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밤의 제왕(帝王)만능야제(萬能夜帝)
끝없이 이어진 초원(草原)이 마치 녹색 물결이 출렁이듯 펼쳐져 있었다.
그 푸른 초원으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초원의 해질녘은 더욱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장엄하기까지한 자연의 장관은 보는 이의 영혼마저 송두리째 빨아들일 듯 하다.
두두두...! 따각따각!
갑자기, 드넓은 초원에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마대였다.
기마대는 노을을 등지고 북서의 지평선을 가득 메우며 꾸역꾸역 남진하고 있었다.
말을 모는 자들은 수십만에 달하는 적포인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야심의 눈들은 일제히 남천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중원이 있는 곳이었다.
"우우... 옥문관(玉門關)이 멀지 않았다!"
"크캇...! 우리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원의 전설이 서린 저 대초원의 영토로!"
"우우! 누가 적붕(赤鵬)의 뜻을 막으랴?"
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소리와 함게 대영반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하늘을 찌르며 울려퍼졌다.
그 함성은 바로 대영반을 넘어 적붕천성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기마 대열의 중앙에는 적붕천번(赤鵬天幡)이 새겨진 십 장의 거번(巨幡)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스스스...!
그 적붕천번 아래, 한 명의 적포노인이 우뚝 서 있었다.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흑염을 휘날리며 남천을 주시하고 있는 노인.
그는 이글거리는듯한 적붕(赤鵬)의 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전설 속의 금강만리타(金剛萬里駝)를 타고 있었으며
일 장 오척의 적붕패천신극(赤鵬覇天神戟)을 비껴들고 있었다.
그런 그의 기도는 가히 천신을 방불케 했다.
-- 적붕천존(赤鵬天尊) 철목천(鐵木天)!
이것이 그 노인의 이름이었다.
저 고금사대무벌중 하나인 천붕애(千鵬崖)의 후계자!
그가 세운 적붕존성(赤鵬尊城)은 지난 백년 동안 변황무림을 지배해왔다.
비록 사십여 년 전 구천마야 독고와의 일전에서 일만초의 격돌 끝에 무릎을 꿇은 적은 있으나
적붕천존 철목천은 자타가 공인하는 변황십팔만리의 제일인자인 것이다!
"이제 적붕의 날개는 다시는 꺾이지 않으리라."
적붕천존 철목천은 적붕패천신극을 불끈 움켜쥐며 나직이 독백했다.
"구천마야가 부활한다 해도 결코 나 적붕천존 철목천을 막지는 못하리라.
하물며 천패마종(天覇魔宗) 남궁무외란 어린 아이 따위야...!"
그의 천붕안은 두 개의 태양처럼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러자,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몇 명의 인물들이 물론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크크녠! 그렇소이다. 천패마종 따위가 어찌 천존과 맞서겠소이까?"
"크크녠... 구천마야나 폭풍세가가 부활한다 해도 결코 적붕동맹의 거력을 막지는 못할 것이오!"
"푸하핫! 결국 중토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주었던 것 뿐이외다."
그들은 모두 열명이었다.
개개인이 모두 절대종사의 위의를 지닌 십인의 초강자들이었다.
그들은 적붕천존의 뒤를 따르며 대소를 터뜨렸다.
그들이 풍기는 기도는 사방 일천 장을 뒤덮고 있었다.
-- 새황십대패왕(塞荒十大覇王).
당대변황무림 최강의 십 인이었다.
그들은 변황십팔대패세 중 혈존십패세(血尊十覇勢)의 종사자들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만으로도 능히 중원무림 전체와
승부를 결할 수 있을만큼 무서운 위력을 지닌 초강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 번씩 적붕천존에게 패했고,
그로 인해 적붕천존에게 진심으로 굴복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지금 그들은 모두 적붕천존의 십대시위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적붕천존은 새황십대패왕의 시선을 받으며 묵직하게 독백했다.
"중원은 넓고 강자들은 많은 줄 안다. 그러나 적붕은 두 번 패하지 않는다.!"
그의 태양 같은 두 눈이 야심과 기대로 무섭게 불타올랐다.
"중원에 초강자들이 많기를 빌 뿐이다. 강한 적이 많음은 즐거운 일이니까.
