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폭풍세가

제31장 골치아픈 여복(女福)

오늘의 쉼터 2014. 10. 1. 00:48

제31골치아픈 여복(女福)

 

 

 

 

-- 군림철탑(君臨鐵塔).


지존천패부의 중심에 위치한 군림존궁(君臨尊宮) 내에 있는 십팔층의 거탑(巨塔)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십여 리에 걸쳐 펼쳐진 지역이야말로 천하분란의 근원지가 아닌가?
음울한 마풍이 흐르는 군림철탑!
딱! 딱!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천하통일의 야망을 키우는 십팔층의 한 내실 안에서는

이따금 정적을 깨뜨리는 바둑 돌 소리가 울려퍼졌다.
궁등(宮燈) 아래 이 인이 대좌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당금천하의 정세를 표현한 듯 어지러운 국면의 바둑판이 형성되어 있었다.
청수한 용모의 금포인과, 태산같이 육중한 기도를 풍기는 일장거신의 패도적 인물...


-- 군림지존!
-- 불패전황!


바로 그들이었다.
문득 불패전황은 흑포를 집어들며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방치하시면 아니되오, 총수."
딱!
그는 흑돌을 바둑판의 좌상위에 놓았다.

그의 안면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놓은 자리는 바로 삼삼(三三)의 위치였다.

그렇게 되자 견고하던 백의 진세가 단번에 파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군림지존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 이거... 낭패로군."
이때 불패전황이 다시 말했다.
"신비종! 그 어린아이의 의도는 이미 성공하고 있소이다."
그는 내친김에 계속 침중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천패마종과 은천종이 신비종을 진심으로 따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천년마후 휘하의 마후천성(魔后天城)이

신비밀성(神秘密城)으로 편입을 자청한 것도 예삿일은 아니오."
그 말에 군림지존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후훗...! 걱정 마시게, 전황."
그는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그러나 불패전황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반박했다.
"어찌 걱정 않을 수가 있소이까?

지존팔로련(至尊八路聯) 중 사개전단이 신비종이란 아이쪽으로 기울고 있소이다.

이대로라면 열흘 후... 군림대제전(君臨大祭典)에서... 어쩌면 대변란이 일 수도 있소이다."
군림지존은 어디까지나 태연했다.
"전황, 본영은 도전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딱!
말과 동시에 그는 백돌을 놓아 삼삼에 침입한 흑돌을 협공하기 시작했다.
"도전을 기다리시다니요?"
불패전황의 물음에 군림지존은 담담히 대답했다.
"실상 지존혈맹의 구성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방대하오.

그 산물이 바로 팔로의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지존팔로련이오."
츠...읏!
순간 군림지존의 눈에서 극강한 안광이 쏘아나왔다.
"후훗... 언제고 한 번은 지존팔로련을 정리할 생각이었소."
불패전황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럼 신비종을 이용하여 역심을 품은 자들을 색출... 제거하려 함이시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후훗... 그렇소."
군림지존은 기소와 함께 몸을 일으키더니 어둠이 깃든 창가로 걸어갔다.
창 밖.
어둠이 막 물들기 시작한 지존천패부의 전역이 한눈 아래 일목요원이 펼쳐져 있었다.
군림지존은 담담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신비종에 호감을 갖는 저들... 그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제거될 것이고...

후훗... 그 어려운 색철작업을 바로 신피종이란 아이가 대신 해주고있는 것이네."
"아...!"
불패전황은 탄성을 발했다.
"후훗... 이제 열흘 후 군림대제전을 기념할만한 날이 될 것이네!

본 지존이 천하패주가 되는 날이네."
이때 문득, 그의 눈빛이 음산한 기운을 발했다.
그는 북쪽을 주시했다.
"그때... 천년마후란 계집을 제물로 쓸 것이다.

지존군림천하의 성스런 제물로... 후후훗...!"
순간 그의 눈에서 신광이 솟구쳤다.

북쪽, 그가 바라보던 마황벽 쪽을 가르는 한 가닥 암영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사람...?'
그러나 다시 시선을 집중시켰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음, 잘못 본 것이겠지. 나의 안목을 속일 정도의 경공은 있을 수 없으니...'
그는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그의 눈에는 자부심과 한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누가 상상인들 하였으랴!

바로 그 한 순간 그가 가볍게 흘려 버린 암영!

바로 그로인해 지존혈맹의 천년고심이 한낱 수포로 돌아갈 줄이야...
무릇 인간의 마음이 하늘을 가를 수 없음에랴.

