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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호각세(互角勢) 1

오늘의 쉼터 2014. 9. 29. 23:17

 

제21장 호각세(互角勢) 1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일은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하주와 금관주로 원군을 청하러 갔던 서현은 하주에서만 1천의 향군을 빌려왔을 뿐이었고,

 

염장도 거타주의 군사는 얻지 못한 채 겨우 군마 50필만 얻어오는 데 그쳤다.

 

험지로만 나돌아 조정에 불만이 많으리라 여겼던 외관 군주들은 의외로 반응이 냉담했다.

 

인심의 야박함을 탓할 일이었다.

금관주의 군주는 서현이 하주 군주로 있을 때 금관국의 끊어진 제사와 수릉왕제를 받들러

 

금관주를 드나들며 서로 흉금을 터놓고 각별하게 지냈던 사람이었다.

 

그는 백반이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에 땅을 치며 통곡하였으나 정작 원군 말을 꺼내자

 

안색이 달라지며,

“백반이 국법을 어기고 왕위를 찬탈하였다고 나 또한 덩달아 그럴 수야 있소?

 

소문에 듣자하니 죽은 선왕이 바지에 똥을 싸도 모를 만큼 총기가 흐려지고 노망으로

 

고생이 심하다고 하던데, 일변 생각하면 다행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소.”

차마 믿기 힘든 소리를 하였다.

 

젊어서 화랑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던 군주 보동(寶同)을 서현이 몇 번이나 다시 보다가,

“노형이 진실로 내가 알던 보동이오?”

하였더니 보동이 공허한 눈길로 서현의 시선을 피하며,

“젊어서야 하룻밤에 태산인들 왜 못 옮기겠소? 그러나 나이가 들어보니 그게 아닙디다.

 

할 일과 하지 못할 일이 차츰 눈에 보이지요.

 

이건 내가 하지 못할 일이오.

 

나이를 쉰만 먹었어도 두말 않고 하겠소만.”

하고 맥빠지는 소리를 보태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로는 서현의 후임으로 하주에 부임한 아찬 진부(鎭扶)도 마찬가지였다.

 

진부는 사십줄을 갓 넘긴 사람이었는데, 육순도 훨씬 지난 서현이 원병을 청하러 가자

 

한참을 묵묵히 앉았다가,

“나리께서 군주로 계실 때와는 이곳의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수천씩 동원할 군사도 없지만 만일 그랬다가 서적의 침공이라도 당한다면 헤어날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하고서,

“그러나 나리께서 친히 어려운 걸음을 하셨으니 속군에 배속시킨 여병을 내어드리지요.

 

이는 저의 목을 거는 일이올시다.”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말투로 보졸 1천 명을 동냥하듯 내어주었다.

 

서현이 마음만 같았으면 그냥 돌아오고 싶을 정도로 속이 뒤틀렸으나 군사 하나가 아쉬운 판이라,

“이보게 진부, 자네는 아직 젊은 사람인데 임금을 시해한 간적을 보고도 가슴에서 의분이

 

차오르지 않는가?”

치미는 분기를 억누르며 점잖게 물었더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임금이야 누가 되든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오로지 맡은 일에만 충실할 따름입니다.

 

이제 군사를 내어드리는 것도 굳이 따지자면 간적을 토벌할 목적이 아니라

 

하주에서 오랫동안 덕을 닦으신 나리의 면을 봐섭니다.”

하였다. 서현도 그즈음에 이르러선 허탈하고 난감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선왕 재위 53년, 임금은 팔순의 장수를 누리고 7백 년 사직에서 흔치 않은 유구한 치세를

 

이어왔으나 그 건복지치(建福之治) 반백 년 동안 지경은 줄어들고 국운은 쇠잔하여

 

왕실의 위엄과 신망은 땅에 떨어졌고, 급기야는 역신이 나타나 보위를 찬탈하는 대역죄를

 

저질러도 신하된 자들이 상관하지 않겠다는 풍토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었다.

 

서현은 외관 군주들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음을 깨닫고 크게 한탄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거타주의 외숙에게 군사를 청하러 갔던 염장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염장은 외숙 박조진이 평소 의기와 충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사정을 말하면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합세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얘기를 듣고 난 조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성이 수중에 없다면 이는 이미 명분을 잃은 것이다.

 

설혹 네 말처럼 백반공이 임금을 시해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눈으로 보지 않은 이상

 

군사를 움직일 수 없고, 외관의 권위는 대궐에서 나오 는 법이므로 군주가 대궐을 친다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더군다나 사직을 생각해서도 여자인 공주가 보위에 올라서야 되겠는가?

 

나는 과문하여 그런지 여주(女主)가 다스린 나라의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거니와

 

더러 여자로서 임금을 보좌한 경우는 있었을지언정 그런 나라치고 크게 잘되었다는

 

말도 들은 바가 없다.

 

아무리 나라에 인재가 없다 한들 어찌 모구(??)가 안방을 나와 왕업을 일으키고 국정을 결단하랴.

 

나는 여자의 냄새나는 가랑이 아래 엎드려 벼슬을 사느니 차라리 망령난 형을 죽인 백반을 따르겠다.”

그러나 조진은 염장이 돌아갈 적에 가만히 군마 50필을 내어주며 말했다.

“이것은 붕어하신 선왕에 대한 나의 부의다. 그렇게 알고 공주나 용춘공에게 전해주어라.”

서현과 염장으로부터 사정 얘기를 전해들은 용춘은 크게 낙담했다.

 

1천 군사와 50필의 군마로 5만 정군과 싸운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다.

 

용춘은 부랴부랴 압량주로 아들 춘추를 보내 군주 실처(實處)를 설득했다.

 

그러나 결과는 앞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일났구려, 이제 과연 어떻게 한단 말이오!”

용춘이 땅이 꺼지도록 탄식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대꾸할 말을 잃고 근심에 잠겼다.

 

그사이에 저자에 나도는 소문을 들어보니

 

임금이 갑자기 환후를 얻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웠기로 부득불 백반이 입궐해

 

정사를 대신 보살피게 되었는데, 대궁에서는 어의도 들이지 않고 탕제 달이는 냄새도 없어

 

시종들이 모두 궁금해한다고 뒷말들이 무성했다.

 

또 3궁에는 항시 갑옷을 입고 창칼을 든 병부 군사들이 밤낮없이 번을 서고,

 

백반이 문무 백관을 편전으로 불러들여 어전 회의를 주재했으며,

 

그 자리에서 대소 신료들이 중병 든 임금을 대신해 백반으로 하여금 보위를 잇도록

 

이구동성으로 권하였더니 백반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형이 아직 천수를 마치지 않았는데

 

아우로서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은 사람으로 차마 못할 일이라며 한사코 고사했다는 말도 들렸다.

 

감동한 중신들이 남산 우지암(토知巖)에서 화백을 열기로 날짜를 잡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대궐로 몰려가 백반이 용단을 내려 보위에 오를 때까지 편전 밖 정사당(政事堂)에서

 

무릎을 꿇고 청원할 결의를 마쳤노라는 풍문도 나돌았다.

 

임금의 유해와 함께 3궁을 장악한 백반은 선왕의 유고를 철저히 숨긴 채 미리 정해놓은 절차에 따라

 

왕위에 오르려는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용춘을 비롯한 서형산성 사람들에겐 이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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