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 새인생(10)
(1831)새인생-19
조철봉에게는 경험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실제로 겪어본 경험이 가장 믿을 만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철봉은 가능하면 많이 겪으려고 시도하는 편이었다.
온갖 군상과 부대끼면서 겪은 갖은 곡절은 사업은 물론이고 인간관계의 좌표가 되어왔다.
지금 한미선에게 100만원을 준 것도 그렇다.
경험상 이런 경우에 여자는 감동했다.
그냥 먹고 떨어진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제가 왜.”
100만원권 수표를 손에 쥔 한미선이 눈을 크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차는 그대로 방배동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속력은 느려졌다.
운전사가 말을 들은 것이다.
고인 침을 삼킨 한미선이 조철봉에게 묻는다.
“저, 잘못 주신 거 아녜요? 이거 100만원인데요.”
“알아.”
그러고는 조철봉이 운전사에게 말했다.
“차 세워.”
“예, 사장님.”
운전사는 미도에서 붙여준 대리 운전사다.
차가 길가에 멈춰 섰을 때 조철봉이 먼저 내렸다.
오른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 내린 한미선이 차 문을 닫더니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운전사는 차 안에 있었으므로 이제 둘이 된 것이다.
한미선이 바짝 붙어섰다.
“저 데려가세요. 네?”
목소리가 은근했고 불빛에 비친 눈이 번들거렸다.
“차 안에서는 말씀 못 드렸는데 사장님하고 같이 있고 싶어요.”
한미선의 표정을 본 조철봉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순간만은 진실이다.
세상에서 오래 계속되는 것은 아주 드물다.
영원히 계속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100만원 수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참 피곤하게 인생을 사는
인간이라고 조철봉은 생각한다.
“말해 봐.”
조철봉이 한미선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언제부터 나하고 같이 자고 싶다는 생각을 먹었는지.”
그러고는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털어놓고 말해준다면 고맙겠다. 내가 좀 어색해서 그런다.”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셨을 때요.”
장학퀴즈에 나온 학생처럼 한미선이 성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수표 주셨을 때 사장님 놓치는 것 같아서 매달리고 싶었어요.”
“솔직하게 말한 것 같구나.”
“저, 명성상사 비서실에 다녀요.”
한미선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대학 졸업하고 다닌 지 일년반 되었어요.
마담한테 픽업된 지는 열흘 되었고요.”
“……”
“돈이 필요했거든요.”
“……”
“저, 천호동에 오피스텔 얻어서 혼자 살아요. 거기로 가실래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한미선이 손을 뻗어 팔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흔들면서 말했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쉬거든요.
괜찮으시면 제가 해장국 끓여 드릴게요.”
“좋아, 가자.”
마침내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다시 둘이 차에 탔을 때 운전사는 백미러도 보지 않았는데 그것이 놀란 증거였다.
“천호동으로.”
조철봉이 말하자 운전사는 금방 차를 발진시켰다.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
한미선이 말했을 때도 운전자는 대답만 했다.
(1832)새인생-20
한미선의 오피스텔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2인용 소파에 앉아 방안을 둘러본 조철봉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침대에 깔린 흰 시트를 본 순간 가슴이 뛰었고 몸이 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꼭 필요한 가구만 배치된 방안이었다. 주방쪽에 나란히 놓인 커피잔도 딱 두 개였다.
밥그릇과 수저도 두 개씩일 것이다.
“씻으실래요?”
괜히 이쪽저쪽으로 서성거리면서 가구까지 옮기는 시늉을 하던 한미선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들었다.
한미선은 옆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집에 남자가 들어온 적 있니?”
“가구 놓을 때 빼놓고는 없어요.”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굳힌 한미선이 대답하자 조철봉은 마침내 풀썩 웃었다.
“내가 처음이구나.”
“…….”
“하긴 나도 처음이다.”
그렇게 말해놓고 조철봉의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버릇이 되어서 거짓말은 시도 때도 없이 품어 나온다.
그 순간에도 조철봉은 자신의 진심을 읽는다.
한미선에게 호감을 느꼈기 때문에 감동을 주려는 의도였다.
이제는 한미선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세상에, 그럴수가’, 하고 얼굴에 쓰여 있다. 믿기지 않는 것이다.
“난 한 번도 이차 나간 적이 없어.”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했다.
그렇다. 미도에서는 안 나갔다.
하룻밤에 상대를 대여섯번씩 절정에 올려 놓으면서도 기어코 대포를 발사하지 않는 조철봉이다.
데리고 나가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한미선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분위기 띄우려고 너한테 이차 나갈 거냐고 물었다가 이 상황까지 왔구나.”
그때 한미선이 다가와 조철봉의 저고리를 잡았다.
“옷 벗고 씻으세요.”
“넌 돈 벌어서 뭐 하려는 거야? 잘나가는 직장도 있으면서.”
일어나 옷을 벗으면서 묻자 한미선이 대답했다
“저만 살 수는 없죠.”
“그게 무슨 말야?”
“욕실에는 샤워기뿐인데 어쩌죠?”
화제를 바꾼 한미선이 욕실 쪽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씻고 나오셔서 술 드신다면 아래층 편의점에서 뭘 사올게요.”
“그래라, 소주 마시자.”
욕실로 들어서면서 조철봉이 말했다.
“안주 신경쓸 거 없어.”
“그럼 나갔다 올게요.”
한미선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욕실도 잘 정돈되었고 깨끗했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받고 선 조철봉은 한미선의 알몸을 떠올렸다.
아직 한미선과는 손도 잡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슴이 더 뛰었고 금방 철봉이 곤두섰다.
지금까지 수백명의 상대를 만났지만 다 분위기가 달랐고 한미선 같은 경우 또한 처음이다.
처음에 한미선이 이차 안 나간다는 말을 했을 때 이강준은 길길이 뛰었지만 조철봉은
시큰둥했다.
그냥 놔두었다면 오늘밤 이렇게 엮어지지 않았다.
대충 샤워만 하고 나온 조철봉은 욕실 앞에 갈아입을 옷이 단정하게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한미선의 트레이닝 바지와 반소매 셔츠였는데 큰 사이즈여서 몸에 맞았다.
한미선은 가게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은 조철봉은 다시 소파에 앉아 한미선의 알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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