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폭풍세가

제27장 십지마연(十地魔聯)의 부활

오늘의 쉼터 2014. 10. 1. 00:30

제27장 십지마연(十地魔聯)의 부활


 

 

죽음의 무저단애 응수간.
구천마야와 폭풍대제는 군림지존에게 유인되어 이대십의 대난전을 치루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응수간에 몸을 던져 죽음을 위장함으로써

군림지존과 군림개세구천존의 마수에서 살아났다.

하지만 막상 구천마야와 폭풍대제는 막막하기만 했다.
지존혈맹이라는 그 거대한 세력이 그들의 앞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저히 지금 그들의 무공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세였다.
그 문제를 놓고 두 사람은 십주야를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두 사람은 한 가지 가능성에 도달했다.
즉, 구천마교과 폭풍세가, 그리고 십지마련의 절기를 융합하면

지존혈맹을 깰 최후최강의 절기를 창안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여 폭풍대제는 서슴없이 세가의 비전 대폭풍천경(大暴風天經)을 구천마야에게 내놓았다.
구천마야는 대폭풍천경을 지닌 채

십지마련 최강절예가 잠들어 있는 이곳 마울림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삼파절예(三派絶藝)의 연구에 몰두했다.
또한 폭풍대제는 또 다른 가능성을 찾기위해 구천마야와 헤어져 새외로 나갔다.

군검풍은 검미를 모으며 구천마야를 바라보았다.
"또 다른 가능성이란 무엇입니까?"
"신비은밀종(神秘隱密宗)이라고 아느냐?"
그 말에 군검풍은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아! 세외은사들의 이상향인... 은밀비천(隱密秘天)!"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르짖었다.


-- 은밀비천!


그것은 달리 신비은밀종(神秘隱密宗)이라 불리는 비밀결사였다.
본시, 강자는 은자(隱子)들 중에 많다.

세속사를 초월한 은자들은 세외 어딘가에 모여 이상향을 건설하며 살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은밀비천이었다.

과연, 그 중에는 얼마나 많은 고수와 잠력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구천마야는 은밀비천에 대해 설명하고 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뇌노제는 그 신비은밀종을 찾아 떠났고 그것을 찾는데 성공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지존혈맹(至尊血盟)에 접근해 있을 것이다."
그 말에 군검풍은 언뜻 생각했다.
'신비종....!'
혈맹십존중 신비종의 얼굴이 그 순간 언뜻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 때였다.
"아함! 졸려라!"
한쪽에 앉아있던 내내가 기지개를 켜며 졸린 눈을 비비었다.
어느 덧, 사위에는 어둠이 밀물처럼 깔리고 있었다.
"오빠! 내내는... 졸려!"
"금아도 졸리다! 졸리다!"
내내와 함께 금아도 졸리운 눈을 비비며 재잘거렸다.
군검풍은 미소지으며 내내를 안아들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구천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내일부터 열흘 간... 노부와 이곳에서 지낼 각오를 해야한다!"
그 말에 군검풍의 눈이 번쩍 빛났다.
"삼파절예를 합일시키셨군요."
구천마야는 신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야 완성되었지!

본래는 그것을 노부가 익혀 군림지존이란 놈을 격살시킬 작정이었으나...!"
그는 초탈한 미소를 지으며 군검풍을 바라보았다.
"늙은이가 어무 설치면 좋은 소리를 못듣는 법이다...

네게 그 존극천신탄강(尊極天神彈剛)을 전해줄 테니 그것으로 지존혈맹을 박살내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뵙겠습니다."
군검풍은 힘주어 대답한 후 구천마야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오냐!"
구천마야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구개를 끄덕였다.
츠으...!
이윽고 군검풍은 내내를 안은 채 바람같이 떠올라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구천마야는 감회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헛허... 실로 기나긴 투쟁이었다.

이제... 노부는 은퇴하여 손자녀석의 재롱을 즐길 수 있겠군."
그의 노안에는 담담한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츠으... 츠으...!
우르르...!
그의 머리 위로 잠형마강풍이 쉬지 않고 몰아치고 있었다.


츠으...!
군검풍은 군림사자행(君臨獅子行)의 경공으로 마울림을 빠져나왔다.