아무쪼록 중원이여, 본인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다오!"
야심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적붕천존,
그의 어깨 위로 핏빛 낙조가 내려앉고 있었다.
대파산(大巴山).
뉘엿뉘엿 해가 지더니 이내 주위는 짙은 어둠이 찾아들고 있었다.
산중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밤이 되자 어두운 하늘을 밝히며 달이 떠올랐다.
대보름이 가까운지 달은 휘영청 둥근 만월이었다.
!
한 순간, 갑자기 밤하늘이 쩍 갈라졌다.
마치 번개가 스쳐가듯 한 줄기 인영이 무서운 속도로 대파산의 군봉을 날아 지나갔다.
그런데, 하나의 산봉을 날아넘던 그 인영은
불현듯 고통의 신음성을 발하며 신형을 휘청 꺾었다.
이어, 그는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섰다.
"크...!"
털썩!
바닥에 내려선 인영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극히 강퍅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었다.
일신에는 헐렁한 검은 장포를 걸쳤으며 양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형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끔찍하게도 그의 전신에는 백여 군데의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였다.
그의 온 몸은 암기와 화살, 검편등이 박혀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다.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흑포노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조적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흐... 나 만능야제(萬能夜帝)가 이모양이 되다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실로 놀라웠다.
만능야제라니...!
그렇다면 이 흑포노인이 만능야제란 말인가?
-- 만능야제 잠야흔(潛夜痕).
그는 무림의 밤을 지배하는 신투(神偸)로써 이 방면에서는 그야말로 신화적인 존재였다.
방문구류(傍門九流) 중 공령도수종(空靈桃帥宗)의 종사인 그는
한 번 노린 것을 놓쳐본 적이 절대 없다.
비단 신투절기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부류에 달통하여 만능(萬能)이라 불리고 있었다.
특히, 경공(輕功)과 역용술, 사기술, 잠입술, 암기술(暗器術)은
그야말로 발군으로 꼽혀 당대최고의 차지를 차지하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그런 만능야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놀랍고도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때였다.
"휘...익!"
돌연, 멀리서 한소리 날카로운 장소성이 귓전을 찢었다.
"지겨운 놈!"
만능야제는 흘깃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저놈은... 패왕궁(覇王宮) 천웅패천좌(天雄覇天座) 서열 팔 위의 인간 사냥꾼...
지옥만리추 외에 이토록 집요하게 노부를 요격한 놈은 없었다."
이윽고, 그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천하 그 어디에도 패왕궁의 눈길을 벗어날 곳은 없다. 그러나..... 나는 가야 한다."
그는 결연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며 다음 순간 신형을 떠올렸다.
"나 만능야제의 한 목숨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제왕맹(帝王盟) 백만맹우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다!"
휘익!
그는 다시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의 모습은 삽시에 십마 장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말은 허공에 떠돌았다.
"천하 어딘가에 반드시 있으리라. 우리 제왕맹(帝王盟)을 구원해 줄 절대강자가...!"
그런데, 만능야제가 사라진 직후였다.
스슷...!
한 명의 백포인이 유령처럼 대파산 기슭에 나타났다.
그는 팔 척의 큰 키에 비쩍 말라 강시를 연상케 하는 괴인이었다.
그의 분위기는 칙칙하고 음울했다.
더불어, 숨막히는 마기와 섬뜩한 패기가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만능야제... 끈질기게도 달아나는군!"
그는 만능야제가 주저앉았던 곳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어, 오싹 소름이 끼치는 잔혹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대는 결코 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능야제!
반각 안에 늙은이를 잡지 못하면 나 지옥만리추(地獄萬里追)의 성을 갈리라!"
스슥!
그는 나타난 것과 같이 다시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달빛이 찰랑거리며 물결을 이루고 있는 아늑한 계곡.
만월의 빛이 풍성하게 차오르는 밤이었다.
계곡 끝에는 하나의 석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석벽 앞에 한 마리의 거대한 붕조가 날개를 접은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화르르...타닥!
모닥불 불빛 아래 일남일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장발청년과 피의를 걸친 십 사오 세 가량의 소녀였다.
