉이마냥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힘들군.

두 번째 누각이라 찾기 수운 줄 알았는데...

경계망이 그토록 삼엄할 줄이야."
하후린은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며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가? 중원의 흙과 비교해 이곳의 땅이 더 딱딱하지 않나?"
"왠걸요! 더 파기 좋습니다."
"우히! 이런 토질의 흙만 있다면.. 세상은 전부 우리 것인데..."
말을 하면서도 분주히 삽질과 도끼질을 하는

쌍서제왕의 손놀림은 전광석화 같았다.
"으음... 옥군!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하후린이 초조한 신색으로 발을 구르는 사이.
뻥!
구멍이 크게 뚫렸다.
한데,
그 구멍의 위로는 하나의 칸막이가 차단되어 있지 않은가?
"이게 무언가?"
하후린의 물음에 쌍서제왕은 씨익 웃었다.
"마루바닥입니다."
이에
하후린은 어둠 속에서 시선을 빛냈다.
"으음... 드디어 옥군을 만날 수 있게 됐군."
순간. 그의 검미가 빳빳하게 굳어지는 것이었다.
"조용히!"
급한 전음을 보낸 하후린은 마루바닥에 귀를 갖다 대었다.
한데,
그곳에서 여인의 한탄스런 타식이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아... 님은 어디 계신가?"
순간,

하후린은 내심 실소를 터뜨렸다,
'분명... 옥군의 음성이다!'
이렇게 확인한 순간 그의 신형이 마루바닥을 뚫으려 했다.
한데,
움찔,
그의 어깨가 또다시 긴장의 빛을 띠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들어왔다.!'
하후린은 지체없이 지력으로 마루바닥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쌍서제왕이 보기에도 가슴이 저릴 정도였다.
이윽고,
구멍이 다 뚫리자 하후린은 그 구멍을 통해

내부의 정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었는데......

여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인이 된 여인이었다.
한데,
그녀의 누가에 아롱진 이슬이 있으니.....
그를 일컬어 눈물이라 하는가?
왜일까?
한없이 서럽고 죽고만 싶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지배하는 이유는?
뚝뚝르르르-
그녀의 뺨 위로 흐르는 눈물 역시 무지개빛 영롱한 빛깔로 채색되는데.
"흑!"
급기야는 자신의 무릎 위에 옥용을 묻어 버렸다.
누구일까?
대체 누구일까?
처음 본 순간,
이지를 잃기 전에 본 첫남자의 얼굴인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얼굴은 환각일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덜컹-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한 명의 노인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노인,
대략 육순 가량 되었을까?
구리빛 얼굴에 사각의 얼굴형을 지닌 강직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그는 만면에 자애스런 표정을 지으며 홍의 미녀에게로 다가왔다.
"허허.. 우리 령(靈)아가 울었나?"
이렇게 자상한 음성을 발하는 그는 누구인가?

천수비검옹(千手飛劍翁) 초운기(草雲奇)!
그렇다.
비검영의 영주인 바로 그였다.
그리고,
홍의 미녀는 그의 여식으로

설산용녀(雪山龍女)라는 미호(美號)를 지닌 초자령(草紫靈)이었다.
초운기.
그는 자신의 딸의 어깨를 매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령아야. 며칠 전부터 네 안색이......"
그는 그만 말을 끊고야 말았다.
초자령의 고운 눈이 날카롭게 자신을 쏘아보지 않는가?
하나,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아니, 곧 시집갈 녀석이 아직도 그렇게 성질이 팽팽해서야....'
"아버지는 비겁자예요."
"비겁자라니?"
"자신의 딸을 이용해 야망을 키우려는 더러운......"
찰싹!
마침내
초운기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의 뺨을 처음으로 후려치고 말았다.
"나를 욕해도 좋다.

하나... 나의 야망만은 욕하지 말아다오!"

-야망만은 욕하지 말아다오!
그렇다.
남자,
더우기,
무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불 같은 야망이 존재하지 않는가?
초운기!
신비의 제왕이라고 부름받는 그에게는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후대를 이을 후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고민은 늘상 그의 뇌리에 잠재되어 있었으니......
한 인물,
그는 자연스럽게 동맹을 맺은 맹우(盟友)였다.

-살인예황(殺人藝皇) 단우량!

살예혈검루의 루주이자 대륙 제일살검!
북검무맹을 피로로 맹약한 그들......
한데,
그 단우량이 초자령을 보고는 그대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그는 초운기에게 청혼을 해오기에 이르렀고,
대륙제일삼검좌의 야망을 노리는 초운기에게 거절할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한데,
문제는 또 있었다.

-사일검황(射日劍皇) 사우!

