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56.인연(6)

오늘의 쉼터 2014. 9. 23. 00:17

556.인연(6)

 

 

(1700) 인연-11

 

 

오후 5시 정각이 되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들었다.
 
방 안으로 박경택과 서연주가 들어서고 있었다.
 
서연주는 굳은 표정이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사장님, 이쪽이 최교수님이 추천하신 서연주씨입니다.”

하고 박경택이 소개하자 서연주는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서연주입니다.”

최교수란 서연주의 후원자인 유선숙 조교수의 선배 최경열을 말한다.
 
서연주로서는 이름도 듣지 못한 어른이다.
 
조철봉은 웃음띤 얼굴로 서연주를 맞았다.
 
서연주는 당연히 미인이었다.
 
김태영이 반할 만한 외모였다.
 
날씬했지만 탄력있는 몸매에 특히 반짝이는 두 눈이 매력적이었다.
 
조철봉은 호감이 가는 여자를 만났을 때
 
그 여자가 쾌락으로 몸부림치는 장면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날씨나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탄성과 함께 절정으로 치솟는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다.

“최교수 소개라면 믿을 만하겠지만.”

하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최경열은 경제관계 자문역을 하는 교수로 발이 넓었다.
 
그래서 가끔 조철봉도 부탁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 서연주건은 아주 쉬웠다.
 
서연주의 후원자로 이미 소문이 나 있는 유선숙을 통해 서연주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인물을 찾았기 때문이다.

“본인 입으로 경력과 능력을 들읍시다.”

조철봉이 말하자 서연주는 입을 열었다.
 
대학때 1년반 동안 미국에 어학 연수를 갔으며 영어와 불어, 일본어 3개국어는
 
말하고 읽고 쓰는 데 지장이 없다.
 
현재 동해건설에 알바를 나가면서 대학원에 재학 중인데 월요일과 금요일의 오후시간만 빼면
 
일주일 내내 근무할 수가 있다.
 
서연주가 이야기하는 동안 조철봉은 약간 비음인 목소리에서 강한 성적 자극을 받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서연주의 얼굴 위에다 쾌락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겹쳐 놓고는
 
비음이 섞인 탄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김태영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금방 지워졌다.
 
서연주의 말이 끝났을 때 조철봉이 물었다.

“그럼 지금 나가는 건설회사 알바는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
 
만일 우리하고 계약이 된다면 말이죠.”

“당장에 그만둘 수가 있습니다.”

서연주가 금방 대답했다.

“거긴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이 있으면 시간당 알바 형식으로 불렀거든요.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하면 됩니다.”

조철봉의 시선이 옆쪽에 앉은 박경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그렇다.
 
시간당 5만원씩을 받았는데 지난달에는 65만원의 통역료를 받았다.
 
11시간 일한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물었다.

“날 따라서 외국에도 자주 나갈지 모르는데, 지장이 없겠소? 예를 들면.”

조금 뜸을 들였다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남자 친구가 있다든가, 또는 집안 사정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런 일로 지장을 받지는 않습니다.”

서연주가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조건만 좋으면 대학원 과정을 마치지 않아도 됩니다.
 
월요일, 금요일도 출근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허.”

정색한 조철봉이 서연주를 보았다가 이윽고 박경택에게 말했다.

“그럼 박실장이 조건을 말해 주도록.”

“예, 사장님.”

박경택은 이제 비서실장이다.
 
박경택이 서연주를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701) 인연-12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상대에게 몰두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아니, 없는 것 같다.
 
서연주가 밖으로 나갔을 때 문득 조철봉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우두커니 앞쪽의 벽을 보았다.
 
그렇다. 계산하지 않고 작업에 들어간 적이 한번도 없다.
 
목표는 오직 여체였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우연의 인연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조작된 인연으로 엮어졌다.
 
물론 상대방 모두는 지금까지도 그것들을 우연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말이다.

누군가 인생은 연극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바로 조철봉이 그것을 실행했다.
 
연극 주인공은 작업 대상, 그리고 각본과 연출은 조철봉이 한다.
 
대상자는 각본에 따라 생생한 감동을 받았는데
 
제가 조철봉 연출의 연극에 출연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다.
 
아마 모른 채 죽을 것이다.

조철봉은 담배함을 열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는 끊었다가 피웠다가 했지만 스스로를 구속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임씨 성을 가진 중국인이 그랬다.
 
인간은 수많은 규약, 규제, 법, 도의로까지 제한을 받고 살아간다.
 
그런데 또 다시 저 스스로 룸살롱에 안 가네,
 
나이트는 일년에 한번으로, 술은 사흘에 한번 소주 두병까지,
 
담배는 꼭 끊을 것 등등으로 속박하며 사는 것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 관두고 법이나 지키면서 살라고 했던가 어쨌던가?

서연주를 끌어 들인 것은 일단 김태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외사촌 동생 김태영은 상처 받는다.
 
손을 댄 김에 조철봉은 김태영의 뒷조사도 시켰는데 이런 맹탕도 드물었다.
 
용기도 있고 머리도 나쁜 편이 아니며 용모, 체격, 학벌에다가 직장까지 번듯한 놈이
 
여자하고 제대로 끝을 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 흐지부지, 용두사미다.
 
저 스스로도 오죽 답답했으면 오랜만에 본 외사촌형한테 자문을 구했을까 말이다.
 
김태영에 비교하면 서연주는 프로다.
 
조철봉은 서연주를 파악한 후에 김태영에게 연결을 시켜주든지 말든지 할 작정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박경택이 들어섰다.

“사장님, 계약했습니다.”

다가온 박경택이 계약서를 조철봉의 앞에 내려놓았다.

“서연주는 1년간 회사일에만 몰두하기로 했습니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며 계약서를 보았다.
 
서연주는 연봉 3천짜리 비서실 소속 통역직이 된 것이다.
 
박경택이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 7시에 서울호텔 한식당에서 저녁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얼른 덧붙였다.

“유리씨한테는 사장님이 하바로프스크 중고자동차 시장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유리 젤린스키는 하바로프스크의 중고 자동차 매매업체 사장이다.
 
조철봉과 소규모 거래를 해오다가 이번에 합작 제의를 해왔는데
 
지금 기조실에서 검토중이었다.
 
그래서 오늘 서연주의 첫 업무로 유리 젤린스키와의 상담 통역을 맡겨본 것이다.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박경택이 말했다.

“사장님, 서연주씨는 내일까지 집을 비워야 할 상황입니다.”

알고 있는 일이었으므로 조철봉은 시선만 주었다.
 
집주인이 302호와 303호를 갑자기 터서 전세로 내놓게 된 것도 박경택의 공작이다.
 
물론 그 방은 오성자동차서비스의 안가로 사용되겠지만 당분간은 빌 것이다.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당장은 오갈 데가 없어도 마음은 안정되었겠지. 곧 계약금을 받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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