바로 군검풍과 내내였다.
"쿨...!"
불을 쬐며 종알대던 내내는 어느새 군검풍의 무릎을 베고 곤하게 잠이들었다.
달고 깊은 잠에 빠졌는지 그녀는 이내 쌕쌕 낮게 코마저 골았다.
"...!"
군검풍은 자신의 장포를 벗어 잠든 내내를 덮어 주었다.
그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든 내내의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의 무릎을 베고 잠든 내내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내내...이런 내내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구나.
한점 그늘도 없이 밝고 아름다운 이 모습을 언젠까지 간직해라."
군검풍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내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이 때였다.
"못난이야, 잠 좀 자자! 왜 잠도 안자고 시끄럽게 하는거지?"
내내의 가슴에 안겨있던 극락조 금아가 잠귀밝게 한 눈만 뜨고 군검풍을 째려보았다.
군검풍은 기가 막힌 듯 금아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쳇! 금아만 구박해! 밉다, 밉다!"
금아는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며 날개 사이에 머리를 처박았다.
"훗!"
그 모습에 군검풍은 절로 실소를 발했다.
하지만 금아의 말대로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상념들에 잠겨있던 군검풍은 이윽고 옆에 놓인 비급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천음제형경(天音帝形經)이었다.
음공에 있어 천년제일이던 천음부의 비전무경.
군검풍은 천음제형경의 가장 뒤쪽을 펼쳤다.
그곳에는 한 가지 구결이 적혀 있었다.
-- 탄음파천황(彈音破天荒).
이것이 그 구결의 이름이었다.
"탄음파천황... 이것으로 위지대영이란 자에게 빚을 받아내야겠다. 내내를 대신해서...!"
군검풍은 눈을 빛내며 탄음파천황의 구결을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것은 전공력을 오른쪽 식지에 모아 퉁겨내는 절대음공이었다.
몇가지 특징적인 요인을 들라면 이러했다.
첫째로, 탄음파천황은 목표한 대상에게만 음파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여러 군중들 속에서도 원하는 대상만을 골라
살상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로는 상대보다 조금만 내공이 높아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는 맨 손으로도 시전이 가능하지만
천고신병의 힘을 빌리면 무려 십 배 까지 증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탄음파천황의 구결을 모두 살펴보고난 군검풍은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선제공격할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탄음파천황의 공세하에서 빠져나갈 수 없겠군."
그런데, 그가 막 탄음파천황의 비급을 덮었을 때였다.
"우...!"
돌연, 멀리서 다급한 장소성이 들려왔다.
때아닌 장소성은 고요하던 밤의 적막을 송두리째 깨버렸다.
군검풍은 검미를 찌푸렸다.
"어떤 자들이 야심한 시각에 이렇게 소란스럽게 군단 말인가?"
먼저 그는 내내가 잠을 깰까봐 걱정스러웠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이 잠든 내내가
방해받지 않고 편안한 잠을 자는 것이었다.
군검풍은 대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붕! 내내를 잘 지켜라!"
구우...!
대붕은 알았다는 듯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검풍은 몸을 일으켰다.
"어떤 자들이 소란을 피우는지 가봐야겠다."
스슥!
그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한 걸음을 옮긴 것에 불과하건만 어느 덧 그는 육십 장 밖으로 나가 있었다.
달빛이 교교로운 계곡의 입구.
"바득... 지옥만리추! 네놈이 직접 나서라! 나 만능야제가 왜 만능인지 보여 주겠다!"
우르르...콰쾅!
맹렬한 강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한 명의 흑포노인이 마치 상처받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분전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만능야제 잠야흔이었다.
그가 일신에 걸친 흑포는 온통 시뻘건 혈포로 물들어 있었다.
이미 고전을 겪은 듯 그는 전신이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지금 그는 열 명의 아수라 같은 인물들에게 둘러싸인 채 힘겹게 신형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카캇, 만능야제! 늙은이의 목을 따는데
지옥령주(地獄令主)님께서 직접 손을 쓰실 필요가 있겠느냐?
우리 지옥십제(地獄十帝)만으로도 충분하다!"
"크카캇...! 감히 패왕궁의 일에 끼어든 대가다!"
