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83. 시장조사(8)

오늘의 쉼터 2014. 9. 25. 10:34

583. 시장조사(8)

 

 

(1753) 시장소사 -15

 

 

 

조철봉은 마침 지나가는 주인에게 백주 한 병을 주문했는데 이경애는 50위안으로 흥정을 했다.

 

옆쪽 테이블 노동자들이 마시는 술이었다.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잘 살기만 하면 됐지 민족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내가 잘 살면 마음대로 한국으로 날아가 쇼핑도 하고 관광하고 돌아오는 거죠.

 

한국에서도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이 500만명이나 된다면서요?”

“500만까지는 아닐텐데.”

“전 세계로 퍼진 이민자가 600만인가 700만이라고 들었어요.

 

다 잘 살려고 떠난 사람들 아녜요?”

“그렇겠군.”

“그 사람들이 다 반역자라든가 매국노는 아니잖아요?”

“그, 그럴 리가.”

“우리도 마찬가지죠.

 

누가 여기로 오고 싶어서 왔나요?

 

조상이 어쩌다 보니까 오게 된 거죠.”

“그렇지.”

“제 조상의 나라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는 건 좋은 거죠.

 

그렇지만 우리한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억지예요.”

“누가 뭘 기대하는데?”

“한민족이니까 당연히 한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심보가 보여요. 중국은 남이고.”

“그런가?”

“조선족 차별하고, 무시하면서 말이죠.”

“…….”

“오히려 중국 정부나 인민들이 한국 정부와 한국사람들보다 우릴 덜 차별한단 말입니다.”

이경애의 말에 열기가 띠어졌다.

“저도 그걸 느끼는데요. 뭘.”

“설마 날 빗대고 하는 말을 아니겠지?”

그러자 이경애가 풀썩 웃었다.

 

웃는 얼굴을 보자 조철봉의 목구멍이 찌르르 울렸다.

 

웃는 모습이 고우면 대체적으로 복이 많다.

 

찡그린 얼굴로 한몫 잡았던 서시나 오왕 부차의 비참한 말로를 이야기할 것도 없다.

“아녜요.”

이경애가 머리까지 젓고 부정했다가 조철봉을 똑바로 봤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녜요.”

“그러니까 한국사람도 깊게 알고 봐야 한다니까.”

한 모금에 백주를 삼킨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시장조사를 하게 된 동기가 뭔지 알아?”

이경애는 눈만 치켜떴다.

“조선족 사업가 하나가 돈을 벌어서 한국에다 현지처를 두고 백억대 빌딩도 사놓았어.”

“…….”

“아마 경애 말대로 한국 사람들한테 당한 수모를 돈벌고 나서 갚는 중인지도 모르지.”

“…….”

“그 사람은 여자한테 몇십억짜리 집도 사줬어.

 

자장면 시켜먹고 배달나온 한국 사람한테 팁으로 100달러를 준적도 있대.”

“에이, 설마요.”

하고 이경애가 웃었다가 금방 정색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돈을 번 것은 중국 시장이 그럴 만한 여건이 있기 때문이야.

 

요즘 한국에서는 그런 벼락부자를 만들어 낼 수 없어.

 

로또에 당첨된다면 몰라도.”

그러고는 조철봉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13억 인구가 활력을 내뿜고 있는 것을 보면 무섭기도 해.

 

하지만 이 열기를 이용해서 뭘 좀 챙길 수도 있을 거야.”

조철봉의 시선이 이경애에게 옮아갔다.

“같이 한번 찾아보자구.” 

 

 

 

(1754) 시장소사 -16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조철봉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오전 7시 반이었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다 조철봉은 문이 열리는 기척에 시선을 돌렸다.

 

손에 비닐봉지를 쥔 이경애가 들어서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경애가 외면한 채 물었다.

 

이쪽으로 향한 한쪽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탁자 위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은 이경애가 말했다.

“식당에서 해장국을 가져왔어요.

 

여기서 드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고맙구만.”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조철봉이 킁킁거렸다.

 

그러자 옅게 고깃국 냄새가 맡아졌다.

“씻으세요. 그동안 상 차려 놓을게요.”

여전히 외면한 채 이경애가 말했으므로 조철봉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조철봉도 알몸이었던 것이다.

“어때? 밥 먹기 전에 우리 한번 할까?”

조철봉이 묻자 이경애는 아예 몸을 돌렸으므로 표정을 알 수가 없다.

“이리와.”

하고 조철봉이 불렀을 때 이경애가 머리만 반쯤 돌리고 말했다.

“싫어요.”

이경애의 반쪽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거 왜이래? 언제는 해달라고 보채더니.”

침대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이경애의 뒤로 다가가 허리를 감아 안았다.

“한번 하자, 응?”

“늦었어요.”

조철봉의 손을 쥔 이경애가 말했다.

“9시에 약속 있어요.
그러다가 늦는단 말예요.”

그동안 몸을 섞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경애는 아침에 마주쳐도 당당했다.

 

시선도 똑바로 마주쳤고 태도도 반듯했는데 오늘은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철봉이 짓궂게 군 것이지 꼭 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조철봉은 이경애를 돌려세우고는 이마에 키스했다.

 

그러자 이경애가 조철봉의 목을 두 팔로 감아 안더니 입술에 키스했다.

 

얼굴은 여전히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입술을 떼었을 때 환하게 웃었다.

“이젠 됐죠?”

하고 이경애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응. 됐다.”

“아유.”

조철봉의 곤두선 철봉을 피하려는 듯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 이경애가 얼굴을 붉혔다.

“짓궂어요. 사장님은.”

“이러다 너하고 정들겠다.”

“그럼 어때요?”

아직도 조철봉의 목을 감아 안은 채 이경애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정색했다.

“정들면 헤어질 때 괴롭잖아?”

“헤어지지 않으면 되죠. 뭐.”

하더니 이경애가 눈을 흘겼다.

“벌써 나한테 싫증났나봐.”

“그럴 리가.”

이런 대화는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해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이경애의 엉덩이를 두드려 몸을 떼었다.

 

앞으로 열흘은 더 같이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조철봉에게도 아주 드물었으므로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조철봉이 여관을 나왔을 때는 8시 반이었다.

“황복씨는 지난달에 다롄에서 호텔 한 곳을 인수했다고 해요.”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경애가 말했다.

“아마 갑자기 억만장자가 된 중국인 중 한 사람이 될 거예요.”

황복은 조철봉의 중국 공장에 원자재를 납품한 기업가 중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585. 시장조사(10)  (0) 2014.09.25
584. 시장조사(9)  (0) 2014.09.25
582. 시장조사(7)  (0) 2014.09.25
581. 시장조사(6)  (0) 2014.09.25
580. 시장조사(5)  (0) 201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