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거구(巨軀)의 미녀
적포를 걸친 일 장 거구의 흑염노인은 뇌전같이 강렬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흡사 관운장과도 같은 용모를 지닌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났다.
그리고, 땅에서는 백지장같이 새하얀 안색의 청포문사가 갑자기 불쑥 솟아나듯 나타났다.
그는 유현한 눈빛을 지녔으며 왜소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이 인은 나타나는 즉시 외쳤다.
"천강패부(天剛覇府) 삼십육천강의 수좌 적발천황(赤髮天皇)이오!"
"지라유밀부(地羅幽密府)의 지라천효(地羅天梟)!
칠십이지라신제(七十二地羅神帝)의 진세를 발동하겠소!"
쩌...정!
콰...앙!
한 순간, 천지인 삼재방위를 점한 적발천황, 지라천효, 협전인황에게서
형언불가의 강무가 일어 거청한 벽을 만들었다.
-- 삼재합벽대천강벽(三才合壁大天 壁)!
삼재를 점하고 천강지기(天 之氣)와 지라유유기(地羅幽幽氣),
혈전마강(血電魔剛)이 서로 뒤엉켜 이루어지는 대금제.
그것은 삼 인으로 무려 일천 인을 가둘 수 있는 파천거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꽈르릉...쩌정!
삼재합벽대천강벽은 일시에 백 장을 뒤덮어 군검풍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시켜 버렸다.
삽재합벽대천강벽에서 이는 파천강풍은 거치는 모든 것을 부수며 점점 막강해졌다.
우르르...! 쿠쿵!
삼재합벽강벽의 안쪽에서는 연이어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군검풍이 불사강력을 일으켜 삼대합벽대천강벽에 대항하고 있는듯 했다.
'사십구 초... 오십 초...!'
관전하던 만능야제의 이마 위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손을 비비고 있었다.
'삼재합벽대천강벽은 너무 강하다.
아아... 우리 구류종사 개개인보다 배는 강한 삼밀존의 합벽대천강벽을 깬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군검풍이 백초 이내에 삼재합벽대천강벽을
깨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때였다.
"야제(夜帝)할아버지! 지금 오빠는 무얼하고 있는 거죠?"
화원쪽에서 놀고 있던 내내가 잔뜩 의아로운 표정을 지느며 극락조를 안고 다가왔다.
그녀는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별것 아닙니다. 아는 사람들과 비무중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만능야제는 얼른 안색을 고치며 내내를 안심시켰다.
"그래요? 괜히 걱정했네."
내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천음절기(天音絶技)라면 저까짓 강벽쯤은 일초면 부술 수 있을 텐데
왜 좌충우돌 하는지 궁금했지 뭐예요."
"처... 천음절기?"
만능야제는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내는 생긋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할아버지도 곧 보게 될 거예요.
저 강벽은 제법 튼튼하니까 천음최후의 절기로만 깰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 난 후 다시 돌아섰다.
"호호...! 내내는 뒷산으로 들어갈래요!"
그녀는 곧 짜랑짜랑한 교소를 터뜨리며 극락조를 안고 뒷산을 향해 달려갔다.
만능야제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부끄럽다. 지존이 신인이심을 알면서 의심했다니...!"
그는 비로소 자신의 조바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노파심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내 그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핫하! 이제 이것 밖에 없군, 탄음파천황!"
삼재합벽대천강벽 안에서 갑자기 군검풍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뒤 이어 요란한 금속성이 진세를 뚫고 십 리 까지 뻗어나왔다.
따당! 피...잉!
두 마디의 참담한 신음이 터져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녠!"
"대단한 음파신공이다!"
콰쾅...! 펑!
삼재합벽대천강벽이 산산이 부서지며 삼밀존은 각기 세 방향으로 거칠게퉁겨져 나갔다.
그들의 형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탄음파천황의 음파에 내부가 진동되어 온 몸이 피투성이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피를 토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기쁨과 감격에 젖어 있었다.
"지존을 알현합니다."
"불경을 용서하십시오, 지존!"
그들은 일제히 군검풍의 앞에 오체복지했다.
군검풍은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그대들이 사정을 봐주었음을 알고 있소.
그대들 같은 강자들을 측근으로 두게 되어 기쁘오!"