"우우... 목을 내밀어라!"
콰르릉...츠츳!
지옥십제의 전신에서는 수라파천마력이 봇물 터지듯 아져 나왔다.
그것은 끔찍하게도 만능야제의 팔만사천 모공으로부터 선혈을 흐르게 만들었다.
만능야제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절망의 빛을 띄웠다.
'크... 끝장이다. 패왕궁의 초강자들인 지욕십제까지 대동했을 줄은 몰랐다.
지옥만리추 한 명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지옥십제가 이루고 있는 진세 밖을 주시했다.
"...!"
그곳에는 달빛 아래 전신이 비쩍 마른 한 명의 괴인이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우뚝 서 있었다.
지옥만리추, 바로 그였다.
만능야제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질끈 입술을 악물었다.
"녠! 오냐, 지옥에 가더라도 혼자 가지는 않겠다!"
그는 비장한 안색으로 최후의 공세를 준비했다.
그의 몸에는 일천 종의 암기와 화기까 숨겨져 있다.
만능야제는 그것으로 일신에 백 장을 초토화시킬 마지막 공세를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
더 이상 소란을 부려 내내의 잠을 깨운다면 누구도 나의 손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팽팽한 긴장감이 깔린 장내에 갑자기 묵직한 음성이 울려퍼졌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그로 인해 찬물이 끼얹어지듯 단번에 깨지고 말았다.
"엇!"
"캇! 어떤 미친 놈이냐?"
지옥십제는 일시에 공세를 멈추며 허공을 주시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청년이 허공에 둥실 뜬 채 장내를 내려다 보고있었다.
물론 그는 군검풍이었다.
그를 발견한 지옥십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크카캇, 미친 놈이로군! 감히 우리 지옥군단의 일에 끼어들다니..!"
"캇! 저놈부터 육시를 내고 만능야제의 목을 따자!"
우르르... 츠츠...!
그들은 흉흉한 기세로 광소를 터뜨리며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라 군검풍을 포위했다.
콰콰콰!
삽시에, 허공 백 장이 그들이 일으킨 가공할 지옥마강(地獄魔剛)으로 뒤덮였다.
그것은 금강지체라 할지라도 단번에 깨뜨릴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군검풍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죽음을 자초하다니...!"
그의 눈가로 일순 무서운 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츠으...!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데
한 가닥 섬전처럼 새파란 섬흔(閃痕)이 허공을 두동강 내버린 것이었다.
"케엑!"
"끄...악!"
목을 비틀어 짜는 듯한 참담한 비명이 터져오른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번쩍! 푸른 섬흔이 스치며 지옥십제는 일제히 몸이 두 동강나고 말았다.
그들은 선혈을 자욱하게 뿌리며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돌발적인 사태였다.
"저... 저럴 수가...!"
"...!"
이 뜻밖의 사건에 만능야제와 지옥만리추의 안색이 급변했다.
지옥십제는 개개인이 금강지체에 육박하며,
도검불침의 지옥강살(地獄剛煞)로 호신까지 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너무도 무기력하게 도륙당하고 말았으니 혼비백산할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경고는 한 번으로 족하다!"
스슥
이때, 군검풍이 허공을 밟으며 냉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앞으로 내려섰다.
쩌엉...!
그 즉시, 지옥만리추는 짊어지고 있던 도를 뽑아 군검풍과 마주섰다.
그의 도는 보기만해도 섬뜩한 핏빛이 흐르는 날이 좁고 긴 장도(長刀)였다.
-- 지옥혈전도(地獄血戰刀)!
그것은 마병보(魔兵譜) 서열 십 이위에 올라있는 절정마병이었다.
공력이 주입되면 도신으로부터 무서운 지옥혈강(地獄血 )이 일어나 무엇이든 베어버린다.
군검풍은 무심한 시선으로 지옥만리추를 주시했다.
"맞서겠단 것이오?"
지옥만리추는 물론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옥만리추다! 지옥제일전사이기도 하지. 어떤 경우든 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츠츠츠...!
음울한 냉갈과 함께 그의 지옥혈전도에서 핏빛의 도기가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그 섬뜩한 도기는 삽시에 주위 십 장을 뒤덮었다.
