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폭풍세가

제13장 고도(孤島)의 괴인(怪人)

오늘의 쉼터 2014. 9. 30. 15:58

제13고도(孤島)의 괴인(怪人)


 

 

콰콰... 콰르륵!
천풍사랑의 편주(片舟) 충돌하여 선수가 박살난 독황대선은 전체가 기우뚱하며 균형을 잃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앞쪽으로부터 침몰하기 시작했다.
"군검풍! 죽어 주어야겠다!"
그 사이 허공으로 치솟았던 천풍사랑이 천가닥 만가닥의 검기를 일으키며 군검풍과 백옥상을

휘쓸어왔다.
"감히...!"
백옥상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뒤쪽의 자면신장에게 군검풍을 떠밀었다.
그녀는 군검풍을 자면신장에게 맡김과 동시에 벽붕단천검을 안고 훌쩍날아올랐다.
카캉!
한 순간, 회색의 검기와 벽색의 검기가 충돌하여 허공에 찬연한 불꽃을 일으켰다.
스슥! 화라락!
한 차례 격돌을 일으킨 두 여인은 다시 침몰하는 독황대선의 돛대 위로 내려섰다.


"과연... 천풍사랑답구나!"
일검을 교환하고 천풍사랑과 마주 선 백옥상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 일전으로 인해 백옥상의 고운 얼굴에는 한 가닥 검흔이 선명하게 그어져있었다.
그리고 천풍사랑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그녀는 벽붕단천검의 벽붕검강(碧鵬劍剛剛)에 내부가 진동되어 입가로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백옥상은 두 눈에 무서운 살기를 띄우며 외쳤다.
"누가 시켰느냐? 사사독종 사부와 독황야를 시해하라고 사주한 자가 누구냐?"
그녀는 천겹 만겹의 벽붕천강을 일으키며 무섭게 천풍사랑을 노려보았다.
분노와 원한으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그녀의 눈빛은

보는 것 만으로도 상대를 질식시킬 듯 했다.
하지만 천풍사랑은 여전히 표정 한 점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지극히 무심하고 음울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알 것... 없다 벽안신녀!"
그녀의 대답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츠으...!
그녀는 괴검을 쳐들며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런 그녀의 전신으로 문득 은은한 월광(月光)이 흘렀다.
그 달무리같은 광채를 본 백옥상은 깜짝 놀랐다.
"월영강살(月影剛煞)! 너...는 월영살막(月影殺幕)에서 왔구나!"
그녀의 옥용이 경악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 월영살막(月影殺幕).


그들은 십패천의 일파로, 십지마련을 이루던 십지마맥중 월영마맥(月影魔脈)의 변신이었다.
한 번도 그 전모가 들어난 적이 없는 공포의 살수집단으로서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 조직과 규모, 위치등이 모두 신비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월영강살-!
천풍사랑의 몸에서 번져나온 달무리같은 광채는 바로 월영살막의 비전살법인 월영강살이었다.
"알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았다, 벽안신녀!"
천풍사랑의 입에서 갑자기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냉갈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음성에는 전에없이 섬뜩한 살기가 칼날같이 서려있었다.
츠으... 우르르...!
그녀가 한차례 몸을 흔들자 가공할 달빛이 수십장을 내뻗혀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다.

실로 공포스럽고도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읏! 벽붕등천무(碧鵬騰天舞)!"
백옥상도 일신의 벽붕천강을 전부 일으켜 벽붕단천검을 내쳤다.

비록 나이는 젊으나 절정의 경지에 이른 두 여고수가 혼신의 힘을 다 발휘하여 격돌한 것이다.
다음 순간,
콰쾅! 쩌저정!
천마근의 암경을 실은 두자루의 검이 충돌하며

천지가 폭발하는 듯한 가공할 굉음이 짖터져 올랐다.
바다는 그 엄청난 여파에 직접적으로 휩쓸렸다.
우르릉...콰쾅...!
두 여인의 검신에서 터져나온 막강한 암경으로 인해