그는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삼밀존은 개개인이 지금의 군검풍보다 그렇게 약하지 않은 실력을 지닌 강자들이었다.
그들은 군검풍의 사정을 감안하여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들이 불의에 탄음파천황의 필살지예에 암습당하지 않았다면
군검풍은 결코 삼재합벽대천강벽에서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군검풍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삼밀존을 바라보며 담담한 신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 첫 임무를 주겠소. 따라들 오시오!"
말과 함께 그는 다시 은황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존명!"
"...!"
삼밀존은 극히 공손한 태도로 군검풍을 따라 은황각으로 들어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만능야제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지존은 대단한 분이시다. 저들 삼밀존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굴복케하다니...!'
그는 격동과 감탄의 시선으로 군검풍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인황밀부(人皇密府).
그들의 총인원은 일 천이었다.
하지만, 그 일천명이야말로 정예중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은 개개인이 구류종사들에 비견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절정강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집단전투의 달인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교란과 습격, 매복등이었다.
십패천의 일 이개 파와도 정면승부가 가능한 천지지간의 최강군단이라할 수 있다.
-- 지라유밀부(地羅幽密府).
총인원은 불과 칠십 이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칠십이지라신제(七十二地羅神帝)들은 개개인이 만박통지의 문사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함정, 병법시행, 계교, 지략으로 제왕맹주의 적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칠십이지라신제의 표적이 된 자는 마지막 피 한방을, 살 한 점까지 모두 말라 종내에는 죽게된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효웅집단이라 할 수 있었다.
-- 천강패부(天剛覇府).
그들은 최강의 전사대로 삼십 육 인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제왕삼십육천강(帝王三十六天剛)이 그들의 총인원인 셈이었다.
그들은 개개인이 구류종사에 맞설만한 강자들로서,
제왕맹주의 일천 장내에 상주하면서 제왕맹주의 신변을 호위하는 것이 주임무이다.
그들이야말로 일 인으로 일파를 파멸시킬 수 있는 패도강자들의 집단이었다.
이렇게 삼대밀부는 최강의 조력자들로서 더 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군검풍은 그들을 모두 얻었다.
대파산의 동단.
등운벽(騰雲壁)이라 불리는 깎아지른 듯한 천장단애가 자리하고 있었다.
깊은 밤, 시각은 이 경으로 기울고 있었다.
눈썹같은 편월의 달빛이 흐릿하게 등운벽을 내리 비추고 있었다.
스스스... 휙!
문득, 등운벽 위로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옷깃을 펄럭이며 나타난 두 인영은 군검풍과 지라천효였다.
"...!"
군검풍은 유현하게 눈을 빛내며 등운벽 아래를 주시했다.
등운벽의 십 리 저 편에는 진운이 구름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츠으... 츠으...!
그 살기 속에 한 채의 석성(石城)의 그림자가 휘미하게 자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십천제왕성!
바로 제왕맹의 총단 십천제왕성이었다.
지라천효는 어둠 저 편으로 바라보이는 제왕성을 주시하며 입을열었다.
"역시 만능야제의 보고대로 성까지 접근한다면 구십 구 번의 매복함정을 지나야 하고,
일천 명 이상의 강자들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그는 음울한 시선을 빛내며 염려스러운 기색을 지었다.
"이런 성태로 잠입을 시도하신다면 저들을 경동시키지 않을 수 없고,
또 일단 경동시키면 십천제왕성을 장악한 자들과 정면 충돌해야 합니다."
담담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군검풍은 문득 싱긋 웃었다.
"알고 있소, 지밀존(地密尊)! 그러나 흠은 어디에도 있는 법이오."
"...!"
이 때였다.
구우...!
돌연, 허공에서 한 마리 신응(神鷹)이 쏜살같이 군검풍의어깨로 내려와 앉았다.
푸른 깃에 붉은 부리를 지닌 신응이었다.
그놈은 만능야제가 전서용으로 길들인 영뮬이었다.
천산(天山) 특산으로 하루에 이천 리를 달리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군검풍은 두 눈에 이채를 발하며 중얼거렀다.
"거녀성주(巨女城主) 철담온후(鐵膽穩后)가 틈을 만들어주는군."
