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19. 새인생(6)

오늘의 쉼터 2014. 9. 29. 15:55

619. 새인생(6)

 

 

 

(1823)새인생-11

 

 

 

다음날 아침,

 

식사를 이층 베란다에서 메이드가 요리해준 인도네시아식 해물요리로 먹으면서

 

장선옥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과연 돈이란 게 좋긴 하네요.”

바닷가재 구이를 씹어 삼킨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말도 실감이 나요.”

조철봉은 잠자코 해물 우동 비슷한 요리의 국물을 떠 마셨다.

 

오전 9시경이 되자 아래쪽 백사장에는 드문드문 남녀가 보였지만 조용했다.

 

푸른 바다 위에 요트 두 척이 나란히 떠 있었고 수평선 위를 지나는 화물선은

 

그림으로 붙여진 것 같았다.

 

장선옥이 오렌지 주스잔을 들고 말했다.

“그래요. 열심히 돈 버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요.”

이제는 생굴을 포크로 찍어 먹던 조철봉이 장선옥을 보았다.

“난 어느 정도 돈 벌 때까진 그런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

무슨 말이냐는 듯 장선옥이 눈만 크게 떴으므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하긴 호사도 끝이 없다고 들었지만 난 아냐.

 

난 얼마 전부터 내가 번 돈을 내 식으로 돌려주려고 마음먹었어.”

“돌려주다니요?”

주스잔을 내려놓은 장선옥이 조철봉을 보았다.

“누구한테요?”

“사회에.”

“사회?”

장선옥의 표정이 굳어졌다.

 

몸까지 바로 세워 앉은 장선옥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난 한국에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에다 고아원을 지어 놓았어.”

이제는 조철봉도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번 돈도 끊임없이 재투자를 해서 고용을 창출했지.

 

그것도 사회에 대한 기업가의 봉사야.”

“…….”

“난 북한과 중국, 베트남에다 러시아에까지

 

설립한 기업체의 고용원만 해도 5만명 가깝게 돼.

 

그만하면 대단한 투자지.”

“하지만.”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킨 장선옥이 물었다.

“기업가는 영리 추구를 위해 기업을 창립하고 운용한다면서요?”

“당연한 말이지만.”

조철봉이 장선옥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다.

“요즘은 기업가가 노동자 임금을 착취해간다고 믿는 국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더구만.

 

그렇게 믿었던 체제는 어김없이 망했거나 망하기 일보 직전 상태지.”

“…….”

“난 내가 번 돈을 다 사회에 내놓고 갈 거야.

 

물론 처자식이 먹고 살 만큼만 남겨 놓고 말이지.”

“박수 쳐드릴게.”

장선옥이 손바닥을 부딪쳐 박수 치는 시늉을 하더니 길게 숨을 뱉었다.

“우리 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건 알아요.”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눈을 둥그렇게 떠 보인 조철봉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렇게 왔다갔다 말고 지금부터 말 내려. 반말하란 말야.”

“어색해서.”

장선옥이 웃음 띤 얼굴로 말하자 조철봉은 입맛을 다셨다.

“어젯밤에는 잘도 하더니만.”

“내가 언제요?”

“하긴 정신이 없었지.”

그러자 장선옥이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말 돌리지 마.”

“그렇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화를 돌리기는 했다. 

 

 

 

 

(1824)새인생-12

 

 

 

 

조철봉은 장선옥이 열에 뜬 상태로 뱉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둘이 같이 살자는 말이었다.

 

바닷가의 비치파라솔 그늘에 나란히 누워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조철봉은 방법을 연구했다.

 

정식으로 부부가 될 수는 없다.

 

남북한 합자사업 책임자 둘이 결혼한다면 떠들썩한 뉴스감은 되겠지만 실익이 없다.

 

한국도 그렇고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은밀하게 진행시켜야만 한다.

그때 장선옥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벤치에 누운 장선옥은 비키니 수영복 차림이었는데 미끈한 몸이 다 드러났다.

 

호텔 본관의 매장에서 산 비키니 수영복은 화려한 색상이었지만 얇았다.

 

그래서 장선옥의 골짜기 윤곽까지 다 드러났다.

“알아요? 북남 양쪽에서 우리 둘을 주시하고 있다는 거 말야.”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쓴 것이 스스로도 우스운지 풀썩 웃고 난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물론 북쪽은 내가 당신을 포섭하기를 바라고 있겠지.”

“포섭이라.”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장선옥을 똑바로 보았다.

 

장선옥은 또 선글라스까지 사서 끼고 있었으므로 눈이 안 보였다.

 

그러나 둥글고 까만 선글라스는 잘 어울렸다.

“오랜만에 듣는 스파이 영화 대사 같은데.”

혼잣소리처럼 말한 조철봉이 장선옥의 몸을 훑어보았다.

 

오후 4시 무렵의 해변은 조용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으며 바다는 잔잔했다.

 

조금 비스듬해진 햇볕을 받아 바다는 은가루에 덮인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조철봉이 묻자 장선옥이 두 다리를 주욱 뻗고 두 팔을 올려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했다.

 

가지런한 발가락이 안쪽으로 잔뜩 굽혀진 순간 조철봉은 절정에 오른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도 발가락이 저렇게 굽혀졌었다.

“그래야 허락할 거야.”

장선옥이 반듯하게 누운 채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이 내 조종을 받는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우리 둘이 결합되는 거야.”

“그건 나도 비슷하겠는데.”

역시 위쪽을 바라보고 누운 채 조철봉이 말했다.

“내가 옥이한테 휘둘린다면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될까?”

“합자사업에서 손을 떼게 하겠지.”

“그 정도야?”

그러자 장선옥이 가늘고 긴 숨을 뱉었다.

“나 당신하고 살고 싶어.”

“그럼 내가 포섭당한 것으로 할까?”

“한국 쪽에는 어떻게 하고?”

“그쪽은 내가 옥이를 포섭한 것으로 말해야겠지.”

장선옥도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아서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상반신을 비튼 조철봉이 장선옥을 보았다.

 

거리가 1m도 안 되어서 장선옥의 가슴 위쪽에 박힌 작은 점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윽고 장선옥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날 포섭했다고 말해.”

눈만 크게 뜬 조철봉을 향해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에 같이 온 것도 자기를 포섭하기 위해서였어. 그것도 말해.”

“…….”

“난 자기하고의 리베이트 내역을 상부에 다 보고했어.

 

내 몫은 일달러도 없단 말야.”

그러고는 장선옥이 머리를 조철봉에게 돌리더니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 전향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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