거창한 돌풍이 일어나고 가뜩이나 파도가 거세던 해면에 거창한 해일이 확 치솟아 올라

사위의 모든 것을 뒤덮여 버렸다.
다량의 화약의 폭발로 선수가 깨진 채 침몰하고 있던 독황대선으로서는
감당 할 수 없는 해일이었다.
"독황야!"
"대려... 조심하시오!"
독황대선이 굉음을 내며 부서져 해일속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군검풍과 백옥상의 서로를 걱정하는 다급한 외침이 엇갈려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콰쾅! 콰콰... 콰르르...!
뒤미쳐 불어온 거대한 폭풍은 삽시에 바다와 하늘의 모든 것을 뒤덮어
혼돈지경으로 휘몰아 넣어 버렸다.
모든 것은 그 속으로 사라져 버린 듯 했다.

성난 남해 바다는 가공할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것은 분명 바다였다.

하지만 참으로 이상한 바다였다.

바닷물은 진창인 듯 걸죽했다.

그리고, 주위로는 칙칙하고 기분 나쁜 안개가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스물스물 흐르고 있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아니, 스산하고 적막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는 온통 죽음의 흔적만이 널려있을 뿐이었다.
거대한 고래와 상어, 초어 등의 골격들이 회색으로 퇴색되어

진창의 바다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또 있었다.
스으... 스으...!
안개의 저편에 무엇인가 음산한 하나의 그림자가 보였다.
놀랍게도 그것은 하나의 섬이었다.
전체가 황량한 돌더미로 이루어진 돌섬(石島)은

금방이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듯 음산하고 삭막해 보였다.
그런데, 그 섬에도 살아있는 것이 있었다.

주위의 음산한 적막을 깨고 한소리 나직한 청년의 음성이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이상한 곳에 와버렸군."
촤...아!
이어 진창의 바다가 쩍 갈라지며 그 속에서 한 명의 청년이 나타났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장발에 꾀죄죄하게 더럽혀진 용모를 지닌 청년.

그는 기이하게도 바닷물을 접근 하지 못하게 하는 벽색의 피풍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청년은 물로 군검풍이었다.
"벽안신녀는 무사한지 모르겠군."
그는 침울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석섬의 해안으로 올라왔다.

해안이라고는 하지만 그곳은 상어와 고래뼈가 파도에 실려

저절로 쌓여진 골격의 둔덕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다행히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을 면하기는 했지만...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있어야지."
군검풍은 주위를 둘러보며 난감한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크녠! 또 한 놈이 죽으려고 왔군."
어디선가 사위를 진동시키는 웅혼한 목소리가 군검풍의 귓전을 때렸다.
"...!"
군검풍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는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예의 일성에는 해일 같은 음파가 실려있어 도무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사람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는 놀라움과 함께 경이와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우선 들끓는 기혈을 누르며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귀하는 어디에 계시오?"
"녠! 귀하라고? 건방진 꼬마놈이군!"
예의 기괴한 음성이 다시 들림과 함께,
우르르르!
웅후하고 막강한 장력이 다시 일천 장 저쪽에서 날아와 군검풍의 몸을 휘감았다.
"웃!"
군검풍은 신형을 휘청했다.

그는 경악하며 다급히 천근추의 공력을 일으켜 몸을 바로 세우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쿠와!
군검풍은 그대로 정체불명의 괴인이 내친 장력에 휘말려 까마득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무려 일천 장 밖에서 이런 거력을 일으키다니...!'
그는 장력에 휘말려 가면서도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사이 그는 백 장의 석벽을 넘어 전면의 까마득히 치솟은 또 다른 석벽으로 이끌려갔다.
그 석벽은 생김새부터도 음산하고 기괴하여 흡사 유부(幽府)의 입구를 보는 듯 했다.
콰르릉...쿵!
군검풍은 괴인의 막강한 장력에 의해 석벽 앞에

웅크린 검붉은 바위에 내동댕이 쳐지듯 떨어졌다.
"손속이 너무 거칠구료!"
군검풍은 고소를 지으며 몸을 털고 일어섰다.
"녠! 사해지존(四海至尊) 융해(隆海)란 놈이 보냈느냐?

너보고 사라옥정(沙羅玉鼎)을 훔쳐오라고 시켰겠지?"
재차 괴인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군검풍의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렸다.
"...!"
군검풍은 흠칫하며 위를 올려다 보았다.