군검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냉담하게 말했다.
"좋소! 지옥도세(地獄刀勢)라면 상대해 줄만하군!"
이어, 그는 두 발을 정자로 벌려서며 오른쪽 손으로 불인(佛印)을 그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전신에서는 찬란하고 장엄한 불광이 일어났다.
그것을 본 만능야제의 시선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능마금강인(凌魔金剛印)! 불문에서 오백 년 이전에 식전된 항마절예가 나타나다니...!'
그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로 이때였다.
"지옥혈강뢰(地獄血 雷)!"
쩌...정!
지옥만리추의 지옥혈전도에서도 핏빛도강이 폭사되어 백 장을 휘말았다.
츠츠츠츳!
살벌하고 가공할 도세가 뇌전처럼 군검풍을 휩쓸어왔다.
그 와중을 뚫고 군검풍의 낭랑한 일성이 울려퍼졌다.
"능마... 금강인!"
꽈릉...!
그의 우수가 번개같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그와 동시에, 군검풍의 앞에 거대한 금강벽이 일어났다.
콰콰쾅!
천지를 박살낼 듯한 엄청난 굉음이 장내를 뒤집어 엎었다.
만능야제는 숨을 멈추며 장내의 결과를 주시했다.
"녠!"
지옥혈전도가 십여 장 밖으로 퉁겨지며
지옥만리추는 오공에서 선혈을 토하며 나뒹굴었다.
그는 가슴이 박살난 채 십 장 밖으로 퉁겨졌다.
"빌어먹을... 궁주만큼 강하다니...!"
쿵쿵...!
간신히 몸을 세운 지옥만리추는 무섭게 군검풍을 노려보며 입을 실룩거렸다.
그러다, 그는 고목이 넘어지듯 앞으로 쓰러졌다.
쿠웅...!
넘어지는 그의 등 위로 눈부신 월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며보고 있던 만능야제는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진 이 일련의 사태를 직접 목격하고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신인(神人)이다.
천하의 지옥만리추를 단 일초만에 패퇴시킬 수 있는 초강자가 있다니...!'
그는 그만 망연자실해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경이의 시선으로 군검풍을 자세히 주시했다.
달빛 속에 천신인 듯 우뚝 서 있는 군검풍의 모습은 당당하고도 늠연해 보였다.
이윽고, 놀라움을 추스린 만능야제는 황망히 전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감사하오. 노부 만능야제 잠야흔, 구명지은은 잊지 않겠소!"
"만능야제 잠야흔...!"
군검풍의 두 눈이 신광으로 번쩍 빛났다.
그는 문득 만능야제를 향해 물었다.
"귀공... 이것이 무엇인지 아오?"
그는 슬쩍 우수를 들어보였다.
그의 우수에는 어느새 하나의 옥패가 들려있었다.
-- 제왕부(帝王符).
그것은 바로 십절천마후(十絶天魔后)가 군검풍에게 준 세 가지 선물 중 하나였다.
천하 최대의 조직 제왕맹,
제왕부는 바로 그 제왕맹의 지존을 상징하는 제왕지존(帝王之尊)의 표식이었다.
군검풍이 내민 제왕부를 본 만능야제는 그만 안색이 홱 변하고 말았다.
"제... 왕부...!"
그는 벼락을 맞은 듯 신형을 휘청거렸다.
"아아... 제왕지존(帝王至尊)이십니까?"
털...썩!
그는 격동의 음성으로 부르짖으며 그대로 군검풍의 앞에 오체복지했다.
"제왕맹(帝王盟) 막하 야황종사(夜皇宗師) 만능야제, 삼가 제왕지존을 알현하나이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외치며 감히 고개 조차 들지 못했다.
군검풍은 절대복종의 표하는 만능야제의 모습에 내심 고소를 지었다.
'제왕부에 이런 지고무상한 권위가 있다니 놀랍군.
십절천마후에게 감사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군.'
이어, 그는 오체복지한 만능야제를 바라보며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과례는 부담스럽소. 일어나시오!"
"조... 존명!"
만능야제는 대사면이라도 받은 듯 황송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이야기 하기에 적당치 않소. 따라오시오!"
