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 시장조사(10)
(1757) 시장소사 -19
다음날 오전,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호텔 커피숍에서 조철봉과 이경애는 오기호 사장을 만났다.
오기호는 오성기계를 황복에게 넘긴 후에 귀국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조철봉과 오기호는 안면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마주앉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조철봉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터라 오기호의 얼굴은 의심의 기색이 역력했다.
불안한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회사를 황복씨한테 넘기셨다는 이야기를 어제 처음 들었습니다.”
조철봉이 모처럼 통역의 도움 없이 오기호와 한국어로 대화했다.
“그래서 사연도 궁금하고 어떻게 지내시나 해서요.”
“황복이한테 들으셨다고요?”
대뜸 물은 오기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황복이의 다롄기계공작소도 본래 주인이 한국인이었죠.
황복이는 거기서 영업을 맡고 있다가 장 사장의 신임을 받아 동업자가 되었고,
동업자가 된 지 일년 만에 회사를 차지했습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오기호가 길게 숨을 뱉었다.
“약점을 잡힌 거죠.
솔직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회사 약점 잡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잡습니다.
더욱이 회사 운영에 깊숙이 간여한 놈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잠자코 머리만 끄덕이는 조철봉을 향해 오기호가 허탈하게 웃어보였다.
“장 사장은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다 내버리고 야반도주를 했으니까
내가 그 양반보다는 좀 나은 편이죠.”
“황복이하고 자동차 소음기 오더의 경쟁관계였으니까요.”
뱉듯이 말한 오기호가 길게 숨을 쉬었다,
“중국은행에서 기계대금 융자를 받아 반이상 상환했고 상환 기일을
한번도 어겨본 적이 없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잔금 전체에 대한 상환 독촉장이 오더니
한달 만에 압류 딱지가 붙었어요.”
“…….”
“나중에 알고 보니 황복이가 내 회사 종업원을 매수해서
내가 자금을 빼돌린다고 고발을 한 겁니다.
고발장이 공안, 당국, 은행에까지 다 보내졌어요.”
담배를 꺼낸 오기호가 불을 붙이더니 연기를 길게 뿜었다.
“와이프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몇십만 위안을 환전해서 한국으로 보냈지요.
물론 한달 만에 메울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덜컥 걸린 것이다.
공안이나 당국에서 오기호의 말을 그대로 믿을 리는 없다.
분명한 자금 밀반출이다.
오기호는 위안을 한국인 환전상에게 건네고 한국에서 원화로 받았을 것이다.
다시 오기호가 말을 이었다.
“가져간 회사돈을 채웠지만 기계값은 한목에 낼 수 없어서 황복이한테 회사를 넘겼습니다.
5년 동안 피땀 흘려 만든 회사가 고스란히 그놈 손에 넘어갔지요.”
“그것 참.”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이제 오성기계가 넘어간 사연과 황복의 성공 비결을 알게 되었지만 뒷맛은 더 씁쓸했다.
“다시 시작할 겁니다.”
그때 불쑥 오기호가 말했다.
반쯤 대머리인 오기호는 40대 후반쯤의 나이에 왜소한 체격이었다.
옷차림도 후줄근했고 어두운 인상이었다.
황복과는 대조적이었다.
건성으로 머리만 끄덕여 보인 조철봉을 향해 오기호가 다시 웃었다.
“큰 공부를 했지요.
하지만 다시 일어날 겁니다.
황복이 같은 놈들한테 눌릴 수는 없지요.
내가 이래봬도 마산 토박이요.”
(1758) 시장소사 -20
“잠깐만요.”
식당 입구를 들어서려던 이경애가 조철봉에게 말하더니 몸을 돌렸다.
멈춰 선 조철봉은 이경애가 옆쪽 골목 입구에 쪼그리고 앉은 여자 앞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았다.
여자가 이경애를 보았는데 두려운 표정이었다.
남루한 차림이었지만 얼굴은 깨끗했다.
머리도 단정히 뒤로 넘겨 묶어서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경애의 시선을 끈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선을 주고 있는 동안 가슴에 싸아한 충격이 왔는데 불쌍하다기보다 슬픈 느낌이었다.
이쪽에서는 여자의 얼굴만 보였으므로 조철봉은 식당 입구에서 조금 비켜나 기다렸다.
머리를 든 여자가 이경애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
여자의 얼굴에 덮인 두려움이 조금 가시는 것도 보였다.
오기호와 헤어져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서려는 참이었다.
이윽고 이경애가 가방을 열더니 붉은색 100위안짜리 지폐를 꺼내 여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놀란 여자가 돈을 노려보더니 두 손으로 받았다.
그때 조철봉은 여자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햇볕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서 눈물 줄기가 반짝였다.
몸을 돌린 이경애가 다가왔는데 얼굴이 상기되었다.
“무슨 일이야?”
조철봉이 묻자 이경애는 머리부터 저었다가 마음을 바꾼 듯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탈북자더군요.”
“그래?”
“시골에서 도망쳐 나왔대요.”
“왜?”
“중국인한테 팔려갔다가.”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힐끗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일어나는 중이었는데 그것도 힘에 겨운 듯 벽을 짚고 일어났다.
“식당으로 데려갈 수 없을까?”
조철봉이 묻자 이경애가 눈을 크게 떴다.
“괜찮으시겠어요?”
“나야 괜찮지만 식당이 받아줄까?”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더니 이경애가 다시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제가 입고 있던 점퍼를 벗고 나서 여자가 걸친 남루한 남자용 점퍼를 벗겼다.
놀란 여자가 말리는 시늉을 하다가 곧 체념한 듯 손을 늘어뜨렸다.
여자의 셔츠 위에 제 점퍼를 걸쳐준 이경애가 환하게 웃었다.
햇살을 받은 이경애의 얼굴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조철봉은 침을 삼켰다.
갑자기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여자를 부축한 이경애가 다가와 물었다.
“됐죠?”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은 앞장을 섰다.
식당 주인은 방을 내달라는 이경애의 주문을 받더니
몇마디 하고는 홀 옆쪽 방을 내주었다.
탁자와 의자가 놓여진 밀실이다.
아마 방에 들려면 비싼 요리를 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말했을 것이다.
셋이 원탁에 둘러앉았을 때 이경애가 여자한테 말했다.
물론 한국어였다.
“겁내지 마시고요.
그냥 식사나 같이 하면서 이야기나 하시면 돼요. 그리고 이분은.”
이경애가 손으로 조철봉을 가리키더니 잠깐 망설였다.
그러더니 거침없이 말했다.
“내 남편입니다. 남한 사람인데 조선족인 저하고 결혼한 겁니다.”
여자의 시선이 조철봉에게로 옮아갔다.
맑은 눈이었다.
그러나 얼굴은 깨끗했지만 수심이 가득 했다.
흥분이 가시지 않아서 두 볼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이윽고 여자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잠깐 말을 멈췄다가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끄럽습니다.”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그 아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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