"누구냐?"
암흑 속을 울리는 음침한 경호성이 어둠을 흔들었다.
"멈춰랏! 지옥마뇌에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접근할 수 없음을 모르느냐?"
츠으읏...!
어둠 속, 십 팔 인의 유령 같은 인영이 위치를 잡으며 가공할 살기를 뿌렸다.


-- 지옥십팔대전륜황(地獄十八大轉輪皇)!


지존혈맹 내에서 가장 잔혹한 십팔인의 혈귀들이었다.
그들은 지옥마뇌를 사수하는 것이 지상과제였으며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그로인해 그들의 신분은 군림지존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억압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뚜벅! 뚜벅...!
어둠 속에서 묵직한 발자국소리가 다가왔다.
"노부다!"
이어 한 명의 전신에 묵강이 뒤덮인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전형적인 모습은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독지존!
바로 그였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 바로 군검풍이 변신한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지옥십팔대전륜황들은 흠칫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독오좌! 이 야심한 밤에 이곳엔 웬일이오?"
그들의 말투는 조금도 공경치 못했다.

아니, 오히려 안하무인이었다.
"그 자리에 멈추시오! 만독오좌 일지라도 지옥마뇌에 다가올 수 없소."
그들의 눈에는 형형한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오로지 군림지존밖에는 굴복할 줄 모르는 혈마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군검풍은 싸늘하게 안색을 굳혔다.
스스...!
이어 그는 귀영처럼 접근하며 차갑게 말했다.
"내 눈을 보라!"
츠... 으... 츳!
일순 그의 눈에서 가공할 안광이 폭사되는 것이 아닌가?
극사마력(極邪魔力)이 담긴 안광...


-- 제룡섭혼천종안(帝龍攝魂天宗眼)!


그것은 바로 사황천종경 내 최상승의 섭심대법이 아닌가?
"끅...!"
"엇! 위험하다. 쳐다보지 마라."
지옥십팔대전륜황은 위기를 느끼며 비명을 발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늦었...다."
지옥십팔전륜황은 경계했으나 이미 늦고 만 것이었다.

그들은 마법(魔法)에 홀린 듯이 신형을 휘청거리면서 눈빛을 흐트러뜨렸다.

마침내 군검풍의 제룡섭혼천종안에 제압되고 만 것이었다.
문득, 그들의 귓전에 마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누구냐?"
군검풍의 음성은 아주 사이했다.
지옥십팔대전륜황은 모두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진 채 입을 열었다.
"주... 주군(主君)이십니다...!"
"크크... 내명을 따르라!"
"하... 하명(下命)을...!"
그들은 모두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삽시에 흡사 넋 빠진 실혼인처럼 변했다.
"문을... 열라!"
군검풍의 입에서 사이한 음성이 떨어졌다.
"예...옛!"
그들은 일제히 대답하며 각각 목에 걸고 있던 열두 개의 금전(金錢)을 꺼냈다.
철컥! 철컥!
이어 그들은 그것을 각각 철벽에 꽂았다.
그그...긍!
그러자, 놀랍게도 굉음과 함께 절벽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지옥마뇌로 내려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주군... 모든 기관은... 해제되었습니다."
지옥십팔전륜황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군검풍은 다시 최면을 걸었다.
"내가 들어간 뒤 문을 닫아라!

그리고 아무도 들여 보내지 말라! 설사 군림지존일지라도!"
"조...존명..."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군림지존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으리라!
스...윽!
이윽고, 군검풍은 유령같이 지옥마뇌 속으로 사라졌다.
쿵!
입구의 접벽은 다시 원래대로 원상복귀되었다.
"크크크... 주군을 지키자!"
스스스...!
지옥십팔전륜황은 문을 닫고 주위에 진세를 강화시켰다.
한편, 지옥마뇌가 내려다 보이는 전각 위.
"흐으윽... 흐... 틀림없다... 바로 그 나쁜 자식... 군검풍이야!"
한 명의 미녀가 어둠속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복잡미묘하기 그지 없었다.
풍염한 몸매...

그러나 그녀의 전신은 사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녀의 순진무구한 눈빛이었다.

실로 극과 극의 느낌이 교차하는 미녀였다.


-- 사황귀비 자옥경.