다음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괴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그 절벽 가운데, 섬뜩하고 시퍼런 한쌍의 불덩이가 군검풍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군검풍은 움찔했으나 이내 태연한 신색을 회복했다.
"사해지존 융해라니 그가 누구요? 사라옥정은 또 무엇이오?"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만면에 의아한 빛을 떠올렸다.
팔장을 끼고 우뚝선 그는 절벽 가운데

휘황하게 빛나고 있는 한 쌍의 불덩이를 노려보았다.

시퍼런 광채를 발하는 한쌍의 불덩이는 다름아닌 사람의 눈이었던 것이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절벽의 중앙에는 전신이 섬뜩한 청모(靑毛)로 뒤덮인 한 명의 거인이

사지를 벌린 채 묶여 있었던 것이다.
전신이 시커먼 쇠사슬에 휘감긴 채 석벽에 묶여있는 괴인의 모습은

실로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산발하여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이 괴인의 안면을 뒤덮고 있어

그의 용모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장대한 체구에 온 몸이 무성한 털로 뒤덮여 있어 사람의 몰골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괴인의 끔찍한 모습을 확인한 군검풍은 별로 놀라는 기색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미간을 찡그렸을 뿐이었다.
"귀하는 무엇인가 오해하고 있소.

나는 풍랑을 만나 타고 오던 배가 침몰되어 이곳에 왔을 뿐이오!"
그는 전후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괴인의 안면근육이 한 차례 씰룩거렸다.
"캇캇! 사해지존 융해, 그 못된 놈이 보낸 것이 아니라고?"
"믿고 말고는 귀하의 자유요.

그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통성명이나 하는 것이 어떻소?

소생은 군검풍이라 하오!"
군검풍은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말했다.
"...!"
군검풍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괴인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으음... 정말 융해가 보낸 놈이 아니란 말인가?'
그는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녠! 좋다. 곧 죽을 놈이니 알려주지. 본인은 만수종(萬水宗) 해극패(海極覇)라 한다!"
"만수종 해극패?"
"녠녠! 그렇다! 노부가 저 해천패왕맹(海天覇王盟)의 맹주다.

만해(萬海)의 제왕인 노부를 모른단 말이냐?"
군검풍이 의혹의 표정을 짓자 만수종은 자부심이 가득한 어조로 이렇게 설명까지 덧붙였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자부심은 가차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유감이지만 전혀 들어보지 못했소."
군검풍이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뭐...뭐라고?"
만수종 해극패의 두 눈이 무섭게 부릅떠지며 전신의 청색 털이 곤두섰다.


-- 만수종(萬水宗) 해극패(海極覇)!


그는 백 년 전부터 이미 신화적인 존재로 알려진 수로(水路)의 제왕이었다.

만수(萬水)의 종사(宗師)라는 이름 그대로 천하 어느 곳이라도 물이있는 곳이면 그가 있었다.
사해오호(四海五湖), 황하와 장강의 양대하(兩大河), 백팔대천(百八大川),
그리고, 북해의 오지나 사막의 유하(流河)에 까지도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는 진실로 수로(水路)의 영웅이었다.

사상초유의 초거대 수로연맹인 해천패왕맹(海天覇王盟)을 결성한 장본인이 바로 그인 것이다.

그러나 구천마야 독고가 등장으로 그의 신화는 끝났다.
만수종 해극패는 구천마야와 맞서서 일주일야의 격렬한 싸움 끝에

마침내 패퇴하여 실종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런 남해의 오지에 묶여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는 사실이었다.


만수종 해극패는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군검풍의 태도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콰콰...!
일순 그의 전신에서 무서운 청강이 해일 같이 일어나며 군검풍의 전신을 뒤덮었다.
"녠! 발칙한 놈! 오랜만에 만난 놈이라 크게 선심써서 살려 줄까도 생각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당장 피곤죽을 내고 말겠다!"
해극패는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잡아먹을 듯 군검풍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군검풍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는 불사정수를 복용하여 얻은 불사강기의 힘으로 해극패의 청강을 막아내며 천천히 일어섰다.
"잘 생각해 보고 손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는 의미심장한 음성으로 말하며 해극패를 장면으로 직시했다.
"귀공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 갇혀 있는지는 모르지만 소생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끙...!"
그 말에 괴기스러운 해극패의 청색 눈동자가 흔들림을 보였다.

