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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12

오늘의 쉼터 2014. 10. 1. 11:50

 

제21장 호각세(互角勢) 12

 

 

 

 

비담이 그런 춘추에게 온화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아우님의 말씀하시는 뜻은 내 충분히 알아들었네.”

하고는 염종을 돌아보며,

“공의 뜻은 어떠하오?”

하니 염종이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며 눈짓을 하므로 비담이 눈치를 채고

 

염종을 따라 다른 방으로 갔다.

“더 의심할 것이 있소?”

비담이 묻자 염종이 대답했다.

“대개는 믿을 만한 소리 같습니다.”

“춘추는 과연 인물됨이 출중하고 사람을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이 있소.

 

그가 죽음도 불사하고 나를 찾아왔으니

 

이제 내가 그의 의로운 행동에 보답할 차례가 아니오?”

“도련님께서는 부형을 배반할 용기가 있습니까?”

“이건 그런 수준의 얘기가 아니지 않소? 게다가 아버지는 살 만큼 살았소.”

비담은 이미 마음에 작정을 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가볍게 결정할 일은 분명히 아닙니다.

 

덕만 공주 편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금상을 시해한 대역무도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가 보위에 오르고 나면 당연히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들지 않겠습니까?”

“금상을 시해한 자는 칠숙이요,

 

칠숙은 아버지의 사주를 받았을 뿐이오.

 

나는 그저 아버지를 따라 사량궁에 잠깐 머무른 죄밖에 없소.”

비담은 잠깐 궁리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보탰다.

“하지만 그것조차 만일 문제가 된다면 확실한 공을 세워 죄를 덮을 수밖에.”

“혹시 무슨 묘책이 있는지요?”

“양궁과 사량궁을 들어 바치면서 태와 칠숙의 목을 가져간다면

 

우리 두 사람의 무고함은 능히 증명할 수 있지 않겠소?”

비담과는 달리 시종 미심쩍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염종도

 

비담의 그 말을 듣고는 대번 안색이 환히 밝아졌다.

“탁견이십니다! 그렇게만 하면 오히려 역모를 평정한 공으로 상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요!”

염종은 태도 태지만 자신과 오랫동안 충성 경쟁을 벌여온 칠숙을 죽여 없애자는 말에 더욱 흥분했다.

 

대강 의논을 마친 두 사람은 춘추가 기다리는 곳으로 다시 건너왔다.

“내가 아우님의 충정에 감동하여 쾌히 그 뜻을 따르기로 하였네.”

비담이 말했다.

“그러나 기왕 대의를 좇아 투항하는 마당에 어찌 빈손으로 갈 것인가?

 

하루만 말미를 주게나. 하면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들고 가겠네.”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과연 형님이십니다!”

춘추는 갖은 찬사를 동원하여 비담을 한껏 추켜세우고 나서 두 사람의 전송을 받으며

 

무사히 사량궁을 빠져나왔다.

 

이들은 양궁과 사량궁에서 연기를 올려 신호할 것을 서로 약속하였는데,

 

헤어질 때 비담이 춘추를 보고,

“용춘 당숙과 덕만 공주께 이번 일은 내 의사와 전혀 무관한 것이었음을 부디 잘 말씀드려 주시게나.

 

아우님의 은공은 두고두고 잊지 않겠네.”

손을 붙잡고 사정하듯 말하여 춘추가 웃으며,

“여부가 있겠습니까. 형님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몇 번이나 다정한 말로 다독거렸다.

 

춘추를 보낸 뒤 비담과 염종은 밤새 머리를 맞대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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