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폭풍세가

제15장 여살수(女殺手), 뜨거운 육체

오늘의 쉼터 2014. 9. 30. 16:04

제15장 여살수(女殺手), 뜨거운 육체

 

 


"아아... 당신...!"
은밀월은 희열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며 몸부림쳤다.

희열은 거부하던 군검풍이 마침내 자신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어쨋든, 그녀의 목적은 이루어진 셈이었으니까.
그리고 고통을 느낀 것은 갑작스런 사내의 완강한 손길 때문이었다.

군검풍의 손길은 거칠게 은밀월의 풍만한 유방을 움켜쥐었다.
이어 그는 오랜 갈증에 목마른 사람처럼 은밀월의 젖가슴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터질 듯 부푼 은밀월의 한쌍 육봉은 군검풍의 손아귀에서 멋대로 이지러지고

그 끝에 매달린 유실은 군검풍의 혀와 입술에 시달리며 점점 더 단단해져갔다.

"검풍...!"
은밀월은 젖가슴에 가해지는 군검풍의 집요한 학대에 숨넘어갈 듯한 신음을 발하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길은 더욱 깊숙이 군검풍을 끌어안고 있었다.

어렵게 성취한 목적의 대상을 놓치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이었다.
"하아..."
그녀의 입에서는 희열인지, 고통인지 모를 달뜬 신음이 새어나왔다.

군검풍의 손길은 점점 밑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은밀월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곳으로 그의 손길이 접근해 옴을 느꼈다.
군검풍의 손가락이 자신의 은밀하고도 부끄러운 부분을 벌리고

더듬는것을 느낀 그녀는 기대와 수치감에 몸을 움츠렸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지만 본능적인 부그러움과 거부감이 작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요하게 뚫고 들어오는 군검풍의 손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아...!"
어느덧, 그녀의 입에서는 부끄럽고 나직한 신음이 새어나오며 옥용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수줍음을 느끼는 은밀월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군검풍은 강하고 집요하게 은밀월의 부끄러운 나신을 탐닉했다.

여인으로서의 삶을 잊고 살아왔던 은밀월은

이 순간 여인이 겪는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하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군검풍의 뜨거운 숨결은 그녀의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몸을 조금씩,
설레임과 부끄러운 기대로 열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알 수 없는 흥분과 희열에 그녀의 온 몸을 뜨겁게 달구어 놓고 말았다.

마치 마술사인 듯 그는 신기한 마술을 그녀의 몸에 부려 놓은 것이다.
은밀월은 그 마술에 걸려들어 완전히 그녀 자신조차 까맣게 잊고 말았다.
군검풍의 손길이 몸안으로 밀려들어와 부드럽고도 야릇하게 움직여댐에 따라

은밀월은 자신의 중심부가 그대로 눈녹듯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아아! 당신...!"
그녀는 온몸을 휘감는 미묘한 감각에 몸을 떨며 군검풍의 목에 매달려 신음했다.
이윽고 그녀의 풍만한 나신은 군검풍의 건장하고 단단한 몸에 의해 짓눌렸다.
"부...부탁해요!"
군검풍의 묵직한 체중이 아랫배에 느껴지고 허벅지 안쪽에 무언가 맥동하는

뜨거운 봉형의 물체를 감지하며 은밀월은 흥분과 두려움이 섞인 눈길로 군검풍을 올려다 보았다.
군검풍은 그런 그녀의 경직된 하체를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개방하고 들어갔다.

일순 경직되었던 그녀의 투실투실한 허벅지는 이내 좌우로 활짝 문을 열었다.
그녀의 중심부는 이미 뜨거운 꿀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군검풍은 손가락으로 미끈덩한 균열의 입구를 더듬어 벌린 뒤

그곳으로 이미 무쇠덩이 같이 단단해지고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자신의 실체를 이끌어갔다.
예민한 실체의 끝이 미끄럽고 따스한 살점에 닿자 군검풍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내에게 속살을 보여준 적도 없는 은밀월 역시

자신의 부끄러운 곳에 사내의 이물질이 닿음을 느끼고 전율했다.
표적을 정확히 찾은 군검풍은 하체를 경직시키며 그대로 허리를 알래로 내리눌러갔다.

