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 협력(4)
(1770) 협력-7
그날밤 북경호텔 지하 한식당 ‘평양’의 밀실에는 김성산과 김갑수,
그리고 조철봉과 이경애 외 넷이 둘러앉았다.
평양식 냉면에다 불고기 전골, 개장국까지 놓여진 상은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갖춰진
진수성찬이었다.
식사와 함께 평양에서 공수되었다는 40도짜리 인삼주를 마시면서 남북한 당사자에다
조선족 동포까지 낀 넷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흥이 오른 김성산이 이경애가 따라주는 술을 잔에 받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업체 대표는 이경애 동무가 한 곳 맡아도 되겠다.”
그러고는 조철봉을 향해 은근하게 웃었다.
“이경애 동무라면 믿을 만하지 않겠소?”
“그렇지요.”
조철봉이 맞장구를 쳤다.
김성산은 조철봉의 행태를 두르르 꿰고 있는 인물이다.
이미 조철봉과 이경애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돼 버렸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도 몇년 전에 중국 진출을 심각하게 검토했다가 보류시킨 적이 있어요.”
정색한 김성산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어떤 사업을 말씀입니까?”
“호텔과 식음료사업, 유통업까지 다방면에 걸쳐서 말요.”
“그런데 왜 보류되었습니까?”
“첫째가 자금이지.”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인 김성산이 말을 이었다.
“둘째는 중국 정부가 견제하는 눈치를 보였소.
북한의 불법자금이 들어오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지.”
“저런.”
“셋째는 위험 부담이었소.
조 사장께서 지적하신 대로 중국 시장에서 중국인과 경쟁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리하지.
홈그라운드에서 뛰는 놈들은 심판에다 관중의 응원을 다 받게 되니까 말요.”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생각이 같다.
김성산은 오래전부터 조철봉과 호흡을 맞춰온 인물이다.
경제와 경쟁을 아는 사내인 것이다.
“그럼 그 계획을 추진시키기로 하지요.”
조철봉이 말하자 김성산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우리가 처음에 K-TV를 같이 시작할 때의 구조가 다시 시작되는 거요.
한번 경험했던 일이라 자신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7년전 중국식 룸살롱 K-TV를 시작할 때 조철봉은 자금과 노하우를 제공했고
김성산 측은 경비와 관리를 맡았다.
조선족 동포는 중간 관리자인 마담이나 아가씨로 채용했는데
그 중 몇명은 K-TV대표도 되었다.
같은 맥락이지만 이번 사업은 규모가 큰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색한 김성산이 조철봉을 보았다.
“조 사장께서 중국에 북남과 조선족까지 뭉친 협력사업을 계획하신 이유가 뭡니까?
나는 그게 궁금한데.”
김성산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풀썩 웃었다.
“제가 사기꾼 출신입니다.”
“그건 과장하신 말씀이고.”
난처한 표정을 지은 김성산이 입맛까지 다셨다.
외면한 김성산이 말을 이었다.
“사업하다 보면 사기꾼 안되는 사람 없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이젠 반 사기꾼이 되었단 말입니다.”
“사기꾼으로 눈이 좀 트이면 돈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입니다.”
“아하.”
김성산이 반쯤 입을 벌렸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중국 시장조사를 나왔다가 문득 이곳에서 우리가 다시 뭉쳐서
크게 시장을 개척해 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어디 한반도만 우리 땅입니까?
우리가 있는 곳이 우리땅이지요.”
(1771) 협력-8
다음날 오전 11시경이 되었을 때 조철봉의 방으로 최갑중이 들어섰다.
최갑중은 한국에서 날아온 것이다.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도 갑중의 눈동자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파에 앉고 나서 콧구멍을 벌름거리기까지 했다.
여자의 흔적을 찾는 모양이었다.
제가 어떻게 할 것도 아니면서 조철봉의 근처에 오면 무의식 중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하도 조철봉이 여자를 밝히는 터라 버릇이 들어버렸다.
여자 흔적을 찾지 못한 최갑중의 얼굴에 희미하게 실망의 기색까지 떠올랐다.
어젯밤에는 조철봉이 혼자 잔 것이다.
“여기 서류 가져왔습니다.”
최갑중이 탁자 위에 서류 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류 봉투는 두툼했다.
“담당자들한테 대충 이야기했더니 북한 측 책임자 서명을 받아 오랍니다.”
앞쪽에 앉은 조철봉을 향해 갑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어보였다.
“서명 받아가지고 형님이 직접 행동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은행권에서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대출이 되거든요.”
조철봉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중국에서 벌리는 남북한, 조선족 협력사업의 자금을 은행이나 기관에서
대출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철봉은 제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게 될 것이었다.
중국과 베트남, 러시아에까지 벌여놓은 사업체에다 부동산, 동산을 담보로 하면
3천억 정도는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조철봉은 제 돈은 내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천리마무역 대표의 서명이 통할까?”
이제 조철봉은 예전의 사기꾼으로 돌아가 있었다.
눈을 치켜뜨고 조철봉이 묻자 역시 그때의 욕심으로 돌아간 최갑중도 목소리를 낮췄다.
“은행 측에서는 북한 정부의 고위급이 보증 형식으로 각서를 써주고
우리 쪽 정부에서도 보장을 해준다면 백발백중 해주겠다는데요.”
“지랄하고 있네.”
조철봉의 입에서 오랜만에 험한 말이 터졌다.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최갑중을 노려보았다.
“얀마, 그렇게 된다면 어떤 시러베 아들놈이 이런 상의를 해?”
“형님이 먼저 우리 정부 고위층을 만나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사업이 남북간 경협의 기폭제가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기폭제?”
눈을 가늘게 뜬 조철봉이 코웃음을 쳤다.
“그거 기침약 이름이냐?”
했지만 곧 조철봉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금 최갑중은 조철봉에게 정부 고위층을 만나 사기를 치자고 한 것이다.
이윽고 최갑중을 노려보던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할 수 없군. 그래야겠다.”
“천리마대표 김성산을 이용하시지요.”
“이 자식아, 정부를 상대로 사기치다가 걸리면 평생 교도소에서 살아야 돼.”
“사기라니요? 다 남북 간 평화 협력을 위해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
“그럼 네가 해라!”
버럭 소리친 조철봉이 눈을 부릅떴다.
“주둥이 닥치고 가만있어!”
“예, 형님.”
“이 일에 김성산을 끌어들인다면 내가 설 땅이 없어져.”
조철봉이 혼잣소리로 말했다.
“우리 정부하고 북한 측이 직접 붙어서 추진하게 된단 말야.
그럼 나는 닭 쫓던 개가 된다.”
그러고는 다시 조철봉이 미간을 찌푸렸다.
김성산한테도 사기꾼이라고 강조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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