바로 지옥사황의 손녀인 그녀였다.
과거 군검풍으로 인해 순결을 잃었으며 조부인 지옥사황마저 잃은 비운의 여인.
그녀는 천사종(天邪宗)의 유일한 전인이기도 하며,

지옥사황의 권리를 계승하여 천패십대천성의 서열 팔 위인 사황혈성(邪皇血城)의 성주였다.
자옥경의 눈에는 원한과 증오가 이글거렸다.
"죽지 않았었구나... 크흑... 낙영탑에서 살아나다니...!"
자옥경은 군검풍이 지나친 지옥마뇌를 바라보며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복부를 싸안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복부는 눈에 띄게 불러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임신을 했단 말인가?
운명의 장난이라 하기에는 너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북망귀왕부에서 또 한 번의 정사,

그것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자옥경은 원수라 할 수 있는 군검풍의 아이를 잉태한 것이었다.

참으로 기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흐흑..."
자옥경은 원한과 그리고 어떤 안도감어린 신음을 꼭 다문 입술 사이로 흘려냈다.
이어 그녀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아가야... 용서해다오. 엄마는 네 아빠를 용서할 수가 없단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가 어렸다.
"네 아빠를 내 손으로 죽이고... 너를 낳은 후... 네 엄마도 죽어버리겠다."
주륵...!
그녀의 입술은 악다문 이빨로 인해 터져 비릿한 선혈을 흘려냈다.
"용서해라. 나의 불쌍한 아기야..."
그녀는 한 자루 혈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어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지옥마뇌 쪽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한편.
"벽라공주...! 이럴 수가..."
군검풍은 지옥마뇌의 어느 한 석실에 다다른 순간 대경실색을 금치 못했다.
전면의 벽은 온통 시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피가 뿌려져 있는 그 섬뜩한 혈벽에 한 명의 전라여인이

사지가 묶인 채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인의 육감적인 몸매는 가히 절륜했다.

그러나 그녀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 있어 보기에 비참했다.
그녀는 누구인가?

천년마후 주벽라.

바로 그녀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여중제일의 천년고수이며, 대명황실의 고귀한 공주인 주벽라.

그녀는 군림지존의 불의의 기습에 당해 제압당했으며

이곳 지옥마뇌에 갇힌 채 예언할 수 없는 수모와 고문에 이지경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

군림지존은 그녀를 군림대제전의 제물로 쓰기 위해 그녀의 처녀성만은 짓밟지 않은 상태였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실로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군검풍은 놀라움이 가라앉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녠! 황상께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지존혈맹의 효웅들은 한 명도 살려두려 하지 않으리라."
군검풍은 탄식한 후 혈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그가 주벽라의 삼장 앞까지 접근한 순간 잔혹한 교갈이 그의 귓전을 울렸다.
"죽어랏! 군림지존의 개!"
콰...쾅!
콰자...작!
아! 묶여 있던 주벽라의 나신이 돌연 용수철처럼 퉁겨오르며

천만가닥의 마라탄천강(魔羅彈天 )이 폭사되어 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삽시에 군검풍을 휩쓸었다.

군검풍은 이제껏 맞선 그 어떤 공세보다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능히 천년공력이 담긴 항거불능한 무적의 강류였다.
"어...이...쿠!"
군검풍은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손발을 허위적거렸다.
콰...콰...쾅!
일순 어지러운 듯 보이는 그의 수족에서 폭풍천강이 폭사되었다.
콰...아아! 콰르르르... 콰콰...!
경천동지할 폭음이 울리며 석실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학...!"
쿠웅...!
순간 엄청난 반탄력에 주벽라의 나신은 그대로 퉁겨나가 혈벽에 한 자 깊이로 박혀 들었다.
군검풍도 휘청이며 절로 탄성을 발했다.
"흐읏... 정말 매운데? 과연 십절천마후가 자랑할만 하군!"
그는 뒤로 십여 보 물러섰다. 그런 그의 입가에서도 한 가닥 선혈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이미 불사지경에 이른 군검풍은 결국 천년마강을 가볍게 깨뜨리고야 만 것이었다.
"흐으윽! 너는 결코 만독지존이 아니다. 그는 이 같은 공력을 지니지 못했다."
두두둑...!
이때 주벽라는 혈벽을 바스러뜨리며 다시 둥실 떠올랐다.

그녀의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철벽이라도 녹일 듯한 안광이 폭사되었다.
군검풍은 미소를 흘렸다.
"후후훗! 천년마후, 역시 나 천년마제의 이름에 어울려도 순색이 없군."
스스스...!
그 말에 허공에 떠 있던 주벽라가 크게 놀라며 바닥으로 내려섰다.
"다... 당신... 제왕지존... 군대공자...?"
그녀의 음성이 격동으로 마구 떨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군검풍은 싱긋 미소지었다.