이어, 그는 신응의 다리에 묶인 비단천을 끌러 지라천효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지라천효는 비단천을 공손히 받아들어 펼쳐보았다.
그곳에는 몹시 급히 휘갈겨 쓴 글이 몇 줄 적혀 있었다.
-- 거녀성주 철담온후 철라영(鐵羅孀), 급속 성(城)으로 진행, 성중 잠입 시도하려는 듯...
저지해야 할지 그냥 통과시킬 것인지 하명 바람.
야(夜).--
그 내용을 읽어본 지라천효는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담온후 철라영이 무슨 일로 성에 잠입하려고...!"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군검풍을 바라보았다.
군검풍은 담담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
"철담온후는 평소 당대의 여제천모이신 나후란과 개인적인 친교가 두텁소.
아마도 자신이 받은 여제신전에 이상을 발견했겠지."
"...!"
그의 설명에 비로소 지라천효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철담온후 철라영-!
그녀는 개세제왕구천류 중 거녀성(巨女城)의 당대성주였다.
거녀성의 여인들은 모두 체격이 보통 여인들 보다는 훨씬 큰 거녀들이었다.
철담온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구 척의 키에 사내를 무색케 하는 철심호걸이었다.
군검풍은 지라천효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인이 십천제왕성으로 잠입 한 후 엄호와 막후 안배는 지밀존(地密尊)에게 맡기시오!"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지라천효는 염려말라는 듯 공손히 허리를 굽혀보였다.
"자, 그럼 나는 거녀성주가 만들어주는 틈을 비집고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소!"
다음 순간, 그는 싱긋 웃으며 허공을 밟고 동편으로 사라졌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라천효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실소를 발했다.
"이거야 원, 기가막히는군.
지존의 군자가 되어야할 지라천효가 오히려 지존께 병법을 가르침 받아야 할 형편이니...!"
이어 그는 서늘한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 나도 움직여야겠군.
감히 제왕맹을 건드린 애송이들에게 제왕맹을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이 보여주겠다!"
다음 순간, 그의 모습도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십천제왕성의 입구로 통하는 은밀한 산곡(山谷).
콰콰쾅...!
우르르...!
요란한 폭음과 함께 엄청난 굉음이 온통 산곡을 무너뜨릴 듯 연속적으로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바탕 격렬한 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벌레 같은 사내놈들...! 정체를 밝혀라!"
꽈르릉...!
사위를 뒤흔드는 교갈과 함께 한 명의 여인이
삼십육 인의 몽면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여인이었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게도 그녀는 구 척 장신의 거녀(巨女)가 아닌가?
하지만 체격이 크다고 해서 그녀가 여인으로서의 매력이 전혀 없다거나,
사내처럼 거칠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거녀이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균형잡힌 늘씬한 몸매와
뚜렷한 윤곽을 지닌 용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일신에 교룡(蛟龍)의 가죽으로 만든 전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하나의 황금방패와 황금장극(黃金長戟)을 무기로 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무공은 실로 눈부셨다.
콰...쾅!
콰르릉...!
거녀의 황금장극이 허공을 번뜩일 때마다
태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를 가공할 강풍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와 상대하고 있는 삼십 육인의 인물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다.
" 녠녠! 순순히 항복하면 네년에게 세상 사는 맛을 보여주겠다!"
그들은 잔혹하고 음탕한 괴소를 흘리며 철벽 같은 진세로 점점 거녀를 압박해 들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극패의 기질을 지닌 고수자들인 것이다.
일대 삼십육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권 밖.
한 명의 노인이 사악한 눈빛을 번뜩이며 우뚝 서 있었다.
"여제천모, 그 계집이 또 귀찮은 수작을 한 모양이군.
거녀성주가 예정보다 앞당겨 성으로 잠입을 시도하다니...!"
그는 일신에 마의(麻衣)를 걸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양 손은 섬뜩한 핏빛을 띠고 있었다.
또한, 그의 전신에서는 사이한 마기가 구름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쨌든, 사로잡아야 한다. 마종(魔宗)의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는 음울한 눈빛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때였다.
"후훗... 놀랐는 걸? 구천마야와도 맞섰던 용자 마의혈황(麻衣血皇)이
남의 주구가 되어 있다니 말이오!"
문득 한 소리 신비한 웃음소리가 마의노인의 귓전을 울렸다.
