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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내일도 해가 뜬다(8)

오늘의 쉼터 2014. 9. 23. 00:36

571. 내일도 해가 뜬다(8)

 

 

(1729) 내일도 해가 뜬다-15

 

 

 

 

조철봉이 눈을 떴을 때는 창밖이 부옇게 밝아오는 새벽이었다.

“깼어?”

하고 옆에서 임미정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와락 정신이 들었다.

 

이곳은 임미정의 집인 것이다.

“으음.”

기지개를 켜면서 대답했을 때 임미정이 큭큭 웃었다.

“아주 곤하게 자던데 그래.”

“으음, 잘 잤어.”

두어시간밖에 자지 않았더라도 숙면을 하면 개운한 법이다.

 

밤새도록 침대에서 뒤치락거리다가 일어나면 머리만 아프다.

 

조철봉은 반듯이 누워 아직 어두운 천장을 보았다.

 

옆에 누운 임미정의 알몸 어깨가 옆구리에 닿았고

 

곧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방안에서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임미정의 체취에 화장품, 거기에다 비린 정액 냄새까지 섞여 있다.

“아아, 좋다.”

두 다리를 주욱 뻗으면서 임미정이 탄성을 뱉었으므로 조철봉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말만 뱉지 않았을 뿐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만족한 섹스 후에 숙면을 취하고 나서 눈을 떴을 때

 

온몸은 새 피를 갈아 넣은 것처럼 맑아지고 활력이 솟구치는 것이다.

 

어젯밤 조철봉은 세 번의 등정 후에 모처럼 폭발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체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자기야.”

임미정이 몸을 돌려 조철봉의 가슴에 볼을 붙였다.

 

한 손으로 상반신을 감싸 안고 다리 한 짝이 하반신 위로 걸쳐졌다.

 

가슴 위를 임미정의 더운 숨결이 훑고 지나갔다.

 

임미정이 말을 이었다.

“어젯밤 너무 좋았어.”

그건 말해주지 않아도 조철봉은 안다.

 

조철봉은 잠자코 임미정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았다.

 

임미정의 폭발은 대단했다.

 

과연 선수답게 화려하고 격렬한 폭발이었다.

“자기 같은 선수를 만나면 가만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맞아 떨어졌어.”

임미정이 웃음 띤 목소리로 가만가만 말했다.

“내가 선수랍시고 기교를 부렸다면 오히려 기쁨이 줄어들었을 거야. 그지?”

“글쎄.”

천장에 달린 형광등 윤곽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났다.

 

창문이 닫혀 있지만 바깥소음도 희미하게 울렸다.

“나도 좋았어.”

조철봉이 임미정의 어깨를 당겨 안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그런 느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마치 게임에 이기고 난 같은 편 선수끼리 서로 주고받는

 

공치사 비슷하게 들렸지만 조철봉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임미정과의 어젯밤은 그야말로 황홀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서로 근본도 모르면서 몸을 섞고 나서

 

이렇게 뜨거운 유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때 임미정이 불쑥 물었다.

“자기, 와이프 사랑해?”

“당연하지.”

천장을 향한 조철봉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은지의 얼굴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런 짓 하고 다닌다고 해서 와이프에 대한 감정이 식었다든가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구.”

이러면 그럼 이 짓은 무슨 병이냐?

 

하고 물어볼까 항상 찜찜했는데 임미정은 선수답게 가만 있었다.

 

 

 

 

 

 

(1730) 내일도 해가 뜬다-16

 

 

 

 “그 여자 이름, 임미정이 아닙니다.”

핸드폰에서 최갑중의 목소리가 울렸다.

“본명이 유정은이더군요. 그리고.”

최갑중이 잠깐 말을 멈추었으므로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임미정의 이름이 가짜였다는 말이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

 

차는 임미정의 아파트를 떠나 대로를 달려가는 중이었다.

 

오전 8시10분. 도로는 출근 차량으로 꽤 혼잡했다.

 

그때 갑중의 말이 이어졌다.

“유정은은 현지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거기까지밖에 알아내지 못했지만 오늘 중으로 호적관계,

 

전과, 남자관계까지 다 알아낼 수 있습니다.”

“됐어.”

조철봉이 갑중의 말을 잘랐다.

 

갑중은 늘 하던 대로 조철봉이 상관한 여자의 뒷조사를 한 것이다.

 

어젯밤 돌아가면서 박경택에게 지시를 했고

 

아직 출근시간 전인데도 거기까지 밝혀내었다.

 

여자 뒷조사에 이골이 난 터라 박경택의 솜씨는 빠르다.

“그런데, 형님.”

갑중이 다시 입을 열었으므로 조철봉은 가만있었다.

“그 유정은의 남자가 누군지 압니까?

 

중국인입니다. 아니, 중국 국적의 조선족 동포죠.”

조철봉이 눈을 크게 떴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면 놀란다.

 

지금이 그렇다.

 

임미정 본명이 유정은이라고 아까 말했을 때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예상하고 있었다기보다 당연한 일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몸으로 부딪치는 관계에 이름이 무슨 대수인가?

 

이름도 모르고 관계를 맺었던 여자들이 부지기수였고

 

지금 기억나는 이름도 거의 없다.

 

갑중의 말이 이어졌다.

“아파트 경비원들도 다 알고 있다더군요.

 

팁으로 100달러짜리를 1000원짜리 주듯이 준답니다.

 

중국요리 배달하는 애한테도 100달러를 준 적이 있다는군요.”

“…….”

“중국에 큰 공장을 여러 개 갖고 있답니다.

 

물론 한국을 이용해서 그렇게 출세했겠지요.”

“…….”

“형님, 좀 웃기지 않습니까?”

“뭐가?”

조철봉이 불쑥 묻자 수화기에서 입맛 다시는 소리부터 났다.

“몇년 전만 해도 이런 일 없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중국에서 놀았지요.”

“웃기네.”

이번에는 조철봉이 혀를 차고 나서 말을 이었다.

“인마, 적자생존이야. 그말 몰라?”

“적자생존요?”

“그래.”

“그거, 한국말입니까?”

“그럼 내가 지금 영어하냐?”

“적는 놈이 생존한다는 뜻입니까?”

“어?”

하고 되물었던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물론 갑중도 대학을 나왔다.

 

비록 삼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고 조철봉의 과 후배인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나왔다고 적자생존의 뜻을 다 아는 건 아니다.

 

조철봉이 다시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적는 놈이 산다는 말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꼭 메모를 하는 것이….”

“알았다.”

“그말 맞지요?”

“맞는 것 같다.”

“갑자기 메모를 하라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갑중이 진지하게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어깨를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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