주벽라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이었다.
스...윽!
산발이 출렁이며 젖혀지자 절색의 주벽라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번져 있었다.
"고생 많았소, 공주저하."
군검풍은 늠름히 웃으며 팔을 벌렸다.
"으흐... 흑... 군공자님!"
그 순간 마침내 참고 있었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주벽라는 그의 품에 뒤어들고 말았다.
"공주..."
군검풍은 그녀의 나신을 감싸 안았다.

주벽라는 부끄러움조차 잊고 그의 품에 파묻힌 채 오열을 터뜨렸다.
"알고 있소, 그동안의 고초를..."
귓전에 들리는 군검풍의 따듯한 위로에

그녀는 그만 지찬 심신의 한 꺼번에 녹아드는 듯한 안도감을 느겼다.
주벽라...

그녀는 과연 보통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천년마후답게 스스로 금제를 풀고 반격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군림지존은 그녀를 지나치게 얕보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역시 여인은 여인이었다.
"무... 무서웠어요... 흐흑!"
그녀는 비맞은 참새처럼 넓은 가슴에 파묻힌 채 오들오들 떨었다.

그런 주벽라를 끌어안은채 군검풍은 내심 고소를 흘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후가 이꼴을 보면 뭐라 할까?'
그렇다.

십절천마후는 이미 그의 아내가 되었지 않은가?

헌데 그녀의 제자인 주벽라마저 군검풍을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주벽라가 이미 위험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군검풍은

또 한편으로 심각하고도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이 지독한 염복은 이제 사부와 제자를 함께 아내로 거느려야하는

얄궂은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고마워요. 상공!"
주벽라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미 그녀의 나신은 군검풍의 헐렁헐렁한 장포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리 몹시 천진하고 어리광스러워 보였다.
주벽라는 문득 표정을 기이하게 하며 말했다.
"상공께서 수고스럽게 소녀를 구하러 오셨으나... 소첩은... 여기에 남겠어요."
그 말에 군검풍은 펄쩍 뛰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공주 저하의 옥체를 어찌 이런 마지에 그대로둔단 말이오?"
그러나 주벽라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예요, 이곳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아요.

열흘 후 군림대제전이 열리기 까지는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을 테니까요."
"군림대제전...!"
군검풍이 의아해 하자 그녀는 눈썹을 찡긋하며 설명했다.
"그것은 군림지존이 무림제왕으로 인증받고자 벌이는 우상놀이예요. 흥!
그자는 그때 저를 제물로 쓴다지요?"
군검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완강한 어조로 말했다.
"흐음! 그러나 어찌 되었던 공주께서 이곳에 머무는 것만은 허락할 수가 없소이다."
그 말에 주벽라는 촉촉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곧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상공, 열흘 후부터는 상공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원하시는 모든 것을 따르겠어요.

그러나 지금 이곳을 떠나라는 명만은 따를 수가 없어요. 용서하세요."
주벽라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가 떠올랐다.
군검풍은 그녀의 의중이 확연한 것을 느꼈다.
'어쩔 수 없군. 벽라공주의 고집이 천하제일임을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니...'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이곳에 남아 무엇을 할 생각이오?"
그 말에 주벽라는 얼굴을 활짝 피며 말했다.
"이곳에는 약 천여 명이 군림지존에 의해 갇혀 있어요.

그들은 모두 군림지존의 야심에 위협을 줄 정도로 진짜 강자들이예요,

신첩은 그들을 구해 규합한 힘으로 군림지존의 뒤통수를 일거에 칠 작정이에요."
실로 대단한 배짱이요, 놀라운 책략이 아닐 수 없었다.
군검풍은 그녀의 굴강한 기질과 용기, 그리고 계획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으로 금치 못했다.
그는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공주만 믿소이다."
주벽라는 그가 자신을 신임해 주자 그만 감격하여 그의 목에 매달렸다.
"기뻐요 상공!"
"...!"
군검풍은 엉겁결에 그녀의 몸을 안았다.

한 겹의 장포르는 그녀의 뭉클한 여체의 감촉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의 성숙한 몸에서 나는 열기와 체향을 느꼈다.
이때 주벽라가 그의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이대로... 계셔 주세요..."
그녀는 그의 가슴에 안긴 채 두 눈을 꼬옥 감았다.

군검풍의 손은 그녀의 머리칼을 다정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그...긍!
육중한 철문이 기관의 작동음과 함께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남일녀가 걸어나왔다.
이곳은 지존혈맹의 금지 중에서도 금지인 지옥마뇌였다.