'...!'
마의노인, 즉 마의혈황은 흠칫하며 급히 고개를 돌렸다.
"두...!"
그는 고개를 돌리며 순간적으로 외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귓전에 다시 빈정거림이 가득한 예의 음성이 들려왔다.
"후훗! 본인을 만나볼 용기가 있다면 서벽(西壁)으로 올라오시지.
물론 그럴 용기도 없겠지만...!"
"크...!"
마의혈황은 그 말에 오공에서 연기가 날 듯 대노했다.
그의 자존심은 형편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 마의혈황(麻衣血皇) 사무극(査武剋).
그는 마도백강(魔道百强)에 드는 강자(强者)로 나이가 이미 백 오십세를 넘어섰다.
그는 사십여 년 전,
구천마야에게 도전하여 참담하게 패배한 후 실종되었었다.
그런데, 그런 마의혈황이 대파산 근역에 나타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비인의 빈정거림에 자존심이 형편없이 상한 마의혈황은 격노함을 참지못했다.
그는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며 이를 갈았다.
"바득! 어떤 놈인지 죽여주겠다! 기다려라!"
휙!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절곡의 서벽으로 날아올랐다.
헌데 그가 날아오르는 순간, 다시 예의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훗! 어서 오시오!"
그와 함께 번뜩! 검은 수영(手影)이 환상처럼 일어나 그의 전면을 덮어왔다.
콰...쾅!
마의혈황은 다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검은 수영이 용의 비늘같이 확 퍼진다고 느낀 순간,
그의 호신강기는 무기력하게 찢어지고 말았다.
파파팟...!
그는 연마혈에 막강한 일격을 강타당한 것이었다.
"엇!"
마의혈황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분노와 불신의 눈으로 자신의 전면에 표표히 내려선 정발의 미청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하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쿠웅...!
그는 둔탁한 음향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후훗! 운이 좋았다.
이 자가 흥분하여 방심하지 않았으면 백초를 싸워야 제압했을 것이다!"
슥!
윤기 도는 긴 머리카락을 지닌 장발청년.
그는 나직한 기소를 발하며 마의혈황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바로 군검풍이었다.
"이자는 패왕궁의 천응패천좌 서열 십이위라고 했다.
역시... 내게서 맹(盟)을 뺏으려는 분은 남궁형님이었다."
군검풍은 쓰러진 마의혈황을 내려다보며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의 시야로 자금성의 천단(天壇)에서 결의형제를 맺은 천패마종 남궁무외의 모습이 떠올랐다.
콰콰쾅!
츠츠츳...!
한편, 장내의 싸움은 호각지세로 치닫고 있었다.
마의혈황의 친위대 마패삼십육절(魔覇三十六絶)의 합공은 실로 막강했다.
그러나 철담온후 철라영 역시 절정고수였다.
승부는 한 순간에 나지 않았다.
이 때였다.
"바보 같은 놈들!"
찌렁찌렁한 폭갈이 터짐과 함께, 허공에서 하나의 인영이 벼락같이 떨어져 내렸다.
쐐___액!
"계집 하나 어쩌지 못하다니!"
그 인영은 사나운 폭갈을 내지르며 마패삼십육절의 진세로 날아들더니
그대로 철라영을 덮어갔다.
하지만 철라영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오랏, 마의혈황!"
그녀는 호기롭게 교갈을 내질렀다.
스슥...!
마의혈황은 황금장죽을 휘두르며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었다.
마의혈황은 방금 전 군검풍에 의해 제거되었는데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콰...쾅!
그의 섬뜩한 혈수(血手)는 거침없이 철라영의 호신지력을 부수며 쇄도해 들어왔다.
철라영은 전신이 굳어졌다.
'이 정도 강자라니...'
그녀는 위기를 직감하며 안색이 대변했다.
이어, 그녀는 다급히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늦고 말았다.
츠츠츠츳...!
마의혈황이 휘두른 섬뜩한 핏빛 혈수는 일순 천지를 뒤덮는 듯 했다.
"악!"
콰...쾅!
철라영은 가슴에 둔중한 충격을 느끼며 허공으로 퉁겨졌다.
"쯔쯧...!"
휘익... 팟!