그는 군검풍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여나 하는 한 가닥 기대감이 없진 않았다.

그런 기대마저 버리기엔 그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금제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잠시 갈등을 겪던 해극패는 마침내 마음을 바꾸어 먹기로 했다.

그가 생각을 바꾸는 순간, 그의 전신에서 일어나던 살인적인 강풍은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그제서야 군검풍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했다. 저 괴인은 십절천마후에 못지않은 초강자다.

끝까지 그가 살심을 거두지 않았다면 맞설 수도 없었으리라!'
그의 등 뒤로 축축한 식은땀이 배어 흘렀다.

실로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지극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끝까지 태연을 가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 이야기나 좀 들어봅시다. 귀공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으며,

사해지존 융해란 자는 또 누군지 궁금해지는구료!"
"으음... 네놈은 예삿놈이 아니군."
군검풍을 내려다보는 해극패의 시선이 또 다시 흔들림을 보였다.

그제서야 그는 군검풍의 일신에서 흐르는

추정하기 조차 힘든 거대한 잠력을 발견하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사십여년전,
당당한 수로(水路)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만수종 해극패였다.

그는 평생 패배란 것을 모르고 지내왔던 자타가 공인하는 무적의 제왕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참담한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그에게 쓰라린 패배의 치욕을 안겨준 장본인은 바로 구천마야였다.

구천마야는 나날이 욱일승천하던 해천패왕맹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리고 만 것이었다.
해천패왕맹의 일천전사는 구천마야와 끝까지 맞서 싸웠다.

하지만 그들은 일주일 만에 전멸하고 말았다.
만수종 해극패 조차 구천마야와의 대격전에서 일천초만에 완패를 당했다.
비록 구천마야와 일천초를 맞섰다고는 하지만

당시 구천마야는 일천수로종사(一千水路宗師)와 싸운 뒤였기에

평소 내공의 오할은 격감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수종은 구천마야에게 여지없이 참패를 당하고 만것이었다.

그것은 만수종에게 있어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패배의 치욕과 참담함, 그리고 좌절감을 느낀 만수종.

그는 복수의 일념을 품고 남해로 왔다.
남해에는 천 년을 떠도는 전설(傳說)이 한 가지 있었는데

만수종은 바로 그 전설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것은 남해의 무명고도에서 두 명의 절대자가 서로 치열한 비무 끝에 동귀어진하여

자신들의 절기를 그 고도에 남기고 죽었다는 전설이었다.


-사라천존(沙羅天尊) 북궁후량(北宮厚亮).
-만독태야(萬毒太爺) 갈천후(葛天吼).


이들이 그 두 명의 절대자들이었다.
사라천존 북궁후량은 변황십팔패세(邊荒十八覇勢) 중 일패세이며

저 적붕존성(赤鵬尊城)에 버금가던 서역의 거파 사라천궁(沙羅天宮)의 종사였다.
그리고 만독태야 갈천후는 십지마련의 십대마맥 중 사독마맥(死毒魔脈)의 제팔대 종사였다.

또한 그는 사독마맥 사상 최강자로 불리던 인물이기도했다.
사라천존과 만독태야.
그들은 남해 어딘가에 있다는 절대독종(絶大毒宗)의 전설을 찾아 왔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들은 동시에 절대독종이 남긴 천고기연과 조우하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절대독종의 기연을 놓고 일대 결전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그들은 양패구상했다. 둘 다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것이었다.
그들은 결과를 시인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최후의 순간, 의기가 투합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절기를 그 절해고도에 남기고 죽었다.

만수종 해극패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일단락되었다.

 

이야기를 듣고난 군검풍은 검미를 모으며 내심 생각을 굴렸다.
'멸신천황도! 설마... 독황연(毒皇淵)이란 곳이 있다는 멸신천황도가 이곳이란 말인가?'
이때 만수종 해극패가 흉흉한 눈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남해를 뒤지다 노부는 천신만고 끝에 이곳 사라마벽(沙羅魔壁) 아래에서
사라천존 북궁후량이 남긴 기연을 얻게 되었다."
군검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뜻을 이루셨구료.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셨습니까?"
그는 궁금한 표정으로 해극패의 대답을 기다렸다.

