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 인간의 진심 (1)
(1788) 인간의 진심-1
남북한 협력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북한 정부가 적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언론과 여론이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철봉은 베이징에 본사를 둔 평화무역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자금담당 부사장과 관리담당 전무는 통일부에서 파견된 인력이었다.
조철봉 측으로는 최갑중이 무역담당 전무로 임명되었지만 실권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조철봉은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천리마무역 대표 김성산이 평화무역의 중역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한 것은
개업식 다음날이었다.
김성산은 평양식당의 귀빈실에 플래카드까지 걸어놓고 저녁 준비를 시켰는데
중국식당답게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글자가 선명했다.
“축하합니다.”
술잔을 든 김성산이 건배를 제의하자 모두 따라 술잔을 들었다.
평화무역 측에서는 조철봉과 부사장 안진식, 전무인 박윤기와 최갑중이었고
북한 측은 김성산과 이세웅, 김갑수였다.
한 모금에 40도짜리 백두산 살모사주를 마신 김성산이 조철봉을 보았다.
“조금 후에 평양에서 파견된 부대표가 도착할 겁니다.”
그러고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능력이 출중하고 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동무지요.
우리 과업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아.”
하면서 조철봉이 감탄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찜찜했다.
그로서는 김성산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돌린 조철봉이 김갑수를 보았지만 외면한 채 안주만 먹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안진식과 박윤기가 번갈아서 아직 오지도 않은 부대표 취임을
축하하느라고 방 안은 떠들썩해졌다.
최갑중이 힐끗거리면서 조철봉의 눈치를 보았다.
최갑중이야 분위기를 두르르 꿰고 있는 것이다.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아가씨 하나가 들어섰다.
조철봉은 아가씨가 들어온 줄 알았다.
그러나 김성산을 제외한 김갑수와 이세웅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으므로 분위기가 변했다.
“오오, 어서 오시오.”
하고 김성산이 앉은 채로 반색을 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다가선 아가씨가 모두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때 김성산이 말했다.
“우리 부대표 장선옥 동무이십니다.”
놀란 한국 측 중역들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조철봉도 따라 일어섰다.
“평화무역 대표이신 조철봉 선생이시오. 인사하시오.”
하고 김성산이 직접 소개를 했고 조철봉과 장선옥은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장선옥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악수를 청하지는 않았다.
한국 측 중역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눈 장선옥은 김성산의 옆자리에 앉았다.
가까운 위치에서 보자 장선옥은 30대 초반쯤으로 보였지만
그 나이에 천리마무역 부대표가 되었다는 것은 파격적이었다.
천리마무역의 감독관이며 2인자 역할인 이세웅이 50대 초반 정도였고
김성산도 50대 중반인 것이다.
김갑수만 해도 40대 초반이다.
“자, 한잔씩 더 하실까요?”
어색해진 분위기를 다시 일으키려는 듯이 김성산이 술잔을 들고 말했을 때
장선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한잔씩 따라 드리지요.”
술병을 쥔 장선옥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전 폭탄주도 꽤 마십니다.
남한에서는 소폭이 인기라면서요?”
그 순간 조철봉은 장선옥의 출신이 궁금해졌다.
김갑수한테 물어보면 알려줄지 모른다.
(1789) 인간의 진심-2
폭탄주를 잘 마신다는 장선옥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한국산 소주에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제조되었는데
장선옥은 세잔까지 단숨에 마시는 것이었다.
“맛이 있어요.”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장선옥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눈웃음을 치는 얼굴을 보자
조철봉의 가슴이 미어지면서 목구멍이 쩌르르 울렸다.
“위스키보다 소주를 섞어서 마시는 소폭이 더 맛있더군요.”
조철봉에게 한 말이다.
장선옥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물었다.
“한국산 소주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폭탄주는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웃음띤 얼굴로 물었지만 방안의 시선이 모아졌다.
장선옥이 잠깐 멈칫한 사이에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한국산 소주를 애용하셨다니 기뻐서 그렇습니다.”
“러시아에서….”
장선옥이 여전히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모스크바에서도 한국산 소주를 구할 수 있더군요.”
“아예 소폭을 섞어서 술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텐데.”
말머리를 돌린 조철봉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그러고는 이쪽의 안진식이나 박윤기처럼 장선옥도
북한 정부에서 파견된 인사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날 저녁 회식은 장선옥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중 드는 여자도 없이 마시고 끝냈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10시가 되었을 때 조철봉은 장선옥의 전화를 받았다.
평화무역의 사장실로 장선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놀란 조철봉에게 장선옥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저녁에 저하고 식사하시지 않겠습니까? 둘이서 말입니다.”
조철봉이 대답하기 전에 장선옥은 말을 이었다.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이만 만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차이나호텔 지하 중식당을 제 이름으로 예약해 놓겠습니다.
7시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7시에.”
통화가 끊겼을 때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 한동안 앞쪽의 벽을 노려보다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그로부터 2시간쯤 후인 12시경에 조철봉과 김갑수는
천안문 근처의 한식당 밀실에 마주앉아 있었다.
조철봉이 은밀하게 불러낸 것이다.
“그, 장선옥 부대표 말인데.”
용건을 말하라는 듯 시선을 보내고 있는 김갑수에게 조철봉이 입을 떼었다.
“오늘 저녁에 나하고 단둘이 저녁 먹자고 연락이 왔단 말야.
김 사장은 짚이는 게 없어?”
“글쎄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가 편 김갑수가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부대표 동지는 당에서 보낸 실세올시다. 말하자면….”
“우리 평화무역의 부사장 같은 역할이 되겠군. 그렇지?”
“예, 하지만….”
“알아. 하지만 장선옥은 평화무역 부사장과는 다르지.
김성산 대표하고 손발이 맞을 테니까.”
“부대표 동지가 자금을 총괄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오늘 저녁에도 그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선옥의 신분이 뭐야?
나이는 몇이고? 무슨 배경으로 저 나이에 그런 실세가 된 거야?”
조철봉이 궁금한 내용을 연달아 물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3. 인간의 진심 (3) (0) | 2014.09.26 |
---|---|
602. 인간의 진심 (2) (0) | 2014.09.26 |
600. 협력(12) (0) | 2014.09.25 |
599. 협력(11) (0) | 2014.09.25 |
598. 협력(10) (0) | 201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