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84. 시장조사(9)

오늘의 쉼터 2014. 9. 25. 10:35

584. 시장조사(9)

 

 

(1755) 시장소사 -17

 

 

황복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풍채가 좋았다.

 

큰 키에 어깨가 넓었고 아랫배도 나오지 않았다. 인상도 좋다.

“다롄에서 만나 반갑습니다.”

호텔 커피숍에서 조철봉을 만났을 때 황복이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조철봉은 칭다오에서 황복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부품업체 사장이 여럿 모여 있었기 때문에 황복과는 인사만 했을 뿐이다.

“오랜만입니다.”

조철봉의 인사를 이경애가 통역했다.

 

자리에 앉았을 때 황복이 둥근 얼굴을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황복은 자동차 소음기 공장을 운영했고 무역회사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경애가 말해준 대로 다롄에 호텔까지 인수한 재력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롄엔 웬일이십니까?”

“아, 예. 시장조사차.”

말꼬리를 흐린 조철봉이 이경애를 보았다.

 

그러자 황복의 말을 들은 이경애가 조철봉에게 통역했다.

“황 선생이 도와드릴 일이 있느냐고 물으시는데요.”

“술 마시면서 이야기나 하자고 말해.”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자료나 통계를 모으는 것보다 중국 장사꾼들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한테는 도움이 돼.”

어떻게 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경애의 말을 들은 황복이 환하게 웃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황 선생이 주연을 마련하시겠답니다.

 

7시면 어떠냐고 하시는데요.”

이경애가 말하자 조철봉도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는 둘이야.”

“황 선생까지 셋이 되겠다고 하십니다.”

통역한 이경애가 잠시 둘이 입을 다물었을 때 조철봉에게 물었다.

“혹시 룸살롱에 간다면 제가 빠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룸살롱에는 조선어 통역이 다 있거든요.”

“아니, 물어볼 필요 없어. 룸살롱에 가도 경애는 따라와.”

조철봉이 말하자 이경애의 얼굴에 보일듯 말듯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때 황복이 말했으므로 이경애가 통역했다.

“지난달 말에 황 선생이 총경리로 계시는 다롄기계공작소에서 아주기계를 인수하셨답니다.”

“아주기계를?”

정색한 조철봉이 황복을 보았다.

 

아주기계는 중소기업으로 역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해서 조철봉의

 

오성자동차서비스에 납품하는 업체 중의 하나였지만 사장은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중국에 투자해 만든 회사인 것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황복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은행의 상환 독촉을 받다가 기계를 압류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황 선생한테 인수해 가라고 제의했다는군요.”

이경애의 통역을 들은 조철봉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투자했다가 망한 기업은 어느 곳에나 있게 마련이다.

 

꼭 중국땅에 투자했다가 망했다고 유별나게 볼 것도 없다.

 

그러나 중국 경기가 잔뜩 활성화되고 우후죽순처럼 기업체가 일어나는 과정에

 

한국 투자기업들이 망한다는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때 황복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황 선생의 소음기 생산량이 두배반 정도로 늘어났다고 하십니다.

 

오성자동차에서 주문량을 얼마든지 늘려도 수용할 수 있답니다.”

통역을 하는 이경애의 목소리도 기운이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망한 아주기계는 황복의 다롄기계와 경쟁관계였던 것이다.

 

황복은 한국투자기업을 삼킨 셈이다. 

 

 

 

(1756) 시장소사 -18

 

 

 

 

“같은 조건이면 우리한테 백전백패죠.”

룸살롱에서 진짜 양주라고 내놓은 스카치 잔을 들고 황복이 말했다.

 

방에는 아가씨 셋이 앉았는데 황복이 이경애의 시중들 아가씨까지 고른 것이다.

 

황복이 말을 이었다.

“이제 어지간한 자금을 들고와서는 중국 자본에 먹힙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중소기업은 금방 같은 업종의 중국계 기업의 먹이가 되지요.”

술기운이 오른 황복은 거침없이 말했다.

“전에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설치한 한국 중소기업이 한국에서 오더를 받아

 

그렁저렁 운영해 갔지요. 하지만.”

한 모금에 진짜 위스키를 삼킨 황복이 말을 이었다.

“이젠 한국 바이어도 똑같은 품질에 값이 싼 중국계 공장으로 오더를 줍니다.

 

기업은 영리 추구가 목적인데 같은 민족이라고 비싸게만 줄 수는 없죠.”

“똑같은 품질을 만드는데 중국계 공장이 값이 싼 이유가 뭐요?”

조철봉이 묻자 황복은 빙긋 웃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 뭡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거북한데요.”

그러더니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우리가 현지 사정에 더 밝고 요령이 더 있다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군요.”

“그럼 한국 기업이 견디어 나갈 방법이 있겠습니까?”

“자체 시장을 단단하게 확보한 기업이라면 중국에다 공장을 세워도 망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렇겠죠.”

“인건비나 원재료비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들어왔다간 오성기계 경우가 되지요.”

그러더니 황복이 입맛을 다셨다.

“오성기계 오 사장하고는 친했습니다. 둘이 이곳을 단골로 다녔는데.”

방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고나서 황복이 말을 이었다.

“중국 은행은 신용상태가 불안하면 당장에 자금 회수에 들어갑니다.

 

가차없지요. 이번에 오 사장도 그 경우를 당한 겁니다.”

“…….”

“종업원 월급을 며칠 못준 것이 소문난 겁니다.

 

그래서 은행이 기계 융자금 잔액을 한달 안에 상환하라고 한 거죠.”

그러고는 황복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기계대금을 떠안는 조건으로 오성을 인수한 겁니다.”

그렇다면 황복은 횡재를 한 셈이다.

 

오성은 기계대금이 얼마 남았는지 모르지만 기타 시설과 인력,

 

더구나 오더까지 있는 상황인 것이다.

 

조철봉은 잔을 들고 위스키를 한모금에 삼켰다.

 

하도 중국 룸살롱에 가짜 위스키가 범람하다보니까

 

황복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진짜 위스키라고 몇번이나 강조한 술이었다.

 

그러고보니 위스키는 진짜 같았다.

 

그때 황복이 이경애에게 뭔가를 말했고 이경애가 바로 통역했다.

“황 선생이 옆에 앉은 아가씨 데리고 나가실 것이냐고 묻는데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경애는 정색하고 기다렸다.

“오늘밤 네가 해주기로 했지 않아?”

“그렇게 말씀 드려요?”

그러더니 이경애가 황복에게 중국어로 말했다.

 

주의 깊게 황복의 말을 들은 이경애가 다시 통역했다.

“알았다고 하시네요.”

“뭘 알아?”

“제가 오늘밤 해주기로 했다는 거요.”

이경애의 두 눈이 반들거리고 있었다.

 

물론 거짓말이다.

 

이경애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의 목구멍이 굽혀졌다.

 

자극을 받은 것이다.

 

당장에 이경애를 안고 싶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586. 시장조사(11)  (0) 2014.09.25
585. 시장조사(10)  (0) 2014.09.25
583. 시장조사(8)  (0) 2014.09.25
582. 시장조사(7)  (0) 2014.09.25
581. 시장조사(6)  (0) 201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