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애(禁止愛) (9)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몇번이나 신호가 간다.
신호는 가지만, 기다리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나온 건 기다리던 목소리가 아니라……
-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메시지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음성이었다.
번호를 바꿔서 걸어 본다.
이 시간에 있을 리도 만무하겠지만 그래도, 만일에 기대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 지금 집에 없으니 삐 소리 후, 이름과 용건을 남겨 주십시오.
여전히 본인의 음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재생음은 익히 알고 있다.
메시지를 남길까 말까 망설였지만…
- 삐------
……끊어 버렸다.
어차피 메시지를 남긴다 한들,
그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줄 리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부산에 오면서 핸드폰을 없애 버렸다.
어차피 잘 쓰지도 않던 것이라 그리 아쉬움은 없었지만,
그걸 없애라 권한 고모의 마음이 짐작 안 가는 것도 아니어서 씁쓸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모의 심중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집 전화도 쓸 수가 없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그녀도 전화 한번 해 주지 않는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밖에 나올 때마다 전화를 걸어
그녀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수밖에는.
" 후우…… "
카드를 빼내 한번 벽에 대고 튕긴 후,
사방이 막힌 전화부스 안에서 크게 한숨을 내쉰다.
투명한 유리 부스를 통해 비치는 거리의 모습과 부스 안의 자신 사이에
벽의 두께 이상의 거리감이 존재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이 공간에서 호흡하지 않아.
적어도 내 정신은, 이곳에서 동떨어진 어딘가에 흘러 있다.
" 헤--- 벌써 끝났나. "
전화 부스에 등을 돌린 채 서 있던 선규 형이 몸을 돌렸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하니, 더 묻지 않고
팔을 들어 운동하듯 몸을 좌우로 비튼다.
" 어으으… 뱃 속에 그지 일곱마리는 들은갑다. "
" 벌써 이렇게 됐어? "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니, 벌써 1시 40분이다.
시험이 끝나 모처럼 나온 일요일.
거리엔 헤치고 지나가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 뭐 먹을 건데? "
" 칼국수랑 만두가 싸고 맛난 집 있는데, 괜찮나? "
선규 형의 제안에 동하가 동의를 표시해,
두사람은 전화 부스 앞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내려 온 지는 꽤 됐지만 그간 집과 학교만을 왕복해,
이렇게 번화가에 나와 본 건 실로 오랜만인 동하다.
내려 오기 전에도 종종 고모 집을 방문할 때마다
두 형과 함께 돌아 다니곤 했지만, 역시 생경한 걸 어쩔 수 없다.
그건 아마… 마음이 본래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른다.
" 여기서 길 건너는 기다. "
건널목에서 멈춰 섰다.
무의식적으로 신호등을 보고,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돌려 건너편을 둘러 본……
( ……!!! )
0.5초.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0.5초 동안의 정지화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것은 눈을 한번 감았다 뜨자 이내 사라져 있다.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던 영상.
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 또야…… )
언제나 속는다… 언제나.
저것은 환각.
달콤하고 짧은 한낮의 백일몽.
밤에 그녀의 꿈을 꾸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낮에 헛것을 보는 건 사양하고 싶다.
" 야! 동하, 뭐하노? 파랑불이다. "
선규 형이 어깨를 툭 건드린다.
동하는 아, 응… 하고 당황한 듯 대답하곤 길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겼다.
달콤한 감각.
인간의 의식이란 건 참으로 알 수 없다.
기억이란 것은, 갈구라는 것은,
있지도 않은 걸 일순 현실처럼 만드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달콤하고 짧은 백일몽 뒤에 이어지는 현재는 이렇게나 인내를 요해,
소년은 가끔 입술을 깨물며 뛰쳐 나가고 싶은 자신을 억눌러야만 했다.
쓰디 쓴 감각.
일순, 헝클어진 자신.
( 조금만… 조금만…… )
이제 곧 방학이 올 거야.
그럼 어떻게 해서든 만나러 간다.
왠지 모를 불안감.
어째서 전화를 받지 않을까.
단 한번도 자신이 응답한 적이 없어.
메일을 보내도 답장을 준 적도 없다, 단 한번도.
불안… 아냐, 바빠서 그런 거겠지.