해극패는 그의 물음에 무서운 살광을 폭사하며 거칠게 이를 갈았다.
"사라천존이 남긴 절기를 얻고 기뻐하던 노부는

한 놈 쥐새끼의 돌연한 기습에 제압당해 이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돌이켜 보기조차 싫은 듯 괴롭게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군검풍은 그 효웅이 누구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사해지존 융해였군요."
"으득! 그렇다! 바로 그 찢어죽일 놈이다."


-- 사해지존(四海至尊) 융해.


그는 해천패왕맹의 제 이인자인 인물이었다.
본시 북해 사해천궁(四海天宮)의 후예이던 그는 해극패의 위명을 듣고 그의 휘하에 복속했다.
그러나 그가 해극패의 수하에 든 목적은 따로 있었다.

복속했다고는 하지만 해극패의 위명과 그가 세운 해천패왕맹의 조직을 이용하여

천하를 재패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극패가 구천마야에게 패퇴하여  사라천존과

만독태야의 기연을 얻기 위해 남해로 떠나자 사해지존은 즉시 해극패를 암중미행했다.
그리고 해극패가 사라지존의 기연을 얻은 직후 기습하여 제압한 것이었다.
해극패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대라철삭(大羅鐵索)으로 석벽에 묶여 있었다.
물론 그가 얻었던 사라이보(沙羅二寶)는 이미 사해지존의 손에 들어간 상태였다.
본래 사라천존 북궁후량은 사라천궁 비전의 사라삼보를 남겼다.


-사라진경(沙羅眞經).
-사라천강도(沙羅天剛刀).
-사라옥정(沙羅玉鼎).


그것이 바로 사라삼보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라옥정이었다.

그것은 곧 사라천궁의 종사령(宗師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중에는 사라천궁에서 천여년간 전해오던 절세비약이 들어 있었다.

사라옥정안에는 장생불사의 공효를 지닌 만년옥정(萬年玉精)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해극패는 사라진경과 사라천강도는 얻었으나

사라옥정은 얻지못한 상태에서 사해지존에게 암습 당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해지존은 해극패에게 사라옥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 해극패가 그것을 얻지 못한 것을 알게 되자

사라지존은 당장 해극패를 죽이려 했다.


해극해는 시퍼런 두 눈에 원한의 광망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녠! 그때 마신(魔神)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노부는 융해 그 놈에게 죽고 말았을 것이다."
"마신?"
군검풍은 의아한 눈빛으로 해극패를 올려다 보았다.
"녠! 보고 싶으냐?"
"그렇소! 그 마신이란 분은 어디 계시오?"
군검풍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자 해극패는 기괴한 눈빛으로 건조하게 웃었다.
"녠녠! 네놈 애송이가 깔고 있지 않느냐?"
"옛?"
군검풍은 영문을 몰라 눈을 크게 떴다.

바로 그때였다.
크...긍!
갑자기 지옥아수라의 울부짖음 같은 섬칫한 괴성이 군검풍의 귓전을 흔들었다.

이어, 실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쿠르르...!
믿을 수 없게도 군검풍이 앉아있던 바위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어엇!"
군검풍은 아연실색하며 신음을 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검풍이 바위인줄 알고 주저앉았던 괴물체는

믿을 수 없게도 거대한 한 마리 괴룡(怪龍)이었던 것이다.
그놈은 몸의 크기만도 무려 십 장에 달했다.

몸의 양쪽으 로 거대한 날개를 지녔으며, 이마에는 일 장 크기의 독각(獨角)이 달린 거룡이었다.
괴물을 본 군검풍은 아연하여 나직이 부르짖었다.
"융천신마룡(隆天神魔龍)! 이것이 마신이오?"


-- 융천신마룡(隆天神魔龍)


그놈은 상고시대 하늘을 지배하던 일종의 익룡(翼龍)이었다.

