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 시장조사(12)
(1761) 시장소사 -23
사연을 들은 이수동은 김순복을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을 했다.
“내 집에 빈방이 있으니까 우선 거기서 생활하도록 하지.”
이수동이 열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리 신문사 앞으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고마워요. 오빠.”
옆에 앉은 김순복에게 시선을 준 이경애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그럼 김순복씨를 차에 태워 보내고 나서 다시 연락할게요.”
통화를 끝낸 이경애가 김순복과 조철봉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그럼 다 됐네요. 그죠?”
“아직 안 됐어.”
조철봉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먼저 준비를 해야지.”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철봉이 여관방에서 TV를 보는 동안 이경애는 김순복을 데리고 나가
목욕부터 시켰고 미용실에 들른 다음 시장에서 옷과 신발까지 사서 치장해 주었다.
그러고는 가방에 여벌의 옷과 내복까지 가득 담아 넣고 돌아왔다.
“오기호 사장 처남 되는 분의 차로 옌지에 가기로 했어요.”
이경애가 생기 띤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 믿을 만하지 않겠어요? 서로 아는 사이고요.”
그러더니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물론 경비는 주기로 했어요. 기름값까지 해서 3000위안요.”
“잘했어.”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김순복을 보았다.
김순복은 딴사람처럼 달라졌다.
쇼트커트한 머리에 갸름한 얼굴은 윤기가 났고 입술에는 옅게 루즈까지 칠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순복이 얼굴을 붉히더니 외면했다.
“그럼.”
조철봉의 눈짓을 받은 이경애가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더니 김순복에게 내밀었다.
“우리가 나중에 오빠한테 다시 연락해서 도와드릴 테니까 우선 이거 받으세요.”
김순복의 손에 봉투를 쥐어준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3만위안이에요.”
“고맙습니다.”
다시 김순복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쏟아졌으므로 조철봉은 외면했다.
그러자 조철봉 대신 이경애가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당에선 김순복씨가 이상하게 생각하실까 봐 우린 부부 사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제가 모시는 사장님이세요.”
이경애의 시선이 조철봉을 스치고 지나갔다.
따뜻한 시선이었다.
저런 눈빛이면 다 된다.
벗으라면 금방이라도 벗을 시선이다.
이경애의 말이 이어졌다.
“사장님은 한국에서 자수성가 하신 기업가이십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계시지요.
사장님은 정직하게 돈을 버셨고 그 번 돈을 이렇게 자선사업에 투자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이경애가 말하는 동안 조철봉은 헛기침을 세 번이나 했다.
참고 가만 있으려고 했지만 안 되었다.
이경애가 더 계속했다면 재채기가 나올 뻔했다.
그러나 이경애가 입을 다물었으므로 심호흡을 하던 조철봉이 겨우 어깨를 늘어뜨렸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김순복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입맛을 다셨다.
도무지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한번 놀러 오세요.”
조철봉이 겨우 그렇게만 대답했다.
(1762) 시장소사 -24
“룰을 지키지 않아.”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조철봉이 불쑥 말했다.
“그래서 임기응변, 순발력, 적응력이 뛰어난 자가 성공하는 거야.”
이경애의 표정을 본 조철봉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 다른 곳도 비슷하지만 특히 이 곳이 더 그런 것 같다.”
엄지를 구부려 아래쪽으로 가리켜보인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기회의 땅이야. 특히.”
하고는 조철봉이 말을 그쳤다.
특히 나같은 인간한테는, 하려다가 만 것이다.
누군가가 너무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조철봉은 경제에 대해서 그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못보았다.
“특히, 뭐죠?”
그때 이경애가 뒷말을 놓치지 않고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헛기침을 했다.
“사업가들한테 말이지.”
그렇게 둘러붙인 조철봉이 이경애를 보았다.
조철봉의 시선을 이경애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결국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야. 이긴 자가 성공한 거야.
과정은 중요하지가 않아. 지면 역적이 되고 패자로 끝나는 거야.
그러니까 이겨야 돼.”
“편법, 부정, 부패한 수단을 쓰더라도 말이죠?”
이경애가 정색하고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거시기, 한신 알아?”
“모르겠는데요.”
“정말 몰라? 중국 역사에 나오는 인물인데, 한국 사람인 나도 아는데 말야.”
“정말 몰라요.”
“어허.”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경애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한신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제국을 세운 공신이지.
그 한신이 어렸을 때 남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적이 있어.
굴욕을 참고 뒷날을 도모했다는 모범이 되는 행동이었는데 말야.”
조철봉이 입술 끝을 비틀고 웃었다.
“만일 한신이 대업을 달성하지 못하고 객사를 했다면 그런 이야기가 전해졌을까?
천만의 말씀이지.”
제 말에 제가 대답한 조철봉이 머리까지 저었다.
“기껏 전해진다고 해야 그렇게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놈이 뭘 했겠느냐는 따위겠지.
그렇지 않아?”
“그랬겠네요.”
“세상사가 다 그런 거야. 진 놈이 말이 없고 이긴 놈에 대해서 미화 되는 것이 세상 이치라구.”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마침내 이경애가 그렇게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내가 그랬거든.”
이경애가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했어. 아니, 돈을 모은 거지.”
“…….”
“그게 10년쯤 전이었는데 내 그때의 활기가 지금 중국 땅에서 보여.”
“…….”
“나하고 비슷한 놈들이 날뛰는 모습을 보면 나도 흥분이 된다니까.”
그러고는 조철봉이 손을 뻗어 이경애의 손을 잡았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고 이경애도 가만있었다.
“누구는 인건비 바라보고 투자한 중국사업이 이제 끝났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생각만 바꾸면 말야. 이 활기에 편승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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