촬영과 원고에 쫓기고 있는 걸거야.
분명히 약속해 주었어.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아는 한의 그녀는.
그래… 절대 아닐 거야…….
" 동하야, 잠깐 여기 좀 들어가자. "
" 응…? "
" CD 하나 사면 된다. 잠만. "
선규 형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대형 레코드점이었다.
배가 고프다더니 CD 살 기운은 있나 보군… 하고 동하는 웃으며
형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형이 뭘 찾는 건지 팝송 코너를 뒤적거리는 걸 보며
그는 이제껏 한번도 들어 와 본 적 없는 레코드점 안을 둘러 걷기 시작했다.
번화가의 레코드점이라 사람도 많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보고 있는 사람들.
머리를 맞대고 CD 한장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연인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스쳐갔다.
가요… 재즈… 그리고 클래식 코너를 발견한 건
가게 가장 깊숙한 곳에서였다.
- 한장 가격에 두장을 드립니다.
언제나 하나쯤은 있는 광고 문구 아래 얌전히 자리잡고 있는 CD는
따로 설치된 특별 코너에 놓여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걸 집어 들었을 때,
" ……. "
저도 모르게 반가운 미소가 흘렀다.
The Essential Chopin Collection>.
검푸른 밤의 정경을 담은 표지에 씌어 있는 영어…
------그리운 감각이 흐른다.
- 처음 듣고… 울었어.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지만…
첫 부분에선 넋을 잃고 있다가 중간에 느려지는 부분에 들어가서 말야.
다시 빠른 부분으로 돌아 와 정신이 들어보니, 내가 울고 있더라구.
조용한 음성이 음악과 함께 귓전에 들려 온다.
자신을 둘러 싼 현재의 광경은 부서지고
자신의 눈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완전히 다른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마치 그 순간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자의 모습과
빙 둘러 앉아 지켜 보고 있는 어른과 아이들.
돌이켜 보면 얼마나 따뜻한 겨울나기였던가.
처음 온 곳이었음에도
자신이 원래 거기 있어야 할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던 기억.
그래……
나는 그 때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 즉흥 환상곡…이죠? "
소리내어 중얼거린다.
……마치 상대가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절대 잊을 수 없을 만치 맑디 맑은 멜로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곡.
그리고 어느 샌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 버린, 쇼팽의 음악.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고 비닐 포장을 뜯고
CD 뚜껑을 열어 플레이어에 CD를 집어 넣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그리운 멜로디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 에, 뭐고? 엉? 이거 클래식 아이가. 너 이런 취향이었나. "
카운터에 온 선규형이 사람좋게 웃으며 놀랐단 듯 묻는다.
이어폰을 빼며 동하는 멋적게 웃었다. 기분좋은 쑥스러움.
" 아냐. 잘 모르는데, 이건…… "
" 좋아하나. "
" ……응. "
좋아한다……
아니, 이건 그 이상의 의미를 내게 지닌 음악.
그녀의 음성을 대신할 존재.
찾았다… 볼 수 없는 잠시동안 나를 달래 줄 진통제.
언젠가 분명 그녀의 연주로 다시 들을 수 있으리라.
소년은 CD를 배낭 속에 보물을 다루듯 소중히 집어 넣었다…
마치, 그녀를 다루듯이.
" 어머, 시연이 머리 잘랐구나? "
시연을 보자마자 은영이 처음 소리친 대사는 이거였다.
수트 케이스와 가방을 들고 막 집을 나서는 중이었던 시연은
느닷없이 나타난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회사에 낸 사표가 수리되고 마지막 마감을 끝낸 바로 다음 날.
배웅할까 하는 원장의 제안도 뿌리친 터라
누구도 이 아침 만나리라 예상치 못했는데…
" 선배, 여기 왠일이에요? "
" 너, 오늘 떠나잖아.
실은 나 아침에 이 근처 들를 데가 있어 잠깐 갔다가
생각나서 너희 집까지 와 봤지.
택시 타구 갈 거지? 한길까지 들어다 줄게. "
" 짐도 별로 없는데… "
어색한 듯 난처한 듯 웅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가끔 치는 선배의 뒤통수에 매번 당하면서도
시연은 기쁨과 놀라움이 범벅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도 아니었다.
가끔 이 사람이 굉장히 신기하다.
