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603. 인간의 진심 (3)

오늘의 쉼터 2014. 9. 26. 23:58

603. 인간의 진심 (3)

 

(1792) 인간의 진심-5

 

 

“시발, 북한 여자한테서 그런 말 들으니까 꼭 옛날 초등학교 때.”

잠깐 말을 멈춘 조철봉이 물잔을 들어 한모금 물을 삼키고는 앞에 앉은 최갑중을 보았다.

 

오전 9시반이다. 조철봉은 평화무역 사장실에 앉아 최갑중에게 어젯밤 장선옥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여선생님이 너 바지에다 똥 쌌지? 하고 물었을 때 기분하고 비슷하더라.”

그러자 최갑중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진짜 똥 싸신 겁니까?”

“어찌나 창피했던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

“그럼 열살때 싸셨군요.”

“시끄러! 이 빌어먹을 놈아!”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물잔을 집어들고 던지려는 시늉을 했다가 내려놓았다.

 

그때 최갑중이 말했다.

“안진식하고 박윤기 뒷조사를 하지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말을 이었다. 어느새 정색하고 있다.

“철저히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형님.”

“내가 오늘 아침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해줄까?”

불쑥 물은 조철봉이 눈만 껌벅이는 최갑중을 향해 말을 이었다.

“장선옥한테는 두가지 방법을 말해 주었지만 난 또 다른 두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뭡니까?”

“안진식하고 박윤기를 내 편으로 끌어들여서 비자금 규모를 우리가 조정하는 거다.

 

예를 들면 비자금 100억원을 만들어놓고 장선옥한테는 10억원쯤으로 말해주는 것이지.”

“으음.”

눈을 치켜뜬 최갑중이 감탄했다.

“그럼 90억원을 형님하고 안진식, 박윤기 셋이서 나눠 잡수시는 겁니까?”

“장선옥한테 간 10억원도 나하고 둘이 나눠야지.”

“그럼 북한측 몫은 5억원뿐이군요.”

최갑중이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히 공부하는 머리하고 그런 머리하고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개소리 말고 끝까지 들어.”

“예, 형님.”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또요?”

“장선옥을 매수하는 거야.”

그때는 놀란 최갑중이 말대꾸도 못하고 입만 뻥 벌렸으므로 조철봉은 그냥 말을 이었다.

“그래서 비자금 100억원을 만들면 장선옥한테 100억원 자료를 받아놓고 북한쪽에는

 

10억원쯤 주는 거지. 물론 장선옥한테 따로 10억원쯤 주고, 그럼 80억원이 내몫이 되는거다.”

“…….”

“어느 간 큰 놈이 북한에서 보내준 100억원 자료를 확인하겠다고 나서겠어?

 

장선옥이 영수증만 발행해주면 끝이지.”

“그, 그 방법이 젤 낫습니다.”

흥분한 최갑중은 목소리까지 떨었다.

 

최갑중이 말을 이었다.

“그 방법을 쓰도록 하지요. 안진식이나 박윤기 잡고 하는 것보다 더….”

“장선옥에 대해서 조사해 봐야 돼.”

정색한 조철봉이 말하자 최갑중은 입을 다물었다.

“모스크바에서 무역을 해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이혼했다는 남편도 찾아봐. 장선옥의 취미, 성격, 모든 것을 다 알아보란 말이다.

 

돈은 얼마든지 써도 된다.”

조철봉의 기세에 질린 듯 최갑중은 몸을 굳히고 입 안에 고인 침만 삼켰다.
 

 

 

 

(1793) 인간의 진심-6

 

 

 

 

방으로 들어선 이경애가 조철봉을 보았다.

 

맑고 또렷한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조철봉은 숨을 멈췄다.

 

이경애는 평화무역의 관리부 사원으로 채용되었는데 자금 집행을 맡았다.

조철봉이 발령을 낸 것이다.

 

자금은 안진식과 박윤기가 장악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휘하 직원 인사쯤은

 

조철봉의 재량 권한에 든다.

 

요즘 며칠간 바빴던 터라 조철봉은 이경애와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이경애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마침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들어왔으면 부르셨어요 하고 묻든가 해야지 그렇게 보고만 있으면 어떡해?”

그러자 이경애가 시선을 내렸다.

 

열린 창문이 닫히는 것처럼 긴 속눈썹이 내려갔다.

 

조철봉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본래 조철봉은 같은 직장의 여직원과는 가능한 한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이경애와는 관계를 맺고 나서 평화무역에 입사시켰지만 어쨌건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사장이 자금 집행담당 직원을 불러 묻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어색해할 것 없어, 알았지?”

“어색해서 그런 게 아녜요.”

조철봉을 똑바로 본 채 이경애가 입을 열었다.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한번도 불러주시지 않아서 서운한 거라고요.”

“어허.”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은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바빴어. 너도 알다시피 천리마무역하고 일이 많았고.”

조철봉이 다가가 이경애의 팔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

“내가 널 그 자리에 발령을 낸 이유를 알지?”

옆에 앉은 조철봉이 묻자 이경애는 머리만 끄덕였다.

 

그 순간 조철봉도 다시 숨을 들이켰다.

 

이경애의 두 눈에 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깜박이기만 하면 눈물이 굴러 떨어질 것 같다.

“무슨 일 있니?”

대충 짐작은 가면서도 조철봉이 묻자 이경애가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경애가 손끝으로 눈 밑을 훔치더니 더 맑아진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만나 주신다고 약속해 주세요.”

“이런.”

눈을 좁혀 뜬 조철봉이 정색했다.

 

그러나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그거, 직장 안에서 곤란한 일인데.”

“방해되지 않을 거예요.”

이경애의 두 눈이 반짝였고 목소리에도 활기가 느껴졌다.

 

눈을 치켜뜬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다 필요없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주시기만 하면 돼요.”

“도대체.”

그러자 이경애가 손바닥을 펴서 조철봉의 입을 가볍게 막았다.

“그래요, 섹스.”

아직도 입에 손이 덮여서 눈만 크게 뜬 조철봉을 향해 이경애가 웃었다.

 

그러나 두 눈은 번들거렸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다.

“안아 주시기만 하면 돼요.”

조철봉이 이경애의 손을 잡아 내리고는 다른 손으로 허리를 당겨 안았다.

 

사무실에서 이러는 건 처음이었지만 온몸이 불끈 달아오른 것이다.

 

이경애가 선선히 조철봉의 품 안으로 안겨오더니 두 눈을 감았다.

 

입술이 키스를 기다리는 듯 이미 반쯤 열려져 있다.

 

마치 꿀을 품은 꽃잎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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