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십왕무적

제 14장 소녀의 위기

오늘의 쉼터 2014. 10. 2. 23:33

제 14장 소녀의 위기

 

 

 

- 묘강!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열대밀림지대.
지상의 최남단에 자리한 그곳에는

아직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답지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나의 야트막한 구릉 -----!
그 주위에는 일망무제의 짙푸른 밀림이 울울창창하게 늘어서 있었다.
문득
그 밀림 속에서 한 소리의 나직한 소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낭패로군! 이 광활한 묘강의 어디에서 화룡지를 찾는단 말인가?]

소년.

그는 준수한 용모에 신비한 혜안과 은은한 붉은 머릿결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그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일신에 걸친 옷은 얇은 겉옷 한 벌 뿐.
그는 허리춤에 큼직한 물통과 사슬이 달린 한 자루의 낫을 차고 있었다.
마운룡!
바로 그였다.
마운룡의 옆.
거대한 체구의 만년단정신학이 서성이고 있었다.
본래.
학이란 추운 지방에서 사는 영물이었다.
만년을 살아온 이 영물도 더위에는 견딜 수 없는 듯

힘겹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찌는 듯 무더운 살인적인 더위.
만년단정신학이 내뿜는 뜨거운 체온은 마운룡에게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마운룡은 거친 숨을 할딱이는 만년단정신학을 내려다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 나 때문에 공연히 너까지 고생시키는구나!]
그는 만년단정신학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그만 대소저에게로 돌아가거라. 여기부터는 나 혼자 찾아볼 테니.......!]
구우억.......!
그 말에 만년단정신학은 기쁨을 금치 못하는 듯 나직한 울부짖음을 발했다.
그와 함께.
그 놈은 긴 부리로 마운룡의 등을 툭툭 치며 기쁜 내색을 해보였다.
[ 아이구..... 등뼈 부러지겠다. 이 녀석아!]
마운룡은 등을 휘청하며 죽는 시늉을 했다.
하나.
그놈의 길고 단단한 주둥이가 드을 두드리자

마운룡은 마치 거대한 쇠뭉치로 난타당하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구우.........
만년단정신학은 낮게 울부짖으며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선풍같이 날아올랐다.
[ 대소저를 잘 지켜드리거라!]
마운룡은 날아오르는 만년단정신학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구워억....
만년단정신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울부짖음으로 대답했다.
이어.
허공을 한바퀴 선회한 단정신학.
쐐 --- 애액!
그놈은 이내 아득한 북망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마운룡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지었다.
이어.
그는 주위를 둘러 보며 문득 어깨를 으쓱했다.
[ 자. 이제부터가 문제로군!]
한데.
바로 그때였다.
삐 --- 익!
돌연 어디선가 한 소리 날카로운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마운룡은 그 소리에 흠칫했다.
그 피리소리에는 아주 심후한 내공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운룡은 번뜩 신광을 빛냈다.
( 가보자! 사신독황전과 관계있는 자일지도 모르니....! )
다음 순간.
슥!
그의 신형은 소리없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어.
피리소리가 들린 남서쪽을 향해 질풍같이 쏘아져 나갔다.
계곡 ------!
거칠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삭막한 계곡이었다.
주위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정지된 듯한 황량함.
그 황곡의 끝.
하나의 작은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삘릴리......!
동굴 앞.
한 명의 소녀가 앉아 뿔피리를 불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계곡에 아리따운 소녀라니......
이제 십 오 륙세 가량 되었을까?
소녀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흑요석같이 둥그랗고

커다란 눈을 지닌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조각으로 깎아 빚은 듯 또렷환 오관.
새빨간 앵두를 문 듯 도톰하고 붉은 입술.
건강한 갈색 피부의 그녀는 전형적인 묘강소녀로 보였다.
그녀는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아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가슴과 아랫도리만 겨우 가죽옷으로 살짝 가리고 있을 뿐

미끈하게 성숙한 교구를 아낌없이 드러내놓고 있었다.
가죽옷 사이로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젖무덤.
잔뜩 물이 오른 싱그러운 몸매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지금.
피의소녀는 흑요석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전면의 동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삘릴리........
그녀는 뿔피리를 입에 문 채 뚫어져라 동굴 안을 주시했다.
쉬익 ----!
어둑한 동굴의 안쪽.
네 개의 기이한 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불빛 중 두 개는 타는 듯 붉었으며 두 개는 섬뜩한 청백색을 띠고 있었다.
( 호호..... 그래 어서 나오너라! 귀여운 것들........!)
피의소녀의 두 눈에 득의의 빛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삘릴리....... 삘리.....
그녀의 피리소리는 더욱 애절하게 변했다.
직후.
쉬익........ 쉬익..........
스으...... 스으...........
동굴 속에서 무엇인가 끌리는 듯한 기이한 소성이 들려왔다.
이윽고.
동굴 밖으로 하나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뱀!


