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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23

오늘의 쉼터 2014. 10. 4. 14:32

제21장 호각세(互角勢) 23

 

 

 

“어느 해였던가요,

 

조불이 경사의 관가로 미구를 찾아와 말하기를,

 

훗날 서동 대왕이란 현군이 나타나 보위를 이어갈 터인데

 

때가 오면 백제가 전조의 영광을 다시 찾고 솥발 같은 삼한의 국토를 하나로 아울러

 

천추에 바라던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현군의 왕업을 도와달라며 신신당부합디다.

 

그로부터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미구가 왕변나를 따라 수나라에 조공하고 돌아오니

 

조불이 밤에 홀연 검은색 방포에 기다란 나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하직 인사를 했지요.

 

왈칵 수상쩍은 느낌이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낯빛도 검고 형체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

 

벌써 이승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평생 찾아다니던 스승 조불이 이미 죽었다는 말에 낙담이 심했다.

“그게 언젯적 일입니까?”

“위덕왕 돌아가시던 햅니다. 그러고 얼마 뒤에 국상이 났으니까요.”

장왕은 한동안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러구러 관심은 차차 백파라는 노인한테로 쏠렸다.

“한데 도인께서는 어찌하여 과인의 왕업을 도와주지 않으셨는지요?

 

과인이 즉위 초에 팔성 노신들을 몰아내어 원심이 깊었기 때문입니까?”

장왕은 임금의 권위와 위엄을 벗어던지고 겸손한 태도로 물었다.

 

아버지처럼 여기던 옛 스승의 벗이어서도 그랬지만 한편으론 비범한 인물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다.

“천만에.”

노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늙은 것이 행색은 초라하나 그렇게 옹졸한 위인은 아닙니다.

 

팔족의 권세를 힘으로 다스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지요.”

“그렇다면 까닭이 무엇인지요?”

“대왕께서 이미 빈틈없는 현군이요

 

성군이신데 감히 미구와 같은 늙은 것이 무슨 할 일이 있었겠나이까.

 

백제는 대왕의 치세로 말미암아 삼한에서 제일 강국이 되었나이다.

 

영토는 넓어졌고, 산적패가 날뛰던 풍속은 이제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을 만큼

 

넉넉하고 아름답습니다.

 

만인이 입을 열기만 하면 대왕의 성업을 칭송하게 되었는데 무엇을 더 걱정할 것이며,

 

무슨 꾀를 더 보태겠습니까?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듣자니 민망합니다. 영토가 약간 넓어진 것은 사실이나 꿈에 그리던 한수 유역은

 

아직도 신라의 수중에 있고, 우리가 쳐서 빼앗은 곳은 기껏 지리산 부근의 박토와

 

몇몇 쓸모없는 성곽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한수 지역은 동적들의 입당로(入唐路)일 뿐 아니라 우리 백제에겐 시조 대왕께서

 

처음 나라를 여신 성스러운 땅입니다.

 

어떻게든 되찾아 국기를 바로 세워야 하지만 현재로선 마음만 간절할 뿐 장담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백성들이 입만 열면 과인의 성업을 칭송한다지만 팔족의 권세는 조금만 방심하면

 

여전히 임금의 권위를 넘보고, 도불습유(道不拾遺)를 논한다는 시속도 만백성이

 

골고루 넉넉한 것은 아니올시다.

 

도인께서는 비록 말씀을 듣기 좋게 하시지만 과인은 즉위 초에 품었던

 

꿈을 절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 들어보니 조불 스승님께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 몸의 왕업을 걱정하시고

 

심지어 삼한일통의 대업까지 거론하셨다니 실로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장왕은 아버지와 같았던 스승의 향기가 새삼 너무도 그리웠다.

 

조불이 있어 정사에 어려운 일을 수시로 물을 수만 있었다면 자신의 치세가 한결 빛났을 것은

 

필지의 일이었다.

 

노인은 왕의 겸손하다 못해 자조 섞인 말을 듣자 목소리를 한층 부드럽게 하여 위로했다.

“장송거목도 시초는 씨앗이요, 만릿길도 시작은 한 걸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대국의 기틀을 다져놓았으니 언젠가는 조불이 말한 대업도 반드시

 

이룰 날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오. 젊었을 때 생각하던 사람의 일생이 정작 지내놓고 보니

 

무슨 주술에라도 걸린 듯이 허무합니다.

 

마음먹은 일은 반도 이루지 못했는데 그사이 세월만 30년이 휙 지나가고 말았지요.

 

이제는 나도 늙고 신하들도 늙어 앞일을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궐에서 해지는 서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착잡합니다.”

그림처럼 눈에 밟히는 옛 스승의 그림자 때문이었으리라.

 

장왕이 남 앞에 그처럼 고독한 심경을 드러내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만승의 위엄을 갖춘 지존이 꾸밈없는 본심을 내비치자 노인도 알 수 없는 정에 이끌렸다.

“풍편에 듣기로 이번에 대왕께서는 왕업을 보필할 젊고 새로운 인재를 널리 구하셨다던데

 

어떤 인물들을 뽑으셨는지요?”

노인이 돌연 정색을 하며 물었다.

 

이에 왕은 의직과 상영을 비롯한 몇몇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였다.

 

한동안 묵묵히 앉았던 노인이 진지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미구의 생각에 지금 우리나라엔 대왕을 도와 태평세를 이어갈 만한 인물로

 

꼭 세 명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 셋 가운데 한 사람만 이미 대왕의 신하가 되었고

 

나머지 둘은 여전히 초망지신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이 셋을 모두 얻어 거느린다면 백제의 구토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삼한을 헐어 일가를 짓는 일도 당대에 능히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장왕은 노인의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그 세 젊은이가 누구입니까?”

그는 노인 앞으로 바짝 무릎을 당겨 앉으며 물었다.

“우선 꼽을 만한 이가 이미 대왕의 신하가 된 곰나루 사람 흥숩니다.”

“오호, 흥수!”

“형배의 아들이요 장흥의 손자인 흥수는 미구가 말한 세 젊은이 가운데 제일 연장자인데,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숱한 기적들을 양산했을 뿐 아니라

 

자라면서 만 권의 서책을 독파하고 끊임없이 신묘한 도를 깨우쳐 일설에는

 

그가 조부의 환생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청년입니다.

 

흥수의 조부 장흥이 계룡산에서 일평생 도를 닦으며 후학들을 길러

 

지금 백제의 산곡간에 글깨나 읽고 행세깨나 하는 사람치고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지요.”

 

이어 도인은 나지막이 시문 하나를 읊조렸다.



일생 도를 구하며 닭과 용을 길렀으나


말년에 얻은 것은 한줌 달빛이구나


천지의 도기가 서역으로 뻗치니


산이 눕고 평원이 달리며 강물이 춤을 추도다

오늘 지은 밥은 언제 먹으려는가


저녁에 달이 뜨면 또 먹으러 오지



“이것이 장흥이 남긴 마지막 글인데 손바닥의 먹물 흔적과 더불어 사람들이 흥수를

 

그 조부의 환생으로 여기는 근거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흥수는 팔성대족이 아니면서도 대족들의 신망이 두터우므로 대왕께서

 

잘 쓰시기만 하면 국론을 아우를 왕좌지재로 손색이 없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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