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장 당문의 밤
찰나지간 독군자 당천성을 해치운 독황사자.
그 자는 분노와 회의의 눈을 부릅뜬 채 서 있는 독군자를 바라보며 잔독한 미소를 지었다.
[ 흘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네 놈을 살려둘 필요는 없지!]
그 광경에 마운룡은 분노로 치를 떨었다.
[ 잔인하구나!]
그는 독황사자를 노려보며 앓는 듯한 신음성을 발했다.
하나.
이미.
그 자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상 그 자를 쳐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 크...........!]
쿵!
독황사자가 비수를 뽑아들자 독군자는 신음과 함께 그대로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아!
끔찍했다.
그런 그 자의 심장 부위의 의복과 살은 한꺼번에 주르르 녹아드는 것이 아닌가?
독황사자가 던져낸 비수.
그것에는.
실로 무서운 독이 묻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비수를 거둔 독황사자.
그 자는 재차 마운룡을 향해 히죽 웃으며 야비한 음성으로 말했다.
[ 켈켈! 약속은 꼭 지켜라!]
말과 함께.
슥!
그 자는 훌쩍 날아올라 삽시에 용왕묘 밖으로 멀어져갔다.
[ 으음!]
마운룡은 그 모습을 노려보며 나직한 탄식을 발했다.
생각같아서야 악독한 독황사자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었다.
하나.
그는 당당한 십왕전주였다.
비록.
상대가 인간 쓰레기 같은 자이지만 약속은 지켜야만 했다.
( 다음에 만나면 결코 살려두지 않겠다!)
마운룡은 사라지는 독황사자의 뒷모습을 삼엄한 눈으로 노려보며 내심 다짐했다.
이어.
팟!
그는 가볍게 손을 뻗어 기둥에 박힌 천조각을 뽑아 들었다.
그 안에는 채 마르지 않은 피로 찍어 쓴 글씨가 휘갈겨 적혀 있었다.
< 천일취의 해약은 오직 화룡설련뿐이다.
그 놈은 남만의 비역 화룡지에만 자생한다.>
천조각에 적힌 글은 그런 내용이었다.
( 화룡지...... 화룡설련!)
마운룡은 두 눈을 번득이며 입 안으로 나직이 되뇌었다.
그때.
보고 있던 당대부인이 초조한 안색으로 물었다.
[ 무..... 무어라 적혀 있나요?]
마운룡은 말없이 들고 있던 천조각을 당대부인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당대부인.
일순.
그녀의 교구가 부르르 경련했다.
[ 화........ 화룡설연!]
그녀는 신음하듯 나직이 부르짖었다.
갖가지.
독초와 영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그녀는 화룡설연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 화룡설연!
그것은.
이름 그대로 일종의 연꽃이었다.
하나.
기이하게도.
그 연꽃은 다른 곳이 아닌 화산의 용암 연못에서만 자생한다.
물론.
그것도 전설로 전해 내려올 뿐이지만.
이제껏 화룡설연을 보았다는 사람은 전무했다.
한데.
그 천고의 영약인 화룡설연이 바로 천일취의 해약이라는 것이었다.
당대부인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 아.........!]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쓰러질 듯 교구를 비틀거렸다.
이제껏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천고의 영물 화룡설련을 무슨 재주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그녀가 절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마운룡.
그의 안색도 침중하게 굳어졌다.
( 화룡설련이라...........!)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음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시선을 돌려 용왕묘 밖을 주시했다.
어느덧.
시간은 삼경을 넘어 사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새벽.
스으..... 스으............!
자욱한 안개가 환상처럼 사위를 휘감고 있었다.
그 자욱한 안개 속.
한 채의 거대한 장원이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 당가보!>
바로,
사천 당문의 당당한 성채였다.
그 당가보의 후원.
한 채의 조용한 전각이 안개에 감싸인 채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각 안 -------!
일남일녀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 뇌소저의 상태는 곧 좋아질 거예요. 아우님의 적절한 응급조치 덕분에요!]
차분한 음성으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여인.
그녀는 바로 옥비연이었다.
그와 마주앉은 인물은 물론 마운룡이었다.
옥비연은 뇌운벽과 네 여종사의 상세를 일차 살피고 마운룡의 거처로 찾아온 것이었다.
이곳은.
본래 천수나한 당천종이 서재로 쓰던 곳이었다.
그 때문에 전각은 오랫 동안 비어 있었다.
하나.
전각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당대부인 가려화가 남편이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늘 말끔하게 손질하고 청소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정성을 다해 남편의 서재를 정리해 왔을 것이다.
한데.