군검풍은 몸을 돌려 한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그의 모습은 수십 장 밖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만능야제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제... 제왕지존으로 손색이 없으신 분이다.
아아... 제왕맹의 영광이 이백년 만에 다시 재현되리라!'
그는 군검풍을 따라가는 것 조차 잊고 격동과 희열을 금치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감회의 빛이 가득 떠올랐다.
"어서 오지 않고 무얼하시오?"
이때, 삼백 장 밖에서 군검풍이 만능야제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제서야 만능야제는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예... 옛! 갑니다, 지존!"
스슥!
그는 황망히 몸을 띄우며 최고의 속도를 발휘하여 군검풍을 향해 날아갔다.
장내는 다시 적막속에 빠져들었다.
달빛만이 무심히 피비린내나는 장내를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나직한 신음이 장내를 울렸다.
"으... 제왕지존...!"
놀랍게도 죽은 줄 알았던 지옥만리추가 몸을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다고 하지만 이미 산목숨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은 무참하게 박살나 늑골이 다 드러나 보였다.
그는 사색이 완연한 얼굴로 군검풍이 사라진 쪽을 주시했다.
"무... 무서운 자가 나타났다. 마종대형(魔宗大兄)께... 알려야 한다...!"
그의 두 눈은 온통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이어, 그는 힘겹게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복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왕맹(帝王盟)>
십패천의 일파로 꼽히는 제왕맹은 무려 백만명의 맹도를 거느린 지상 최대의 조직이었다.
그들은 바로 이백 년 전 십지무련을 뛰쳐나온 십절천마후가
천하를 제패할 목적으로 사파와 흑도를 규합하여 만든 조직인 것이다.
비록 십절천마후가 비황천도종의 암산에 빠져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나
제왕맹은 무서운 생명력으로 이백년동안 그 힘을 확장시켜온 것이다.
이 제왕맹은 크게 일비궁(一秘宮), 구류(九流), 삼밀부(三密府),
백팔전단(百八戰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일비궁 여제천궁(女帝天宮).
일천 명의 초강여인고들로 구성된 제왕맹의 중추다.
십절천마후는 자신이 여인이라는 사실을 오시하고
맹의 상징적 중추를 여인군단으로 구성했던 것이다.
궁주는 바로 여제천모(女帝天母)라 불리는 상징적인 존재로써
그녀는 언제고 나타날 제왕지존을 대리하여 제왕맹을 통솔해 왔다.
현재의 여제천모 지위는 십절천마후 오대사손(五代師孫)이 맡고 있었다.
-- 구류.
달리 개세제왕구천류(蓋世帝王九天流)라 불리며
제왕맹의 근간을 이루는 구대세력을 일컫는다.
각기 십패천에 버금가는 조직과 저력을 가진 아홉 개 거파가
십절천마후에게 정복당해 제왕맹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공령도수종(空靈桃帥宗).
천추녹림맹(千抽錄林盟).
무영인자단(無影刃刺團).
흑도(黑道) 팔황철기대(八荒鐵旗隊).
천애낭인사(天崖浪人社).
무적천병단(無敵天兵團).
신주표풍호화련(神州飄風護華聯).
거녀성(巨女城).
쾌활림(快活林).
대정팔극세와 십패천를 제외한 그 어떤 세력에도 뒤지지 않는 초강구파,
이들이 바로 개세제왕구천류이다.
-- 삼대밀부.
조직과 규모, 위치 등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있는 십절천마후의 친위대다!
그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십절천마후의 신물인 제왕부(帝王符) 뿐이었다.
삼밀부에 대해 알려진 것은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의 칭호로 불려진다는 것 뿐이었다.
제왕맹 내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공포스러운 조직, 그것이 바로 삼밀부였다.
-- 제왕백팔전단.
구주팔황의 종횡으로 이어진 백팔요로에 위치한 백만전단을 일컫는다.
그 지휘는 무적천병단주(無敵天兵團主)와 팔황철기대주(八荒鐵旗隊主)가 맡고 있었다.
하지만 백팔전단을 모두 음직일 수 있는 것은 역시 제왕부 뿐이었다.
