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0장 인물 21

오늘의 쉼터 2014. 9. 26. 23:45

제20장 인물 21

 

 

 

 

그리고는 급히 말머리를 잡아채더니 또다시 필마단기로 적진을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낭비성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고구려군은 달려오는 유신을 보자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댔다.

 

거푸 세 사람의 장수가 목을 잃은 판이었고, 그 중 하나는 내호아의 수군을 물리친 공으로

 

임금에게 신장(神將)으로까지 칭송을 받았던 천하의 솔천수가 아니던가.

혼비백산한 고구려 군사들은 마치 뱃길에 바닷물이 갈라지듯 순식간에 대오를 이탈하여

 

양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일기당천(一騎當千)이란 말이 오히려 무색할 정도였다.

 

수천 군사가 한 사람의 위세를 감당하지 못해 우왕좌왕 도망하는 꼴이란

 

흔히 보기 어려운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유신의 저 늠름한 기백과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라! 우리라고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

술렁이는 군사들 앞에 나타나 독려한 이는 용춘의 편장으로 따라온 알천이었다.

“두려운 자는 남아도 좋다!

 

그러나 적군을 무찔러 공을 세우고 싶은 사람은 모두 김유신의 뒤를 따르라!”

알천이 칼자루를 고쳐 잡고 고함을 지르자 신라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찾아들었다.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용기백배한 신라군들이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기세로 낭비성을 향해 달려들자

 

미처 대책을 세우지 못한 고구려 군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에만 바빴다.

반나절이나 계속된 싸움은 싸움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살육전이었다.

낭비성 전투에서 신라군은 고구려 장졸 5천여 명을 참살하고 1천에 가까운 자를

 

사로잡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성안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군사와 백성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해

 

성문을 열어 제치고 모두 항복했다.

 

이로써 신라는 고구려에 우명산성(牛鳴山城)을 빼앗긴 이래 20여 년 만의 설욕전을

 

극적인 승리로 이끌었다.

낭비성을 장악한 뒤 용춘을 비롯한 장수들은 자축연을 열고 한결같이

 

유신의 빼어난 기상과 신출귀몰한 무예를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용춘은 서현을 보고 유신이 필경 하늘에서 점지해준 자식이라며,

“전에 취산 낭지 법사가 서현의 슬하에 대인(大人)이 날 거라며 손수 금침을 지고 와서

 

절까지 하더니 그것이 노법사의 장난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겠네.

 

저런 걸출한 영웅이 날 줄 알았다면 절이 지당하지.

 

태종이나 황종 같은 신장이 드디어 계림에 다시 나왔네.”

젊었을 때 몽암에서 겪은 일까지 떠올리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노장 임영리도 몇 번이나 서현의 손을 그러쥐고,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수없이 변방을 돌아다니며 크고 작은 싸움을 해보았지만

 

공의 자제와 같은 이는 보던 중에 처음이오.

 

과연 일생의 영걸을 공의 슬하에서 보오.”

하며 칭찬에 여념이 없었고,

 

백룡은 자신에게 과년한 딸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유신이 성취는 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서현이 웃으며,

“성취할 나이는 한참 지났으나 지금까지 상수질을 하느라 배필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하니 돌연 백룡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여,

“제게 박색은 겨우 면한 딸이 하나 있는데 유신이 싫어하지만 않으면 서로 짝을 맺어주고 싶습니다.

 

공이 허락만 하십시오.

 

그럼 국원으로 돌아가는 즉시 딸년을 금성에 보내어 공과 유신에게 두루 선을 뵈입지요.”

하고 당석에서 혼사를 제안하였다.

 

서현이 미처 답을 아니 했는데 일을 망칠 뻔한 뒤로 무참하여 통 말이 없던 대인이

 

갑자기 살가운 낯으로 중간에 끼어들어,

“딸이야 어찌 내겐들 없겠소.

 

금성에 돌아가거든 일간 공의 집을 한번 찾아가리다.”

하고 서현에게 잔을 권했다.

 

이에 백룡이 왈칵 성을 내며,

“그대는 어찌하여 남의 흉내를 내오?”

“흉내라니요? 내게도 딸자식이 있다는 말이외다.”

“글쎄, 그게 흉내가 아니고 무어란 말이오?

 

유신이 제아무리 인걸이라도 한날한시에 두 여자를 배필로 정할 수가 있겠소?”

“그러기에 하는 말이오.

 

공의 딸이나 내 딸이나 정작 혼사가 이뤄지자면 본인 마음들이 중한 법이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이는 것도 무방하지 않겠소?”

“그럼 말을 먼저 꺼낸 쪽이 나니까 공은 뒤에 뵈이시오.”

“말이야 공이 먼저 꺼냈지만 국원서 금성까지 오자면 여러 날이 걸릴 테니

 

우선 가까운 사람부터 먼저 보는 게 덜 번거롭지.

 

우리는 반나절이면 열두 번도 더 오갑니다.”

난처한 웃음을 물고 앉은 서현의 양쪽에서 양자가 티격태격 입씨름이 끊이지 아니하였다.

사태가 점점 험악해지자 임영리와 용춘이 나서서,

“원, 딸 없는 우리네야 어디 서러워 살겠소?”

“글쎄 말입니다.

 

사돈 공론들은 후에 가서들 하시고 오늘은 술이나 마십시다.”

하여 가까스로 설전은 그쳤으나 백룡과 대인은 그 일 끝에 종시 상이 좋지 아니하였다.

 

주흥이 무르익자 알천이 군사들의 취침 시간을 물으러 들어와서,

“오늘같이 기쁜 날 군사들에게 밤늦도록 실컷 놀게 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므로 용춘이 그러라고 허락을 하고서,

“유신은 무엇을 하느냐?”

은근히 부를 마음이 있어 물었더니,

“성중에 좌판을 벌여놓고 군사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하였다.

 

용춘이 잠깐 생각하다가,

“그래 알았다.”

하고는,

“네가 보기에 유신이 어떠하냐?”

하니 알천이 혀를 내두르며,

“저도 유신과 같은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하므로,

“둘이 잘 지내라. 계림의 장래가 너희 손에 달렸다.

 

너로 봐서는 유신이 고종 아우요

 

유신에게는 네가 외종형이니 친분을 따져도 남다른 사이가 아니냐?”

하고 당부하였다. 알천이 웃으며,

“그러잖아도 여태 그 말을 하며 술을 먹었습니다.

 

유신이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술 먹는 데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하였다. 알천이 나가고 나자

 

나이 든 장수들도 모두 거나하게 취하여 주석을 파하고 침소로 갔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0장 인물 23  (0) 2014.09.29
제20장 인물 22  (0) 2014.09.26
제20장 인물 20  (0) 2014.09.26
제20장 인물 19  (0) 2014.09.26
제20장 인물 18  (0) 201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