미끈덩한 동굴 입구를 밀고 들어간 직후 완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하지만 군검풍은 가차없이 그 방해를 돌파하기 위해 힘을 주어 허리를 움직였다.
"하아악!"
다음 순간 은밀월의 입에서 송곳 같은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올랐다.

그것은 지금까지 몽롱한 의식에 도취해 있던 그녀의 황홀한 꿈을 일시에 깨뜨려 놓았다.
꿈과 현실을 달랐다.

꿈은 달콤하고 황홀했지만 현실은 날카로운 고통과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수반했다.
은밀월의 아름다운 옥용은 고통으로 잔뜩 찡그려졌다.

형용할 수 없는 파과의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교구는 화살맞은 사슴처럼 파르르 떨림을 일으켰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었다.

고통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었다.

군검풍이 건마술이 다시 효과를 나타낸 것일까?
기이하게도 파과의 그 날카로운 고통을 해집고

온 몸 구석구석으로 은밀한 기쁨이 샘솟듯이 퍼져오르는 것이었다.

그 새롭고 낯선 기쁨은 이내 은밀월의 온 몸을 뿌듯한 희열로 충전시켰다.
"하아... 으음!"
은밀월은 두 손으로 단단한 군검풍의 등을 힘껏 부여안았다.

입술이 바짝타며 열에 들뜬 듯한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군검풍도 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욕정이 온몸을 휘감자 그는 거세고 강한 힘으로 여체 속으로 침범해 들어왔다.
은밀월에게 그것은 실로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감촉과 함께 막혔던 장벽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고,

이어 불근불근 맥동하는 봉형의 이물질이

자신의 하체 깊은 곳으로 삽입되는 것이 너무도 생생히 느껴졌다.
비록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곧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한 충족감이 뒤따랐기에 은밀월은 자신의 육체로 조심스럽게 그 희열의 실체를 움켜쥐려 애썼다.
그녀는 서툰 몸짓이었지만 백사 같은 두 다리로 군검풍의 몸을 죄이며
그 은밀한 기쁨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쾌감이 배가되었다.

그렇게 은밀월은 조금씩 희열에 눈떠갔다.
그리고 군검풍은 그녀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강한 힘과 절묘한 기술로 미숙한 첫경험의 아픔에 굳어 있는 은밀월의 몸을 열어갔다.
이미 몇 차례의 경험을 겪은 탓이리라.

아니, 어쩌면 그는 천부적으로 여인을 다루는 기술을 타고난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내를 처음 받아들이는 은밀월이 이내 희열의 신음을 발하며

바짝 그의 어깨에 매달리는 것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몸에는 이윽고 홍건하게 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밤이 내리기 시작하는 동굴 안은

갑자기 두 남녀의 뜨거운 체온과 숨소리로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한바탕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동굴 안은 적막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된 듯 고요만이 깃들어 있었다.
군검풍은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직 벌거벗은 몸의 은밀월이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잠든 군검풍의 얼굴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강해져야 해요!"
은밀월은 손을 뻗어 군검풍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군검풍은 그것조차 알지 못하고 달고 깊은 잠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고되고 긴 항해를 마친 사람처럼 그는 더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것이다.
은밀월은 그런 군검풍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그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녀의 알몸 여기저기에는 군검풍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유방과 허리, 그리고 그 아래의 허벅지 부근에도

군검풍이 탐닉한 흔적이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잠든 군검풍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은밀월은 문득 결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인의 문을 여는 것... 그것은 절대살수(絶對殺手)의 마지막 문이었다.
이제 당신으로로 인해 그 여인지문(女人之門)을 열었으니 나는 곧 절대살수경에 들게 될 것이다.