무적천병단주나 팔황철기대주의 권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단의 수는
불과 십팔 개 전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것만으로도 능히 십패천의 일파와 자웅을 결할 수 있을 정도이니
가히 지상최대, 최강의 조직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왕맹에 언제부터인가 암운이 끼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곧 천지대풍운(天地大風雲)으로 시작된다.
대파산(大巴山)-!
사천성(四川省)과 호붓성(湖北省)을 비스듬히 경계지는 천험의 험산이다.
그 대파산의 웅장한 산 그늘 아래 울창한 풍림(楓林)이 수십리에 걸쳐 펼쳐진 곳이 있다.
그 울창한 풍림 가운데 에는 한 채의 고통스런 장원이 자리하고 있다.
<은황장(隱皇莊)>
이것이 장원의 이름이었다.
이 장원은 누가, 언제 세웠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알려진것이 있다면 은황장의 주인이
은황대야(隱皇大爺)라는 노문사(老文士)라는 것 뿐이었다.
은황장의 후원.
풍림에 둘러싸인 한 채의 전각이 그림처럼 세워져 있었다.
-- 은천각(隱天各).
전각의 편루에는 이런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전각의 창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그 창가에 한 명의 청년이 서있었다.
그는 멀리 대파산역의 신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소매 넓은 흑삼을 걸친 미안의 장발청년, 그는 바로 군검풍이었다.
군검풍은 창밖에 시선을 둔 채 담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능야제! 그도 대단한 노인네임에는 틀림없다.
제왕성의 코밑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장원을 갖고 있다니...!"
그가 있는 이곳 은황장은 만능야제 소유의 일천 개 장원 중 하나였다.
제왕맹 내에서 누구도 이 은황장이 만능야제의 소유임을 알지 못한다.
"저 너머에 제왕맹의 총단 십천제왕성(十天帝王城)이 있단 말이지!"
군검풍은 멀리 동편 능선을 주시했다.
그 너머, 장강(長江)에 접한 수천만 평의 비밀스런 분지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바로 제왕맹의 총단 십천제왕맹이 자리하고 있었다.
십천제왕맹은 사실상 여제천궁(女帝天宮)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다.
십천제왕맹 전체가 여제천궁의 관할하에 있으며,
개세제왕구천류에 배당된 아홉 개 장원이 있으나 그곳에는
개세제왕구천류의 소종사들이 약간의 시위들을 거느리고 파견나와 있을 뿐이었다.
개세왕구천류는 각기 천하각지의 관할구역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리맹주인 여제천모(女帝天母)나 십절천마후의 신물인
제왕부(帝王符)의 호출이 있을 시만 십천제왕맹으로 집결할 뿐이었다.
군검풍은 두 눈을 유현하게 빛내며 나직히 독백했다.
"만능야제의 보고대로라면 여제천궁은 이미 외력(外力)에 정복당한 상태다.
사태는 의외로 심각한지도 모른다."
열흘 전, 만능야제는 한 장의 밀지를 받았다.
-- 도와줘요.
기이하게도 밀지에는 이 한마디만 적혀 있었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밀지였다.
그러나, 만능야제는 이내 그것이 누가 보낸 것인지 알고 전율했다.
밀지에는 특이한 울향이 베어 있었는데 그것이 당대 여제천모인
자벽신후(紫碧神后) 나후란(羅侯蘭)이 애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만능여제는 여제천모에게 어떤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것을 느낀 순간 그는 단신으로 십천제왕맹에 잠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제압당한 일천여제군단과 상상을 불허하는 일만의 초강자들이었다.
만능야제는 나후란에게 채 접근해 보지도 못하고 발각되어 무참하게 요격당해야만 했다.
군검풍은 시선을 동편 능선에 둔 채 다시 중얼거렸다.
"이제 적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그 목적은 확연해졌다.
여제신전(女帝神箭)을 내려 구류종사(九流宗師)들을 호출한 후
그들을 일거에 제압하여 제왕맹을 통째로 집어 삼키려는 것이다!"
그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후훗!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왕맹은 많지 않은 나의 소유물 중의 하나다.
그것을 약탈하려는 자는 누구라도 용서치 않겠다!"
이어, 그는 시선을 좌측 화원으로 향했다.
