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남북동거(1)
(1838)남북동거-1
남북합작 사업은 순조롭게 추진되었다.
자금은 끊기지 않고 지원되었으며 남북한 사업소의 직원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조철봉은 베이징에 아파트를 한 채 구입하여 장선옥과 동거에 들어갔는데 양국의
공인을 받은 터라 가끔 간부급을 초대하여 파티도 했다.
그러나 조철봉이 어디 한 곳에 매일 있을 인간인가?
장선옥과 함께 지내는 날은 한 달에 일주일 정도였고 나머지 이주일은 서울 본가에서,
그리고 나중 일주일은 또다시 지금까지의 행각을 되풀이했다.
본래 사업에 대해서는 큰 그림만 그려놓고 세세한 결정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온
조철봉이다.
이번의 합작사업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방식이 맞아 떨어졌다.
각 업무부문 팀장은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고 힘이 배가되었으며 조철봉은
조철봉대로 공정이 끝날 때마다 리베이트를 챙겨 장선옥과 나누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이제는 장선옥의 몫이 따로 떼어져 스위스 은행 비밀 계좌에 차곡차곡 쌓여졌다.
그리고 그 금액이 150만불이 되는 날 아침에 조철봉과 장선옥은 태산으로
2박3일의 여행을 떠났다.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떠난 것이다.
중국의 고속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새 것이며 넓고 긴 경우에 든다.
거기에다 길이만큼 아직 차량 수요가 많지 않아서 고속도로 여행은 즐길 만하다.
“지난달에 감독관으로 온 윤달수 말야.”
벤츠500을 시속 180㎞로 운전하면서 장선옥이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조철봉은 잠자코 앞만 보았다.
북한측 사업소에는 지난달에 평양에서 감독관이 새로 부임해왔다.
이름은 윤달수, 대남사업 부서에서 오래 일하다가 베이징으로 파견되었다고 들었다.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눈치가 이상해. 슬슬 장부를 뒤지고 내 뒤를 캐는 것 같아.”
“설마.”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장선옥을 보았다.
“김성산 대표가 있는데 무슨 일 있을라고.”
“김 대표 뒤도 캐고 있어.”
“그게 무슨 말야?”
긴장한 조철봉이 상반신을 세웠다.
“김 대표도 신임을 받고 있지 않단 말야?”
“그럼 당신은 신임을 받아?”
되물은 장선옥이 앞쪽을 향한 채로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당신도 이용당하고 있는 거 다 알아.”
“이용당하다니?”
“나한테서 가져간 정보만큼 당신 가치가 높아지겠지.”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냐?”
머리를 돌린 조철봉이 장선옥의 옆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서로 포섭했다고 보고한 터라 이쪽도 꽤 높은 수준의 정보를 건네준 것이다.
물론 정보실장 이강준이 준 정보였으므로 이쪽에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장선옥이 앞쪽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다 안 믿는 것 같아.”
“다라니?”
“양쪽 다.”
가속기에서 발을 뗀 장선옥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쪽도 내 전향을 믿지 않는 것 같고 우리쪽도 마찬가지야.”
“…….”
“그래서 자연히 우리 둘이 작당을 했는가 의심하게 된 거야.
아마 그쪽도 마찬가지일 걸?”
“그것 참.”
했지만 가슴이 철렁해진 조철봉이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이쪽은 염려할 것이 없다.
하지만 장선옥의 행적이 드러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1839)남북동거-2
그날 밤 둘은 알몸으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에는 아직도 향락의 흔적이 질펀하게 남아 있었는데 숨을 들이쉴 때마다
비린 정액 냄새가 맡아졌고 피부에 열기가 닿았다.
둘에게는 이 열기와 냄새가 익숙해져 있어서 향에 덮인 천국이나 같다.
“그렇다면….”
호흡을 고른 조철봉이 천장을 향한 채로 말했다.
“그놈, 윤달수를 매수하는 것이 어때?”
그러자 장선옥이 바로 말을 받았다.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위험해.”
“뒷조사를 해본 거야?”
반듯이 누운 장선옥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성분이 좋고, 부친이 자강도 당비서를 지낸 데다 누이는 사단장 부인이야.”
“그래서?”
“그래서라니?”
머리를 돌린 장선옥이 조철봉을 보았다.
불을 환하게 켜놓아서 장선옥의 이마에 밴 땀방울이 반들거리고 있었다.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걔들은 밥 먹고 똥 안 싸느냐고 물었어.”
“우리하고는 달라.”
“우리라니?”
정색한 조철봉이 상반신을 비스듬히 일으켰다.
“너희들이 귀천 따지냐?
가만 보니까 성분, 신분 해쌓는 게 남한보다 더 차별하고 자빠졌네.”
“그래.”
선선히 머리를 끄덕인 장선옥의 시선이 다시 천장으로 올라갔다.
“거긴 반정부 데모했던 인간도 고시 합격해서 판검사가 되지만 우린 안그래.”
“좋아.”
다시 상반신을 눕힌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내가 해보지.”
“뭘?”
“내가 그놈을 매수하겠단 말이야.”
“글쎄, 위험하다니까.”
“넌 몰라.”
조철봉이 뱉듯이 말하자 이번에는 장선옥이 상반신을 비스듬히 일으켰다.
시트를 덮지 않아서 젖가슴 한쪽도 비스듬하게 늘어졌다.
“뭘 모른단 말이야?”
장선옥이 또렷한 시선으로 조철봉을 내려다보았다.
“말해, 당신.”
“내가 얼마나 많이 매수를 해왔는지 모른단 말이야.”
또박또박 말한 조철봉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넘어가지 않은 상대가 없었지.”
“하긴 나도 넘어갔으니까.”
웃지도 않고 말했던 장선옥이 다시 머리를 저었다.
“하지만 그 작자는 위험해.”
“그렇다고 놔둘 수는 없어. 네 뒤를 캐면 꼬리가 잡혀.”
정색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우리 대화를 녹음하고 지출 내역을 조사하면 증거가 드러나게 되어있어.”
“차라리….”
입안의 침을 삼킨 장선옥이 조철봉을 보았다.
“없애 버리는 게 어떨까? 남한측에서 말이야. 사고로 위장해서.”
그순간 숨을 들이쉰 조철봉은 외면했다.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장선옥의 입에서 칼이 뱉어졌다.
조철봉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다.
이윽고 조철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상의해볼 테니까 좀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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