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새인생(2)
(1815)새인생-3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더 굳히겠다는 의도겠지요.”
장선옥이 정색하고 말하더니 곧 얼굴을 펴고 웃었다.
“물론 남녀의 은밀한 관계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렇군.”
따라 웃은 김성산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장선옥을 보았다.
“조철봉이 논리나 사상, 또는 교양면에서 장 동무의 적수가 될 수는 없지.”
“과찬이십니다.”
쓴웃음을 지은 장선옥이 시선을 내렸다.
김성산은 이미 어젯밤 조철봉과의 관계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조철봉이 발리로 며칠 휴가를 떠나자는 제의를 해왔다고
보고하자 놀라지도 않았다.
올 것이 당연히 왔다는 태도였다.
김성산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지시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장 동무가 알아서 결정하도록.”
그러자 장선옥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이 시점에서 거절하면 어색해집니다. 더욱이 저는.”
다시 시선을 내린 장선옥이 말을 이었다.
“어젯밤 비자금을 받고 나서 조철봉하고 같이 잤습니다.”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결심한 듯 장선옥이 말하자 김성산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당에서 주는 포상 휴가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돈은 한국에서 내고. 잘 쉬었다 와요.”
“감사합니다.”
“조철봉과의 유대 강화는 앞으로의 우리 공화국 사업에 큰 도움이 돼.
그자는 이용가치가 많은 인간이야.”
“알고 있습니다.”
“같이 있는 동안에 그자 사상을 개조시켜 봐요. 가능하면 말이지.”
그러고는 김성산이 빙그레 웃었다.
“너무 썩어서 힘들거야.”
자리에서 일어선 장선옥이 눈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왔다.
오전 11시반이다.
조철봉과는 비행장에서 2시까지 만나기로 했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어젯밤을 함께 지내고 나서 조철봉이 같이 휴가를 가자고 제의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첫째 조철봉의 제의를 장선옥이 거부할 의사가 없는데다
윗선인 김성산도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자금을 계속 챙기기 위해서는 조철봉과의 관계가 더욱 향상되어야 할 것이었다.
공항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장선옥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자신의 행동은 공식적이었고 평양에도 보고가 될 것이었다.
아마 공화국 역사상 남조선 사업가와 밀회 여행을 공식적으로 떠나는 여성 산업 일꾼은
자신이 유일할 것이었다.
공항 출국장에 들어선 장선옥은 웃음 띤 얼굴로 다가오는 조철봉을 보았다.
“자, 시간 되었어. 가실까?”
장선옥에게 티켓을 건네준 조철봉이 자연스럽게 팔을 잡고 끌었다.
“자, 지금부터는 다 잊고 즐기는 거야. 집하고 회사, 조국 같은 거 다 잊고 말야.”
그러더니 장선옥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빙긋 웃었다.
“부부 행세를 해도 돼.”
항공사 데스크로 다가간 조철봉과 장선옥은 금방 티켓을 받았다.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1등석 데스크는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옆쪽 일반석의 길게 늘어선 승객들이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장선옥은 얼굴이 굳어졌고 걸음까지 이상해졌다.
그러나 조철봉은 태연했다.
“자, 들어갈까?”
조철봉이 다시 장선옥의 팔을 끌었다.
(1816)새인생-4
발리행 에어프랑스는 보잉 747이었다.
탑승 안내 방송이 울렸으므로 장선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길게 늘어선 승객들 뒤에 가 섰을 때 조철봉이 다가오더니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다 그렇지만 탑승구로 들어가는 입구는 두 부분으로 쪼개져 있다.
한쪽은 일등석과 비즈니스용이었고 다른 쪽은 일반석이다.
왼쪽의 일반석 입구는 길게 줄이 늘어섰지만 반대쪽 라인은 한산해서 멈춰서지도 않고 통과했다.
조철봉은 그쪽을 가리킨 것이다.
그때서야 장선옥은 자신의 티켓이 일등석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티켓 받을 때 데스크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조철봉이 앞장을 섰으므로 장선옥은 주춤거리며 뒤를 따랐다.
이번에는 주위 시선에 당황하지 않았다.
곧장 입구를 통과해서 터널로 들어서자 곧 두 갈래로 길이 갈라졌다.
왼쪽이 일등석용이다.
조철봉과 장선옥은 왼쪽으로 꺾었다.
장선옥은 일등석은커녕 비즈니스 클래스에 타본 적도 없다.
일등석 출입문에는 사무장과 스튜어디스가 기다리고 있다가 둘을 맞았다.
그러고는 자리에 안내하더니 마실 것을 묻고 저고리를 받아 옷장에 넣어 주었다.
스튜어디스는 조철봉에게 미스터 조라고 부르면서 곰살갑게 굴었지만
금방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물러갔다.
둘이 자리에 나란히 앉았을 때 조철봉이 정색하고 장선옥을 보았다.
“일등석 요금이 일반석의 세 배가 넘어.
그러니까 그만큼의 서비스를 받아야 돼.”
“일반석 손님보다 말이죠?”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물은 장선옥의 표정이 굳어졌다.
“싫군요. 일반석으로 옮겨가고 싶어요.”
“그럴 줄 알았어.”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하지만 일등석이 없으면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더군.
일반석 손님만 받으면 적자라는 거야.
따라서 이 비행기는 일등석 손님 덕분에 뜨는 거지.”
장선옥이 눈만 치켜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처음에는 일등석 탈 때 어색하고 머리끝이 쭈뼛거렸어.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았고.”
“…….”
“그때는 내가 이곳저곳에서 사기를 많이 칠 때였어. 그래서 뒤가 켕겼던 거야.”
“…….”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제법 떳떳하게 번 돈으로 일등석을 타니까.”
그때 비행기가 이륙하겠다는 기내 방송이 울렸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누구는 일등석이 사치라고 하거나 허세라고 하지만 편하고 좋은 곳이야.
비싼 만큼 대우가 훌륭하고.”
“…….”
“아빠 손 잡고 일반석 타는 아이가 아빠한테 그러는 거야.
아빠, 나, 커서 돈 벌어갖고 일등석 탈 테야.
그럼 아버지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대답하는 거지.
그래,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라. 그래야 정상이지.”
“…….”
“뒤에서 일등석 타는 사람들을 욕이나 하고 의자나 찢어서 분풀이를 하는 놈들은
대책도 없이 억지를 쓰는 거야.
왜냐하면 그들 주장대로라면 비행기가 뜨지 못하니까 말야.”
그 순간 장선옥은 조철봉이 말하려는 의도를 깨닫고는 얼굴을 굳혔다.
조철봉은 자본주의 체제의 장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일반석만 주장하는 무리는 사회주의 체제를 빗댄 것 같다.
장선옥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자본주의 사기꾼이.
그때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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