그의 품에는 내내와 극락조 금아가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쿨...!"
그들은 낮게 코까지 골며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하하! 피곤했던 게로군. 우리 귀염둥이가...!"
스으...!
군검풍은 하나의 늪직한 구릉으로 내려서며 내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 때였다.
"과연... 색마(色魔)군. 소녀취향의 변태마저 있는...!"
문득 한 줄기 싸늘한 냉갈이 군검풍의 귓전을 때렸다.
"...!"
군검풍은 의아한 시선을 들어 전면을 주시했다.
휘르르...!
그의 앞으로 사풍(沙風)에 몸을 가린 채 한 명의 여인이 다가서고 있었다.
츠으... 츠으...!
주위 일천 장을 가공할 빙하천강(氷河天剛)으로 뒤덮으며 다가서는 여인,
그녀의 나이는 이십 전후로 보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녀는 모발과 의복, 피부 등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새하얀 설녀(雪女)였다.
군검풍은 검미를 모으며 침중한 일성을 발했다.
"북해(北海)... 빙하마맥(氷河魔脈)의 제자인가?"


-- 빙하마맥!


그들은 십패천중 가장 신비한 문파였다.
전체 문하가 북해 원주민들인 설족의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선천적으로 가공할 음한지기를 지니데다가

마도최강의 극음지예 빙하절기를 연성하여 백 장 내의 모든 것을 얼음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군검풍의 앞에 선 여인은

가공하게도 일천 장을 빙하강기로 휘말아 넣는 것이 아닌가!
콰드득... 크으...!
주위의 군마림 수목들이 삽시에 얼음으로 부서졌다.
츠으... 츠으!
사풍마저 얼어붙은 듯 천정 내로 다가서지 못했다.
군검풍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의 빙하강기를 지닌 여인은... 천지간에 단 일 인뿐이다!'
그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이윽고 군검풍은 침중한 어조로 일갈했다.
"빙하여제(氷河女帝)! 십지마련의 수하된 자로서

어찌 나 천년마제(千年魔帝)에 맞서려 하는가!"
빙하여제.
그렇다!

그녀는 당금 빙하천궁(氷河天宮)의 궁주였다.
나이는 이십대로 보였지만 사실 얼마나 살았는지 도무지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여인이었다.
본시, 설족(雪族)의 수명은 일반인의 다섯 배에 달한다.

그런 까닭에, 빙하여제의 나이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빙하여제는 얼음같이 싸늘한 눈으로 군검풍을 쏘아보았다.
"흥! 다른 계집들은... 네 반반한 모습에 반해 맹에 복귀했으나나

빙하여제는 인정할 수 없다! 네가 천년마제(千年魔帝)라는 것을!"
그녀는 어림없다는 듯 싸늘한 교갈을 터뜨렸다.
콰...앙!
쩌...저정!
그와 동시에, 그녀의 일신에서 새하얀 뇌전이

천가닥 만가닥 일어 삼백육십 방위를 차단했다.


-- 빙하벽전뢰(氷河霹電雷).


그것은 빙하천궁 최강절예였다.
스치기만 해도 불사지체건 무엇이건 얼음으로 얼려 버리는

가공할 극빙기공(極氷奇功)이 바로 그것이었다.
군검풍은 내심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위험하다!'
다음 순간 그의 검미가 꿈틀했다.
"역천파멸강뢰(逆天波滅剛雷)...! 십방마라환폭수(十方魔羅幻瀑手)!"
콰...쾅!
군검풍은 지옥사황의 역천파멸강뢰로 빙하벽천뢰를 헤집고

십방마라환폭수로 백 장을 덮어 빙하여제를 휩쓸었다.
양인의 공세가 무서운 기세로 격돌을 일으켰다.
콰...쾅!
굉렬한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천 장이 강풍에 휘말렸다.

그것은 실로 경천동지할 어마어마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츠으...!
군검풍과 빙하여제는 격렬하게 서로 부딪혔다.
"흐윽!"
화드득!
이윽고, 모든 강풍이 사라지며 빙하여제의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군검풍의 십방마라환폭수가 그녀를 제압한 것이었다.
그런데, 군검풍은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 이런...!'
그는 낭패의 표정을 지었다.
하필 제압한 곳이 빙하여제의 유근혈이었던 것이다.

