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16. 새인생(3)

오늘의 쉼터 2014. 9. 29. 15:36

616. 새인생(3)

 

 

 

(1817)새인생-5

 

 

 

 

일등석 서비스는 훌륭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여승무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는데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더욱이 여승무원은 한국어를 했다.

 

놀란 듯 조철봉이 눈을 크게 떴을 때 여승무원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한국 손님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배웠습니다.”

조철봉이 영어를 못하는 것을 알고 급히 배치된 것 같았다.

 

메뉴판에는 풀코스 요리가 세 종류나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양식으로 시켰는데

 

장선옥은 중식을 골랐다.

 

조철봉이 보기에 장선옥은 일부러 같은 것을 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장선옥은 잘 보지도 않고 시킨 것이다.

 

조철봉은 먼저 가져오게한 포도주 잔을 들고 창가에 앉은 장선옥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야. 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구.”

장선옥은 창밖을 내다본 채 반응하지 않았지만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장선옥씨는 존중해줄게.

 

그러니까 장선옥씨도 무조건 내 행동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말라구.”

그러자 장선옥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그래요. 그러니까

 

일등석 손님 때문에 비행기가 뜬다는 식의 거짓말 따위는 늘어놓지 말기로 합시다.”

“난 계산내역까지 내 눈으로 본 건데.”

“과장된 거겠죠.”

“어쨌든.”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정색했다.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이 없으면 항공사는 적자운행이 돼. 그건 틀림없어.”

“상류층이 서민을 먹여 살린다는 치졸한 논리인데. 글쎄, 그만 두자니까요?”

“치졸한 논리? 아니, 누가 뭐랬다고.”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장선옥을 보았다.

“내가 이런 말 안하려고 했지만 우리 내기할까?

 

일등석 몇 번 타고나면 일반석 타기가 싫어질걸?

 

난 그게 인간이라고 봐. 진짜 인간이지. 바로 나같은 놈 말야.”

손바닥으로 제 가슴을 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일등석 탈 돈 아껴서 일반석 타고 아낀 돈을 일반석 타는 인간들한테 보태줄 수는 있지.

 

하지만 그래도 일등석은 꼭 있어야 된단 말야.

 

그래야 차액이 분명히 생기고 보태준 금액도 드러날 테니까.

 

애초에 일등석이 없다면 말야, 보태줄 돈도 안생겨.

 

어떤 시발놈이 애써서 돈 벌려고 하겠어?

 

그냥 똑같이 일반석 타면 그만인데.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는 거지.

 

다 거지같은 일반석 타는 인생이니까 말야.”

“그만합시다.”

다시 조철봉에게 시선을 준 장선옥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등석 인생이란 건 인정해드릴 테니까.”

“나아, 참.”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잔에 남은 포도주를 한 모금에 삼키더니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누가 일등석 인생이래?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누가 그러더군.

 

나도 책은 가끔 읽거든. 옛날에 톨스토이인가 누가 길에서 햇빛을 쬐고 앉아있는데

 

나폴레옹이 와서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다는 거야.

 

그랬더니 톨스토이가 햇빛을 가렸으니까 비켜달라고만 했다는군.”

“…….”

“욕심을 버리면 근심이 없어진다고 들었어. 그것도 맞는 말야.”

조철봉은 시선을 내린 장선옥의 콧구멍이 희미하게 벌름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표정은 굳어진 채 그대로였다.

 

그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난 일등석에 앉은 삼류 인생이야.” 

 

 

 

 

(1818)새인생-6

 

 

 

조철봉이 대학은 나왔어도 지적 수준은 좀 떨어진다.

 

수능 점수가 서울 지역의 이른바 3류대학에 갈 정도는 되었지만

 

책을 거의 읽지 않은 데다 대학 다니면서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졸업은 했으니 요령이 좋은 것인지 대학 교육 덕분인지는 따져봐야 알겠다.

 

어쨌든 조철봉이 장선옥한테 책은 가끔 읽는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톨스토이가 햇볕을 쬐다가 나폴레옹한테 비키라고 한 말도 어디서 주워들었기 때문에

 

이름은 확실치 않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가 침소봉대라는 문자를 쓰기에 침소에서는 철봉이 커야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던 조철봉이다.

그러나 조철봉에게는 스스로도 자신하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창의력과 임기응변, 그리고 순발력이다.

 

그것을 처음에는 사기 치는데 써먹었다가 차츰 기반이 잡히고나서 기업 경영에 응용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고 책에서 배우지도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팀장이었을 때는 팀장에 맞는 처신을 했고 사장이 되었을 때는

 

과감히 팀장시절 개발하고 쟁취했던 이권을 버리고는 자리에 맞는 일을 했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다.

조철봉의 관점에서 보면 가능성은 세상에 널려 있었다.

 

세상은 그 가능성을 보는 자와 못보는 자의 두 부류로 나뉘어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적극적 사고와 끈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꼭 보답이 온다.

 

비행기가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쯤이었다.

 

입국장으로 나왔을 때 장선옥이 먼저 호텔 안내원을 발견했다.

 

안내원은 영어로 쓴 팻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조철봉은 그냥 넘어갔던 것이다.

“저기 있네요.”

비행기 안에서는 좀 다퉜지만 장선옥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가간 장선옥이 유창한 영어로 묻더니 조철봉에게 말했다.

“맞아요, 렉스호텔.”

안내원이 둘의 가방을 받아 쥐더니 앞장섰다.

 

공항 건물 밖에는 호텔 마크를 붙인 벤츠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신형이다.

 

뒷좌석에 둘이 오르자 차는 곧 출발했다.

 

앞에 앉은 안내원이 머리를 돌려 장선옥에게 말했다.

 

물론 영어다.

“빌라 특실을 예약했기 때문에 곧장 바닷가 빌라로 간다는군요.”

안내원의 말을 장선옥이 통역했다.

“전망이 제일 좋은 곳이라네요.”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만 끄덕였다.

 

렉스호텔 빌라는 바닷가에 따로 세워진 별장식 건물로 2층 구조에 상주 메이드가 둘이나 있다.

 

문만 열면 바닷가 모래사장을 밟을 수가 있으며 전용 보트에 전용 승용차가 배정되었고

 

식사도 원하는 대로 메이드가 만들어 준다.

 

하루 숙박비만 3500불짜리인 것이다.

 

그보다 더 비싼 곳도 있었지만 조철봉으로서도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쯤 달린 차가 빌라 앞에 멈춰섰을 때 기다리고 있던 메이드들과 호텔 지배인이

 

그들을 맞았다.

 

별장은 환하게 불을 밝혔고 바로 아래쪽 모래사장과 검은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와아.”

주위를 둘러본 장선옥이 탄성을 뱉었다.

“너무 좋아.”

안내를 받아 빌라 안으로 들어선 장선옥의 입에서 다시 탄성이 뱉어졌다.

 

이층구조의 건물은 마치 살림하는 집안처럼 가구가 빠짐없이 놓여졌는데 깔끔했고 아늑했다.

 

금방 안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올 것처럼 느껴졌다.

 

지배인과 호텔 직원들이 소리없이 사라지고 메이드가 소파에 앉은 그들 앞에 음료수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한국어로 물었다.

“식사 준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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