그것은 한 마리 기괴한 형상을 지닌 거사였다.
한 아름 굵기의 거대한 몸통을 지닌 뱀.
한데.
기이하게도 그 놈의 머리는 두 개가 아닌가?
좌측의 머리는 전체가 타는 듯이 붉은 적색이었다.
그 머리의 가죽 뿐 아니라 그 위에 박힌

한 쌍의 눈도 시뻘건 횃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머리.
그것은 반대로 눈같이 흰색이었다.
또한.
그 위에 박힌 눈도 얼음같이 투명한 청백색을 띠고 있지 않은가?
실로 괴이한 형상의 괴물이 아닐 수 없었다.
동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괴사를 본 피의소녀.
그녀의 두 눈에 기쁨과 흥분의 빛이 번득였다.
( 드리어 저놈을 꼬셔낼 수 있겠어. 음양불사신망을........!)
그녀는 기대의 표정으로 꼴깍 침을 삼켰다.

 

- 음양불사신망!


전설적인 영물.
그놈의 좌우동체는 음양으로 한 몸을 이룬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조화.
그런만큼 음양불사신망은 신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음양불사신망의 몸통의 좌측. 즉 붉은 부분을 적양신이라 한다.
그리고.
우측 흰쪽을 백음신이라 부른다.
그 좌우 동체는 각기 천지지간의 양기와 음기를 흡수하며 산다.
음양불사신망의 몸은 백 년에 한치씩 자란다.
지금 피의소녀의 앞에 나타난 놈은 몸의 크기가 일 장 이상이었다.
즉.
그놈은 만 년 이상 살았다는 증거였다.
음양불사신망의 몸에는 희세의 기보가 들어 있었다.

- 음양사황정!
그것은 일종의 내단이었다.
음기와 양기로 어우러진 신묘한 기보.
그것을 복용하면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다.
?산.
강력무비한 음양강살을 지니게 된다.
화와 빙의 기운이 공존하는 음양강살.
그것은 어떤 호신강기라도 으스러뜨리는 위력이 있다.
실로 꿈에도 얻기 원하는 최대의 지보.
그것이 바로 음양사황정이었다.
하나.
음양불사신망은 이름 그대로 불사의 영물로 인간의 힘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놈의 껍질은 도검불침이었다.
그 뿐이랴?
그 놈은 입으로 쉴새없이 화독과 음독을 토해내 사방 일 마장 내로는
어떤 생물도 접근하지 못했다.
한데.
그 전설의 영물 음양불사신망이

지금 자기의 서식처에서 천천히 기어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츠으...... 츠으.....
음양불사신망이 나타나자 주위의 바위들은 순식간에 푸석푸석 부서져 내렸다.
그 놈의 몸 주위로는 은은한 붉은 노을과 희뿌연 안개같은 서기가

서로 어우러져 휘돌고 있었다.
음양독장 -------!
바로 그것이었다.
화기와 빙기가 응결된 무서운 독장.
그것에 닿기만 하면 무엇이든 으스러지고 만다.
하나.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삘릴리........!
뿔피리를 불고 있는 피의소녀.
그녀는 음양독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그것은 그녀가 음양불사신망의 음양독장에 견딜 수 있는

하늘 아래 유일한 한 가지의 신공을 연마한 덕분이었다.
사실.
당금 하늘 아래 음양불사신망에 이토록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는

피의소녀를 포함하여 단 세 명 뿐이었다.
이윽고.
쉬익....... 쉬익.........
음양불사신망.
그 놈을 피의소녀가 자신의 음양독장에도 태연하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소녀를 주시했다.
하나.
[ .......!]
삘릴리 ------!
피의소녀는 그런 음양불사신망의 반응을 무시한 채

계속 애절한 가락의 피리만 불어댔다.
그러자.
아!
실로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점차 음양불사신망의 흉흉하던 눈빛이 가물가물 흐려지는 것이 아닌가?
그놈의 커다란 눈꺼풀이 스르르 아래로 덮이기 시작했다.
졸음이 쏟아지는 듯한 모습이 아닌가?
그렇다.
소녀의 피리소리에는 음양불사신망을 잠들게 하는