한번 노하면 천지가 변색되는 가공할 괴력(怪力)을 지녔으며

전설 속의 벽력천붕(霹歷天鵬) 외에는 적수가 없다는 영물이다.
이때 벌떡 일어섰던 융천신마룡이 다시 나직한 괴성을 발하며 쭈그리고 앉았다.

그놈은 자기 이름이 거론되자 마치 인사치례를 차리려 했던 모양이었다.
해극패가 아직도 경악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군검풍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녠! 그놈은... 사라천존이 서역에서 타고온 마룡이다.

사라천존이 죽자 서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천년 동안 사라마벽 주위에 은둔하며

사라천존의 유해를 지켜왔다.

그러다가 위기의 순간 융해의 독수에서 노부를 구했던 것이다."
"아!"
"사해지존 융해가 사라이보를 들고 있자 마신은 융해가

자기의 주인인 사라천존의 유해를 해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 후 이놈이 백년 동안 노부를 먹여살리고 지켜왔다."
군검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융천신마룡을 바라보았다.
"인간보다 나은 친구로군요."
"그렇다. 저놈이 노부의 유일한 친구다."
군검풍은 문득 궁금한 빛을 띄우며 해극패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귀하의 실력으로는 그 대라철삭을 끊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지금껏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이오?"
해극패는 그 말에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대꾸했다.
"사라마벽의 후면에는 지심화맥(地心火脈)이 있다.

만일 노부가 대라철삭을 끊으면 화맥이 폭발하여 이 섬 자체가 함몰되고 만다."
군검풍은 비로소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해지존 융해라는 자는 정말 지독한 자군요!"
해극패는 두 눈에 줄기줄기 원한의 광망을 폭사하며 이를 갈았다.
"으득! 지심화맥을 끊어놓기 전에는 노부가 죽을 때까지 사라마벽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소?"
군검풍은 몸울 일으키며 정색하고 물었다.

그 말에 해극패는 안면근육을 실룩거렸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감격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노부를... 도와주겠느냐?"
군검풍은 싱긋 웃었다.
"후훗! 인상은 흉악해 보이나 노인장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으니
도와드리지 않을 수 없구료."
"이놈, 말은 똑바로 해라!"
해극패는 군검풍의 말에 갑자기 두 눈을 부라리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사실 말이지 노부가 사십 년 동안 묶여 있는 바람에 이렇게 보기싫은꼴이 된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한때는 천하계집들이 노부만보면 까무라쳤다."
"하하... 어련하시겠소."
군검풍은 실소를 발하다가 정색하며 물었다.
"자, 이제 후배가 어찌하면 되겠소?"
해극패도 안색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사라마벽 후면에 하나의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 끝에는 두 개의 구멍이있다.

그 중 하나가 지극화양혈(地極火陽血)이다.

그 지극화양혈을 무너뜨려 메우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요."
군검풍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자 해극패는 고개를 내저었다.
"녠! 얕보지 마라! 그 동굴에는 지살화기(地煞火氣)와 만독강살(萬毒 煞)이 흐르고 있다.

아마 네놈은 그곳에 접근하기도 전에 녹아버릴 것이다."
"지살화기... 만독강살?"
군검풍의 검미가 한 차례 꿈틀했다.
'그 동굴에... 독황연이란 곳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눈을 빛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때 해극패가 염려말라는 듯 득의의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녠! 그러나 걱정마라.

이것을 지니고 가면 지살화기나 만독강살이라도 너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콰...쾅!
갑자기 요란한 폭음과 함께 백 장 밖의 바위가 무형강력에 의해 무참히 박살났다.
그와 함께, 하나의 푸른 물체가 둥실 떠올라 군검풍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것은 반투명한 청옥(靑玉)으로 깎은 자그마한 솥(鼎)이었다.
"사라옥정!"
군검풍은 경이의 눈빛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해극패는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녠! 그렇다. 노부는 십여년 전 우연히 사라마벽에 감추어진 사라옥정을 얻었다."
군검풍은 경이의 표정으로 자신의 앞으로 날아드는 사라옥정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손바닥 두 개를 합친 정도 크기의 옥정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든 순간 말할 수 없이 청량한 기운이 군검풍의 전신을 휘감았다.
사라옥정의 표면에는 흐릿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름아닌 서역어(西域語)였다.
군검풍은 눈을 빛내며 서역어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사라청명강살(沙羅靑冥 煞)...!"


