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 협력(2)
(1766) 협력-3
다음날 오전, 김갑수는 천리마무역 대표인 양기창과 마주 앉아있었다.
양기창은 신임으로 전임 대표 김성산보다 10살이나 어렸지만 영향력은 훨씬 강했다.
당 핵심과 직통라인이 개설되어 있다는 것을 김갑수는 알고 있었다.
김갑수의 말을 들은 양기창이 미간을 모으고 잠깐 생각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날카로운 눈매가 더 가늘어졌고 입이 죽 다물려졌다.
40대 후반의 양기창은 김일성대와 베이징대를 나온 중국통이다.
“가능한 일이지.”
마침내 양기창의 입이 열렸다.
“조철봉의 생각도 일리가 있어.”
김갑수의 시선을 받은 양기창이 말을 이었다.
“평양에 보고를 할 테니까 내일까지 기다리도록.
그러고 나서 내가 조철봉을 만나기로 하지.”
“예. 대표동지.”
김갑수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렸다.
그때 양기창이 물었다.
“조철봉이 그자 본바탕은 사기꾼 아닌가?
내가 조사한 바로는 수없이 사기를 쳤고 여자 관계를 맺었던데.”
“예. 그렇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김갑수가 똑바로 양기창을 보았다.
“잡혀서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 자가 성공해서 저렇게 으스대고 다니다니 남한 사회는 참, 요지경이야.”
혀를 세 번 입천장에다 두드린 양기창이 다시 물었다.
“우리가 당하지는 않겠지?”
“조철봉과 7년 관계를 맺어왔지만 동업 관계를 배신하거나 장부를 속인 적도 없습니다.”
“나도 그자 능력이 있다는 건 김성산 동지한테도 들었어.”
그러고는 양기창이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동무가 겪은 조철봉에 대해서 비판해보게. 그자의 북한관에 대해서도 말야.”
그러더니 덧붙였다.
“나도 중국에서 4년을 공부하고 대사관에서도 3년을 복무한 사람이야.
허심탄회하게 말해주게. 자네의 한국관도.”
김갑수는 긴장했다. 양기창은 조철봉에 대해서보다
자신의 대 한국관을 알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천리마무역 내에서 조철봉을 가장 많이 겪은 자는 자신이었고
따라서 한국에 대한 경험도 많은 것이다.
김갑수가 입을 열었다.
“언젠가 조철봉이 지나가는 말처럼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족이 밥 먹여주느냐고 말이지요.”
“흐음. 그래서?”
양기창이 눈웃음을 쳤다.
“남쪽의 보수 꼴통들이 자주 쓰는 말이지. 나도 알아.”
“그렇다고 조철봉은 보수 꼴통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말하자면 뭔가?”
“뭐랄까. 남조선 인민 상당수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꼭 보수나 진보로 나눌 필요가 없는.”
“좀 어렵군. 계속해.”
“옆집 사람이 제 벽에다 못질을 하는 소리가 거슬린다고 고발을 하는 세상인데
얼굴도 성도 모르는 먼 북한 사람 생각한다는 건 웃긴다는 것이지요.
이것도 조철봉이 한 말입니다.”
“그게 민족 반역자라니까.”
그러자 김갑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대표님, 조철봉은 어느 누구한테도 반역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기업을 일으켜 경제에 기여했고 여기선 우리한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1767) 협력-4
양기창의 사무실을 나온 김갑수는 건물 건너편의 커피숍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켰다.
전화를 건 지 10분쯤 후에 커피숍으로 사내 하나가 들어서더니
곧장 김갑수에게 다가와 앞에 앉았다.
천리마무역 대표부의 감독관 이세웅이다.
이세웅은 김성산 시절부터 김갑수와 함께 근무한 사이로 당과의 연락책이다.
“무슨 일이야?”
40대 초반으로 김갑수보다는 연상인 이세웅이 묻자 김갑수는 양기창과의 대화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말했다.
그러고는 정색하고 물었다.
“오늘 평양에 어떻게 보고 할지는 모르지만 조철봉을 민족반역자로 보는 사고를 가지고는
협력 사업을 하기에 부적당하지 않겠습니까?”
김갑수의 긴장한 시선을 받은 이세웅이 두어번 눈을 껌벅였다.
대표 휘하의 업체 사장이 대표를 비판한 것이다.
더구나 평양 핵심 실세와 직통 라인이 있는 거물 양기창이 상대였다.
이윽고 이세웅이 입을 열었다.
“조철봉은 남한의 애국자야.”
그러더니 덧붙였다.
“남한식 애국자지. 그리고.”
이세웅이 턱으로 앞에 앉은 김갑수를 가리켰다.
“동무도 북한의 애국자야. 내가 알아.”
이세웅이 또 덧붙였다.
“새로운 북한식 애국자지.”
“감사합니다.”
김갑수의 인사를 받은 이세웅이 쓴웃음을 지었다.
“양기창 동지는 수구 꼴통 애국자지.”
“예?”
눈을 크게 뜬 김갑수를 향해 이세웅이 말을 이었다.
“협력은 서로 이용가치가 있을 때 성립되는 거야.
그것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준다는 전제가 당연히 필요하지.”
“그렇습니다.”
“신념이 강한 자는 여유가 있는 법이야.”
“그렇습니다.”
“내가 평양에 직보하겠어.”
그러고는 이세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덧 굳어진 표정이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김갑수가 막 자리에 앉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인터폰이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김갑수는 수화구에서 울리는 이세웅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제 밤열차 편으로 양기창 동지가 평양으로 떠나셨어.”
숨을 죽인 김갑수의 귀에 이세웅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오전 11시경에 김성산 동지가 다시 대표로 부임해 오실 거야.”
“아아. 예.”
“저녁에 조철봉하고 약속을 정하게. 김성산 동지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동지.”
“김동무하고 같이 참석하도록. 오늘은 구체적인 협력 사항을 이야기해야 될 테니까 말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갑수는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빨리 일이 진행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양기창이 있더라도 협력 사업은 진행이 될 것이다.
양기창도 협력 반대론자가 아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협력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철봉이 3자 협력이란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았는가?
무섭게 팽창해가는 중국 경제에 편승할 기회인 것이다.
김갑수의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그렇다. 조철봉도, 자신도, 다 애국자인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면 된다.
대뜸 민족반역자라고 매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김갑수는 전화기를 들었다.
조철봉과 저녁약속을 정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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