가장 무심하고 가장 잔혹하며 가장 치밀한 초살수경에...!"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어 그녀는 옆에 있는 벽붕천익으로 군검풍의 나신을 덮어주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밀월...!"
군검풍이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거렸다.

그는 무의식중에 손을 더듬어 은밀월의 젖가슴이 잡히자

가볍게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
은밀월은 군검풍의 손을 가슴에서 떼어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에는 아쉬움의 빛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곧 냉정한 안색으로 돌아오며 중얼거렸다.
"초살수가 된 후, 다시 당신을 베기 위해 찾아올 거예요.

그때 당신이 나의 살수를 피한다면...!"
그녀의 얼굴에 살풋 홍조가 어렸다.
"그러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은 당신것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강해져야 해요. 당신이나 나를 위해서라도!"
이윽고, 그녀는 몸을 일으켜 의복을 걸쳤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마황묵룡각을 집어들었다.
그녀가 일어선 자리에는 몇 점의 혈화(血花)가 선명하게 피어 있었다.
"강룡(强龍)이 되어야 해요, 검풍...!"
은밀월은 다시 한 번 잠든 군검풍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어, 그녀는 몸을 돌려 천천히 사라동천을 나섰다.

막 사라동천을 나서던 은밀월은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
사라동천의 입구. 암사자와 같은 기세로 새파란 벽안을 빛내며 서 있는
한명의 훤칠한 키의 미인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벽안신녀!"
은밀월의 전신에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일어났다.
두 사람의 시선이 터질 듯한 긴장감을 담은 채 오갔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파렴치한 계집...!"
벽안신녀 벽대려가 면저 입술을 깨물며 몸을 비꼈던 것이다.
"그 못난 몸뚱이를 황야에게 바친 대가로 오늘은 그냥 보내 주겠다.

그러나 다시 만났을 때는.. 이 벽붕단천검이 네 피를 보리라!"

그녀는 은은한 분노를 삭이는 음성으로 말하며 수중의 벽붕단천검을 들어보였다.
"다시 만날 때...!"
은밀월의 입가에 그녀 특유의 음울한 미소가 떠돌았다.
"그때 정말 조심해야할 것은 바로 너 벽안신녀일 것이다.

그때 나는 초살수(超殺手)가 되어 있을 테니까...!"
"오냐, 두고보자."
백옥상은 새파란 분노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은밀월을 노려보았다.

그것은 평소 지극히 오연하고 냉담한 그녀답지 않은, 필요 이상의 흥분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지금 여전사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 사내를 두고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평범한 여인의 눈빛일 뿐이었다.
은밀월은 백옥상의 모습에서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인 특유의 예감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 체하며 무심하게 몸을 돌렸다.
"다시 보자!"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유령같이 교구를 허공으로 띄워올렸다.

그녀의 모습은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져갔다.
"간교한 계집!"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백옥상은 파르르 입술을 떨며 중얼거렸다.
사실 그녀의 심경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사라동천 앞에서 밤새 군검풍과 은밀월이 신방을 차리는 것을 지켰다.
군검풍에게 사랑받으며 흐느끼던 은밀월의 교성을 생각하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새파란 질투심에 휩싸이곤 했다.
"꼭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백옥상은 입술을 굳게 깨물며 중얼거렸다.
"너를 반드시 내 발 아래 무릎꿇도록 만들겠다."
백옥상의 기묘한 질투심은 무모하리만큼 강렬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도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사(戰士)이기 이전에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된 보통 여인인 것이다.


콰콰콰...!
지옥강풍은 여전히 맹렬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그 지옥강풍에 옷깃을 날리며 두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군검풍은 뒷짐을 지고 선 채 무심한 표정으로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뒤에는 벽안신녀 백옥상이 벽붕단천검을 안은 채 시립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과 멀찌기 떨어진 곳에는 백옥상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자면신장이 강궁을 짊어진 채 구십 구 명의 전사들과 함께 부복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백옥상이 조심스럽게 군검풍의 기색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중원으로 돌아갈 거예요."
"...!"
군검풍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문 사사독마갱이 일단의 강적들에게 위협당하고 있어방심할 수 없는 상태예요.

