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 내일도 해가 뜬다(7)
(1727) 내일도 해가 뜬다-13
조철봉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소파에 앉아 술잔을 들고 있던 임미정이 빙긋 웃었다.
“잘 어울리는데.”
임미정이 준비해준 가운은 몸에 맞았다.
알몸에 닿는 실크 촉감이 산뜻한 데다 씻고 난 후여서 기분도 상쾌했다.
그리고 첫째, 임미정이 말해준 대로 욕실에서 이은지한테 못 들어간다는 연락을 한 것이다.
이은지는 중국 손님을 접대하고 있다는 조철봉의 말에 과음하지 말라고 걱정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되겠지만 이것으로 부담은 다 없어졌다.
“그런데.”
느긋해진 조철봉이 잔에 술을 채우고 나서 임미정에게 물었다.
“직업이 뭐야? 유산 갖고 이렇게 사는 건 아닐 테고.”
“부동산.”
임미정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건물이 몇 개 있어. 거기서 임대료를 받아 먹고 살아.”
“건물이 몇 개라.”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지그시 임미정을 보았다.
“크게 노시는군. 임대료가 한 달에 얼마나 나오는데?”
“궁금해?”
임미정도 찬찬히 조철봉을 보았다.
눈에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돈 많은 여자가 거기처럼 잘빠지고 젊은 경우가 드물거든.
거기에다 그 느낌도 굉장하고.”
“그 느낌이라니?”
했다가 임미정이 풀썩 웃었다.
“내 그 느낌이 좋았어?”
“굉장했다니까.”
“나도 그랬어. 지금도 거기가 후끈거리는 것 같아.”
“자, 본론으로. 내가 물은 말에 대답을 해야지.”
“음.”
머리를 끄덕이 임미정이 잠깐 미간을 모았다가 대답했다.
“월 임대료 수입이 6천쯤 돼.”
임미정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떠올랐다.
“건물은 어떻게 해서 갖게 되었느냐고 묻고 싶지?”
“잘 아네.”
“영동 부동산 재벌 아들과 결혼했다가 이혼했거든.
그래서 건물 세 채를 위자료로 받은 거야.”
“과연.”
“그 새끼는 3년 전에 나하고 이혼하더니 금방 탤런트하고 결혼했다가 작년에 또 갈라섰어.”
이제는 눈말 껌벅이는 조철봉에게 임미정이 말을 이었다.
“그 탤런트라는 애한테는 15층짜리 빌딩을 위자료로 줬다는군. 그 미친 놈이.”
“그렇게 재산을 나눠주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거야.
움켜쥐고만 있는 놈들보다 몇십배 애국이라구.”
“난 그쯤 해두고.”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임미정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사업을 꽤 크게 한다면서? 여자들도 많이 건드리고.”
“맞아.”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까지 수백명하고 관계를 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한 명도 나한테 원한을 품지 않았어.
난 그것이 자랑스러워.”
“잘 해줬단 말이지?”
정색한 임미정이 묻자 조철봉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나한테는 여자가 기쁨의 탄성을 터뜨리는 장면만큼 값진 것이 없지.
왜냐하면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하니까.”
(1728) 내일도 해가 뜬다-14
밥먹듯이 사기를 치며 살아온 조철봉이다.
제가 한 거짓말을 제가 믿을 정도를 넘어서 그것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경지까지도 가 보았으니
사기 10단이다.
귀신으로 불러도 된다.
조철봉에게 여자는 제 자신을 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이나 같았으며
더럽고 추악한 세상사를 벗어나게 하는 촉매제도 되었다.
여자와의 정사를 이용하여 생의 의욕, 자긍심, 그리고 성취감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조철봉만큼 바쁘고 열심히 사는 인간도 드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단 1분도 헛되게 써본 적이 없는 인간이 조철봉이다.
예를 들면 응접실의 소파에서 일어나 왼쪽 화장실에 갈 경우에는 마침 그 방향에 놓여진
휴지통에 넣을 쓰레기를 들고 가는 식이다.
화장실 다녀와서 다시 쓰레기를 버린다면 같은 길을 두 번 가게 된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에너지 소모와 효율성을 따지는 버릇이 들었으니
뇌가 피곤하지 않겠는가?
요즘은 다 잊고 쉰다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조철봉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목적이 있어야 움직였다.
여자 관계도 바로 이 생활 습관의 연장이다.
오늘 임미정과 만나게 된 동기도 문주옥한테서 받은 감동을 해소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문주옥의 치료비를 낸 것도 순수한 동정심이나 더럽게 번 돈의 사회환원 따위는 전혀 아니다.
턱도 없다.
오직 이은지를 감동시켜 부실했던 남편 노릇을 만회하려는 수작이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문주옥의 모습을 직접 보고 듣고 나서 뇌에 약간 혼선이 일어났다.
불끈 솟는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도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런 때는 이열치열 방법을 쓰는 게 나은 것이다.
그날 밤, 임미정과 질탕한 시간을 보낸 조철봉은 곧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을 꾸면서도 조철봉은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시원찮은 꿈이 계속되면 에이, 하고 깨어나 버린다.
그러니까 꿈까지 이용해먹는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저기요.”
하고 욕실에서 나온 여자가 조철봉의 바로 앞에 서서 말했다.
바로 문주옥이다.
이 여자하고 어느새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조철봉은 눈을 치켜뜨고는 꿈속에서도 침을 삼켰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침을 삼키는 것도 의식했다.
꿈과 현실이 같이 뛰는 것이다.
꿈이 시원찮으면 곧 깨버릴 테다.
문주옥이 물었다,
“절 사랑하세요?”
사랑이라니?
정말 어려운 질문을 하는군,
이 여자가. 그런데. 조철봉은 입 안에 침이 고였지만 문주옥이 눈치챌까봐서 삼키지 못했다.
문주옥의 몸은 가슴이 울렁거리도록 자극적이었다.
도톰한 아랫배, 그리고 능선과 검은 계곡.
마침내 문주옥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난 사랑해본 적이 없어.”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놀란 조철봉이 꿈에서 깨어나려다가 문득 참았다.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더 나올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본래 문주옥의 말에 사랑한다고 대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문주옥이 빙그레 웃었다.
“정말야?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벗겨 놓았단 말야?”
조철봉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농담이었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테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난 여자 벗기려면 어떤 거짓말도 다 해.
멀쩡한 내 어머니를 돌아가셨다고 한 적도 있어.”
제 귀로 제가 뱉은 말을 들은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이제 정말 꿈에서 깨어야겠다.
이렇게 나가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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