그러나 그들은 태연하기만 했다.

바로 군검풍과 주벽라였다.
"조심하세요, 상공...!"
밖에는 지옥십팔전륜황이 목석인 양 서 있었다.
주벽라는 흡사 아내가 부군을 전송하듯 말했다.
군검풍은 씨익 웃었다.
"공주야말로 조심하시오."
그는 몸을 돌렸다.
"상공...!"
"...!"
그는 다시 돌아섰다.

그 순간 주벽라는 던지듯 몸을 날려 그의 목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엇..."
순간, 뜨겁고 달작지근한 입술이 그의 입술을 덮었다.
"사랑해요...!"
불시의 기습을 당한 군검풍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새 주벽라는 그의 입술에 지울 수 없는 느낌을 남기고는

바람처럼 도로 지옥마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긍! 쿠쿵!
철벽은 언제 열렸느냐 싶게 다시 시치미를 뚝 떼고 닫혔다.
"허허..."
군검풍은 입술을 문지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 참... 마후에게 꽤나 꼬집히겠는 걸.

자기 제자한테까지 손을 댔다고! 사실은 그 제자가 먼저 달려든 건데....!"
군검풍은 머리를 긁적이며 지옥십팔전륜황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런데, 그가 막 가산을 지날 때였다.
"흐윽! 나쁜 놈!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또 바람을 피우다니!"
쐐...액!
문득 처절한 음성과 핏빛 검기가

독사의 혓바닥처럼 군검풍의 몸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헉...! 지옥혈검(地獄血劍)!"
파...앗!
대경실색한 군검풍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날려 날아든 그 일검을 피했다.
지옥혈검!
그것은 고금오대천병(古今五大天兵)에 드는 절정의 마검이 아닌가?

아무리 금강지체라 해도 지옥혈검 앞에서는 한갖 종잇당에 불과했다.
"크윽...!"
군검풍은 신음을 토했다.

한가닥 검기가 그의 목을 스치며 선혈을 뿜은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눈이 크게 확산되었다.
"옥경...!"
그렇다.

그를 기습한 자가 바로 누군가를 알아낸 것이다.
사황귀비 자옥경,
바로 그녀였다.
"흐...윽! 죽... 죽일거야!"
자옥경은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옥혈검은 안고 분노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옥경... 당신..."
문득 입을 열던 군검풍의 눈은 더욱 크게 떠지고 말았다.

그는 자옥경이 감싸고 있는 불룩한 복부를 보고야 만 것이었다.

그는 한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저... 설마... 그때 일로... 나의 아이를... 잉태...?"
그는 너무나 놀라 제대로 말을 잇지조차 못했다.
그러나 자옥경은 눈물을 뿌리며 외쳤다.
"닥쳐요! 이 아이는 군(君)가의 아이가 아니고 우리 자(紫)가의 아이예요!"
그러나 그녀의 얼굴의 낙루는 그칠 줄을 몰랐다.

약한 것이 여자이던가?
군검풍은 짧은 순간 모든 것을 알고 말았다.
"아아... 옥경, 미안하오!"
그는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자옥경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위...잉!
"오지 마! 베어 버릴 거야!"
자옥경은 지옥혈검을 흔들며 발악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외친다기 보다는 거의 오열에 가까웠다.
군검풍은 이를 악물었다.
"옥경...! 당신이 비록 나를 벤다해도 어쩔 수 없소. 당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나였으니..."
그는 거침없이 뚜벅뚜벅 앞으로 다가섰다.
"오지 마! 오지 마! 이 아이는... 내 아이일 뿐이야...!"
마침내, 자옥경은 부른 배를 감싸안은 채 비틀거렸다.
바로 그때, 군검풍은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쿵...!
자옥경의 등은 한 그루 나무등치에 부딪혔다.
"벨...테야! 더 다가서면...!"
그녀는 지옥혈검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군검풍은 거침없이 다가섰다.
"흑...!"
마침내 자옥경은 혈검을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옥경...!"
그 순간 군검풍은 무쇠 같은 파을 벌려 그녀의 몸을 으스어져라 끌어안았다.
"용서하오 옥경!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소!"
"흐윽... 상공!"
마침내 자옥경의 서릿발 같은 의지는 한 순간에 와르르! 허물어져 내리고 말았다.

그녀는 폭포수 같은 낙루를 흘리며 군검풍의 한없이 넓은 품으로 파고 들었다.
"옥경...!"
군검풍은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아이를 잉태한 탓인지 그녀의 입술은 과거의 윤택함을 잃어 까칠하기만 했다.