마의혈황은 튕겨지는 철라영을 재빨리 잡아챈 후 혀를 차며 바닥에 내려섰다.
마의혈황 또한 적지 않은 체구였다.
하지만 그가 벅차게 느껴야할 정도로 그가 안고 있는 철라영의 몸집은 컸다.
마의혈황은 마패삼십육절을 둘러보며 무서운 눈으로 호통을 내질렀다.
"변변치 못한 놈들! 이런 계집에게 쩔쩔매서야 장차 어찌 천하를 도모하겠느냐?"
그의 가차없는 질타에 마패삼십육절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면목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영주(令主)!"
마의혈황은 그의 앞에 서 있는 한 명의 장한을 향해 냉갈했다.
"너! 이 계집의 무기를 들고 앞장서라! 성으로 돌아가겠다!"
"예... 옛!"
장한은 허둥허둥 대답하며 철라영의 장극 황금방패를 집어들고 앞장 섰다.
마의혈황은 다시 나머지 마패삼십오절을 향해 명했다.
"너희들은 주위를 수색하라! 이 계집의 추종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존명!"
"알겠습니다."
일제히 대답을 마친 삼십 오 인은 즉시 몸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마의혈황은 장한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가자!"
"옛!"
장한은 철라영의 무기를 들고 십천제왕성으로 몸을 날렸다.
스스...!
마의혈황도 즉시 그 뒤를 따라 날아올랐다.
몸을 날리는 그의 입가로 신비스런 미소가 감돌았다.
두 줄기 인영이 달빛을 등지고 십천제왕성으로 날아들었다.
마의혈황과 마패삼십육절 중의 한 장한이었다.
"...!"
마의혈황은 빠르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예상외로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불빛조차 거의 꺼지고 몇 군데만이 희미하게 불빛이 밝혀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팽팽한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마의혈황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내심 찬바람을 들이켰다.
'어떤 자가 책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로 무서운 자다.
구십구 방위의 방벽이 거의 완벽하다.
정면공격 한다면 십만은 동원해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내심 염두를 굴리며 차가운 눈을 번뜩였다.
그가 생각에 잠겨있는 순간에도 수많은 눈길들이 어둠 속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의혈황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차! 하여 틈을 보이면 한 바탕 소란이 일 것이다.'
그는 냉철한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마의혈황, 그는 물론 군검풍이 환신한 것이었다.
십패천 중 화밀마맥(花密魔脈)의 기환대법인 환종천환역형결을 익힌 군검풍이다.
그가 다른 사람으로 환신한다는 것은 식은죽 먹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마의혈황을 제거하고 깜쪽같이 그의 모습으로 환신한 것이다.
군검풍은 옆에 서 있는 장한을 향해 명했다.
"너는 이 계집의 병기를 나의 거처에 갖다 놓도록 하라!"
"옛!"
대답을 마치는 즉시, 장한은 병기를 안고 죄측으로 달려갔다.
'마의혈황의 처소가 저쪽에 있군!'
군검풍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소리없이 미소 지었다.
이어, 그는 철라영을 안은 채 한 걸음 발을 떼었다.
바로 이 때였다.
"하하... 마의령주! 대어(大漁)를 낚아오셨습니다!"
갑자기 낭랑한 웃음이 들리며 나무 그늘에서 한 명의 청년이 유유히 걸어나왔다.
"...!"
군검풍은 힐끗 그자를 주시했다.
청년은 이제 이십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는데 용모가 아주 빼어났다.
단지 빼어난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섬세하고 단아한 용모를 지녀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다만 한가지 흠이 있다면, 그의 눈가로 한 가닥 음침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검풍은 청년을 바라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 자는 천웅패천좌 서열 구십구위의 옥면신룡제(玉面神龍帝) 혁관옥(赫冠玉)이다.'
그는 빠르게 만능야제에게서 받은 패왕궁의 기록을 떠올렸다.
패왕궁은 천패마종 남궁무외가 이끄는 일백 인의 초강자들의 결맹으로 결성되어 있었다.
옥면신룡제 혁관옥은 그 중 서열구십구위의 인물이었다.
그의 얼굴은 관옥같이 준수했지만 그 용모와는 달리
가장 음침하고 치밀하며 잔혹한 성격을 지닌 자였다.
