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 시장조사(7)
(1751) 시장소사 -13
조철봉은 이경애의 눈을 보았다.
불빛을 받은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는데 여자의 눈은 이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그 순간 갑자기 이경애가 조철봉의 어깨를 흔들더니 몸을 붙여왔다.
그러고는 더운 숨결을 뱉으며 말했다.
“하고 싶어요.”
조철봉은 이경애의 어깨를 마주 쥐었지만 엉덩이는 더 빼었다.
철봉이 팬티를 찢어버릴 듯이 솟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돼.”
그 순간 조철봉은 제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온 목소리를 듣고 절망했다.
마음과 행동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다.
아이큐가 높은 짐승일수록 그 차이가 크고 인간 중에서 사기꾼 부류가
가장 그것에 익숙할 것이었다.
그러나 조철봉에게 지금 제 입에서 터진 말을 제 귀로 들은 순간처럼
제 기질에 환멸을 느낀 적이 없었다.
사기꾼의 적은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다시 드러났다.
그 말을 들은 이경애가 움직임을 멈췄으므로 어금니를 물었다 푼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고 사장은 모르는 일인데 난 섹스 안한 지가 오래되었어.”
그러고 나서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이것도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발상이다.
마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본인이 키를 누르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자동방어장치 같다.
일단 제 말을 제 귀로 듣고 나서 조철봉은 차분해졌다.
이제 여기에다 살을 붙여야만 한다.
“한 4년 되었을 거야. 바쁘다 보니까 섹스를 건너뛰고,
그러다가 오랜만에 여자를 안으면 안되는 거야.
몇번 그러고 났더니 슬슬 여자를 멀리하게 되더구만.
일이 바쁘니까 섹스 없이도 얼마든지 견딜 만했어.
섹스보다 자극적인 일이 사업에는 얼마든지 있거든.”
이은주나 중국 오기 전에 질탕하게 즐겼던 임미정이 들으면
기절을 했겠지만 조철봉은 심각했다.
듣는 이경애도 어느덧 손을 떼고 조철봉을 정색하고 본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널 보니까 안고 싶어졌어.
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심장 박동소리도 듣고 싶었어.”
그러고는 조철봉이 이경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다가 널 안고 나서 그게 제대로 안되면 무슨 망신이야?
차라리 안하는 게 낫지. 그래서 참고 있는 거야.”
“해보세요.”
이경애가 차분해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어금니를 물었다.
갑자기 웃음이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콧구멍이 벌름거렸지만 이경애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정색한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다가 잘 안돼도 창피할 것 없어요.”
“아냐, 그러지마.”
“제가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자신감이 최선의 방법이래요.
주눅이 든 상태에서는 될 것도 안된다고 해요.”
“글쎄.”
정색한 조철봉이 이경애를 보았다.
“아까 내 그것이 단단해졌다가 다시 식었어.
단단해진 걸 보면 네가 좋아진 것 같아. 편안하고.”
“그것 봐요.”
이경애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한번 시험해 봐요. 네?”
“넣고 나서 바로 식으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괜찮아. 나도 금방 오르는 걸?”
“그럼 내일.”
조철봉이 과열되기 시작한 분위기를 다시 조정했다.
이만하면 다 되었다.
이경애는 준비가 다 되었고 이제 감격할 일만 남았다.
오늘은 말로 다 했다.
(1752) 시장소사 -14
다롄(大連)은 랴오둥(遼東) 반도 끝의 항구 도시로 중국의 5대 무역 도시 중 하나이다.
조철봉과 이경애는 다음날 옌지(延吉)를 떠나 다롄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도 숙소는
150위안짜리 여관으로 정했다.
그보다 더 싼 여관도 있었지만 이경애가 이곳으로 정한 것이다.
이제 이경애는 조철봉의 마음을 절반쯤은 읽는다.
될 수 있는 한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가깝게 볼 수 있도록 조처하고 있는 것이다.
여관 주인은 중년의 인상 좋은 여자였는데 조철봉과 이경애를 타지에서 온
장사꾼으로 본 모양이었다.
허름한 차림에다 이경애가 사준 배낭을 메고 우두커니 서서 눈만 끔벅이는
조철봉을 나이 든 신랑으로 본 것이다.
“우린 옌지에서 온 조선족 부부라고 했어요.”
방으로 들어선 이경애가 웃지도 않고 말했다.
이경애도 싸구려 바지에 점퍼를 입었고 배낭을 메어서 영락없는 장사꾼 차림이다.
방은 넓었고 깨끗했다.
차를 끓여먹을 수 있도록 주전자와 찻잔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다롄으로 보따리 장사꾼이 많이 오거든요.
제가 아는 사람도 한국하고 보따리 무역을 해서 돈을 꽤 벌었다고 해요.”
혼자서 도란도란 말한 이경애가 배낭을 정리해 놓더니 허리를 펴고 조철봉을 보았다.
“식사는 조선족 식당으로 가실까요?”
오후 6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철봉이 머리를 저었다.
“여관 옆에 중국식당이 있더구만, 거기서 먹지.”
“그래요.”
이경애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잘만 고르면 싸고 맛있고 푸짐하다구요.”
여관 바로 옆의 조그만 중국 식당에서 이경애가 말한 대로
조철봉은 맛있고 싸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했다.
25위안을 주고 고기만두가 든 국수를 정말 맛있게 먹은 것이다.
25위안이면 한국 돈으로 350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렇군.”
빈 국수 그릇을 내려다보면서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몇 만 원짜리 저녁을 먹은 것보다 지금이 더 낫다.
내가 이런 기쁨을 모르고 있었다니.”
“체면 때문이죠.”
이경애가 정색하고 말했다.
“허세도 있구요. 저도 그런걸요?”
식당 안에는 남루한 차림새의 손님들이 식사를 했는데 떠들썩했다.
공사장에서 나온 인부들도 안전모를 쓴 채로 백주를 마셨다.
“활기가 넘치는군.”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분위기가 밝다.”
“전에는 25원짜리 식사도 하기 어려웠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식당 안을 둘러보며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그것이 10년도 안 되었어요.
6, 7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랬던 것이 이렇게 변해졌네요.”
“발전한 것이지.”
조철봉이 정색하고 이경애를 보았다.
“자랑스럽지 않아? 경애한테도 중국은 조국 아닌가?”
“자랑스럽죠.”
머리를 끄덕인 이경애가 힐끗 조철봉을 보았다.
“우리 입장은 좀 묘하다구요.
10년쯤 전만해도 선진국 한국이 내 조상의 나라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죠.
그런데 차츰 시시해지더군요.”
그러더니 이경애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우린 어차피 중국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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