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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28

오늘의 쉼터 2014. 10. 4. 15:46

제21장 호각세(互角勢) 28

 

 

 

한데 일이 되려고 그랬던지 성충은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장왕이 도인과 작별하고 초막을 나서서 산 아래편으로 얼마만큼 내려왔을 때다.

 

건장한 청년 두 사람이 집채만한 곰을 잡아 땅바닥에 눕혀놓고 기다란 작대기로

 

쿡쿡 찔러보는 중이었는데, 구경하고 선 이는 의자요 작대기를 든 이는 못 보던 청년이었다.

 

장왕을 보자 의자가 반색을 하며 달려와 말하기를,

“아바마마께서 잡으셔야 할 곰을 소자가 잡아 죄송합니다.”

하고서,

“실은 소자가 잡은 것도 아닙니다.

 

소자는 오히려 곰에게 잡힐 뻔하였지만

 

저기 저 아이가 맨손으로 달려들어 곰을 단숨에 때려눕혔나이다.”

하고 작대기 든 청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왕이 낯선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니

 

청년이 넙죽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 일어나는데,

 

얼굴은 상처투성이요 옷은 갈가리 찢겨져 누더기 꼴이라

 

야수와 한바탕 격전을 벌인 흔적이 역력하였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였구나. 그래 크게 다친 데는 없느냐?”

왕이 청년을 향하여 다정스레 묻자 청년이 몸둘 바를 몰라하며 괜찮다고 대답한 뒤에,

“본래 저놈의 곰은 유순한 짐승으로 소인이 3년째 사귀어오던 동무인데

 

얼마 전 사냥꾼의 손에 암컷을 잃고 그만 성정이 포악해졌나이다.

 

언젠가 오늘과 같은 날이 올 줄 알고 소인이 먼저 죽이려 하였으나

 

소인의 형이 모상(母喪) 중임을 들어 살생을 금하라 하므로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장왕이 청년의 기상과 언행을 보고 속으로 탄복하며 이름을 물으니,

“윤충(允忠)이라 합니다.”

하였다. 왕이 윤충이란 청년을 가까이 불러,

“맨손으로 저만한 곰을 때려눕혔다면 대단한 장사다.

 

너는 지난번 나라에서 장수를 뽑는 시험에 나왔더냐?”

하고 묻자 윤충이 눈을 휘둥그래 뜨고,

“그런 시험이 있었나이까?”

하고는 이내 낙담한 표정으로,

“설사 알았다손 치더라도 아직 상중이라 형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이에 장왕이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어,

“너의 형이 혹시 이 산에서 여막을 짓고 살지 않느냐?”

하고는 백파의 거처를 일러준 청년의 인상착의를 말하였더니 윤충이 신기 막측한 표정으로,

“대왕께서 저의 형을 어떻게 아십니까요? 맞습니다, 그가 바로 소인의 형인 성충입니다.”

하여 이번에는 왕이 깜짝 놀랐다.

 

장왕은 성충의 이름을 거듭 확인하고 백파로부터 들은 이런저런 사실들을 캐어물었더니

 

윤충의 대답이 거의 일치해 더 의심할 것이 없었다.

 

왕은 당장 윤충을 앞세우고 의자와 나란히 성충의 여막을 찾아갔다.

성충 형제가 흥수의 도움으로 살아갈 터전을 일군 데가 곰나루 서편, 바로 칠악 아랫동네였다.

 

성충은 아우 윤충과 함께 홀로 남은 노모를 모시고 살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해가 지면 글을 읽었다.

 

그러다 일흔이 넘은 노모가 세상을 버리자 칠악 북봉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내고 유가의 법도에 따라

 

여막살이를 하던 중이었다.

왕은 성충의 거소를 찾아가는 길에 윤충으로부터 대강의 얘기를 전해 듣고,

“하면 너희 형제는 사마 대왕(무령왕)의 현손(4대손)이냐?”

하고 물으니 윤충이 손가락으로 꼽아보고 나서,

“아니올시다, 내손(5대손)입니다.”

하였다. 장왕이 크게 흡족한 낯으로,

“그렇다면 여기 태자와 같은 반열이구나.”

하고는,

“현손이든 내손이든 성자신손이 분명하니 되우 자랑스럽구나!”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일행이 여막에 이르러 성충을 만나니 성충은 낮에 보았던

 

이가 비로소 임금임을 알아차리고 큰절로 인사하며 결례를 빌었다.

그로부터 왕은 의자와 함께 성충을 면대하고 여막의 거적 위에 앉아

 

제법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구러 해가 지고 밤이 들자 칠악 아래에서 기다리던 신하들이 횃불을 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성충의 여막에서도 임금과 태자를 찾아다니는 신하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장왕이 성충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한수 유역을 되찾을 계책이 있는가?”

그러자 성충은 별로 망설이지 않고 간단히 대답했다.

“없습니다.”

“팔족의 불만을 다스리면서 왕업을 더욱 번창시킬 방안은 있는가?”

“면구하오나 그 또한 없나이다.”

이번에도 성충의 답은 쉽고 간단했다.

 

장왕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의자와 윤충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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