대체 선배란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챙기며 살까.
줄곧 혼자 해 온 건 나와 마찬가지인데, 이 사람은.
" 집안 문이랑 수도꼭지랑 가스, 확실히 잠궜지? "
" 전기 코드도 왠만한 거 다 빼놨어요. "
약간 시어머니 같은 데가 있다, 은영선배는.
처음 입사했을 때도 꼬치꼬치 짚고 넘어 가서
처음엔 무지 까탈스런 성격인 줄 알았다.
공적으론 쌀쌀맞은 태도를 후배에게 견지하고 있는 선배이기도 했다.
처음, 날 어지간히 미워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까지 했었지.
6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진실을 알았지만.
" 그럼, 잘 다녀 와. 가서 선물 사오는 거 잊지 말구. "
" 제가 없는 동안 서울 잘 지키고 계세요. "
장난스런 표정의 은영에게 장난기 섞인 응답을 보내고 택시에 탔다.
뒷자리에 짐 싣는 걸 도와 준 기사도 앞 좌석에 올라, 택시는 출발했다.
손을 흔들고 있는 은영선배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
시연은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어제 자른 커트가 영 어색하다.
차창을 통해 흐리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
왠지 모를 어색함에 피식 웃었다.
기분을 바꾸고 싶단 뜻이었는데 그런 자신이 갑자기 아이 같단 생각이 든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부치고 수속을 밟고
그리고, 이내 이륙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게이트로 향했다.
- OO항공 로스앤젤레스행 KE-XXX편을 타실 승객은 줄을 서 주십시오.
잠시간의 기다림. 그리고, 안내 방송.
익숙치 않은 것들이다.
일 때문에 포토와 모델들과 함께 도쿄와 푸켓에 갔던 적이 있지만,
여러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느라 정신없었던 탓일까,
지금처럼 자신의 기분을 곱씹을 여유가 없었다.
줄을 서서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찾아 짐을 올리고 그리고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맨 뒷줄 창가자리다. 창가자리에 앉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아.
단체로 북적거리며 갔던 촬영 때는 창가자리는
철딱서니 없는 모델들한테 넘겨 주고
자신은 가장 불편한 가운뎃자리에 앉았었지.
기장과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번갈아 나온 안내방송이 끝난 후,
비행기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 겁 안나우? "
" 예…? "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대뜸 말을 걸어온다.
여행이 몸에 밴 듯한 느낌의 50대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계속 얘기를 주고 받은 양 친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연은 글쎄요… 하며 수줍게 웃었다.
" 골백번을 넘게 타도, 이 놈의 귀가 멍멍한 건 적응이 안된다우, 난. "
아주머니는 수선스런 동작으로 말하곤
가속을 붙인 비행기가 떠오르는 감각에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다.
시연은 그런 아주머니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창 밖 풍경을 살폈다.
멀어지는 공항… 그리고, 서울의 모습.
저런 모습, 저런 풍경이었던가.
그 풍경에 스쳐 지나가는 영상들…
대학 시절부터 죽 이어지는 도시의 기억.
입학식… 수업…
정신없이 지나가던 대학 생활… 아르바이트에 바빴던 매일…
선배를 만나고… 그리고, 헤어졌다…
취직을 하고… 그리고, 그 분을 만났지……
결혼… 그리고, 죽음…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찾았었다…
누군가를…… 찾지 말았어야 할 누군가를…….
- 당신같은 사람이 내 엄마,
아니 엄마 비슷한 존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괜히, 나한테 관심갖는 척 할 것 없어요. 위선으로 비치니깐.
냉냉한 시선… 그래, 기억한다.
다른 건 전부 희미해졌는데도,
난 그 애의 소리 하나 표정 하나까지 기억하고 있는가 보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도.
- 전 미역국 안 먹어요. 감자 사라다도 싫어하구요.
그렇게 쌀쌀한 그 때도 돌이켜 보면 그렇게 차가운 것만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 애의 진짜 모습을 간파하기까진 조금 시간을 요해야 했지.
- 오늘은 여기 있을게요. 걱정 말고 쉬세요.
온기에 굶주려 있던 내게 그 한마디가 얼마나 안도감을 주었던가…….
진짜 그 애를 조금 비친 그 한마디가.
