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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11

오늘의 쉼터 2014. 9. 30. 16:44

제21장 호각세(互角勢) 11

 

 

 

 

그럴 무렵 양궁에서 염종이 당도했다.

 

비담은 염종을 다른 방으로 데려가서 춘추가 사량궁을 찾아온 뜻을 전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염종이 별안간 크게 웃었다.

“이는 바로 이간책이오.”

“이간책이라니?”

“두 형제분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우리를 자중지란에 빠지게 하려는 저들의 교활한 술책입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춘추에게서 받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던 비담이,

“그렇게 의심부터 할 일이 아니오.

 

춘추의 말 가운데 하나라도 틀린 것이 있소?

 

만일 태가 임금이 되면 공이야 또 충성을 바치고 앞에서 간살을 부리면 그뿐이지만

 

내 앞에 놓인 천봉만학과 구연세월은 어떻게 한단 말이오?”

하고 비아냥 섞인 말로 퉁명스레 반문하니 염종이 돌연 무참하여,

“간살을 부리긴 누가 간살을 부린다고 그러십니까?

 

신 역시 고생하는 딸년의 일만 생각하면 요즘도 자다가 일어나 수시로 이를 가는 사람입니다.”

하였다. 비담이 다시,

“춘추가 예까지 찾아와 저런 말을 할 때는 그 속에 어찌 진심이 없겠소?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바가 없으니 답답하구려.”

하니 염종이 한참을 잦바듬히 앉았다가,

“알아볼 방도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하였다.

“용춘 일당이 덕만 공주를 옹립하고 있음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올시다.

 

그런데 춘추는 마치 도령께서 보위에 오르기를 바라는 듯이 말을 하니

 

제가 간계라고 단정했던 것입니다.

 

이제 만일 춘추에게 속셈을 물어 그가 도령께 태를 죽이라고 한다거나,

 

혹은 도령을 임금으로 옹립하겠다고 나온다면 이는 틀림없는 이간책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자신들의 진심을 털어놓고 달리 무슨 제의가 있다면

 

한번 믿어볼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염종의 말에 비담이 무릎을 쳤다.

“공의 말씀이 보살이오.”

둘은 그 길로 춘추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비담이 춘추에게 말하기를,

“그럼 아우님의 뜻은 정확하게 무언가?

 

날더러 형을 죽인 저 당황제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란 소리인가?”

하니 춘추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오상과 오륜을 아는 저로서 어찌 감히 형님께 그 같은 패륜을 권하오리까.

 

저는 다만 왕위의 중대함과 일국의 임금이 갖춰야 할 자질을 말씀드렸을 뿐이고,

 

또 태와 같은 이에게 보위가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이에 염종이 두 사람의 사이를 파고들며,

“대체 그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자 춘추가 염종과 비담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비담이 보기에 춘추가 아무래도 동석한 염종을 의식하는 듯하여,

“괜찮네. 여기 염종공은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할 사람이니 개의치 말고 말씀해보시게나.”

하니 춘추가 그제야 결연한 낯으로 이르기를,

“당숙에게 보위가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하고서,

“당숙의 연세 이미 칠순을 훨씬 넘겼기 때문에 당숙이 임금이 되면

 

조만간 태가 보위를 물려받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덕만 공주가 임금이 되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당숙과 태는 대역죄의 책임을 질 것이므로

 

왕통과는 자연히 멀어질 것이요,

 

그렇다면 덕만 공주 다음으로 보위를 이을 사람은 왕실을 통틀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국법에 임금은 성골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나라에 성골은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지금은 비담 형님을 임금으로 추대하고 싶어도 당숙과 태가 있으니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비담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염종은 춘추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대꾸가 없었다. 춘추가 다시,

“그러기 위해선 지금 비담 형님의 태도가 무척 중요합니다.

 

적어도 당숙과 태처럼 대역죄를 짓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요,

 

당연히 우리와 힘을 합쳐 내란을 평정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비담 형님의 앞날은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저는 진골이 된 이후 꼭 하나 바라는 바가 있습니다.

 

이세민과 같은 성군을 모시고 유사에 길이 남을 충신의 길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 계림에선 아직 그런 인물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비담 형님께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대의와 천명을 위해 과감히 사사로운 정리를 자르고,

 

흔들리는 사직을 위해 초연히 몸을 일으키는 장부의 뜨거운 열정과 기개를 보고 싶습니다.

 

만일 형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이 춘추, 비록 아둔하고 용렬하나

 

천수를 마치는 날까지 형님을 섬기며 신명을 바쳐 견마지로를 다할 것입니다.”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니 비담은 춘추의 말에 감격하여 황홀한 표정을 지었고,

 

염종도 드디어는 마음이 움직였는지 눈빛이 많이 유순해졌다.

 

염종이 춘추의 진의를 확인한답시고,

“만일 우리가 그대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찌하려는가?”

했더니 이미 분위기를 간파한 춘추가 허허롭게 웃으며,

“나라의 장래를 의논하러 온 사람이 어찌 결과에 연연하겠소?

 

마음이 통하기를 바라며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을 다 할 뿐이지요.”

하였다. 염종이 재차,

“하면 죽음도 불사하고 왔더란 말인가?”

하자 춘추가 매서운 눈빛으로 염종을 지그시 바라본 뒤에,

“나는 살고 죽는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이 아니외다.

 

일찍이 당주 이세민이 그 형을 살해할 결심을 할 적에도

 

나는 일이 그릇되면 죽는 줄을 알았지만 내 뜻을 굽혀본 일이 없소.

 

하물며 지금 이것은 내 나라 계림의 일이 아니오?

 

장부의 일생은 오직 하늘이 주 관할 따름이오.”

하고 의연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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