뭉클하는 느낌과 함께 서늘한 감촉이 손끝에 닿아왔다.
빙하여제의 왼쪽 젖무덤이 군검풍의 손아귀에 가득 쥐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
"...!"
너무 놀라 양인은 일순 멍청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군검풍은 엉겁결에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되자

미처 빙하여제의 가슴에서 손 조차 떼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이익!"
철...썩!
마침내, 빙하여제는 분노를 금치 못하며 모질게 군검풍의 뺨을 후려쳤다.
"...!"
군검풍은 그제서야 움찔했다.

그는 황급히 빙하여제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흐윽! 나 빙하여제를 욕보이다니...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
츠으...!
빙하여제는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 빙하전폭류(氷河電瀑流)!


천하최고의 쾌속경공이 그녀에게서 시전되고 있었다.
스...!
삽시에 빙하여제의 교구는 하얀 무지개로 변했다.

이어 눈 깜짝할 순간 북천으로 날아가 버렸다.
군검풍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고소를 지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는 낭패함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였다.
"휴!"
문득, 군검풍의 등 뒤에서 나직한 한숨이 들려왔다.
"...!"
군검풍은 흠칫하며 빙글 돌아섰다.
언제 나타났을까?
스으...!
십지마모 벽능파가 그곳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능파!"
"실수하셨어요, 상공! 그녀를 울리시다니...!"
벽능파는 나직이 탄식했다.

이어 그녀는 군검풍에게로 다가가 잠든 내내를 받아 안았다.
군검풍은 씁쓸한 표정으로 침음을 발했다.
"으음... 실수였소!"
벽능파는 아쉬운 표정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불사천강을 십 이성 완성시킬 좋은 기회였는데... 이제 어렵게 되었어요."
"무슨 소리요?"
그 말에 군검풍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빙하여제는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극음지기의 소유자예요.

그녀를... 처첩으로 거두셨다면 일시에 불사용수(不死龍髓)를 용해하여

불사천강을 완성하실 수 있었을 거예요."
"흠...!"
군검풍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는 그제서야 벽능파의 말뜻을 깨달으며 고소를 지었다.
천지간에 가장 음기가 강한 빙하여제와 교합을 하면

그의 몸속에 고여있는 불사용수가 일거에 내공으로 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능파가 의도적으로 빙하여제를 내게 접근시켰군.

내가 빙하여제의 심신을 장악하기를 바라고...!'
그는 일면 어이없으면서도 벽능파의 깊은 뜻에 감격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을 알지 못했던 군검풍은 빙하여제에게 씻을 수 없는 실수를 하고만 것이 아닌가?
벽능파는 먼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서 환궁하세요. 십패천 종사들이 도착하여 상공과의 면담을 요청하고있어요."
"십패천의 종사들이?"
벽능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걸어갔다.
"빠진 사람은 단 둘 뿐이예요.

빙하지존과 십절천마 두 사람이예요.

어쨌든 십지마련의 신화는 재현될 것이고...

상공께서는 이제 천년마제로 등극하시는 거예요."
"천년마제라...!"
군검풍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고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 새 십지성궁으로 다가서고있었다.


<천년마전(千年魔殿)>


이곳이야말로 십지성궁의 중추였다.

천년마전은 백옥석으로 쌓은 거대한 대전이었다.
상좌는 마제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 뒤로 천후보좌(天后寶座)라 불리는 맹주부인의 자리가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 군검풍은 마제천좌 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천후보좌에는 벽능파 벽능파가 그림같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군검풍은 좌중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존혈맹에 각기 격파당하여... 문호를 멸절당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마련의 깃발 아래 모여 지존혈맹에 대한 최후 반격을 시도해 볼 것이지...
그 선택의 자유는 귀공들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소."
그는 담담한 음성으로, 그러나 폭풍의 기도를 흘려 만 장을 제압하며 말했다.
"...!"
"...!"
그의 앞에는 팔 인이 팔좌에 좌정한 채 군검풍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제천좌 앞에는 열 개의 또 다른 보좌가 마련되어 있었다.


천패좌(天覇座).
철혈좌(鐵血座).
십절좌(十絶座).
천뇌좌(天腦座).

월영좌(月影座).

천금좌(天金座).

독황좌(毒皇座).

환영좌(幻影座).
열화좌(熱火座).
빙하좌(氷河座).