또한 소녀는 벽붕성 벽붕지벽(碧鵬之壁)까지 다녀와야 해요."
"...!"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일까?

군검풍은 백옥상의 말을 듣는 듯 마는듯 하며 절벽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백옥상은 그런 군검풍의 태도가 서운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독황연에 들어가신 후의 모든 뒷바라지는 자면신장과 구십구독왕이 해드릴 거예요."
그 말에 군검풍이 고개를 저으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오. 자면신장만 남기고 구십구독왕은 그대와 동행하도록 하시오."
"예?"
"사사독마갱에 변고가 생긴다면 독황군단의 최정예 구십구독왕이 빠져서야 되겠소?

데려가도록 하시오."
"...!"
백옥상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하지만 곧 그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분부대로 하겠어요. 폭풍제왕검의 비밀은 중원에 돌아오신 후에 알려드리겠어요. 그럼..."
그녀는 군검풍의 뒤에 대고 다소곳이 절했다.
하지만 군검풍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백옥상은 다시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야속하신 분... 은밀월의 생각에 빠져 계시리라!'
그녀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슥...!
그러나, 그녀는 애써 내심의 표정을 감추며 허공으로 몸을 띄우려 했다.

그 때였다.
"신녀!"
군검풍이 나직하게 그녀를 불렀다.
"예?"
백옥상은 몸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잘가오. 그동안 고마왔소."
군검풍은 그제서야 돌아서며 벽붕천익을 백옥상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
백옥상은 그만 왈칵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시종일관 무심하기만 하던 군검풍이 다정한 음성으로 그녀를 불러주자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격마저 느껴졌다.
그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날아올랐다.
"다시 뵙겠어요."
스스...슥
그에 이어, 구십구독왕 역시 마치 구십 구 마리의 붕조인 듯 허공으로 날아올라 까마득히 사라졌다.
군검풍은 유연한 시선으로 사라지는 백옥상의 모습을 주시했다.
휘...이...잉!
문득 멸신천황도의 음유한 음풍이 그의 옷깃을 휩쓸고 지나갔다.


스스스...콰콰...!
군검풍은 폭풍처럼 치솟는 만독강살(萬毒 煞)을 가르며 까마득한 일천장 아래,

지옥독혈(地獄毒血)의 바닥으로 내려섰다.
"끔찍한 곳이군!"
그는 검미를 모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츠으... 츠으...! 부글부글...
바닥이라고는 하나 그곳은 온통 물컹물컹한 독의 늪지였다.
그 검푸른 늪지는 바다와 하늘, 땅의 만독지기가 모여 응고된 만독지(萬毒池)였다.

그곳에서 솟는 만독풍이 만독강살풍(萬毒 煞風)을 형성하는것이었다.
군검풍은 검미를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쪽에 독황연이 있단 말인가?"
만독지는 얼마나 넓은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던 군검풍은 흠칫했다.
츠츠츠츠!
그는 우측 만독풍의 저편에서 창창한 서기가 일어남을 발견하고는 두 눈에 이채를 띄웠다.
"저곳인가?"
그는 빙백천강을 배가시키며 서기가 흐르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
서기가 흐르는 곳으로 다가선 군검풍은 문득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실로 뜻밖의 광경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군검풍의 앞에는 하나의 옥정(玉鼎)이 놓여 있었다.
높이 이십 장, 넓이 오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옥정은 만독지에 반쯤 묻혀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만년한옥(萬年寒玉)을 깍아만든 옥정이었다.
거의 하나의 성채만맣 크기의 옥정을 바라보며 군검풍은 신광을 발했다.
"이런 곳에 인간의 흔적이 있다니...!"
그는 놀라움과 경이를 느끼며 호기심이 발동했다.
옥정의 한쪽에는 일 장 크기의 문(門)까지 하나 나 있었다.

그 문 위에는 갑골문으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 천황대독정(天荒大毒鼎).


