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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인물 30

오늘의 쉼터 2014. 9. 29. 14:41

제20장 인물 30

 

 

 

 

그러나 후문에 이르자 사정은 달라졌다.

 

횃불을 든 한패의 병부 군사들이 어느 틈에 문을 양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는데

 

어림잡아 6, 70명은 돼 보였다.

 

구평은 일이 쉽지 않음을 직감했지만 후문을 통하지 않고는 대궁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멈춰라!”

구평이 스물 남짓 되는 당번 사졸들로 하여금 덕만의 수레를 호위하게 하여

 

후문 가까이 접근해 갔을 때 병부의 장수 하나가 손을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무엇을 하는 자들인가?”

“나는 삼도대감 사찬 구평이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구평이 대답을 하며 자세히 보니 칠숙의 충복으로 이름 높은 원복(元福)이란 장수였다.

 

원복이 스스로도 무게 60근의 철퇴를 마당쇠가 싸리비 다루듯이 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삼천당의 소삼정 당주를 맡으며 삼천당 열 개 부대(十停) 중 소삼정의 용맹함이

 

제일 윗길이 되었다는 소문을 구평도 귀가 따갑도록 들은 바가 있었다.

칠숙이 화랑 출신의 원복을 얻으려고 야밤에 삼고초려까지 했다는 말도 있고,

 

원복이 국선을 가리는 시험에서 용화에게 한 점 차이로 떨어졌는데,

 

그 까닭이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타고 나온 말의 차이였다는 얘기도 돌았다.

“삼도대감이라면 아찬 원복의 이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어서 말에서 내려 병부 군사들의 절도에 따르라!”

원복이 철퇴를 비스듬히 꼬나 든 채 근엄하게 일렀다.

 

구평도 삼도 안에서는 무술이 뒤지지 않은 편이나 원복을 보자 기가 질렸다.

“아뢰오. 병부 군사들이 함부로 대궁에 침입하여 삼도의 당번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고 하니

 

이는 만 번을 고쳐 생각해도 까닭을 헤아릴 길 없거니와,

 

그런 흉악한 말을 듣고 어찌 병부의 절도를 받겠소.

 

나는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을 데리고 도망가는 길이오.

 

하니 아찬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길을 좀 열어주시오.”

원복은 구평의 말을 들으며 실눈을 뜨고 그의 등 뒤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저 수레에는 누가 탔는가?”

원복이 철퇴로 덕만이 탄 수레를 가리켰다.

 

구평이 짐작하니 원복을 속일 수도 없는 형편이지만 그 역시 나라의 녹을 받는 신하라

 

떳떳이 사실을 밝히고 충심에 호소를 해보자 싶었다.

 

방법이라곤 그뿐이었다.

“수레에는 내가 모시는 별전의 공주께서 타고 계시오.”

그러자 원복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잘되었구나. 길을 열어줄 테니 너는 부하들과 같이 도망가라.”

“고맙소.”

구평은 순진하게도 원복이 충신이구나 하고 판단했다.

“그러나 수레는 두고 가라. 공주는 내가 뫼시겠다.”

칠숙으로부터 별전의 공주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후문을 철저히 막으라는 엄명을 받고 나온 원복이었다.

 

공주를 생포하되 만일 사정이 여의치 않거든 죽여도 좋다는 허락까지 있었으니

 

원복인들 순순히 물러날 리 없었다.

 

구평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하는 수 없이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 들었다.

“듣자니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내 어찌 역모를 일으킨 흉측한 무리들에게 공주를 맡기랴!”

말을 마치자 칼날을 세워 벼락같이 원복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싸움이었지만 원복도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는 들고 있던 철퇴로 가볍게 구평의 공격을 막은 다음 거느리고 있던

 

소삼정 맹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눈에 뵈는 삼도의 당번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주살하라!”

명령을 받은 소삼정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오자

 

양측 군사들간에는 이내 참혹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물러서지 말라! 사직의 존망은 우리 손에 달렸다!

 

군사들은 목숨을 바쳐 공주의 수레를 지켜라!”

충심은 충심으로 통하는 법이던가.

 

구평이 장검을 휘두르며 사력을 다해 삼도의 당번들을 독려하자

 

이에 감동한 삼도 군사들은 한 사람도 달아나거나 물러서지 않고

 

결사의 각오로 공주가 탄 수레를 호위했다.

 

휘황한 횃불 아래 한동안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열은 점점 확연해졌다.

 

20명이 조금 넘는 삼도 당번들이 제아무리 기를 쓰고 싸운다 한들

 

6, 70명이나 되는 반란군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상대는 삼천당 가운데서도 용맹하고 날렵하기가 으뜸으로 손꼽히는

 

소삼정의 맹졸들이었다.

정문 쪽에서 들려오는 병부 군사들의 구령과 함성소리도 삼도 당번들을 기죽게 만들었다.

 

설상가상 한창 난투극이 벌어졌을 때 갑자기 나타난 10여 명의 도부수들까지 가세해

 

닥치는 대로 사람을 도륙내자 대궁 사졸들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삼도 당번들이 죽어가며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처참하게 이어졌다.

구평은 길을 뚫으려고 안간힘으로 적군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공주의 수레를 몰던 마부가

 

칼에 찔려 죽는 것을 보았다.

 

마부를 잃은 말들이 갈 곳을 몰라 우왕좌왕하자 구평은 급히 말을 달려 수레 근처로 와서

 

공중제비를 돌아 마부 자리에 앉았다.

 

그는 한 손으로 말고삐를 그러쥐고 다른 손으로 칼을 휘두르며 후문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원복이 이를 허용할 리 없었다.

 

원복은 쏜살같이 말을 달려 수레를 가로막고 60근 철퇴로 구평을 내리쳤다.

 

말을 모는 데 정신이 팔려서일까.

 

구평은 원복의 철퇴를 피하지 못하고 한줄기 구슬픈 비명과 함께 땅으로 굴렀는데

 

그 몰골이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대감 구평이 죽었을 때는 거진 막판이었다.

 

살아남은 사졸 대여섯 명은 구평이 죽는 것을 보자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할 뜻을 밝혔다.

 

난리 중에서도 시종 공주의 곁을 떠나지 않던 자장은 말에서 내려 구평이 몰던 수레로 뛰어올랐다.

 

그는 수레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마음을 굳건히 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승이 마마와 끝까지 동행하겠나이다.”

하며 덕만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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