이렇게 모두 열 개의 옥좌(玉座)였다.
이른바 십마대좌(十魔大座)였다.
십마대좌 중 두 개를 제외한 팔마좌에는 지금 팔 인이 좌정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두 개의 옥좌는 빙하좌(氷河座)의 빙하여제와 십절좌(十絶座)의 십절천마후의 자리였다.
그 외에, 천패좌(天覇座)에는 천패마종 남궁무외를 대신 하여 백의관음(白衣觀音) 복영령이,
환영좌(幻影座)에는 화밀여제(花密女帝) 대신

그녀의 제자 군방혜화(群方慧花)라는 천하제일기(天下第一妓)가 단좌하고 있었다.

"...!"
"...!"
여덟 쌍의 눈은 일제히 군검풍을 주시하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문득 그 침묵을 깨며 천금황야(天金皇爺) 천금마맥의 종사 만금해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마제(魔帝)! 삼 년 전 노신을 걷어찰 때는 언제고....."
그 말에 군검풍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때 일은 유감이오, 천금종사!"
"그만둡시다. 마제의 제안은 제안이 아니고 명(命)이어야 하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이어 그는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 군검풍의 앞에 대례하는 것이 아닌가?
"천년마제를 뵈오!"
"우하하... 만성주(萬城主) 동작 한 번 빠르구료. 나 열화마제 강모보다 선수를 치다니..."
그 모습에 열화창의 주인인 열화대제 강뢰공(剛雷公)이 대소를 터뜨렸다.
이어 그 역시 몸을 일으켜 군검풍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련주를 뵙소이다!"
그에 이어, 군웅들은 잇달아 절을 올렸다.
"천패마종 사부께서는... 소녀 복영령과 패왕궁을 맹주께 드린다고 전하라하셨어요."
"화밀여제 사부께서... 일천군방군단과 함께 실종되신 상태이니...

소녀 군방혜화가 맹에 복귀함을 기뻐하실 거예요."
팔종사들은 이윽고 차례로 군검풍을 향해 절했다.
"고맙소!"
군검풍은 그들의 대례에 일일이 답례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다! 십지마련 부활의 신화는...!'
이때, 군검풍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벽능파는 감회의 눈물을 짓고 있었다.
"...!"
그리고, 벽능파를 닮은 또 한 쌍의 시선이 있었다.

그 시선도 기둥 뒤에서 군검풍을 주시하며 촉촉히 젓고 있었다.
오히려 군검풍보다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미청년.

그는 바로 금황선 만금혜였다.


-- 옥황둔(玉皇屯).


옥문관(玉門關) 밖에 위치한 백리에 달하는 구릉으로

주위가 온통 백암(白岩)으로 뒤덮인 특이한 구릉이었다.
황혼이 내리고 있었다. 붉은 황혼은 오늘 따라 유난히 짙은 핏빛을 띈 채타올랐다.
"...!"
휘르르...!
옥황둔 위에 한 명의 인물이 화석처럼 우뚝 서 있었다.
적포에 적염, 적붕(赤鵬)의 눈을 지닌 강력한 인상의 인물이었다.


-- 적붕천존(赤鵬天尊) 철목천!


바로 그였다.
변황최강자(邊荒最强者)이며 새황적붕맹주.
"...!"
적붕천존은 고독한 붕안(鵬眼)으로 서천의 노을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걸까?
대막의 사풍을 이고 스러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그 핏빛 노을로 장차 벌어질 중원과의 혈전시 흘릴 선혈을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휘르르르...!
사풍(沙風)이 거칠게 주위를 흔들며 지나갔다.

지금 적붕천존의 발 밑에는 무수한 인영들이 모여 있었다.
뚜우뚜우... 휘르르...!
철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옥황둔 일대 백여 리를 덮은 백만새황강병들이 집결해 있었다.

자신들의 강(强)함에 대해 자부하는가?
"...!"
그러나 적붕천존의 눈은 여전히 고독하고 담담했다.
"맹주! 어찌 옥문관 돌파의 명을 내리시지 않는 겁니까?
문득 한소리 웅혼한 음성이 적붕천존의 뒤에서 들렸다.
거대한 체구의 한 거인이 그림자같이 끌며 적붕천존의 뒤에 시립하고 있었다.
일 장 구척의 키에 흡사 나한신장 같은 모습의 인물이었다.

그는 한 자루 일 장 오척의 거부(巨斧)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 거령천존(巨靈天尊) 거패천(巨覇天).