그러나 군검풍은 그녀의 입술을 정열적으로 취했다.
'아아...'
그의 저돌적인 돌격에 자옥경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마침내 그의 뜨거운 입술에 모든 것이 덧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흐으윽 할아버지, 용서하세요, 소녀는... 아이 아빠인 이 사람을... 벨 수가 없어요!'
서서히... 그녀의 전신에 힘이란 힘은 모두 빠져 달아남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녀의 귓전에 뜨겁고 힘찬 사나이의 속삭임이 들렸다.
"당신의 조부 지옥사황 대신 내가 지켜 주겠오 옥경! 당신과 나의 태어날 아이를...!"
"상... 공...!"
자옥경은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완강한 사나이의 팔힘에 의해 번쩍 들어올려졌다.
군검풍이 그녀를 안아 올린 것이었다.

군검풍은 자옥경을 안은 채 사황혈성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거침 없이 사황혈성의 깊은 곳에 자리한 자옥경의 침실로 찾아들어 갔다.

마치 자신이 그곳의 주인인양,
그리고 그들이 들어간 직후...

내궁의 깊은 내실 속에서 불이 꺼졌다.

그와 함께,
"아아! 흐윽!"
"옥경!"
열락에 겨워하는 자옥경의 달뜬 신음과 군검풍의 거친 숨결이 침실에서 흘러나왔다.
헌데,

"...!"
"...!"
지금까지 벌어졌던 두 남녀의 일막을 지켜보는 두 쌍의 눈빛이 있었다.
그들은 일남일녀였는데 전신이 한 가닥 신비한 운무에 감싸인 여인과

한자루 고검을 짊어진 헌앙한 기도의 중년인이 그들이었다.
두넘녀는 누구인가?

대체 누구기에 구중심처의 절대마지에 이토록 태연히 숨어들었단 말인가?


-- 은천종!
-- 신비종!


바로 그들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두 사람은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군검풍과 자옥경의

뜨거운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사황혈성의 침전을 바라 보았다.
이윽고 은천종, 즉 환무에 싸인 여인이 입을 열었다.
"천강(天剛), 당신의 아들은 참으로 대단한 바람둥이예요.

신첩이 알기로는 지금껏 저 아이가 건드린 여자 아이들은

신첩의 제자아이까지 포함해서 무려 열명이 넘는다는군요!

그에 비하면... 신첩 화밀여제(花蜜女帝)와

저 아이의 어머니 옥화(玉花)동생 밖에 모르는 당신은 참 쑥맥이예요."
은천종의 얼굴이 환무 속에서 수줍음으로 붉어졌다.

그녀의 부드러운 눈길은 신비종을 응시했다.

한없는 애정을 담은 눈빛이었다.
헌데,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화밀여제(花蜜女帝)-!
십패천중 화정맹(花精盟)의 맹주이고 야휘서시의 사부인 화밀여제가 바로 은천종이라니....!
삼 년 전 의문의 실종이 되었던 화밀마맥의 여종사 화밀여제!

실상 그녀는 혈맹십존의 일인으로서 지존회에 잠입했었고

그것은 순전히 그 옛날 그녀가 짝사랑 했었던 한 명의 대영웅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 영웅의 이름은...

폭풍대제(暴風大帝) 뇌천강이었다.

또한 바로 그가 신비종(神秘宗)인 것이었다.
신비종 즉, 뇌천강은 슬며시 은천종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나의 아들이라 하지 마시오, 우리의 아들이라고... 해야지."
순간, 은천종의 얼굴이 감동으로 흔들렸다.
"천강...!"
화밀여제 은천종의 옥용은 환무 속에서 도화빛으로 곱게 물들었다.

그녀도 방심을 지닌 여인었기에.


츠으으으...!
휘이우우...!
흑호의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음산한 기운은 여명 속에서도 자욱한 지옥마무를 뿌리고 있었다.

어쩌면 마의 세계란 아침도 원하지 않는 듯 했다.
"...!"
짙은 마무 속에 한 명의 문사가 표표히 옷깃을 날리며 우뚝 서 있다.
품에 한 좌의 고금을 가볍게 안은 인물.
천음존자 위지대영,
바로 그였다.

혈맹십존의 서열 제육좌인 효웅,
그는 나직이 침음을 발했다.
"으음... 제왕지존...! 정녕 그 아이는 만수곡의 사군려가 보낸 아이란 말인가?"
위지대영,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지편(紙片)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씌여져 있었다.