……따뜻했다.
- 주말이나 돼야, 짐 옮길 수 있을 거예요. 주중에 연락드릴게요. …갈게요.
- 치는 분이 가장 좋아하는 곡 말예요. 그 곡을 신청합니다.
어째서 그 순간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자신도 몰랐었다… 바보처럼.
- 장갑낀 걸 한번도 못 본 것 같아서….
-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면… 오라 하지도 않았어요.
마음이 통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믿을 수 없이 뿌듯했던 순간. 그랬는데…
-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요?
그 한순간의 일이 두사람을 바꿔 놓아 버렸어.
- 왜 왔어요….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 애의 눈물을 닦아 준 걸 후회하지 않아…
내 진심을 드러낸 것도 후회하지 않아……
그 애를 사랑한 사실을 후회하지 않아……
잡지를 보고 있던 옆자리 아주머니는 어느 새 잠들어 있다.
시연은 창 밖, 구름 가득한 대기의 색이 물을 뿌린 것처럼 번져가는 걸
느꼈다.
- 잠깐만 이대로 있어요… 잠깐만.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한 순간.
너무 행복해서,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 끝… 이제 접어야 해…
다른 기억처럼 흐릿하게 무너뜨릴… 그래… 흐릿하게…
그러나, 정말로 흐려진 건 시야였다.
이윽고 가득 찬 무언가가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 내리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맑아진 자리에 다시금 뿜어져 나오는 새 물기도.
- 우리 둘 다 맨발이에요. 이렇게 서 있는 지금은,
당신은 스물 일곱이 아니고 나도 열 일곱이 아니야.
나에게 당신은 아버지와 결혼한 사람이 아니고
당신에게 나도 남편의 아들이 아니에요.
우리 둘은, 그냥 두사람일 뿐이야.
말해 준 그 애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용기있는 인간.
알아…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걸……
용서해 줘… 날, 용서해 줘…
도망치는 나를… 다시 쳐다보지 않았으면 해…
너는 행복할 거지…? 다 잊고 행복해져.
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 그 땐 가슴에서부터 완전히 지울 테니……
' 안녕…………… '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도록 소리없이 울었다.
이것은 필경, 마지막 눈물이리라.
이제 울지 않아.
지우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누구보다 익숙한 나니까.
이것도 마찬가지.
이제, 마지막.
이제, 울지 않아……
그렇게, 또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
And you said that I was naive 그리고 넌 말했지, 내가 약하다고
And I thought that I was strong 그리고 난 생각했어, 난 강하다고
I thought, 난 생각했지,
hey, I can leave, I can leave. 떠날 수 있어, 난 떠날 수 있어.
But now I know 그러나 지금 알았어,
that I was wrong 내가 틀렸다는 걸
'cause I miss you 네가 그립기 때문에
I miss you 네가 그립기 때문에
Lisa Loeb & Nine Stories/ Stay
" 누나, 여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
테라스 난간에 기대 아랫 정원의 밤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시연은
뒤에서 들려 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이 자기와 같은 클래스에 있는 청년의 것임을 알고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 …민우구나. "
" 안에 더워요? 왜 밖에 나와 있어요? "
" 그 반대야.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놔서 추워서 나왔어. "
" 더위보다 추위를 타는 체질인가 봐요. 자, 이거 받아요. "
술이 들어 있는 글래스를 받으면서 시연은
언제나 침착한 민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음을 알아 차렸다.
음주에 강하다 들었는데 안에서 꽤 마신 모양이다.
잘 들어 보면 목소리도 약간 혀가 꼬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시연이 다니는 랭귀지 스쿨의 종강 기념파티 중이다.
워낙 파티가 잦은 미국인들을 쫓아가게 되는지
랭귀지 수강생들도 자주 자기들끼리 바베큐 파티며
이것저것 사교 모임 비슷한 걸 여는 모양이지만,
시연은 보통 주말엔 신세지는 원장 동생 분의 음식점에서
일을 거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이 첫 참석이었다.
" 누나, 이번에도 안 나올 거라 그랬잖아요, 어떻게 나왔네요? "
" 어, 그렇게 됐어.
