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81. 시장조사(6)

오늘의 쉼터 2014. 9. 25. 10:33

581. 시장조사(6)

 

 

(1749) 시장소사 -11

 

 

 두 시간쯤 후에 조철봉은 임영미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 마당에 대기시킨 택시에 올랐다.

 

그때는 마을 어른 서너 명도 모여 있었는데 택시가 출발하자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영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을 어른들의 입회하에 영미는 칭다오에서 일을 하기로 합의를 한 것이다.

 

물론 조철봉이 후견인이 되었다.

영미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어서 제 옷가게를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철봉은 그 자리에서 칭다오의 고동수한테 전화를 걸어

 

영미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 영미는 낮에는 칭다오의 의류회사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디자인 학원에 나가기로 했다.

 

몸은 고되겠지만 영미의 얼굴은 벌써부터 활기에 차 있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며

 

꿈을 향한 기초가 마련되었으니 영미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었다.

 

조철봉은 영미가 디자인 과정을 마치면 옷가게를 열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영미의 새작은아버지가 되겠다고 마을 어른들 앞에서 선언했다.

돈 떼어먹고 영미만 남겨두고 야반도주를 한 작은아버지 대신이 된 것이다.

 

숙소인 여관 앞에서 택시를 내렸을 때 운전사가 이경애가 내민 200위안을 받더니

 

100위안을 도로 내주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경애에게 40대의 조선족 운전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100위안이면 충분하단 말입니다.”

“아니, 그래도.”

처음 가격을 흥정할 때 악착같이 깎아주지 않았던 운전사였다.

 

이경애가 머리를 기울이자 운전사는 뒷머리를 긁었다.

“좋은 일 하시는 분들한테 그렇게 받으면 내가 나쁜 놈이 된단 말입니다.

 

나도 조선족이란 말입니다.”

그러고는 운전사가 재빠르게 택시를 몰고 사라졌다.

“이것도 기삿거리가 되는데.”

여관 앞에 선 이수동이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조철봉은 이수동한테서 이번 일은 모두 기사화하지 않기로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그때 조철봉의 눈짓을 받은 이경애가 들고 있던 가방을 이수동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이경애에게 물었던 이수동의 시선이 조철봉에게로 옮아갔다.

“그거 얼마 안 되지만 받으시지요.”

조철봉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조선어판 신문 발행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기자님 혼자 편집장 노릇까지 다 하신다더군요.”

“아니, 하지만.”

얼굴이 붉어진 이수동이 얼떨결에 받은 가방을 이경애에게 도로 내밀었다.

 

그러나 이경애가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헛일이 되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동포를 위한 신문인데 지원하는 건 당연하지요.

 

우선 10만위안 넣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많이.”

놀란 이수동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10만위안이면 2년분 총경비는 될 것이다.

 

그때 조철봉이 이수동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한 것이다.

“이 기자님 같은 분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저한테 연락해 주시지요.

 

여기 있는 이경애씨한테 해도 됩니다.

 

연길신문을 돕자고 제의한 것도 이경애씨니까요.”

그 순간 이경애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조철봉이 말을 지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수동은 이경애가 제의했다는 말에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이를 악문 이수동이 시선을 들더니 머리를 깊게 숙였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1750) 시장소사 -12

 

 

그날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 이경애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조철봉은 그냥 눈만 껌벅였고 이경애의 말이 이어졌다.

“이 기자 말씀입니다. 저녁 때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

“부끄러워서 직접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다면서 조선족 동포를 위해 힘껏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임영미는 어때?”

천장을 향한 채 조철봉이 물었다.

“난 눈물을 글썽이던 그놈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좋은 일 하셨어요.”

“이러려고 시장조사 나온 건 아냐.”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었다.

“조선족보다 중국인 중심의 시장조사를 나온 거야.

 

이쪽 둥베이지방은 우리 동포가 많기 때문에 부딪치게 된 것이고.”

“저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칭찬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래두.”

그러자 이경애가 몸을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오늘도 둘은 다 씻고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이경애는 어제처럼 욕실용 타월만 걸쳤을 뿐이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몸을 열어놓았다는 표시나 같다.

“이번 시장조사 끝나면 저도 회사의 정식 사원으로 채용해 주세요.”

“월 2만위안이면 본사 과장급 수당인데, 현지에서는 부장급이고.”

현지법인에서 채용한 직원은 대졸 초임이 2500위안에서 시작된다.

 

중국에 진출한 다른 회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증권회사에서 3년차 월급으로 3600위안을 받았어요. 그 정도만 주세요.”

이경애가 말하자 조철봉도 몸을 돌려 이경애를 보았다.

 

둘은 모로 누워 서로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조철봉은 이경애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오늘은 탁자의 등을 그대로 밝혀 놓아서 30센티쯤 떨어진

 

이경애의 속눈썹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다 드러났다.

“그쯤이야 어렵지 않겠다. 고 사장한테 이야기해 주지.”

조철봉이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적성에 맞는 부서를 찾아보도록 해.”

“중국에는 자주 오시죠?”

“그건 왜 물어?”

“제가 채용해 달라고 한 이유를 모르신단 말씀이에요?”

“모르겠는데.”

“곁에 있고 싶어서 그런 거라구요.”

그러고는 이경애가 눈을 흘겼다.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것 같았고 방안 공기도 더워진 것 같았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 이경애는 이쪽을 원하고 있다.

 

손만 대어도 안겨올 것이었다.

 

그러나 조철봉은 어금니를 물었다.

 

내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몸은 생각과는 반대로 뜨거워져 있다.

 

이경애와 마주 본 순간부터 철봉은 그야말로 철봉이 되어서

 

엉거주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는 형편이다.

 

참는다.

 

조철봉은 이경애의 눈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이왕 참은 거 끝까지 간다.

 

이경애가 지지 않고 마주 보았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뱉었다.

 

아름답다.

 

자세히 본 이경애의 얼굴은 지적이면서도 요염했다.

 

아마 처음 고동수를 통해 계약을 맺을 땐 이쪽을 경멸했으리라.

 

돈으로 여자를 사는 지저분한 한국인 사업가가 어디 한둘인가?

 

물론 나는 그 선두주자였을 것이다.

 

그때 이경애가 입을 열었다.

“우리, 그거 해요. 네?”

그러고는 손을 뻗쳐 조철봉의 어깨를 쥐었다.

 

이경애가 먼저 손을 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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