군검풍은 짐짓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옥면신룡제를 바라보았다.
"허허... 이 덩치만 큰 계집이 천방지축 날뛰며 잠입하려 했지만 어디 될법한 얘긴가?"
옥면신룡제 혁관옥은 음탕한 시선으로 철담온후 철라영을 바라보며 다가섰다.
"하하... 몸집은 크지만 미모는 빼어난 계집입니다. 크녠! 그것도... 남다를것 같습니다!"
그는 음탕하게 웃으며 철담온후의 젖무덤을 슬쩍 쓰다듬었다.
이어, 그는 군검풍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말했다.
"하하... 가슴도 대형이로군. 웬만하면 이 계집을 소제에게 인도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옥면령주는 여전하군. 이 긴급상황에서도 풍류를 즐기려 하다니..."
군검풍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는 뼈있는 경고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모를 혁관옥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늙어 꼬부라져 계집을 즐기지 못하는 화풀이를 내게하려 하는구나!'
그는 내심 투덜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하하! 그저 해본 소립니다. 소제는 순찰을 돌아야 합니다."
그는 말꼬리를 돌리며 몸을 돌려 즉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
군검풍은 사라지는 혁관옥의 모습을 말없이 주시했다.
그런데 이때,
군검풍의 품에 안겨있던 철담온후 철라영의 입에서 분노의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뜻밖에도 그녀는 봉목을 치뜬 채 사라지는 혁관옥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옥면신룡제! 네놈은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암사자같이 사나운 기세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군검풍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 그만 흥분하시오. 기회는 후일 얼마든지 있을 것이오!"
"옛, 지존!"
철라영은 그제서야 얼굴을 살짝 붉히며 눈을 감았다.
그녀는 다시 혈도를 짚힌 척 했다.
그런데 지존이라니...?
그녀는 이미 군검풍의 진정한 신분을 알고 있는 듯했다.
군검풍이 여기까지 오는 도중 그녀에게 모든 것을 얘기한 것일까?
군검풍은 다시 몇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마의혈황의 말로는 여제천모를 제외한 일천여제군단 모두가
금단마옥(禁團魔獄)에 감금되어 있다고 하더군. 그대의 역할이 극히 중요함을 잊지 마시오."
"명심하겠어요."
철라영은 군검풍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철라영을 안은 군검풍은 바람처럼 신형을 허공으로 띄웠다.
바로 이 때였다.
"누구냐? 멈춰랏!
돌연 냉혹한 일갈이 어둠 속을 뚫고 터져 나왔다.
"마의령주!"
스슥!
다가서던 군검풍은 짤막하게 외치며 철라영을 안은 채 지면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다시 예의 냉혹한 음성이 군검풍의 귓전을 울렸다.
"마의혈황!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로 금단마옥에 접근하는 것이오?"
그는 생기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스산한 사기(邪氣)가 서린 음성이었다.
그 음성과 함께 어둠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군검풍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육 척의 키에 흡사 무쇠로 빚은 듯한 무표정한 얼굴을 지닌 중년인이었다.
그는 짙은 흑의를 걸치고 있어 전신이 새까맣게 보였는데,
수중에는 한 자루의 검은 빛이 도는 기형(奇形)의 탈(奪)을 들고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군검풍은 움찔했다.
'천웅패천좌 서열십위 묵황패룡(墨荒覇龍)이군. 십대패왕(十大覇王)에 드는 인물이다.'
그는 다시금 빠르게 묵황패룡의 내력을 되새겼다.
-- 묵황패룡(墨荒覇龍).
그는 관외(關外), 묵황패류(墨荒覇流)의 진전을 이은 패도강자였다.
패왕궁의 최강자들인 십대패왕에 드는 인물로
천패마종의 남궁무외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패한 적이 없는 자였다.
군검풍은 어둠 속으로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수고가 많구려, 묵룡령주(墨龍令主)! 거녀성주(巨女城主)가 잠입하는 것을 잡아왔소."
말을 하며 그는 철담온후 철라영의 혈도를 소리없이 패쇄시켰다.
"흠... 이 계집이 철담온후란 말이요?"
묵황패룡은 날카로운 눈으로 빠르게 철담온후의 전신을 살폈다.