윤경이가 집 앞까지 차를 대 놓고 기다리는 통에 안 나올 수 없어서. "
학교에서 지정해 준 장소인 빌딩 레크리에이션 홀에 가득히 모인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빠른 비트의 음악에 섞여 간간이 들러온다.
시연과 민우가 선 곳은 홀과 연결된 위치에 있는 작은 테라스였다.
밑으로 잔디밭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캘리포니아 팜 트리도 한껏 키를 자랑하고 있다.
" 놀러 왔다면서요.
유학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벌러 온 것도 아니면서
대체 노는 모임엔 왜 그리 참가를 안하는 거냐고 다들 궁금해 하던데… "
" 너무 그러지 마. 나 같은 노땅이 끼면 재밌니? "
" 서른 넘은 혜윤이 누나도 매번 나오는데 누나 너무한 거 아녜요?
나보다 겨우 3살 많으면서 누나두 참, 되게 늙은 척 한다. "
민우는 군대를 제대한 뒤 대학을 휴학하고
이미 6개월동안 어학연수를 받은 참이다.
이번 수업을 끝내고 잠깐 여행을 한 뒤,
곧장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영어도 유창해서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외국인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녀석이다.
시연은 물론 스피킹 면에선 민우만 못했지만
레벨만은 같았기 때문에 죽 수업을 같이 들었던 사이였다.
" 라스베가스엔 갈 거죠? "
" 응, 거긴 별로 관심없는데 그랜드 캐넌에 가 보고 싶어서.
지금 안 가면 언제 한번 가보겠어. 넌, 안 가니? 전에 가 봤다 그랬나? "
민우는 대답 대신 갖고 온 병 안에 반도 넘게 차 있는 맥주를
목을 젖히며 전부 마셔 버린다.
시연은 그 속도가 빠른 것에 놀라 민우를 멍하니 바라봤다.
언제나 웃고 있는 서글서글한 눈이 조금 풀려 있다.
힘이 드는 지 빈 잔을 흰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
민우는 시연에게서 좀 떨어진 위치에서 난간에 등을 기댔다.
" 안 가요. "
내뱉듯 답한 민우의 입술이 창백하다.
" 전에 가 봤나 보지? "
" 진영이……도 가나요? "
영 동문서답.
" 응. 한국에서 남자친구가 와서 같이 갈 거라고 그러던데… "
" 남자친구가 아니고, 약혼자에요. "
" 그랬어? "
" 몰랐어요? 진영이 약혼한 거. "
" 몰랐어……. "
" 예에, 약혼자랩니다…… "
민우가 몸을 돌리더니 팔꿈치를 난간에 대고 손으로 이마를 감싸쥔다.
진영이는 시연과 민우보다 한 레벨 아래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로,
대학 졸업을 6개월 남겨 놓고 어학연수를 온 아이였다.
민우와 거의 같은 시기에 여기 왔고 한국에 돌아가 대학을 마치면,
다시 미국으로 유학 올 예정이라 했다.
귀여운 얼굴에다 발랄한 성격이라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듯 했다.
뭐, 것도 한국에 남자가 있단 사실을 알곤 다들 실망스런 눈치였지만….
그 남자가 단순한 남자친구가 아닌 약혼까지 한 사이란 것까진 몰랐었다.
" 제길…… "
민우가 많이 취한 것 같다.
시연이 걱정되어 얼굴을 들여다 보려 했을 때,
민우의 나직하고 약간은 꼬인 듯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 나, 누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
" 응……? "
" 누나, 아주 아픈 사랑 해 봤죠. "
" ……. "
시연은 가만히 있었다.
민우가 대관절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꺼내는지
지금의 그녀로선 짐작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 대답이 없는 거 보니까 정말이구나. 그럴 줄 알았어… 보여요.
다들 그래요, 이시연이란 사람, 너무 미스티리어스하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모여 자기 연애담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누난 그냥 웃으며 듣기만 하잖아.
그 때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거죠? "
" ……. "
" 훗, 말하고 싶잖으면 안해도 되요. "
시연은 또 한병을 따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민우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 웃음… 그냥 웃고 있는 게 아니야… 뭔가… 자조 기미가 섞인……
웃음의 진의를 파악하려 애쓰고 있을 때,
툭 하니 뜬금없는 한마디가 들려온다.