-- 사라청명강살(沙羅靑冥剛煞)!


사라천궁의 천 년 절기로, 그 누구도 이룬 적이 없다는 서역최강의 절예였다.
전신에 흐릿한 청기(靑氣)가 흐르는 순간

천 장내의 그 어떤 목표물도 정확히 박살내고 만다.
해극패는 십여년 전 우연히 사라옥정을 얻어

사라청명강살을 이미 절정까지 연마한 상태였다.

그로 인해 사십년 전보다 그는 세 배 이상 강해진것이었다.
해극패는 사라옥정을 보며 경이의 표정을 짓고 있는 군검풍에게 일러주었다.
"그 안에는 노부가 반쯤 남긴 만년옥정이 남아있다.

그것을 복용하면 지살화기와 만독강살을 견딜 수 있다."
"고맙소이다."
"녠! 노부가 할 소리를 네가 하면 어떡하느냐?"
"하하... 그렇구료!"
군검풍은 호쾌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윽고 해극패는 융천신마룡을 일견하며 말했다.
"마신이 천황마동(天荒魔洞)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융천신마룡이 거창한 용음을 토하며 떠올랐다.
"다시 뵙겠소이다!"
군검풍은 해극패를 향해 번쩍 손을 쳐들어 보였다.
"크녠! 오냐, 조심하거라!"
이윽고, 군검풍을 태운 융천신마룡은 벼락같이 날아올라 사라마벽의 후면으로 사라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해극패의 두 눈이 무섭도록 흉흉하게 번쩍였다.
"크크... 사해지존 융해, 이놈! 기다려라! 곧 모가지를 비틀어 주러 가겠다!"
그는 북쪽을 노려보며 살기등등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멸신천황도.
그곳은 공포와 죽음의 섬이었다.

섬 주위 백여 리에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멸신천황도의 주위 백리 해역에는 독장이 함유된 죽음의 안개가 흐르고있었다.

그 때문에, 멸신천황도의 주위에 생명을 가진 것은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명이라고는 그림자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섬,

멸실천황도에 하나의 거대한 괴룡이 나타났다.
바로 용천신마룡이었다.
콰드득...!
융천신마룡은 거대한 날개로 선풍을 일으키며

지옥의 입구같이 쩍 갈라진 단애로 끝없이 내려갔다.

군검풍은 용천신마룡의 등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독한 곳이다. 오백 장을 내려왔는데도 바닥이 보이지 않다니...!"
콰콰...!
단애 저 아래로부터 독기와 열기가 뒤섞인 강풍이 무서운 기세로 치솟아 올랐다.

군검풍은 그 광경에 절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라옥정이 없었다면 이 지옥강풍에 휘말려 재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다."
지옥강풍(地獄 風)-!
그것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지하만장의 지심화맥에서 이는 지옥화기(地獄火氣)와 천지(天地),

해(海)의 모든 독기가 모여 이루어진 유마독정이 합유된 강풍이었다.
설사 금강지체라 해도 녹여버릴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쿠쿠쿠...!
밑으로 내려감에 따라 양쪽의 단애가 점점 좁아졌다.

그와 비례하여 지옥 강풍도 더 거칠어졌다.

군검풍의 검미가 절로 지푸려졌다.
"견디기 어려울 것 같구나."
그는 벽붕천익으로 전신을 가리며 신음성을 발했다.

그의 영준한 얼굴은 지옥강풍의 열독에 의해 금방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군검풍은 입술을 굳게 물었다.
"만년옥정의 힘을 빌어야겠다."
쩡!
그는 떨리는 손길로 사라옥정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코끝으로 그윽하고 청정한 향기가 확 퍼져올랐다.
사라옥정 안에는 푸른빛의 옥액(玉液)이 반흡 정도 들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만년옥정이었다.
만년옥정은 만년한옥이 백만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저절로 생겨나는 희귀한 옥정이었다.

태산만한 양의 만년한옥이 세월에 녹아들면서

겨우 한홉 가량의 분량이 생겨나는 천고의 영약인 것이다.
이는 귀한 것인만큼 그 효과도 가히 무궁무진했다.

