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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2

오늘의 쉼터 2014. 9. 29. 23:23

제21장 호각세(互角勢) 2

 

 

 

 

며칠째 덕만 공주가 묵고 있는 법당에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에 골몰하던 사람들은

 

그날도 점심나절까지 별다른 묘책을 내지 못했다.

 

용춘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며 약간의 제물(祭物)을 싸들고 선도산으로 올라갔고,

 

서현은 하주에서 데려온 군사들이 점심을 먹는 산성으로 올라와 차려놓은 점심상 앞에서

 

한숨만 쉬고 앉았는데, 법당에서부터 서현을 따라온 알천이,

“유신이 근자에 통 뵈지를 않으니 어찌 된 노릇입니까, 고모부?”

하고 물었다.

 

서현이 입맛을 쩍쩍 다시며,

“글쎄, 나도 그 녀석 얼굴 본 지가 삼삼하네.”

하고는 흠순과 소천을 불렀다.

“너희는 유신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서현이 묻자 흠순은 모른다며 도리질을 하는데 소천은 가만히 서현의 안색을 살피는 품이

 

무엇을 아는 눈치였다.

“네가 유신이 있는 곳을 아느냐?”

“……딱히 어디 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근자에 자주 출입하는 데가 한 군데 있긴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겨, 경사에 있는 천경림 숲이올시다.”

“천경림 숲? 거긴 무슨 볼일이 있어 간다더냐?”

“흥, 흥륜사에 불, 불공을 드리러 다니는 줄로 압니다요.”

서현은 소천이 더듬거리며 하는 대답을 종잡을 수 없었지만 이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라에 중대사가 생기고 집안 식구들이 모두 피신하였는데

 

유독 유신만 달랑 떨어져 혼자 있는 셈이 됐구나.

 

너는 지금 즉시 도성으로 가서 유신이 있는 곳을 알아보고 만나거든 급히 이곳으로 데려오너라.

 

저도 도성에 있다면 국가지변을 모르지 않을 테니 내가 급히 찾는다면 그 연유를 능히 짐작할 것이다.”

“네, 나리. 분대대로 하겠습니다요.”

하명을 받은 소천은 그 길로 선도산을 내려가 장사치들 틈에 섞여 도성으로 숨어들었다.

 

성문을 지나며 보니 전날과 비교해 경비가 섬뜩할 만치 삼엄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주막거리에선 왕궁에 아무래도 무슨 변고가 일어났을 거라는 추측들이 무성했다.

 

소천이 대궁 인근의 월성 앞에서 통행하는 사람들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는 병부 사졸 하나를 붙들고,

“보시오, 누구를 그렇게들 열심히 찾으시오?”

하고 물었더니 그 사졸이 소천의 행색을 아래위로 훑고 나서,

“이놈아, 너 따위가 그런 건 알아 무엇해?”

짐짓 호통을 치고는,

“덕만 공주와 내성사신의 식솔들이 모두 사라져서 수색령이 내렸다. 이젠 됐느냐?”

하였다. 돌아가는 판세를 대강 짐작한 소천이 월성을 빠져나가 천경림 동쪽 끝 외딴 민가에 당도해

 

문을 두들기자 한참 만에 안에서 얼굴이 동글동글한 처자 하나가 나왔다.

 

처자가 소천을 알아보고는,

“도련님께 용무가 있어 왔습니까?”

하여 소천이 겸연쩍은 낯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씨께 연통해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다람쥐처럼 쪼르르 내당으로 달려갔다.

 

소천이 얼굴 도리암직하고 귀염상인 처자를 뒤따라가서 툇마루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으려니

 

조금 뒤 눈부시게 아리따운 절색의 부인이 나와서,

“소천이 왔는가?”

하며 알은체했다.

 

소천이 얼른 마루에서 일어나 꾸벅 절을 하고는,

“저희 주인 나리께서 큰도련님을 찾아 난리가 났습니다.

 

소인이 오죽하면 점심을 먹다 말고 달려왔겠습니까?”

했더니 그 절색의 부인이 가만히 웃으며,

“도련님께선 아직 주무시네.

 

내가 들어가 깨워는 보겠네만 정신을 차리고 의관을 갖춰 나오시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테니

 

자네는 장미에게 말하여 요기부터 하시게.”

하고 방금 소천을 데려온 처자에게 점심상을 보라고 일렀다.

 

부인이 내당을 돌아 별채로 들어간 뒤 소천은 장미라는 처자가 차려온 밥상을 받았다.

“이 찬들은 누가 만들었소?”

“찬모가 만들지 누가 만들어요?”

“그 찬모가 어디 사람인데 찬이 이토록 내 입에 딱 맞소?”

“고령댁이니까 고령이 고향이겠지요.”

“그럼 그렇지!”

“그렇다니, 뭐가요?”

“고령이 고향이면 그이도 보나마나 가야 사람 아니오? 그러니 찬이 내 입에 맞을 수밖에.”

“하면 그쪽도 고령이 본향인가요?”

“아니아니, 나도 우리 도련님처럼 가야국하고 신라국이 조력하여 낳은 사람인데

 

한 가지 다른 것은 아버지가 금관국이 아닌 아라국 사람이란 거요.”

그러자 장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째 웃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고도 장미가 웃음을 그치지 않자 소천이 재게 놀리던 숟가락질을 멈추고,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얘기를 해보오.”

하고 다그쳤다.

“고령 음식이 입에 맞다면서 부계가 아라국이시라니

 

그럼 그쪽 집에선 아버지가 부엌일을 하세요?”

간신히 말을 마친 장미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자 소천도 비로소

 

장미가 웃는 까닭을 알아차렸다.

“집에 아버지가 아라국서 먹던 음식을 못 잊고 타령이 심하니

 

 신라 사람인 어머니가 가야 음식 잘하는 아낙네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부엌일을 배웠지요.

 

그래서 고령 음식이 내 입에도 맞는 게라.

 

본래 아라국과 고령국이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니까.”

소천이 발명 아닌 발명을 하고는 다시 밥숟가락을 바쁘게 놀리며,

“그러는 낭자는 고향이 어디요?”

하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모르다니?”

“조부 때까지는 고령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부모님은 쭉 금성서 살았거든요.”

“그럼 낭자도 가야 사람이 틀림없소. 천관(天官) 아씨도 가야 사람이랬지?”

“우리 아씨는 유신 도련님처럼 금관국이지요.”

“글쎄 그렇다니까.”

“그렇다니요?”

“남녀를 불문하고 잘난 사람들은 대개 다 가야인들이오.

 

남자는 기백이 출중하고 여자는 미인이 많지.

 

가야 사람이 본래 씨가 좋은가봐.

 

비록 나라는 망했어도 여기저기 툭툭 불거지는 인물을 보면

 

아직도 신라인보다는 가야인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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