" …나, 진영이한테 키스했어요. "
" 응……? "
" 진영이한테 키스했다구요.
겨우 6개월에 내가 이렇게 될 줄 짐작도 못했지만
나, 진영이 정말 좋아해요.
나보다 그 앨 더 사랑해 줄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진영이도 내가 싫지 않댔어.
근데, 훗… 그래도 그 남자랑 결혼은 할 거라네요.
날 좋아는 하지만 그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 걸 바꾸고 싶진 않다고. "
" ……. "
" 나는… 지금 이 순간, 죽을 것 같은데……
다른 남자랑 여행을 한다네요…… 나는, 죽을 것… 같은데…… "
얼굴을 감싸쥔 채 말하는 음성이 조금 떨린다.
새로 딴 맥주를 들어 입에 갖다대려 하는 민우를 시연은 가로막았다.
" 아까 위스키도 많이 마셨잖아. 이거 몇병짼지 몰라두… 이제, 그만해. "
" 맥주는 술 아닌데…… 그냥 음료수인 걸. "
" 돗수 높은 거 마신 담에 마시는 건 전부 독주야.
중요한 건 네가 지금 취했단 거구. "
시연은 민우가 들고 있는 코로나 병을 뺏아
손이 닿지 않는 방향으로 돌렸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이런 때는 근처에 있는 산타 모니카 비치라도 가서
산책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에어콘을 한기가 들 만큼 틀어 논 인공적인 공간에
죽 치고 앉아 술이나 마실 게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싶다.
……무겁다.
" …이건 내가 마실게. "
" 누나… 나한테… 진영이 잡으란 소리 해 주면 안돼요……? "
" 민우야…… "
" 응? 안돼요…? 나는, 진영이 잡으면 안되는 거야?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거 아니잖아.
약혼자 있는 여자 내 걸로 만들면 나 미친 놈 되는 거야…? "
" 후…… "
시연은 고개를 돌렸다.
여기 바보같은 인간 또 하나 있구나.
세상의 반은 여잔데 그 중 하필 어려운 거 골라서
저렇게 힘들어 하는 인간이 또 하나 있구나.
" …진영이가 그 남자랑 결혼하길 원한다면서. "
" 나, 진영이 좋아하구 진영이도 나 좋아하는… 그거면 되잖아.
나 알아. 진영이 그 남자 조건 보구 결혼하려는 거라구요…
집안에서 정해 준 남자란 말야. "
" 민우야. "
결국 옆에 있는 술이라도 마실 수밖에.
좋다.
뱃속이 후끈후끈해지는 감각이다.
이런 감각이 좋아서 다들 술을 마시나 보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지만 술도 상처를 낫게 만들진 못한다.
잠시 통증이 덜해지는 것 뿐.
" 나, 너한테 진영이 잡으란 소리… 못해. "
" …누나도 여자니까? 여자들은 다 그런 거야? 연애 따로 결혼 따로야?
누나도 여자니까, 진영이 이해할 수 있다 이거에요? "
" 그런 게 아냐. "
시연은 테라스에 비치된 흰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다리 위에 힘이 빠진 팔을 걸치듯 내린다.
" 그럴 수가 없어. 나는 그런 식의 충고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그렇다구 너한테 진영이를 포기하라고도 말 못해… "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나 자신이 사랑에서 도피해 온 사람인데.
이룰 수 없는 상념에 아파하는 지금 처지에
네 아픔까지 눈을 돌려 해답을 도출하란 거, 지금 나한텐 무리야.
내 자신이 바보인데, 네 방향을 어떻게 감히 말해 줄 수가 있겠니.
무리야, 절대 무리. 나는 할 자격이 없어……
" 누나도 힘든 일이 있었던 거죠…… 그렇죠. "
민우가 고개를 들었다.
" ……다 지나간 거야. "
시연은 조용히 말했다.
그것은 민우에 대한 응답이라기 보다 자신에 대한 다독거림 같은 것이었다.
다 지나갔다고 생각해. 그것은, 한순간의 설레임이었다고.
" ……누나, 미안해요…… "
한동안의 침묵 후, 민우가 조용히 말했다.
여전히 말하는 어조는 명확지 않지만
아까처럼 몸이 풀린 듯한 느낌은 아니다.