무서운 마력이 실려 있었던 것이었다.
이윽고.
[ 휴.........!]
피의소녀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비로소 피리에서 입술을 떼었다.
[ 마적수황 사숙의 수혼삼곡이 정말 효과가 있구나!]
피의소녀는 흑요석같은 눈을 빛내며 기쁨의 탄성을 발했다.
이어.
그녀는 뿔피리를 허리춤에 꽂고 대신 주머니에서 하나의 옥병을 꺼내들었다.
[ 천일취의 냄새를 맡으면 제깐놈이 아무리 불사지체라도 견딜 수 있겠어?]
그녀는 득의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옥병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
강렬한 술내음이 사위를 진동시켰다.
피의소녀는 급히 숨을 멈추고 재빨리 천일취가 든 옥병을

잠든 음양불사신망의 코 끝에 번갈아 갔다댔다.
직후.
털퍽.......!
음양불사신망의 두 개의 머리통은 힘없이 바닥에 널부러졌다.
피리소리에 엷은 잠이 든 그놈은 천일취의 냄새를 맡고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만 것이었다.
[ 호호. 되었다! 이제 내가 저놈의 쓸개를 빼가도 모르겠지?]
피의소녀는 득의의 표정으로 청아한 교소를 터뜨렸다.


이어.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비수를 빼들었다.
한자 길이의 비수.
그것은 전체가 거무튀튀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전혀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다.
하나.
놀라운 일이었다.
치지지직........!
어떤 도검에도 찢기지 않는 음양불사신망의 껍질이건만

소녀의 검고 뭉툭한 비수에 닿자 힘없이 찢겨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찢기는 것이 아니라 녹는다고 해야 옳았다.


피의소녀.


그녀는 그 기괴한 비수로 능숙하게 잠든 음양불사신망의 몸을 해체했다.
이윽고.
음양불사신망의 두 개의 머리가 모이는 곳을 가르자

그 안에서 하나의 구슬이 나왔다.
구슬.
그것은 크기는 오리알만 했다.
기이하게도 반쪽은 붉고 반쪽은 흰 적백의 서기가 서린 구슬이었다.
그 구슬을 집어든 피의소녀.
그녀는 희열과 흥분을 금치 못했다.
[ 이것이다! 음양사황정!]
그녀는 격동에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 이놈만 있으면 주화입마에 드신 할아버지도 금방 완쾌되실 수 있어!]
그녀는 기뻐 어쩔 줄 모르며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흐흐. 수고했다. 산산!]
돌연 한가닥 음침한 음성이 피의소녀의 귓전을 울렸다.


순가.
[ 마적 사숙!]
피의소녀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반갑게 외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나.
[ .....!]
뒤를 돌아보던 피의소녀 산산.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랗게 치떠졌다.
언제였을까?
산산이라 불린 피의소녀의 삼 장 뒤.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나이는 오십대 중반에서 육십대 초반정도.
깡마른 체격에 아주 음산한 인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 자는 상체를 벌거벗고 있었으며 하체만 표범가죽으로 대충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목에는 짐승의 뼈와 이빨로 만든 목걸이를 주렁주렁 걸고 있었다.


한데.
그 괴노인의 수중.
한 자루 강궁이 들린 채 산산을 겨누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본 산산은 깜짝 놀랐다.
[ 무...... 무슨 짓이에요?]
그녀는 안색이 홱 변하며 황급히 외쳤다.
그 순간.
피잉 -------!
괴노인은 그대로 손에서 강궁의 시위를 놓아 산산을 쏘았다.
동시에.
[ 악!]
산산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다급히 피했으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괴노인이 쏜 예리한 화살은 산산의 어깨를 스쳐가며 긴 상처를 냈다.
이어.
퍽!
산산의 어깨를 스친 화살은 후면의 석벽에 반넘게 박혀졌다.
그와 함께.
쿵.....!
산산은 힘없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녀는 그저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가볍게 스친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산산은 전신이 뻣뻣하게 마비됨을 느꼈다.
그녀는 갑자기 너무나 무기력해졌다.
그녀는 한 가지 절세독공을 연마하여 백독불침의 몸이었다.
한데.
그런 그녀가 슬쩍 스친 상처를 입는 순간 전신이 마비되어버린 것이었다.
실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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