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29. 남북동거(3)

오늘의 쉼터 2014. 10. 1. 16:07

629. 남북동거(3) 

 

 

(1842)남북동거-5 

 

 

 

 

“긴장 푸세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명진이 불쑥 말했다.

 

조철봉의 눈과 마주쳤을 때 나명진은 입술을 펴고 웃었다.

 

눈도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너무 기대하시지도 말고요.”

다시 앞쪽을 주시한 채 나경진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잠깐 숨을 멈췄다.

“기대라니?”

조철봉이 묻자 나명진은 가속기를 밟아 차의 속력을 내었다.

 

밤 12시가 되어가고 있는 데다 평일이다.

 

영동고속도로에는 차량이 뜸해서 속도계가 170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 둘이 이 시간에 별장을 간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명진이 차분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한 마디씩 끊어서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나 옆모습은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옆얼굴의 선이 그린 것처럼 곱다.

 

반듯한 콧날, 둥근 턱선과 윗입술이 조금 솟은 단정한 입술,

 

옆모습에 반했다가 앞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면 눈 사이가 넓어서 가오리 인상이 되었다든지 코가 옆으로 벌어졌다든지

 

앞에서 보는 입술이 영 딴판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명진의 앞모습은 옆모습보다 더 나았다.

 

정보요원 선발 기준을 미모로 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 안에 잠깐 엔진음만 울리고 나서 나명진의 말이 이어졌다.

“실장님이 호흡을 맞추라고 하신 건 손발을 맞추라는 의미죠,

 

입을 맞추는 상상을 하신다면 곤란하죠.”

“글쎄.”

마침내 조철봉도 입을 열었다.

 

의자에 등을 붙인 조철봉의 목소리도 차분해졌다.

“오밤중에 단둘이 별장으로 달려가는 판이니 딴 생각을 안 하는 놈씨가 있다면

 

그놈이야말로 위선자 내지는 비정상이지.”

“당연하죠.”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상상금지, 기대금지, 해쌓는 건 또 뭐요? 갖고 노는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이 나명진의 옆얼굴을 보았다.

“더구나 호흡을 맞추라는 상관의 은근한 지시도 있었고 말야.”

“그렇죠.”

“거, 맞장구나 치지 마시라고. 사람 열불 나게 만들라는겨?”

“미안합니다.”

“상대가 그저 그런 여자라면 내가 기대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기대는 하신 거군요?”

웃지도 않고 나명진이 물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앞쪽을 향하고 있다.

“당연하지.”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작전이란 게 저쪽 남자한테 미인계를 써서 매장시키든 포섭하든 하는 거 아니겠어?”

열띤 목소리로 말한 조철봉이 나명진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러러면 우리가 손발을 맞추는 것보다 입을 맞추는 것이 훨씬 팀워크가 잘 조성될 텐데 말야.”

그때 나명진의 옆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고 그것을 본 조철봉의 기가 살아났다.

“좋아, 어쨌든 같이 일해야 할 입장이니까 서로 존중하도록 하지.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서 어색해졌는데 말야.”

“…….”

“누가 달라고도 안 했는데 미리 죽여 놓지 말라고, 알아?

 

남자는 성적 환상이 생활에 가장 활력을 준다는 통계도 있어.”

누가 낸 통계인지 과연 그 통계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설득력은 있는 말이다. 

 

 

 

(1843)남북동거-6

 

 

 

 

별장은 작고 낡은 단층 시멘트집이었지만 깨끗한 데다 갖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골짜기의 바위 밑에 위치해 있어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였고 뒤쪽은 절벽이다.

 

요새가 따로 없었다.

 

주위에 인가도 없는 데다 찻길도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둘은 차를 산길에 세워두고

 

50미터쯤이나 골짜기를 올라와야 했다.

 

그러나 집 안에는 전기도 들어왔고 벽 쪽 테이블에는 컴퓨터도 놓여졌다.

 

원룸 구조의 오피스텔 같았다.

 

방으로 들어선 나명진이 컴퓨터 앞에 앉더니 말했다.

“저기 옷장에서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씻으시죠.

 

전 잠깐 일이 있어서.”

그러고는 모니터를 켰으므로 조철봉은 벽에 붙은 옷장문을 열었다.

 

옷장 안에는 남녀의 옷이 가득차 있었는데 모두 새것이다.

 

아직 포장지를 벗기지 않은 것도 있다.

 

갈아입을 옷을 꺼내 욕실로 들어간 조철봉은 다시 놀랐다.

 

욕실은 컸다.

 

유리 칸막이가 되어 있는 샤워실이 따로 있는데다 욕조는 둘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였다.

 

샤워를 하면서 조철봉은 이 별장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궁금해졌다.

 

규모나 시설, 위치로 보면 두 명쯤이 며칠간 은거하기에는 적당했다.

 

침대가 하나 뿐이어서 남녀 한쌍이 어울릴 것이다.

 

조철봉이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소파에 앉아 있던 나명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어섰다.

“한잔하고 계세요.”

옆을 스치고 지나면서 나명진이 말했다.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탁자 위에는 이미 양주와 마른 안주가 차려져 있었는데 얼음통까지 놓여졌다.

 

새벽 1시가 훨씬 넘어 있었지만 조철봉의 머릿속은 또랑또랑했다.

 

잔에 위스키를 채운 조철봉이 힐끗 욕실 쪽을 보았다.

 

차타고 오면서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건강한 남녀가 이런 조건에서

 

일없이 보낸다는 것이야말로 이상하다.

 

그것이 비정상적인 일인 것이다.

한모금에 양주를 삼킨 조철봉은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두 다리를 길게 뻗었다.

 

그동안 숱한 상황을 겪고 나서 터득한 요령이 있다.

 

조철봉은 경험을 처신의 기본으로 삼아 왔다.

 

나명진이 제 아무리 훈련과 지식을 쌓아 왔더라도 남녀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몇 수 아래일 것이다.

 

내일 날이 밝기 전에 나명진은 육체의 기쁨을 알게 될 것이며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과 존경,

 

찬탄의 느낌까지 다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수없이 그런 아침을 겪어온 터라 조철봉한테는 익숙해진 눈빛이었다.

 

조철봉이 위스키를 세 잔 더 마셨을 때 욕실에서 나명진이 나왔다.

 

머리를 든 조철봉의 눈빛이 강해졌다.

 

예상했던 대로 나명진은 진주색 실크가운 차림이었다.

 

맨다리가 드러났고 맨발로 성큼성큼 다가온 나명진이 앞쪽에 앉았다.

 

로션만 바른 얼굴은 유리처럼 반들거렸고 긴머리는 어깨까지 늘어졌다.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을 받은 조철봉이 크게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동안 윤달수의 자료를 다운받아서 검토했는데요.”

제 잔에 술을 따르면서 나명진이 말했다.

 

차분한 표정이었고 이쪽에 시선도 주지 않는다.

“여자를 밝히는 놈이더군요.

 

옌지에 자주 다니는 룸살롱이 있는데 거기에도 애인이 있어요.”

한모금에 술을 삼킨 나명진이 시선을 들더니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잡식성이죠.”

웃지도 않고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듣는 순간에 무슨 말인지 몰랐다.

 

뒤늦게 말뜻을 알았을 때 나명진이 그 얼굴 그대로 말했다.

“시험적으로 저하고 한번 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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