이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그는 변황(邊荒), 아니 천하최고의 괴력가(怪力家)였다.

한손에 백만근의 철괴를 들어 백장을 내던지는,

도무지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는 거인이었다.
실제로 그는 적붕천존보다 오히려 강할지도 모른다는 변황제일패(邊荒第一覇)였다.
거령천존은 변황십팔패세 중 서북 거령천패(巨靈天覇)의 맹주이기도 했다.
적붕천존은 죽어가는 거령천존의 노모를 구한 적이 있었다.

그 은혜로 그는 적붕천존을 호법시위로 얻을 수 있었다.

거령천존이 적붕천존의 휘하에 들었기에 적붕천존은

백년 걸릴 변황일통을 이십 년 안에 완성할 수 있었다.
거령천존은 사위를 흔드는 웅혼한 음성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녠! 저 옥문관 밖에 포진한 사자왕(獅子王)이란 자와..

그 막하 낙일호왕대란 놈팽이들을 꺼려 옥문관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는 으르릉대는 듯한 어조로 말하며 흘깃 동편의 옥문관을 주시했다.
옥문관, 그곳에는 대명제국 최고의 무장이 와 있었다.

낙일호황위대라는 황실비전 최강의 군단 일만과 함께였다.
거령천존은 안면근육을 한차례 실룩거리며 말을 이었다.
"카앗! 사자왕이 강자인 줄은 압니다.

그러나... 맹주의 분부 한 마디만 있으면 당신으로 옥문관을 넘어 사자왕의 목을 따와 보이겠습니다."
웅웅!
그의 음성은 너무도 웅혼하고 당당하여 주위 십 리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적붕천존은 고개를 저으며 음을하게 중얼거렸다.
"너는... 모른다. 패천(覇天)! 노부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를...!"
그는 뒷짐을 진 채 음울한 눈으로 서편의 노을을 주시했다.
거령천존은 그 말에 답답하다는 듯 으르렁거림을 토했다.
"으음... 도대체 맹주님은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그러나, 적붕천존은 대답하지 않고 음을하게 미소지었다.
'우직한 놈... 나는... 자객(刺客)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침중한 어조로 내심 중얼거렸다.
자객을 기다리다니... 무슨 말인가?
그는 시선을 서천에 둔 채 내심 침중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알고 있다. 겉보기에는 새황적붕맹이 노부에게 복종하는 듯 보이나...

실은 새황적붕맹 수뇌부 팔할이 북천혈국(北天血國)의 냄새를 풍기고 있음을...!'
그랬던가?
새황적붕맹, 그 수뇌부 깊숙이에 저 지존혈맹의 분신 북천혈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적붕천존은 그것을 알기에 옥문관을 돌파하지 못하고있는 것이다.
적붕천존, 그는 알고 있었다.
'옥문관을 넘는 순간... 십중팔구 노부는 암살당하고...

새황적붕맹은 북천혈국의 마병(魔兵)이 되어 천하를 혈세할 것이다.'
그의 한일자 입술이 꽉 다물려졌다.
'노부가 원하는 것은 피가 아니고 정복이다!

중원은 나 적붕천존의 손에 정복당할 것이다.

그것은 병법(兵法)과... 대세에 의한 것이어야지 피에 의지하여서는 안 된다!'
츠...으...!
그의 두 눈에서는 일순 뇌정같이 무서운 안광이 흘렀다.
'기다린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북천혈국의 피의 추종자들은 초조하여 자객을 보낼 것이고, 그로써 콩과 팥이 가려지리라!'
그는 아주 강한 눈빛으로 십 이 장 밖을 주시했다.
십이 장 밖, 그곳에는 하나의 녹원(綠原)이 있었다.

그 녹원의 그늘에 이인이 서서 역시 적붕천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인.
그들은 금관을 쓴 금룡포의 색목인과 눈빛이 지극히 찬 왜소한 인물이었다.
왜소한 체구의 인물은 일신에 회포를 걸쳤으며 눈빛도 음울한 회색이었다.

또한, 비껴찬 장검의 손잡이까지도 회색을 띄고 있었다.
문득 금룡포의 색목인은 파란눈을 잔혹하게 빛내며 뒤의 회포인을 돌아보았다.
"후훗! 저 자다, 월영(月影)! 그대가 죽여야할 늙은 붕조(鵬鳥)가...!"