한 방울만 복용해도 만년빙굴에서 백 년을 참수해야 얻을 수 있는

빙백천강(氷魄天剛)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는 독기와 화기와는 극성이었다.

또한 군검풍이 복용한 불사용수(不死龍髓)와도 상극이었다.

하지만 군검풍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군검풍은 사라옥정을 내려다보며 잠시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선뜻 만년옥정을 복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니 마음에 걸리는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웬만하면 이것을 남겨 두었다가 허약해진 대려 누님을 드렸으면 좋겠다."
그는 병약한 누이 군대려를 떠올렸다.

언제나 그를 위해 헌신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녀에게

만년옥정을 준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선물이 될것이다.
하지만 군검풍은 오래 망설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의 전신은 이미 태울 듯한 열기와 독기로 불덩어리에 던져진 듯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는 사라옥정 속의 만년옥정을 단숨에 꿀꺽 마셔버렸다.
그러자,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싸늘한 냉기가 뼈마디를 비집고 솟아 올랐다.
"윽...!"
군검풍은 신음을 발하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지독한 냉기를 느끼는 대신 온 몸을 태울 듯한 열기와 독기는 삽시에 사라졌다.
"지독하군. 얼음을 삼킨 듯하니...!"
군검풍은 전신을 덜덜 떨며 혀를 내둘렀다.
콰콰...!
지옥강풍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거칠게 군검풍의 전신으로 짓쳐들었다.
하지만 실로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쩌정...!
군검풍의 전신에서는 반투명한 강풍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자, 지옥강풍은 그의 십 장내로 접근치 못하는 것이었다.


-- 빙백천강(氷魄天剛).


그것은 열(熱), 독(毒), 풍(風)과 극성인 빙문(氷門) 최고의 기예였다.
군검풍은 그 엄청난 기연을 아무 대가없이 연성한 것이었다.

향후, 그가 극음공력의 구결을 얻어 다스릴 수만 있으면

의지 하나로 능히 일천 장내의 모든 생명을 얼음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년옥정의 냉기는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군검풍은 뼈골이 얼어붙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콰콰콰... 고...오!
군검풍을 태운 융천신마룡의 발 아래로 용암이 흐르는 절애의 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절애의 한쪽으로 지옥의 입구 같은 거대한 동굴이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군검풍은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다왔군!"
그는 비로소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그는 신형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것은 그 한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태우고 있는 융천신마룡 또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놈은 엄청난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전신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군검풍이 사라옥정을 지닌 채 그놈의 등에 타고 있지 않았다면

융천신마룡은 이곳까지 내려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군검풍은 융천신마룡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견디기 힘들면 너는 노인장에게로 돌아가거라! 저곳에는 나 혼자 들어가겠다!"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융천신마룡의 등을 구르며 동혈로 날아올랐다.

그가 동혈로 날아드는 것을 확인한 융천신마룡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 낮은 울부짖음을 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오오...!
잠시 머뭇거리던 그놈은 거구를 돌렸다.

이어, 치솟는 지옥강풍을 타고 까마득히 절애 위로 치솟아 올랐다.


동굴 바닥으로 내려선 군검풍은 주위를 둘러보며 절로 신음성을 발했다.
"정말 지독한 곳이군!"
그는 입술을 깨물며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드넓은 지하광장이었다.

 그의 앞에는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동굴이 뚫려 있었다.
좌측은 막강한 지극화강풍(地極火剛風)이 치솟는 동굴이었다.

설사 무쇠라 할지라도 그 화강풍에 닿으면 즉시 재로 변해버릴 둣 했다.

그 열기가 어느 정도로 강한가 하면 만년옥정을 복용한 군검풍 조차 전신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그리고, 우측은 만독지기(萬毒之氣)를 함유한 묵운(墨雲)이

뭉클뭉클 치솟는 십 장 방원의 지혈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지하, 그곳으로부터 끝없이 시커먼 독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금강지체라도 녹이는 만년강살(萬年剛煞)이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던 군검풍은 일순 흠칫했다.
"시신(屍身)이 있다니...!"
그는 뜻밖의 광경에 저으기 경악했다.
시체! 독혈(毒穴)의 입구에는 한 구의 시신이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