군검풍의 안면에 희색이 떠올랐다.
"바로 이곳이다. 독문의 전설 독황연이 이런 곳에 있었다니...!"
그는 기대와 흥분의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그는 몸을 날려 하나의 장원만한 크기의 옥정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석정 안으로 날아든 군검풍은 갑자기 신형을 휘청했다.
"웃!"
츠으...!
돌연 천황대독정의 안쪽에서 묵광(墨光)이 번뜩인다고 느낀 순간,

어이없게도 만독의 극성인 빙백천강이 거짓말처럼 녹아버린 것이었다.
"지독하군!"
군검풍은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신형을 휘청거렸다.

그 묵광에 휘말리는 순간 그가 걸치고 있던 폭풍삼은 단번에 녹아버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불사지체인 군검풍의 전신이 믿을 수 없게도 새카맣게 변색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이것은...만년묵린독황정(萬年墨鱗毒皇精)이다."
군검풍은 자신을 몸을 뒤덮은 비늘모양의 묵광을 바라보며 신음성을 발했다.


-- 만년묵린독황정.


이는 만독지(萬毒池)와 만독훈이 천만 번 뒤섞여 이루어지는 독중지독(毒中之毒)이었다.
만년묵린독정 한 홉이면 드넓은 동정호 전체를

순식간에 독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이니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야말로 절독 중의 절독인 것이다.
군검풍은 불사용수를 복용하여 이미 불사지체가 된 몸이었다.

그렇기에 망정이지 그가 범인의 몸이었다면 빙백천강이 녹는 순간

그도 함께 독수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를 위협하는 독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군검풍은 황망중에 당한 뜻밖의 사태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호기심은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

이윽고 그는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성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천황대독정의 안은 드넓은 지하광장(地下廣場)이었다.
뭉클뭉클...!
광장의 중앙에는 하나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방원 십 장 정도 되었는데, 연못속에서는 만년묵린독황정이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

또한 연못 안은 검푸른 액체가 석 자 깊이로 고여 있었다.
군검풍은 그것을 바라보며 침중한 신음성을 발했다.
"만년묵린독황정이 응고된 묵강독황지(墨剛毒荒池)로군!"
그렇다. 그 연못은 바로 만년묵린독황정이 응결되어 액체화된 묵강독황지였다.
군검풍은 검푸른 빛을 띈 채 연못을 채우고 있는 묵강독황지를 바라보며 염두를 굴렸다.
"누군가 이 천황대독정을 만들어 만년묵린독황정이

이곳에 응결되게 하여 독황지(毒荒池)를 이루게 만들었다.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했을까?"
그는 검미를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그는 흠칫했다.
"이런 곳에도 시신이 있다니...!"
그는 번쩍 신광을 발하며 한 곳을 주시했다.

그의 전면에 한 구의 시신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시신은 골격으로 보아 생시에 아주 거대한 체격을 지녔음직 했다.

시신은 옥벽을 마주한 채 좌화해 있었다.

군검풍은 호기심을 느끼며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골격은 앉은 키만해도 오 척이 될 정도의 거구였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골격 전체가 마치 먹물에 담갔다 꺼낸 듯 새까맣다는 점이었다.
군검풍은 검미를 모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패멸살황독강류를 익힌 흔적이다. 이분이 패멸살황독강류를 창안한 분이실까?"
그는 관심의 눈빛을 빛내며 옥벽을 주시했다.

옥벽(玉壁)에는 작은 글씨로 쓰여진 갑골문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것은 이미 이천 년 전에 쓰여진 글이었다.

또한 독문사상 최고, 최강의 종사로 불리웠던 한 인물이 남긴것이었다.

지금은 비록 그 이름이 잊혀졌지만 그는 독문사상 길이 기억될
진정한 절대독종(絶大毒宗)이었다.
옥벽의 갑골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독종천하(毒宗天下)의 뜻을 꺾으며...

회한과 통분으로 나 독중독존(毒中毒尊) 갈독(葛毒)이 남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