당대부인은 그런 남편의 서재를 마운룡의 거처로 선뜻 빌려준 것이었다.
마운룡은 옥비연의 말을 들으며 침중한 안색으로 탄식했다.
[ 몸의 상처야 그렇지만 정신적인 타격은 쉬이 치유되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내들에게 윤간당한 뇌운벽.
그녀의 그곳은 무참하게 찢기고 망가졌다.
옥비연은 탄식하는 마운룡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뇌소저와 각별한 인연도 있고 하니 아우님이 잘 돌보아 주어야 할거예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운룡은 문득 염려스러운 안색으로 물었다.
[ 네 분 여종사님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 말에 옥비연은 침중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 일종의 금단 증상으로 몹시 괴로워들 하고 계세요.
천신단이란 것 속에 다량으로 함유된 앵속 ( 양귀비) 때문일거예요!]
[ 그럼 그 분들은 어찌되겠습니까?]
마운룡은 어두운 안색으로 다시 물었다.
옥비연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 앵속의 금단 증세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으나...
그분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게 될지는 전적으로
천신단의 해약을 만들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어요!]
말을 하며 그녀는 슬쩍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사황모와 금정모모, 풍뢰도후와 천산여제 등의 상태를 조사하다
그녀들의 비소에서 교합의 흔적을 발견했다.
또한.
최음제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옥비연은 마운룡과 네 여종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운룡은 침중한 안색으로 옥비연을 주시했다.
[ 잘 부탁드립니다. 천신단의 해약을 만들지 못한다면
앞으로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탄식했다.
[ 악랄한 천마황이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무림명숙들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그들의 출신문파를 공격케 한다면......!]
그는 말을 끊고 진저리를 쳤다.
그것은.
비록.
가설이었으나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어느날.
자신들의 아버지와 스승.
그리고 형제가 살인광으로 돌변하여 나타난다면 과연 어쩌겠는가?
아마.
수많은 문파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질 것이다.
실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옥비연은 침중한 표정의 마운룡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최선을 다해보겠어요. 십왕경 중 독신편의 전수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기도 하고.......!]
그녀는 결의의 빛을 보이며 말했다.
[ 감사합니다. 누님!]
마운룡은 신뢰의 눈빛으로 옥비연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순간.
[ ......!]
그 미소에 옥비연은 화들짝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실로 오랜만에 뜨거운 열기가 스물스물 피어 올랐다.
사실.
그녀는 이제 겨우 삼십대 초반의 나이였다.
여자로서 한창 남녀간의 운우지락의 기쁨을 알 나이였다.
그 좋은 나이에 그녀는 이 년 가까이 독수공방해 왔다.
그것은.
실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옥비연은 남모르게 마운룡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
하나.
그녀는 대홍산에서 당한 무참한 난행의 기억 때문에 감히 마운룡을 원하지 못했었다.
그것은.
실로 지울 수 없는 뼈아픈 과거였다.
문득.
[ 저..... 아우님!]
옥비연은 고개를 숙인 채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 예? 무슨 하교라도 계십니까?]
다른 생각에 골몰하던 마운룡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하나.
[ .......!]
마운룡의 시선을 접한 순간 옥비연은 말문이 콱 막혀 버렸다.
그와 함께.
그녀의 뇌리 속으로 자신의 몸 위에서 헐떡이던
거대한 수캐와 음탕한 적룡수 종도의 모습이 확 떠올랐다.
그 전율스러운 기억에 옥비연은 교구를 부르르 떨며 신음성을 발했다.
그녀의 몸은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이어.
그녀는 급히 마운룡의 시선을 피하며 비칠비칠 일어섰다.
[ .....?]
그녀의 그런 태도에 마운룡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같이 일어섰다.
문간으로 걸어나간 옥비연.
그녀는 한 차례 마운룡을 돌아보았다.
[ 잘자요!]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힘없는 걸음걸이로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운룡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 무슨 말씀을 하려 한 것일까?)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내심 중얼거렸다.
( 여자분들의 마음은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단 말이야!)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전각의 문들 닫고 돌아섰다.
이어.
그는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말끔하게 정돈된 침실.
그 가운데는 넓은 침상이 놓여 있었다.
마운룡은 겉옷을 벗고 자리에 누우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드륵 -----!
문득.
침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운룡은 흠칫했다.
[ 어느 분이십니까?]
그는 뒤를 돌아보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침실의 문간.
[ ......!]
한 명의 여인이 얇은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녀를 본 마운룡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 당.....대부인!)
그는 너무 뜻밖이라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당대부인.
그렇다.
나타난 여인은 바로 천수나한 당천종의 아내인 당대부인 가려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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