만일 군검풍이 미리 철담온후의 혈도를 제압하지 않았다면
위장한 것이 여지없이 탄로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 묵룡패룡의 안목은 예리하고 정확했다.
이윽고, 별다른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묵룡패황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 오시오!"
그는 무뚝뚝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군검풍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고비 넘겼군!)
그의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 그는 철담온후를 안은 채 말없이 묵황패룡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얼마후 그들 일행은 곧 삼 장 높이의 철문 앞에 이르렀다.
"열어라!"
묵황패룡은 철문 앞에 서 있던 십 인의 거한들을 향해 냉랭한 어조로 명했다.
그러자 급히 대답한 거한들의 손에 의해 육중한 굉음을 발하며 철문이 열렸다.
그긍...!
묵황패룡은 열려진 철문 안으로 앞서 걸어 들어갔다.
"...!"
군검풍 역시 아무말 없이 철담온후를 안고 그를 뒤따라 들어섰다.
연이어 전면의 철벽들이 또 다시 제거되었다.
그렇게 하여 십 팔 겹의 철벽이 모두 제거되었을 때,
갑자기 전면으로부터 음산한 음풍과 함께 끈끈한 습기가 확 끼쳐왔다.
삼 인은 그곳에서 발을 멈추었다.
군검풍은 어둠속에서 눈을 빛내며 말없이 전면을 주시했다.
그의 앞은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광장이었다.
그런데, 수백 개의 쇠창살로 된 뇌옥들이 지하광장을 가득 채운 채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 뇌옥 안으로부터 천여 쌍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어둠속에 빛나고 있는 그 눈들은 야수의 그것처럼 날카롭고 예리했다.
'일천여제군단...!'
군검풍은 그 눈빛들을 대하자 절로 감탄의 탄성을 발했다.
그는 침음하며 내심 나직이 부르짖었다.
뇌옥 안에는 하나의 뇌옥당 십여 명씩의 여인들이 갇혀 있었다.
그녀들의 나이는 엇비슷하여 거의가 이십 전후 정도 되어 보였다.
또한, 그녀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용모를 지녔으며 그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여인들은 모두 뇌옥 바닥에 단좌하고 있었는데,
극한 상황이었지만 눈빛 하나 흩어짐 없는 여전사의 모습이었다.
그녀들은 누군가?
바로 여제천모의 시위들이며 최강의 여인군단인 일천여제군단이었다.,
그녀들은 비록 갇혀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강렬한 투혼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군검풍은 그녀들을 살펴보며 내심 흐믓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최강여군단 소리를 들을만 하다!'
하지만 내심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극히 음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녠, 기뻐하거라! 너희들의 동료가 한 명 더 늘었다!"
그는 음소를 흘리며 묵화패룡이 열어준 뇌옥으로 철담온후를 집어던졌다.
"...!"
묵황패룡은 그런 군검풍의 일거수 일투족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까다롭고 예리한 묵룡패룡 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군검풍이 철담온후를 뇌옥 안으로 밀어넣을 때,
그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철담온후의 혈도를 스치는 것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쨋든, 이로써 군검풍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었다.
"좋은 꿈 꾸기를 바란다. 흐흐..."
그는 짐짓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그의 모습은 조금도 여심할 의지조차 없는 마의혈황의 모습, 그대로였다.
묵황패룡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
뇌옥 속에 갇혀있는 일천여제,
그녀들은 여전히 아무 소리없이 분노의 눈 빛으로 군검풍과 묵황패룡의 뒷모습을 노려볼 뿐이었다.
밤은 깊어 어느덧 삼경이 가까웠다.
주위는 깊은 적막속에 잠겨있었다.
스슥...!
문득 한 줄기 은밀한 그림자가 빠르게 십천제왕성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희미한 달빛 속에 언뜻 드러난 얼굴은 극히 영준한 용모의 미청년이었다.
바로 옥면신룡제 혁관옥이었다.
그는 거침없이 십천제왕성의 중지인 여제천궁으로 들어섰다.
이어, 죽림에 둘러싸인 한 채의 죽옥(竹屋)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가는것이 아닌가?
"흐흣, 오늘밤에는 기어코 네년을 품고야 말겠다."
그는 두 눈을 탐욕으로 번득이며 음탕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입에는 벌써부터 침이 고였다.