검각의 지존이자 대륙제이검!
그도 또한 초자령을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초운기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이용한다면 그는 쉽사리 검왕지존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대륙패왕의 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데,
그 고민은 의외로 쉽게 풀어졌다.
창룡왕 하후린!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납치했던 국화선자 백옥군!
그녀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에 사일검황 사우가 빠져든 것이었다.
따라서
초자령은 자연히 살인예황 단우량의 수중에 넘어가게 된 것인데......
일순,
초운기는 자신의 옆에서 흐느끼는 딸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며 발길을 옮겼다.
"아무튼... 마음을 단단히 다지거라!"
말을 마친 순간.
슷-
초운기의 신형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
하후린의 시선은 내실의 정경을 예리하게 살피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
그이 두 눈에 반가움이 맴돌았으니.....
'옥군!'
그렇다.
침상 한 모퉁이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옥군을 발견한 것이었다.
백옥군,
그녀의 모습은 예전처럼 아름다움을 지닌 그대로였다.
그녀의 감정은 누가 뭐라해도 온화함이었다.
그 무엇이라도 포근히 감쌀 수 있는 온화함.
하나,
그 온화함은 하후린에게 있어 안스럽게 보였다.
불과 한 달밖에 안된 짧은 기간 속에......
그녀의 눈매는 퉁퉁 부어 있었고,
그녀의 눈매는 파리해 여간 초췌해 보이지가 않았다.
'옥군.....'
다시 한 번 심중으로 그녀의 이름을 뇌까린 하후린의 가슴은 뭉클함으로 뒤덮여 있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백옥군의 안색에 급변의 기색이 감도는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하후린의 시선 역시 급변을 보이고 있었다.
남자.
그렇다,
체구가 당당하고 준수한 사내가 백옥군의 어깨를 매만져갔다.
순간,
백옥군은 징그러운 뱀을 대한 듯 저쪽으로 피해 달아났다.
하자,
하후린의 시야에 비친 것은 백옥군의 아리따운 뒷모습이었고,
사내.
대략 이십칠팔 세 정도 되었을까?
딱 벌어진 체격이 유난히 시선을 끌고,
검은 피부에 단정한 오관이 매력을 끄는 미남자였다.
더우기,
칼날 같은 그의 눈썹은 그에 비례한 예리한 성격을 반영하는 듯했다.
일순,
가녀린 몸을 떨고 있는 백옥군의 음성이 실내를 울렸다.
"남편이 있는 몸이에요. 함부로 손 대지 마세요!"
앙칼진 음성,
이에,
검은 피부의 사내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띄었다.
"결례였다면 용서하시오. 나 사우는 별뜻 없이......"
순간,
'사우!'
하후린의 두 눈에 기광이 감돈 것은 거의 짧은 순간이었다.
'대륙제일쾌검 사일검황 사우!'
사일검황 사우!
검각의 각주가 바로 그란 말인가?
하후린은 상대의 젊음과 상상 이상의 중후한 기도에 묘한 호기심을 느꼈다.
이때,
백옥군은 저만치 물러나 소리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에 사우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성큼 다가섰다.
"낭자!"
"누가 낭자란 말인가요?"
앙칼진 그녀의 음성에 사우는 당황한 나머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럼 부인이라 불러드리겠소."
이렇게 말한 사우는 서서히 미소를 띄워갔다.
이어,
그는 착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숙연한 시선을 발하는데......
"부인, 나 사우는 그옛날 사랑에 실패한 적이 있었소.

또다시 나에게 사랑의 비애를 맛보게 하지 마시오."
"......"
진중한 음성을 토한 그는 백옥군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물론, 내가 부인을 취하려 했다면...

벌써 취했을 것이오."
순간.,
백옥군은 교구를 한 차례 떨었다.
반면,
마루바닥에서 그의 독백을 듣고 있던 하후린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담아갔으니......
'만일... 옥군의 몸에 손이라도 까딱하였다면...

네놈은 죽어도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이다!'
그 때였다.
백옥군은 비맞은 배꽃 같은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사대협, 사랑이란 것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남편이 있는 아내를 넘본다는 것이 얼마나 치졸한 것인 줄 아세요?"
"치졸?"
"그래요. 치졸함이에요."
일순,
사우의 동공에 분노가 일었다.
"부인은 나를 화나게 했소.

나 사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치졸함이오.

그런데 나더러 치졸하다니......"
"......"
백옥군의 겁먹은 눈초리에......
사우는 묘한 쾌감을 느낀 듯 잔인한 음성을 발했다.
"치졸한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 주지!"
냉엄한 음성을 토한 사우,
그는 비호 같이 백옥군의 가녀린 교구를 덮쳤다.
"아... 이러면......"
백옥군은 그만 상대의 거침에 속절없이 뒤로 넘어졌는데......
그곳은 공교롭게도 연분홍빛 나는 침상 위였다.
"주인님! 주모님이....."
서왕 종리백의 부라림에 서제 북궁혼 또한 전음을 보냈다.
"죽여 버리세요."
순간,
하후린의 입가에 극히 싸늘한 미소가 맺혀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