-- 색목천왕(色目天王).


그 자는 바로 변황십팔패세의 서열이위로 서역 색목천군단(色目天軍團)의 단주였다.
서역 십만리일대의 패웅이며 새황적붕맹의 부맹주이기도 했다.
"흣! 저 자만 쓰러지면...

새황적붕맹 백만강병은 충실한 지존혈맹의 북천전단(北天戰團)이 되리라."
색목천왕의 눈빛이 섬뜩해질만큼 더욱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나, 회포인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다만 그는 음울하게 죽은 잿빛 눈으로 동천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쥔 장검의 손잡이에 어뜻 한 줄기 글이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 월영제일살(月影第一殺).


섬뜩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글이었다.
월영(月影)...달그림자에서 온 살수란 말인가?


이 때였다.
"녠! 이거 재미있는데...!"
문득 한줄기 음울한 웃음이 녹원의 외곽에서 들려왔다.
스스스...!
한 그루 고목 밑에 은신하고 있는 일 인이 있었다.
극히 자연스런 은신술을 쓰는 그 인물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음산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색목천왕(色目天王)과 회포인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어 그는 예의 그 음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녠...! 적붕천존의 목을 베어나 무영살제(無影殺帝) 휘하 무영인자단(無影人者團)이

지존의 가장 충실한 막하임을 보이려고 왔는데... 더 좋은 선물을 선물을 얻었다."
중얼거림과 동시에, 인영은 유령인 듯 대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 무영살제(無影殺帝)!


그 인물은 바로 제왕맹(帝王盟) 막하 구류(九流) 중 무영인자단의 단주였다.
무영살제는 적붕천존을 암살하여 군검풍의 적수를 하나 줄이고

옥쇄할 작정으로 새황적붕맹으로 잠입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하게도 그는 새황적붕맹 내에 치열한 암투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무영살제는 음울한 눈을 빛내며 득의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녠! 저 오랑캐들의 내부 분열을 이용하면...

손하나 안 쓰고 새황적붕맹을 와해시킬 수 있다.

천뇌마맥(天腦魔脈)의 십전마혜 을유향 종사께 알려드리면 뛸 듯이 기뻐하실 것이다."
츠으...!
이어, 그의 모습은 유령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밤, 사막의 밤이었다.
사구(砂丘)위로 달빛이 고요하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조그만 녹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녹원은 별빛 아래 환상인 듯 아름다워보였다.
"와! 사막의 밤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문득, 한 소리 해맑은 소녀의 교성이 녹원에 울려퍼졌다.
녹원의 중앙에는 검은 털을 지닌 한 피의 거대한 낙태가 작은 언덕인 듯 웅크리고 있었다.
묵운신타(墨雲神駝)-!
이놈은 천 년에 한 마리 난다는 신타였다.
몸의 크기는 보통 낙타의 세 배에 달했으며,

무쇠 같은 다리와 코끼리가 무색할 용맹을 지녀 거친 사막을 하루에 삼천 리나 달린다.

그 묵운신타의 옆에 일남일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군검풍과 내내였다.
내내는 여우털의 커다란 모포에 푹 쌓인 채

눈빛을 초롱하게 빛내며 달빛 조요한 사막을 주시했다.
"하하... 아름다움이란 어느 곳에라도 있는 법이란다."
군검풍은 웃으며 내내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문득, 내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에게도... 사막의 밤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내내는... 착하구나."
군검풍은 어린 아내 내내를 꼬옥 안아 다독거렸다.
츠으으으...!
유성이 지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초롱초롱하던 내내의 눈에도 졸음이 한꺼풀 내려앉았다.
"좋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 아함!"
그녀는 길게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이어 스르르 눈을 내려감더니 이내 잠이 들고 만다.
"쿨...!"
곧 그녀는 나직이 코를 골며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
군검풍은 미소지으며 내내를 내려다 보았다.
"귀여운 내내... 내내를 위해서라도 최후승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시선을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숭리하기 위해서는... 편법이라도 쓸 수 있다.