" 누나한텐 왠지 얘기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 함부로 떠들 사람은 아니니까… 왠지 말하고 싶었어.
응석부려 본 것 뿐예요. 누나라면 이해해 줄 것 같아서.
누나라면 진영이도 나도 이해해 줄 것 같아서. "
" 그래. "
" 그래도, 나는… 정말 힘들어… 잡아선 안된다 생각하니까 더 힘들어…… "
시연은 민우가 당황하지 않도록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여 주었다.
민우의 고민… 시연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장본인이 되기 전엔
그 고민의 무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법.
결국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자신의 힘일 뿐.
하지만, 그냥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잠깐이나마 가벼워지지 않을까.
은영선배가 내게 그렇게 해 주었듯이,
민우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 정도는 해 주고 싶다.
그래서 시연은, 민우가 웅얼거리는 걸 한동안 잠자코 들어 주었다.
" 민우야, 물 갖다 줄까. "
" 간 김에 맥주 한병만 더 갖다 주실래요? "
시연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애원하듯 자신을 보고 있는 민우의 눈빛이 꽤나 안스러워
결국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 하나만. "
" 응. "
민우가 어린애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 보고서
그녀는 걸음을 옮겨 홀 안으로 돌아갔다.
반팔 셔츠 밑으로 닿는 공기가…… 차다.
나만이 아니었다.
힘들어 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었어.
현실이란 건… 품고 있는 것과 다른 이 중압감은,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든다.
지쳐 버리게 돼…… 누구나, 누구할 것 없이.
이렇게나 힘들건만, 왜 인간은 사랑이란 걸 하게 되는 걸까.
캘리포니아.
1년 내내 겨울이 존재치 않을 듯한 이 태양의 공간에도 밤은 찾아온다.
이곳에도 어딘가에서 이별을 고하며 울고 있는 연인들이 있겠지.
결국 아픔없는 세상이란 그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어둠이 어디에나 내리기 마련이듯이.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다행히 부산에서 다닐 학교 진도 쪽이 서울에서보다 느린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히 공부할 수 있었던 동하였다.
아르바이트도 없겠다, 공부할 시간도 늘었고.
고3인 선규형과 같은 학교로 전학한 덕분에
함께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고 돌아가곤 했다.
고모와 둘이서만 얼굴을 맞대는 것도 어색했고,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공부에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일단 결심한 건 확실하게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 오늘 시험 잘 봤나. "
엘리베이터에 탄 선규형이 동하에게 물었다.
학교 자습실이 문을 닫는 12시까지 줄곧 공부하다 온 참이었다.
내일로 지긋지긋한 기말시험도 끝이 난다.
" 답안지가 나와 봐야 알지. 오늘 건 내일 나오잖아. 형은? "
" 아, 죽겠다. 내신 마지막인데, 영어가 여엉……. "
" 오늘, 밤 샐 거야? "
" 미친나? 내는 죽어도 밤은 못 샌다. 두세시간이래도 자야 시험을 보지.
니도 괜히 밤샐 생각은 하지두 마라.
아무리 내일 시험 하나 남았다 해도 말이다. "
선규형이 말도 안되는 얘기는 하지 마라, 는 투로 말한다.
선규형은 수업시간에 조느니,
또는 시험시간에 피곤해서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느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네시간은 자야 한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 민규형도 형 같았어? "
" 그 인간? 그 인간 말도 마라. 그 인간은 진짜 독종이다.
시험 땐 진짜 한숨도 안 잔다.
그리고 끝난 날은 죽은 사람처럼 몰아서 자는 스타일이제. "
두사람은 선규형이 갖고 있는 열쇠로 문을 따고
13층 복도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고모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왠만하면 두사람이 돌아올 때까진 으레 깨 있는 고모신데
오늘은 먼저 주무시나 보다. 피곤하시겠지.
" 엄마 자나 보다. 내도 졸리다. 지금 몇시고. "
" 12시 40분. "
" 나도 잠깐 잘란다. 2시에 좀 깨워 줄래? 그 때까지 너 깨 있을 거제. "
" 알았어. "
선규형은 도저히 안되겠단 듯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피로가 쌓일 만큼 쌓였는지 드러눕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그렇게 피곤한 건 아닌 동하는 버틸 만큼 버텨 볼 생각으로
부엌 불을 켰다.
