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22. 새인생(9)

오늘의 쉼터 2014. 10. 1. 15:18

622. 새인생(9)

 

 

 

(1829)새인생-17

 

 

 

 

이강준이 들어섰을 때는 10분쯤이 지난 후였다.

 

이강준은 마담과 함께 들어왔는데 기세가 등등했다.

 

어깨를 치켜들었고 눈이 번들거렸다.

“저, 제가 잠깐 애들을.”

하면서 손님들한테 머리를 숙여보인 마담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나갔으므로 방안에는 셋만 남았다.

“맞긴 맞습니다. 저놈은 이차 나간 적이 없습니다.”

한미선이 앉았던 자리를 흘겨본 이강준이 말했다.

“나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일주일 동안 이번까지 세번 손님을 받았거든요.”

그러더니 얼굴을 구기며 웃었다.

“두 번 받은 손님은 대한실업 이경준 회장하고 한민당 방대식 총장이었더군요.

 

둘다 체면 차려야 하는 분위기여서 이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차 요구를 했다면 보냈을까?”

서한호가 정색하고 물었을 때 조철봉은 긴장했다.

 

한미선이 나갔을까 하고 물은 것이 아니라 보냈을까 하고 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강준이 다시 웃었다.

“예, 저도 그렇게 물었더니 마담이 보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본래 한미선이 이곳에 올 때 그런 조건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연하지. 백인주 사장이 누구라고 감히 그런 조건을 내놓겠어?”

서한호가 맞장구를 쳤을 때 조철봉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제가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가 분란만 일으켰습니다. 죄송합니다.”

“다 이런 재미로 술 마시는 거죠.”

술잔을 든 서한호가 위로하듯 웃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마담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다시 들어섰다.

“사과드립니다.”

조철봉에게 머리를 숙여 보인 마담이 정색하고 말했다.

“얘가 뭘 몰라서 그랬어요. 이차 따라나갈 겁니다.”

“이런.”

입맛을 다신 조철봉도 정색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못 하겠다고 그러겠어? 그게 억지로 해서 무슨 재미가 있다고?”

“기분 풀어드릴 테니까 재밌게 노세요.”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마담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너, 인마, 꼭 그렇게 분위기 깨야겠어?”

한미선한테 이강준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으므로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썰렁해졌다.

 

머리를 숙인 한미선에게 이강준의 꾸지람이 이어졌다.

“아무리 물정을 모르더라도 대뜸 안 됩니다가 뭐야?

 

얼마든지 다른 표현을 하거나 시간을 두고 이해시킬 수 있었을 것 아냐?

 

너 같은 애가 미도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거다.”

한미선은 머리를 들지 않았지만 이강준은 끈질기게 나무랐다.

“저 양반이 너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아?

 

분위기 띄우려고 하신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 대답을 듣고 나면 없던 마음도 다시 생겨나는 게 남자다.

 

넌 기본이 부족한 애야.

 

도대체 너 같은 애가 미도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

“요즘은 애들 분위기 맞춰가면서 마신다는 말도 있더구먼. 이제 그만해.”

서한호가 말리는 척하면서 한 말도 날이 서 있었다.

 

그때 한미선이 머리를 들었다.

 

조철봉의 예상을 뒤엎은 차분한 표정이었다.

 

어지간한 아가씨들은 울거나 우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한미선이 또렷한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따라 나갈게요.” 

 

 

 

 

(1830)새인생-18

 

 

 

한미선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입맛을 다시면서 웃었다.

“그래, 나가자.”

“잘 모셔.”

하고 이강준이 다짐하듯 말했다.

“명예를 걸고.”

이강준의 정색한 표정을 본 순간 조철봉은 어금니를 물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웃음은 참았지만 콧구멍이 서너 번이나 벌름거렸다.

 

술좌석은 그로부터 30분이 안 되어서 끝이 났다.

이강준이 미리 계산을 해버리는 바람에 조철봉은 지갑을 꺼내지도 못했다.

 

주차장으로 셋이 들어섰을 때 이강준이 먼저 어둠 속에서 한미선을 발견했다.

“어, 저기 먼저 나와 있네요.”

주차장 구석에 서있는 한미선은 룸에서 봤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회색 코트 차림이었는데 다가선 조철봉을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저희들은 먼저 갑니다.”

서한호가 조철봉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적극 협조해 드릴게요.”

이강준과도 악수를 나눈 조철봉은 그들과 헤어져 구석에 세워둔 차로 다가갔다.

 

기다리던 운전사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한미선과 뒷좌석에 탄 조철봉이 먼저 손목시계부터 보았다.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집이 어디야?”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적에 조철봉이 묻자 한미선이 다소곳이 대답했다.

“방배동인데요.”

“그럼 방배동으로 가지.”

앞쪽 운전사에게 말한 조철봉이 좌석에 등을 붙였다.

“집에 데려다 줄게.”

한미선은 눈만 깜박였고 조철봉은 앞쪽을 향한 채로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괜히 허튼소리 한번 했다가 둘 다 이 고생이구나.”

“저,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한미선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덧붙였다.

“데리고 가주세요.”

“아니, 억지로 그럴 것 없다.”

정색한 조철봉이 머리를 저었다.

“너하고 같이 나온 건 너도 그렇지만 나도 그 사람들 호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자.”

그러고는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너하고 내가 같이 잔 것으로 하잔 말이야.”

“저, 정말 괜찮다니까요?”

하고 한미선이 정색한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처음이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저 데리고 가주세요.”

“내가 내키지 않아서 그래.”

어깨를 늘어뜨린 조철봉도 한미선과 비슷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해해라.”

“화내시는 거 아니죠?”

“천만에.”

“제 집은 방배동 아녜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한미선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아까 갑자기 물으셔서 그렇게 대답했어요.

 

집에 데려다 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그럼 어디야?”

“천호동이니까 내려서 택시 타고 갈게요.”

차는 천호동과 반대 방향으로 논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지갑에서 1백만원권 수표를 꺼내 한미선에게 내밀었다.

“자, 차비야. 받아.”

이것은 첫인상으로 감동받은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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