-- 위지대영! 흑호로 나와라. 만수곡의 부채를 갚겠다!


제(帝).--


그 지편은 위지대영이 아침에 침상머리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이목을 속이고 날아든 지편,

그는 그것으로 인해 위지대영은 번뇌하고 있었다.
"으음... 정녕 못할 짓을 했다.

지존회에 들어... 천하패주가 될 욕심으로 착한 군려를 울렸으니..."
그의 얼굴에는 패주답지 않게 회한과 자책감이 짙게 어리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문득, 한 가닥 싸늘하면서도 웅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소, 존자!"
츠으으...!
슥!
한 명의 흑포청년이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흡사 무영의 계단을 밟듯이 마무가 엉킨 허공을 밟으며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군검풍이었다.
그를 본 순간 천음존자 위지대영의 얼굴에는 커다란 충격이 떠올랐다.
"역시 또... 너 였구나...!"
그는 긴장했다.
띠디띵...! 우웅...!
이 순간, 한 가닥 무형음파의 벽이 일어나 그의 전신을 감쌌다.
천음호천강벽(天音護天 壁)!
바로 천음제왕경 상의 절세호신강기였다.
스...윽!
군검풍은 그의 앞에 신형을 세웠다.
이어 갑자기 그는 위지대영에게 서서히 일배(一拜)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짓인가?"
위지대영은 그 뜻밖 모습에 당황했다.
그러나 군검풍은 어디까지나 태연했다.
"어쨌든... 귀하는 나의 장인이시니 만수곡의 빚을 갚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예를 올리는 것이오."
그 순간 위지대영의 안색이 홱 변했다.
"장... 장인이라니...? 그럼... 군려가 낳은 아이가... 여아(女兒)...?"
그는 쓰러질 듯 신형을 휘청거렸다.
군검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중하게 말했다.
"그렇소. 그녀의 이름은 내내이고... 또한 나의 아내가 되기도 하오."
"으음...!"
위지대영은 거듭되는 충격으로 몸을 비틀거렸다.

그의 얼굴은 회한과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군검풍은 그런 위지대영을 향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자, 준비하시오! 탄음파천황으로 귀하를 심판하겠소!"
츠으으...!
우... 웅!
그는 폭풍제왕검을 들고 검신에 우수의 식지를 갖다대었다.
"탄음... 파천황...!"
위지대영은 눈썹을 파르르 떨며 한숨을 쉬었다.
일순, 그의 망막 가득히 유달리 눈이 크고 슬픈 표정에 차 있는 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군려-!
바로 그가 천형신금과 만수천형경을 얻기 위해 이용했던 비운의 여인이었다.


'진다... 이렇게 싸울 마음이 일지 않고서는... 그러나...'
위지대영은 이를 악물었다.
'아직... 죽을 수 없다...! 그녀에게 용서를 받기 전에는...!'
문득 그의 얼굴에는 비정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눈을 돌려 군검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위...! 이렇게 부름을 용서하게!"
스으으...!
순간, 그의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네... 군려에게 용서를 받기 전에는...

묘강에 다녀온후에 자네에게 목을 바치겠네...!"
휘류류...!
그의 신형이 일진 선풍과 함께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
군검풍은 멍하니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애당초 그를 죽일 마음은 없었던 것이었다.
위지대영이 사라지자 그는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
"휴...! 큰일을 했다. 내내와 만수곡의 장모님께는..."
슥...!
그는 폭풍제왕검을 거두었다.
"장모님은 결국... 그를 용서하게 되리라.

장인어른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분이니..."
군검풍은 혼자 중얼거리며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가 웃음을 채 지우기도 전이었다.

"후후훗...! 제왕지존!

그래... 진짜 용자가 아니라면... 천하제일의 우자이리라!

또다시 스스로 사지로 뛰어들다니 말이다!"
문득 한 가닥 스산한 음성이 그의 뒤에서 들려온 것이 아닌가?
"...!"
군검풍은 전신이 굳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서히... 그는 돌아섰다.

그런 그의 눈에 한 명의 금의인이 보였다.
흡사 절벽처럼 우뚝 선 채 그를 내려다 보고 있는 중년인...
"군림지존...!"
그렇다.

그는 바로 군림지존이었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군림지존은 입가에 득의 어린 미소를 지었다.
"네가 아직 살아 있었다니...!

천음제육좌의 안색이 아상해 따라와 보았는데...

의외로 대어(大魚)를 낚게 되었군."
"...!"
군림지존은 문득 두 눈에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한 번은 살려 보냈으나... 두 번씩 살려 보내지는 않겠다.