서서히 하체가 뜨거워지는 흥분을 느낀 것이다.
울창한 죽림의 중앙에는 한 채의 아담한 죽옥이 세워져 있었다.
"...!"
그 죽옥의 창문은 밤이 깊었음에도 열려 있었다.
그리고 죽옥의 창가에 한 명의 여인이 기대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일신에 수수한 마의(麻衣)를 걸치고 있었다.
여인은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주천에 이른 만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그녀는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옥면신룡제! 왜 또 왔나요?"
우수에 잠긴 교갈을 발하며 마의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놀랍도록 뛰어난 미인이었다.
조각으로 새긴 듯 섬려하고 단아한 미모에,
은은한 기품마저 서려 실로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윽하고 신비로운 혜안(慧眼), 그린 듯 고운 아미,
맑고 곧은 콧날의 선과 작약빛 입술...
가히 한 군데도 흠잡을곳 없는 아름다운 용모였다.
마의여인의 두 눈은 쓸쓸함과 우수에 차있었다.
거기에다 그녀는 분노와 절망의 빛을 담은 채 옥면신룡제를 노려보았다.
옥면신룡제, 혁관옥은 죽옥을 향해 다가서며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후훗!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답구료."
이어, 그는 마의여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죽옥의 문으로 들어섰다.
천모(天母).
이 여인이 바로 당대의 여제천모인 나후란(紫碧神后) 나후란(羅侯蘭)이었다.
"물러가세요! 당신과는 얼굴을 마주 보기도 싫어요!"
나후란은 옥면신룡제가 죽옥 안으로 들어오자 싸늘한 교갈을 내지르며 돌아앉았다.
그 모습에 옥면신룡제는 짐짓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천모! 어찌 나의 마음을 이리도 몰라 주는 것이오?
나는 천모를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소."
"...!"
하지만 나후란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돌아앉은 채 눈을 감았다.
옥면신룡제는 그런 나후란의 뒷모습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 보았다.
이어 문득 그는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오?"
"...!"
그 말에 나후란의 교구가 바르르 떨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있던 옥면신룡제가 다시 나직한 기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후훗...! 내일이 지나면 제왕맹은 패왕궁 휘하로 들게 되오.
이변이 없는한 나 옥면신룡제가 제왕맹주(帝王盟主)가 될 것이오."
"...!"
"흐흐... 어차피 천모는 나 혁관옥의 것이 될 몸이 아니오?
그러니 내 오늘밤 일찌감치 천모에게 음향화합의 쾌락을 가르쳐 드리겠소."
말과 함께 옥면신룡제는 그대로 나후란의 몸을 내리덮쳤다.
"당신이... 앗!"
나후란은 날카로운 교갈을 터뜨리며 몸을 바둥거렸다.
"흐흣! 저항해도 소용없소."
"흑...!"
하지만 무공을 제압당한 나후란은 그저 평범한 아녀자에 불과했다.
그녀는 곧 무기력하게 옥면신룡제에게 눌리고 말았다.
찌익...북!
그녀의 마의가 이내 옥면신룡제의 거친 손길에 갈가리 찢어졌다.
그러자,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농염한 나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달빛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인의 나신은 현란한 유혹과 폭발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그녀의 두 젖가슴은 터질 듯 풍만하여 사내의 욕화를 뜨겁게 부채질했다.
그리고, 투명하도록 매끈하게 감겨드는 살결과 기름진 복부,
미끈하게 뻗어내린 대리석같은 두 다리는 실로 유혹의 극치였다.
옥면신룡제의 두 눈이 탐욕으로 충혈되었다.
"후훗! 과연 천하제일염(天下第一艶)이군!"
그는 바둥대는 나후란의 허벅지를 벌리고 마지막 남은 고의를 찢어냈다.
찌...익!
고의가 찢어지며 무성한 방초로 뒤덮인 유혹의 신비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울울창창한 수림속에 숨어있는 여체의 균열을 노려보며 옥면신룡제는 꿀꺽 침을 삼켰다.
"후훗! 무서워할 것 없소! 곧 천모 스스로 이 일을 원하게 될 테니까!"
그는 음험하게 웃으며 나후란의 몸을 찍어누르며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손으로 나후란의 비역을 더듬어 위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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