식탁 위에 내일 볼 마지막 과목 중 하나인 국사 프린트를 펴려다,
문득 동작을 멈췄다.
' 아, 그래…… '
잠깐만 체크해 보자… 와 있을 리도 없겠지만……
거실에 있는 컴을 켰다.
뭐, 기대는 않는 게 좋을 거다.
학교 수업 중이건 PC방에 들러서건 몇번이고 체크해 봤지만
이제껏 메일을 준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
이쪽은 그래도 꽤 자주 보냈는데.
정말이지 섭섭하단 생각이 든다.
방학만 하면 서울 올라가서 따질 지도 몰라.
『 2통의 메일이 있습니다. 』
실은 아니다.
사실은… 무사히 있어 주고 변치만 않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저 전과 같은 모습이면 그걸로 만족한다.
불안해서, 조금 답답한 것 뿐이야.
보고 싶어 하루에도 몇번이나 흐트러지는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배낭에는 언제나 CD 플레이어와 지난번에 산 쇼팽의 CD가 들어 있어,
그걸로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으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버틸만 해… 그렇지?
' 2통…? '
메일 박스를 열었다.
한통은 언제나 그렇듯 일주일에 한번은 날아 오는 연석의 메일이다.
이 녀석은 뭔 그리 쓸 말이 많은 지,
학교 얘기며 자신이 다니는 학원 얘기까지
이 얘기 저 얘기 시시콜콜 적어 보낸다.
말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닌데 의외로 글을 길게 쓰는 타입이란 걸 알았다.
처음부터 이과로 가기로 마음먹은 자신과 달리 문과를 택한 녀석은
그래설까 답잖게 글을 길게 쓰는 경향이 있다.
은근히 섬세한 데가 있단 말씀이야.
때로는 떨어져 지내게 되어서야
그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법인가 보다.
……!!!
다른 한통으로 눈을 돌렸을 때… 가슴이 덜컹, 하고 움직였다.
믿을 수가 없어서 제목의 글자를 뚫어지게 주시한다.
그 사람이다… 왠일로…….
무심결에 마우스를 움직이려다 문득, 멈춘다.
" 하아… "
긴장을 가라앉히듯 숨을 몰아쉬었다.
왠지… 바로 열어 볼 수가 없다.
한동안 연락이라곤 일체 없던 사람이 모처럼 준 메일이라 그런지,
영 용기가 서질 않는다.
연석의 메일을 먼저 열어 보기로 했다.
『 동하
임마, 답장 좀 제대로 보내라.
나는 죄다 긁어 모아 적어 보내는데 자식, 석줄이 뭐냐, 석줄이.
싸가지 없는 새끼 같으니.
니 놈 무심한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돈 줄 정말 몰랐다.
정신차려, 새꺄.
나처럼 괜찮은 친구를 부산 아니라 세곌 방랑해도
또 구할 수 있을 것 같냐, 니 주제에.
있을 때 잘해.
앞으로 하는 거 봐서 널 리스트에 잔류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테니까.
기말시험 잘 보고 건강해라.
연석. 』
( …귀여운 놈. )
여전하군, 이 자식.
삐지기도 잘 삐진다, 계집애도 아닌 것이.
피식 웃었다.
여자친구라도 생기면 좀 달라지려나.
이 녀석은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은 주제에,
자기가 좀 밑진다 싶으면 이렇게 꼭 따지고 들어와야지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뭐, 그런 점이 있으니까 무덤덤한 동하와 마음이 쉬이 맞은 거겠지만.
" ……. "
입술을 한번 꾸욱 다물었다, 다른 한통의 메일을 클릭했다.
손이 조금 떨린다.
수전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까 수학문제 풀면서 손을 무리하게 움직인 모양이야.
…침을 가볍게 삼키고,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 ……! '
읽고 있는 동하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소설방 > 금지애(禁止愛)'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지애(禁止愛) (11) (0) | 2014.09.25 |
---|---|
금지애(禁止愛) (10) (0) | 2014.09.25 |
금지애(禁止愛) (8) (0) | 2014.09.25 |
금지애(禁止愛) (7) (0) | 2014.09.25 |
금지애(禁止愛) (6) (0) | 201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