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 내일도 해가 뜬다(9)
(1731) 내일도 해가 뜬다-17
회사로 출근한 조철봉은 사장실에 앉아 한동안 결재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거의 매달 한두번씩 중국 출장을 가는 조철봉이었기에 중국 경제의 발전상을 가장
실감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몇년, 그러니까 4, 5년 전만 해도 황무지였던 곳에 대도시가 들어섰고,
몇년 전에는 가게에 들어가면 본척만척했던 종업원들이 지금은 악착같이 달려들어 상품을 판다.
그 변화에 놀라 은근히 불안감을 느꼈지만 아직 현실감, 직접적인 영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조철봉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인들의 입장일 것이었다.
그런데 거부가 된 중국 국적의 조선족 동포가 한국에 현지처를 두고 있다니.
더욱이 임미정, 아니 유정은 같은 특급 여자를. 돈이 제일인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조철봉의 충격은 컸다.
이러다가 한때 잘나갔던 필리핀의 경우처럼 한국 여자들이 중국으로 파출부나 마사지걸로
쏟아져 들어갈지도 모른다.
조철봉이 최갑중을 불렀을 때는 오후 세시경이었다.
방으로 들어선 갑중은 손에 서류가 든 파일을 쥐고 있었다.
“유정은에 대해서 대충 조사가 끝났습니다.”
갑중은 조철봉이 그일 때문에 부른 줄로 아는 것 같았다.
소파에 앉은 갑중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이었다.
“재산이 많습니다. 유정은 소유로 건물이 두 채 있고 아파트까지 100억대쯤 됩니다.”
머리를 든 갑중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정은의 스폰서는 이재환이라는 조선족으로 한국산 제품 수입으로 떼돈을 벌었다는군요.
업계에 꽤 알려진 수입상입니다. 거기에다 공장까지 여러 개….”
“능력 있으면 돈 버는 거다.
조선족이건 에스키모족이건간에 말이야.”
정색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게 바로 적자생존의 법칙이지.”
“형님이 요즘 문자를 꽤 쓰시네요.”
역시 정색한 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삼고초려란 말 아시죠?”
“네가 그런 말도 알아?”
“룸살롱 갔다가 배웠습니다.”
“무슨 말인데?”
“고를 세 번 하면 초단을 조심하란 말입니다.”
“으음.”
“사고무친은 아세요?”
“말해봐.”
“고를 네 번 계속하면 친구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군.”
“또 있는데요.”
“그만하고 내일 중국 출장 준비해.”
조철봉이 용건을 꺼내자 갑중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한발 앞서가야지 이러다간 큰일나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중국 공장 말이야.”
자르듯 말한 조철봉이 갑중을 똑바로 보았다.
“중국의 싼 인건비만 믿고 있다가는 우리가 당한다.
이번 출장에서 시장 조사를 다시 하고 새 계획을 세울 작정이다.
그러니까 너도 준비해.”
“예, 그렇게 전하지요.”
들고 왔던 파일을 열어보지도 못한 갑중이 방을 나갔을 때
조철봉은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펜을 집어들고 메모지에다 적었다.
금방 갑중이 알려준 삼고초려와 사고무친에 대한 설명을 적은 것이다.
오전에 갑중에게 말해준 대로 적자생존의 법칙이다.
그때 핸드폰의 벨이 울렸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들었다.
핸드폰의 발신자 번호에는 임미정, 즉 유정은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1732) 내일도 해가 뜬다-18
“자기야, 난데.”
하고 임미정의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울렸을 때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어 웃음을 참았다.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임미정, 아니 유정은이 이쪽 대답을 듣고 나서 물었다.
“저기, 언제 시간 있어? 내가 누굴 소개시켜 주려고 그러는데.”
“누구?”
“여자.”
그 순간 조철봉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니?”
“내가 10년 가깝게 알고 지낸 언닌데,
오늘 자기 이야기를 했더니 갑자기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도대체 내 이야기를 어떻게 했기에.”
“세다고 했지. 꼭 자기 이름처럼.”
“아무리 그렇다고 날 딴 사람한테 넘긴단 말야?”
“왜? 안 좋아?”
정색한 목소리로 미정이 물었다.
“자기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난 너 하나만으로도 벅차. 지금 막 시작한 상태라서 네 모든 게 다 새롭고.”
“감동적이네.”
미정이 웃음띤 목소리로 말하더니 곧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나하고 교대로 만나도 돼. 자기야. 내가 언니한테 양보한 거니까.”
“야. 내가 무슨 대여점 물건이냐?”
“언니는 미인이야. 나보다 세 살 위지만 더 어려 보인다구.”
“그래서 어쨌단 말야?”
“돈도 많아. 다만 남자가 없어서 그렇지. 남자 복이 되게 없거든.”
“그런 여자 있어. 남자 복이 아니라 만나는 남자마다 쪽박을 차게 만드는 여자.
그런데 그 여자는 남자 복이 없다고 불평하지.”
“아냐.”
미정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언니는 지금까지 남자 둘밖에 안 만났어. 그리고 둘 다 잘 산다구.”
이제는 조철봉이 입맛만 다셨고 미정의 말이 이어졌다.
“언니를 나이트클럽 같은 데 데리고 가서 잡놈들한테 내둘리기 싫어서 그래.
그러니까 자기가 한 번씩 만나줄래?”
“나. 요즘 바쁜데. 내일부터 중국 출장이란 말야.”
“중국?”
정신이 든 듯 미정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중국 어디?”
“청두, 베이징, 다롄.”
“언제 돌아오는데?”
“한 열흘 정도 있을 거야.”
두 배쯤 부풀려 말했을 때 미정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열흘쯤 후에 연락할게. 꼭 기억해둬. 자기야.”
“나아, 참. 별일이네.”
“언니 보면 놀랄 거야. 청순가련형인데다 명문대 출신이라 유식하고, 섹시하고.”
“내가 창남이냐?”
“언니한테 자기 이야기 탁 털어놓고 말했더니 만나겠다고 해서 나도 놀랐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어쨌든 갔다와서 보자고.”
“언니한테 그렇게 말해 놓을게.”
“맘대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약간 호기심도 일어났으므로 조철봉도 그렇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게다가 이런 일이 아주 드물지만은 않다.
전에도 여자가 제 친구를 소개시켜 준 적이 있었는데 물론 그 친구도 끝내주었지만
이쪽 기분이 찜찜했을 뿐이다.
마치 종마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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