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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14

오늘의 쉼터 2014. 10. 1. 11:59

제21장 호각세(互角勢) 14

 

 

 

 그러나 대궁을 지키는 군사들은 모두 합해야 겨우 3천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에 비하면 상대는 얼마나 되는지 숫자조차 헤아릴 수 없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엊그제만 해도 자신들과 같은 편이었던 양궁과 사량궁의 군사들까지

 

저쪽에 가세하여 더욱 사기가 꺾였다.

 

정작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그간 입에서 입으로 나돌던 임금의 시해 소문도 참말이구나 싶어

 

명분에서도 밀렸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시석을 아낌없이 퍼부어라!”

칠숙은 혼자 미친 듯이 소리치며 휘하의 장수들을 다그쳤지만 도무지 말이 먹혀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열패감에 빠진 군사들을 성루로 내몰고 사다리를 치워버렸다.

 

그리고 도부수들로 하여금 아래로 떨어지는 군사는 모조리 그 자리에서 참수할 것을 지시했다.

 

칠숙이 일종의 배수진인 상옥추제(上屋抽梯)의 계책을 쓰면서부터 군사들의 기세는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되살아났다.

 

대궁의 누각 위로 내몰린 군사들은 도망갈 곳이 없으니 자연히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매정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고 잔혹하지 않으면 장수가 아니다.”

칠숙은 병부의 도부수들을 독려하는 한편 시급히 일선주로 사람을 보내 원군을 요청했다.

 

한때 병부제감을 지낸 일선군주 석품은 칠숙의 오랜 친구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여운이 상수살이의 고충을 말하며 군사를 내어달라고 간청할 때에도,

“자식을 위해 벗을 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백반공은 미관말직에 불과했던 나를 아찬 벼슬로까지 높여준 은인이 아니냐?

 

장부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쳐 섬길 뿐이다.”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위급함에 빠진 칠숙이 원군을 요청해오자

 

대궁의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더니,

“그렇다면 원군이 가더라도 이미 승산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냐?”

마치 거절할 듯이 물었다.

“아뢰옵기 민망하오나 그렇습니다.”

심부름꾼의 솔직한 대답에 석품은 돌연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칠숙이다! 만일 그가 끝까지 원군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무척 서운할 뻔하였다.”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주군을 소집하여 도성으로 향했다.

원군 8천여 기를 이끌고 대궁의 서문으로 달려온 석품을 보자 칠숙은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는 월성 밖에 포진한 군사들을 가리키며 석품에게 말했다.

“꼼짝없이 사지에 들고 말았네. 필시 이런 사정은 모르고 왔을 테지?”

그러자 석품이 크게 웃었다.

“자네가 사지에 들었으니 나를 불렀겠지.”

“하면 저승에서 가서도 나와 동무가 되어보려는가?”

“여부가 있나. 호시절을 같이 누렸으면 파장에도 같이 가야지.

 

자네 혼자면 너무 외롭지 않은가?”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눈에 언뜻 물기가 돌았다.

 

칠숙은 석품을 남당의 백반에게 데려갔다.

 

그런데 백반은 눈을 부릅뜨고 죽은 태의 수급을 본 뒤로 정신머리가 약간 이상해져서

 

석품을 만나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석품이 백반의 거소를 물러나오며,

“저 어른께서 왜 갑자기 저렇게 되셨나?”

하고 물으니 칠숙이 침통한 낯으로,

“아무래도 어리석은 비담과 염종이 배신을 한 모양일세.”

하고는 태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대궁 안에 갑자기 군사들이 불어나자 토벌군들도 무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날아오는 시석을 피해 월성 동남쪽 4, 5리쯤 되는 곳으로 물러나 군진을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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