"호호... 까르르...!"
한 명의 피의소녀가 화려한 금빛깃의 극락조와 어울려
화원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소녀는 바로 내내였다.
군검풍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어차피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운명을 지닌 바람이다.
그 때문에 십천제왕성은... 귀여운 내내의 것이 되리라!"
그는 티없이 밝고 아름다운 내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때였다.
"지존!"
극히 공손한 음성이 군검풍의 뒤에서 들렸다.
"잠노, 어서 오시오!"
군검풍은 빙글 돌아섰다.
문 가에 만능야제 잠야흔이 부복하고 있었다.
군검풍은 그를 향해 물었다.
"구류종사들은 어떻게 되었소?"
"여제신전을 받은 그들은 아무 의심없이 이백 리 안까지 접근하고 있습니다.
"흠...!"
"어찌 할까요? 경고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군검풍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
팔대종사 중 암중세력에 포섭된자 가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오."
"아...!"
만능야제의 안색이 일변했다.
'역시 지존이시다!'
그는 내심 감탄의 탄성을 발했다.
문득, 군검풍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잠노, 제왕령(帝王令)을 빨리도 전했구료."
"옛?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능야제는 그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군검풍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만능야제의 뒤를 향해 담담한 음성으로 외쳤다.
"왔으면 보고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그러자, 한 줄기 서늘한 음성이 만능야제의 뒤에서 들려왔다.
"귀하가 제왕부를 발동하여 삼대밀부를 호출했소?"
"헉!"
뒤를 돌아 보던 만능야제의 안색이 대변했다.
언제 나타났을까?
전신에 혈포를 두른 한 명의 괴인이 장창(長槍)을 비껴든 채 유령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무섭게 빛나고 있었으며 전신에서는 숨막힐 듯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검풍은 극히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천(天), 지(地), 인(人)중 어디서 왔는가?"
그는 만능야제에게 제왕부를 주어 삼대밀부의 부주들을 호출한 것이었다.
혈포괴인은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인황밀부(人皇密府) 일천호황전사대(一千護皇戰士隊)의 대주(隊主)
혈전인황(血戰人皇)이오!"
듣고있던 만능야제는 그의 불손한 어투에 대뜸 눈을 부릅뜨며 노갈을 내질렀다.
"나? 감히 지존께 불경하다니...!"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환술사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이목을속이고 접근한 혈전인황에게
그는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
게다가, 그가 군검풍에게마저 불경하자 마침내 대노한 것이었다.
하지만 혈전인황은 만능야제의 개입을 허용치 않았다.
"귀하를 보러 오지 않았소, 만능야제!"
그는 칼로 자르듯 말하며 싸늘하게 만능야제를 노려보았다.
"무... 무어라고?"
만능야제는 오공에서 연기가 날 만큼 대노했다.
그러나 이때, 군검풍이 손을 저어 그를 진정시켰다.
"잠노, 그만두게! 저 친구에게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모양이오."
그러자, 혈전인황은 여전히 무심하고 싸늘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렇소! 우리 삼대밀부의 부주들은
단지 제왕부를 지녔다는 사실만으로는 지존으로 인정할 수 없소!"
"흠... 시험을 거쳐야 한단 말이군?"
군검풍은 검미를 모으며 혈전인황을 바라보았다.
혈전인황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천지인(天地人) 심대밀부주의 합벽진세를
백초 이내에 깨어야 지존으로 인정받을 수 있소.
그 전까지는 지존으로 인정치 못하니 불경을 용서하시오!"
그 말에 군검풍은 담담하게 미소지었다.
"그것이 규칙이라면 지켜야겠지."
이어, 그는 스스로 앞장서 은황각을 걸어나갔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며 그는 허공에 대고 외쳤다.
"자, 그대들도 나오시지. 천부주(天府主)! 지부주(地府主)!"
과연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두 마디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직은 지존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용서하시오!"
"삼재합벽대천강벽(三才合壁大天 壁)을 백 초 이내에 깨셔야 하오!
그리하면 곧 바로 경배드릴 것이오."
스스슥! 휙!
문득, 하늘(天)과 땅(地)에서 이 인(二人)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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