제왕지존!

본존의 영감은 네가 본존의 최후최대의 적수임을 말해 주고 있다!"
비로서 군럼풍은 실소를 흘렸다.
"훗! 영광이로구료, 군림지존!"
그러나 다음순간 그의 안색은 침중해지고 말았다.
스으으...스으으...!
스스슷...!
흑호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흑의인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략 일천 명 정도였다.

그러나 한결같이 가공할 기도를 흘리는 막강한 고수들이었다.
이때 군림지존이 담담히 말했다.
"달아날 길은 없다. 제왕지존, 저들 일천지존전단은 노부라해도 뚫을 수가 없다."
스으으읏...!
말과 함께, 그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네 앞에는 오직 죽음만이 있다! 본존에게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저들 일천지존전단의 살진에 걸려 죽든...!"
츠으으... 우웅...!
순간, 그의 전신에서 창창한 자하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자하탄천괴력강!"
군검풍은 그 광경을 보고 침중히 중얼거렸다.
스으읏!
이어 그의 우수가 올라갔다.

그러자, 우수에는 은은한 서기가 흘렀다.
"가랏! 자하타천굉벽강!"
쩌...어...엉!
군림지존의 손에서 천만균뇌정이 쏟아져 나갔다.
군검풍은 장소를 부르짖었다.
"우우...! 존극천신강뢰(尊極天神剛雷)!"
푸...하악!
엷은 서기가 일천장을 뒤덮 듯 흘렀다.
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륵...!
흑호가 온통 솟구치고 백 장 주위가 온통 뒤집혔다.
"큭...!"
"우웃...!"
그 가운데, 엄청난 강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가닥 신음이 터졌다.
콰콰콰콰...!
소용돌이 속에 두 사람은 퉁겨지듯 밀려나갔다.
"무서운 내공...!"
"크으...!"
두 사람은 일장의 대결에서 둘 다 성치 못했다.
군검풍은 전신 의복이 갈라졌으며 입가에 피가 맺혔다.
군림지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마도 그의 충격이 더욱 컸으리라.
그는 군검풍을 과거의 군검풍으로 알았기에 전력을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단 일장의 대결에서 그는 내장의 위치가 뒤바뀌는 중상을 입고야 만 것이었다.
"크으... 이렇게 강해졌다니...!"
그는 잔독한 시선으로 군검풍을 쏘아보았다.
이어 그는 냉혹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죽여 주마...! 크후후훗...! 일천지존전단! 추살해랏...!"
일순 그의 명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가공할 마기가 일어났다.
츠으으읏...! 콰우우...!
군림지존은 어느 덧 신형을 뒤로 빼고 있었다.
츠으으... 우르르... 츠츳...!
사방에서 엄청난 패도강력이 군검풍의 전긴을 가루로 만들 듯 좁혀오기 시작했다.
군검풍은 치를 떨었다.
"군림지존! 비겁하다...!

승부조차 끝나지 않았거늘 물러서다니...!"
그러나 군림지존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군검풍은 이빨을 악물었다.

그는 재빨리 염두를 굴렸다.
'저들과... 일대천으로 싸우면... 한정이 없다.

그렇다면 그 공력을...!'
문득, 그의 뇌리에 한 가지 구결이 떠올랐다.
'패멸살황독강류!'
그것은 천지간에 가장 잔독하며 패도적인 공력이 아닌가?
그것을 일시에 일천 장 범위의 모든 생명력을 말살시키는 가공할 공력이었다.

그리고 한 번 시전하면 탈진되어 버려 그 즉시 무기력해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오직 그것을 시전해야만 상대가 가능했다.
'모험을 걸자...! 군림지존 역시 공격 반경 내에 있으니...

어쩌면 이 한 번의 시전으로 모든 은원을 종결지을 수도 있다...!'
군검풍은 시선을 돌렸다.
삼백 장 밖, 군림지존이 그곳에 우뚝 선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
츠으... 츠츳...!
그 사이, 사방에서 점차 몰려오는 가공할 마력은 더욱더 가공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군검풍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결심은 빠를수록... 좋다!'
군검풍은 내심 결정을 내렸다.

그 순간 그는 씨익 미소지었다.

모든 것은 순간에 결정된다.
그는 진정한 승부사(勝負師)이며 사나이인 것이다.

서서히... 그는 양손을 합장시켰다.
'저놈이... 무슨 짓을...?'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군림지존은 의혹을 느끼며 검미를 모았다.

급박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