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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인물 23

오늘의 쉼터 2014. 9. 29. 11:02

제20장 인물 23

 

 

 

 

일행이 낭비성을 얻어 돌아오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논공을 하는데,

 

용춘과 대인에게는 이찬 벼슬, 서현에게는 잡찬 벼슬을 내리고,

 

원군을 이끌고 온 백룡과 임영리에게는 임지의 녹읍을 하사하였다.

 

대인 스스로는 비록 공이 없었으나 이기고 지는 것은 싸움에 매양 있는 일이므로

 

한꺼번에 뭉뚱그려 벼슬이 높아졌다.

 

알천도 직책은 그대로 두고 벼슬을 급찬에서 사찬으로 높였으며

 

그밖에 공을 세운 장수와 군사들에게도 합당한 상금을 주어 공로를 치하하였다.

그런데 낭비성의 공을 논하면서 김유신을 빠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왕이 여러 사람한테서 유신의 얘기를 전해 듣고 그를 친히 탑전으로 불러 만나본 뒤에,

“그래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니 유신이 두 번 절하고 답하기를,

“신은 아무 소원이 없고 아직은 신의 아비가 조정에 있으므로 벼슬길에 나서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하여 왕이,

“어찌하여 그렇느냐?”

하고 되물으니,

“무릇 신하된 자는 말이 수레를 끌고 달리듯 신명을 바쳐 충절을 겨루어야 하는 법인데

 

부자가 나란히 공을 놓고 다투는 것은 자칫 아름답지 못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은 아직 나무로 치자면 싹에 불과하므로 훗날 쓸 만한 재목이 되었을 때 불러 중책을 맡겨주십시오.”

하면서 벼슬을 극구 사양하였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서현의 당부가 큰 몫을 했다.

 

서현은 유신이 금성에 돌아온 직후 일약 유명세를 타고 어디를 가든 영웅 대접을 받게 되자

 

혹시 우쭐함에 빠지지나 않을까 늘 걱정했다.

 

덕만을 만나 밀담을 나눈 뒤 사직을 청하려던 당초의 뜻을 바꾼 서현은 왕조의 장래가

 

순탄하지 않을 것을 예견하고 서른넷이나 먹은 장성한 아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이번에 네가 약간의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9할이 운이다.

 

그리고 너의 무예를 보니 제법 신통한 구석이 없지는 않으나 마땅히 더 갈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싸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병법을 익히고 수백 가지 용병과 진형의 묘법을 깊이 연구한 다음에야 군사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법이다.

 

해론과 눌최처럼 죽음으로써 충절을 드높이고 만인의 우러름을 받는 일도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몸이 일찍 죽어서는 더 큰 일을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죽을 자리가 아니거든

 

목숨을 너무 가벼이 여기지 말라.”

그는 우선 아들이 자만에 빠질 것을 경계하여 그렇게 다짐을 두고 나서

 

벼슬살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언질을 주었다.

“잘 알다시피 너의 할아버지께서는 진흥대왕을 섬겨 사적에 그 이름을 크게 남기셨으나

 

나는 금상의 신하인 탓에 평생을 외관으로만 떠돌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무릇 임금과 신하란 살아서는 뜻을 같이하고 죽어서는 같은 책장에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임금이란 나무와 같아서 새를 가려 앉힐 수 없어도 신하는 새와 같아 얼마든지

 

좋은 나무를 가려 앉을 수 있다.

 

이제 금상은 연로하여 총기가 쇠하였고 짐작컨대 천수 또한 얼마 남지 않은 게 틀림없다.

 

그로 말미암아 사직의 앞날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므로 너와 같은 젊은이가

 

함부로 세상에 나설 때가 아니다.

 

너에게는 네가 섬길 군주가 따로 있고 너의 세상은 아직 오지 아니하였다.

 

새가 허공을 돌며 마음에 드는 나뭇가지를 가려 앉듯 부디 때를 기다려 성군을 만나고서야

 

벼슬길에 나서라.

 

지금은 그저 조용히 지내면서 안으로 뜻을 키울 때다.

 

학업과 무예를 지며리 닦다가 보면 훗날 반드시 크게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

유신은 서현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내직으로 오신 까닭에 상수에서 풀려난 것만으로도 하늘을 날아갈 듯 기분이 가볍습니다.

 

이번에 약간의 공을 세운 것도 실은 상수로 붙잡혀 지낼 때의 울분을 풀어본 것일 뿐,

 

어찌 벼슬을 바라고 그랬겠습니까?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리하여 유신은 대공을 세우고도 조위 자리 하나 얻지 못하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당사자가 아무리 고사를 해도 왕이 나서서 기어코 벼슬을 내렸을 터이지만

 

이때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때라,

“알았다. 하긴 그깟 놈의 벼슬살이, 하면 무엇 하느냐? 네가 옳다.”

하고 물리친 뒤로 두 번 다시 부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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