그 길이 나를 위하고... 내내와 착한 나의 아내들을 위하고 천하를 위하는 길이라면...!"
츠으...!
야천에는 별빛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군검풍은 북서쪽을 주시했다.
'무영살제... 지라천효의 보고대로라면... 그녀는 이곳으로 지나간다.'
그녀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군검풍의 두 눈이 강렬한 신광을 발했다.
'천만혈을 흘리지 않아도 되게하는 천하의 가장 귀중한 열쇠일 수도 있다. 그녀는...!'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였다.
구워어...!
한 소리 섬뜩한 괴성이 북서의 아주 먼곳에서 일어 구천까지 뒤흔들었다.
"왔는가?"
그 순간, 군검풍의 눈가에 한 줄기 미소가 스쳤다.
이 때다.
쿵쿵...!
지축이 뒤흔들리며 북서 저멀리 구릉에서 거대한 물체가 달빛 속으로 이동해 왔다.
츠으...!
쿵쿵쿵!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는 점점 급박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괴물체는 급격하게 다가섰다.
우우...! 번...쩍!
이때, 묵운신타의 감겼던 눈이 번쩍 떠졌다.

이어 그놈은 나직한 웅얼거림과 함께 다가서는 물체를 주시했다.
쿵쿵...!
그 괴물체는 삽시에 백 장까지 다가왔다.
이윽고, 달빛 속에 그 물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그 괴물체는 한마리 용(龍)이었다.
전신이 핏빛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용.

그놈은 몸의 크기가 이십여 장에달해 마치 하나의 작은 동산만 했다.
또한 그놈의 이마에는 핏빛의 뿔이 세 개 돌출해 있었다.

이글이글 타는듯한 뇌전(雷電)의 눈을 지닌 괴룡이었다.
군검풍은 그 괴룡을 본 순간 소리없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육지혈룡(陸地血龍)! 적붕천존(赤鵬天尊)의 딸다운 애완동물이다!'


-- 육지혈룡!


그놈은 상고 육지를 지배했던 공룡(恐龍)이었다.
이 때였다.
"이봐요! 당신은 누군데 새황적붕맹 본영의 근처에서 얼쩡거리죠?"
문득 육지혈룡의 등에서 야성미가 깃든 한 소리 옥음이 터졌다.
육지혈룡의 등에는 한 명의 여인이 우뚝 서 있었다.

육척이나 되는 훤칠한 키의 여전사였다.

그녀는 늘씬한 몸매를 지녔으며 용모 또한 아주 빼어났다.
또한 신비로운 금발은 허벅지까지 내려와 야풍에 흩날리고 있었다.
흑진주같이 영롱한 눈, 오똑한 콧날, 교만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나

아주 아름다운 입술의 미인이었다.
이때 군검풍이 아무런 대꾸도 없자 여인은 아미를 상큼 치켜떴다.
"이봐요! 샌님! 나... 적붕전후(赤鵬戰后) 철운지(鐵雲芝)의 말이 들리지 않나요?"
그녀는 전포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교갈을 내질렀다.


-- 적붕전후 철운지.


적붕천존 철목천의 천금.

적붕천존은 만년에 철운지를 얻어 애지중지하게 그녀를 키웠다.
적붕천존의 중원출병시 철운지는 연공관에 들어 폐관 중이었다.

그러다가, 폐관을 마치고 급히 아버지 적붕천존을 쫓아온 것이었다.

이때 군검풍은 검미를 찌푸리며 못마땅한 듯 철운지를 바라보았다.
"이봐...! 조용히 해 주지 않겠나? 내내가 깰까 걱정스럽다!"
순간, 철운지의 아미가 치켜 올라갔다.
"무... 무어야?"
그녀의 옥용은 수치로 금방 새빨갛게 변했다.
평소 떠받들려만보고 만인의 위에 군림하던 철운지였다.

그녀에게 있어 군검풍의 오연한 태도와 말은 고고한 자존심을 무참하게 긁어놓는 것이었다.
철운지는 노기를 거두지 못하며 아미를 파르르 떨었다.
"가... 감히... 바득!"
휘르르...!
그 순간, 그녀는 육지혈룡의 등을 박차며 번개같이 군검풍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그녀는 당장 군검풍을 때려죽일 기세였다.
그러나...철운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이 누군지.
그녀의 아버지이며 변황의 신이라 불리는 적붕천존마저도

어쩌지 못하는 인물이란 것을 어찌 그녀가 짐작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자기의 앞에 있는 인물이 천년마제라는 것을 알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지을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